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How to Do the Work
- 상처 입은 내면아이와 화해하는 치유의 심리학 -
우리말 제목과 원제목이 기가 막힌 조합을 이룬다.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알아보고 돌보고 치유하고 재양육하는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보통 심리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심리학 이론들도 등장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전체론적 심리학’은 인간과 관계되는 다양한 측면들을 아울러서 살펴보도록 독자를 초대한다.
이 책에도 언급되는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도 있지만, 영양의 역할, 다중미주신경이론, 신경계가 정신과 신체에 미치는 역할, 명상 등 정신과 신체가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기에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이론과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과 방법들은, 임상심리학 박사이자 정신역학을 연구하기도 한 저자가 실제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탐구하고 적용했던 것들이며, 저자가 창설한 자기치유자 서클(SelfHealers Circle)에 속한 사람들이나 내담자들의 사례들까지 있어서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나의 제한적 경험이기는 하지만, 나름 다양한 치유 경험을 하면서, 이론으로만 무장한 사람, 치료사라고는 하지만 자기 문제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 자기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다루며 성장해나가기에 자신이 만나는 내담자에게 진정성있게 대하며 따뜻하면서도 단호함을 보일 수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치유자/치료사들을 만나왔는데, 저자는 가장 마지막에 언급된 유형의 치료사라 느껴졌다.
이 책에서 특히 유용하게 다가온 부분에는 먼저 트라우마의 개념이 있다.
나는 트라우마의 개념이 다양한 유형의 압도적인 경험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도록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신경학자 로버트 스케어가 정의했듯이 ‘비교적 무력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인 인생 경험을 트라우마로 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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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트라우마 경험은 항상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인식하는 것은 트라우마 그 자체 못지않게 유효하다. 특히 가장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아동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지속해서 자신을 배반할 때, 자신을 무가치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해 진정한 자기와 단절될 때 트라우마가 생겨난다. 트라우마는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배반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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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같은 아주 극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우리 내면의 아이가 무력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자신을 지속적으로 저버리게 하는 경험들이 있다면 그것은 몸와 마음에 오롯이 각인되어 존재를 꽃피우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자신에게는 트라우마가 없다고 생각했고, 기존의 트라우마 정도를 확인하는 척도에서 10점 중 1점을 받았으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본인에게도 트라우마 경험이 있음을 알아차렸기에 그에 상응하는 방법들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트라우마 또한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외상성 애착 패턴을 유발하는 부모의 양육 태도 등에 관한 부분은 부모의 자기 돌봄과 치유, 양육 태도 점검을 위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완전한 부모가 되지 못함에 죄책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지 못한,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트라우마를, 부모도 가지고 있을 수 있음을, 그래서 최선을 다함에도 아이에게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 또한 알려주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한 부모로부터 다음 세대, 즉 자식에게 어떻게 전이되는지 좀 더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 과정의 핵심에 조건형성 개념이 있다. 조건형성은 믿음과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지내본 사람이라면 아이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아이는 동네 친구든 같은 반 친구든, 혹은 만화 캐릭터든 본 대로 따라 한다. 이것이 조건형성 방식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부모가 모델이 되어 보여주는 것을 학습한다. 아동기의 애착이 무의식적인 믿음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인간관계가 어떤 것인지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배운다. 또한 몸에 대한 부모의 생각을 지켜보면서 자기 몸에 관한 생각을 정립한다. 자기 돌봄을 우선시할지 말지도 배운다. 소비습관과 세계관,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믿음도 습득한다.이러한 믿음은 수없이 많은 다른 메시지들과 함께 무의식에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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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제시하는 외상성 애착 유형을 유발하는 양육 태도
- 아이의 현실을 부정하는 부모
-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
-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부모
- 경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부모
- 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부모
-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부모 (266-271)
“뇌와 장을 연결하는 미주신경”을 뜻하는 다중미주신경이론 또한 흥미로웠다. 온몸이 정말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사실과 소화기관의 중요성은 영양 섭취나 식생활까지도 점검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가 결국은 나를 돌보고 치유하는 일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위장에는 약 5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이 신경세포들은 ‘장-뇌 연결축 gut-brain axis’이라고 알려진 통로를 통해 두뇌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유독 많이 연구되는 사례 중 하나인 장-뇌 연결축은 다양한 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속도로와 같다. 예컨대 얼마나 배가 고픈지, 어떤 영양소가 필요한지, 음식이 얼마나 빠르게 위장을 통과하는지, 심지어는 식도 근육이 언제 수축하는지도 전달해준다. 우리의 친구 미주신경은 장과 뇌를 오가는 그러한 신호들의 전송을 촉진하는 핵심 메신저 가운데 하나다.
장은 또한 창자신경계ENS라고 알려진, 장벽을 따라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신경세포망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창자신경계는 망 같은 신경세포 체계로, 너무 복잡해서 연구학자들의 종종 ‘제2의 뇌’라고 부르는 조직이다. 창자신경계의 신경세포들은 진짜 뇌의 신경세포들처럼 몸의 다양한 부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호르몬 분비 신호와 화학적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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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내 세균 불균형은 우울증과 자폐증, 불안증, ADHD, 심지어는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의 근본 원인이 될 수 있다. 몇몇 동물 연구에서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건강 상태 쇠락(좋지 않은 식습관과 스트레스 및 독성 화학물질 같은 환경적 영향의 결과)과 인간의 불안증 및 우울증 관련 증상의 급증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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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반에 강조되는 마음챙김의 태도를 포함해서 호흡, 명상 관련 내용들이나 감정 조절에 관한 수용적이고 명상적 태도, 긍정적인 경계 세우기, 애착의 유형과 외상성 애착 관계, 핵심 믿음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믿음을 창조하기 등 내면아이를 돌보는 다양한 접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작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해보라는 권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사례들을 보면 아주 작은 결심과 실행 하나가 지속되면서 큰 변화로 이어져 감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의 저자의 경험 공유/고백은 이러한 내면작업을 통한 정서적 성숙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요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한 막막함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정서적 성숙의 발달 과정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정서적 성숙은 자기 인식과 수용이 매일 진화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성장의 시기도, 지금껏 이뤄낸 진전을 시험하는 좌절의 시기도 닥친다. 사실 나는 이 장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시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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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오해받았다고 느끼는 상처 입은 아이였다. 하지만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갇혀버린 고독한 아이는 아니었다. 내가 내 자아의 이야기에 먹혀버렸다면 그렇게 해변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 어떤 아름다움도 내게 닿지 못했을 것이다.
해변에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정서적 성숙 단계를 넘어섰다. 내 정서적 상태가 다른 사람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작업의 궁극적 목적이다. 경계를 세워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 작업에서 재양육 작업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작업은 순수하게 함께하기 상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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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 사진에서 책과 함께 있는 곰돌이 인형은 나와 함께 한 지 13년 쯤 된다. 어느 주말 내내 있었던 이틀 간의 내면아이 워크샵 때 나의 내면아이였다. 워크샵 후 선생님께 말씀드려 특별히 함께 집에 왔다. 항상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내면 작업이 필요한 시기에는 내 침대 머리 맡에 등장한다. 그 곰돌이에게 책에서 위의 부분을 읽어주었다. 기죽지말라고 말이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재미있는 책과 관련한 동시성 경험을 나눠보려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래 문장은 두 번(59쪽, 407쪽) 등장한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기억하지 않는다. 순간을 기억할 뿐이다.’
체사레 파베세
박사 과정 중 등교길에 공황 발작을 경험한 저자가 우연히 만난 간판의 저 문장으로 인해 “현재 순간의 힘”에 관해 조사하고 연구하며 의식의 힘에 관해 시야를 넓힐 수 있었음을 앞 부분에 공유하는데, 뒤에서는 이 문장을 어떻게 다시 만나 책에 인용할 수 있었는지 설명이 나온다. 저 문장으로 인해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안내 받았음에도, 책을 구상하면서 공유하고 싶은 저 문장을 아무리 해도 찾을 수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도 없다가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 상태로 식사 준비조차 힘들 만큼 기운이 떨어져 주문한 피자 박스에 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저 문장을 보는 순간 그간의 지난한 노력들과 성장을 상기할 수 있었고, 물론 책에도 포함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와 비슷하게 내가 작년에 전자책 만들기 실습을 하며 원고를 정리하던 중 우연히 만난 문장이 있었다. 너무나 공감이 되어 책에 포함시켰으나 출처를 찾을 수 없었는데, 바로 그 문장이 이 책의 본문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자신을 치유하는 것은 주변 세상을 치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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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이 문장의 의미가 더 넓고 깊게 다가왔다.
출판사에서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