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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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10.0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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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 과학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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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물리학적 시간과 생물학적 시간 그리고 사회학적 시간 평점10점 | s*******9 | 2024.01.17 리뷰제목
과학과 인문학이 이렇게 조화롭게 섞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시간'이라는 단어에 '살아보니'를 엮은 제목이 내용을 잘 아우르고 있다. 있지만 없는 없지만 느끼는 시간이라는 것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간에 시간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은 생각의 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
리뷰제목

  과학과 인문학이 이렇게 조화롭게 섞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시간'이라는 단어에 '살아보니'를 엮은 제목이 내용을 잘 아우르고 있다. 있지만 없는 없지만 느끼는 시간이라는 것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간에 시간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은 생각의 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과학에서도 시간은 중요하다.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시간을 대하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인간이 사고하면서 느끼기 시작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동물에게도 있을지 우주에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물리학에서 시간은 그저 정의되는 것일 뿐이다. 본질을 얘기하는 것은 과학의 몫은 아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하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은 한 과학 교사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선생님, 아이에게 시간이 뭔지 모른다고 하셨다면서요. 시간도 모르면서 아이를 가르칩니까"

  과학 카페는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보통의 학부모라면 심각할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뉴튼도 모른다고 한 '시간'을 어떻게 설명하라는 건지 다들 난감해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저 세상은 변하고 있을 뿐이고 인간은 그것을 기억할 뿐이다. 물리에서 시간은 변화가 발생한 틈을 정의한 도구니 미라니 과거니와 같은 방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극점에서 북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또렷이 느낀다. 우주의 변화의 방향과 인간 기억의 방향이 같은 쪽을 향해서 그렇단다. 결국 무질서하게 된다.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한다면 우리의 과거와 미래는 뒤집어질까 궁금하기도 하다.

  생물학적 시간은 '노화'로 설명을 할 수 있지만 '노화'라는 것도 방향일 뿐 방향을 설명할 순 없다. 생명은 탄생과 소멸로 볼 수도 있고 성장과 순환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간은 '대멸종'을 전재로 한다. 꽉 찬 공간에 여유가 생겨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것과 같다. 

  어려운 테마지만 과학을 삶에 들이댈 필요까진 없다. 과학이라는 게 가정으로 한정해 놓은 채 여러 사실들을 알아내는 학문. 즉 측정 가능한 것이 곧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학문이기에 비어 있는 공간은 너무 많다. 그래서 여전히 인문학적 채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과학적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 중에 과학적인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처럼..)

  끈 이론이 시들해졌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았다. 차원은 끝이 없고 무한히 증명해야 하고 셈은 어렵고 측정 불가능해서일까? 그리고 '양자고리중력'이라는 학문이 재조명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상대성 이론은 건재하다. 최근 이론물리학은 측정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니까. (근데 2센티 높이 차로 시간 차이가 있다는 걸 측정한 사람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2 아토초만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단다. 와우~)

  과학이 발달하고 통신이 수월해지면서 비과학과 유사과학이 더 활발해졌고 이를 비판하는 쪽은 결국 '과학지상주의'로 흐르게 된다. 과학이라는 것이 삶에 녹아들며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냐라고 주장하는 신계몽주의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티브 핑거 교수가 있다. 삶 속에 녹아든 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인문학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과학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은 하나의 종교가 되었고 나는 그 신자 중에 한 명이다. 종교가 종말론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만해지고 탐욕만 추구하게 되었다는 이권우 님의 말에도 공감했다. 과학이든 뭐든 한계를 인정하고 성찰하는 일이 사라지면 안 된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는대도 합리성이나 자유경쟁을 들먹이며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과학은 과학적이지 않은 면이 많은데도 과학이라는 말이 붙어서일까.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계속 소외되는 듯하다.

  결국 우리의 시간에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인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앞의 미래 정도를 생각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우기지 않고 토론하며 나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두루 잘 사는 세상이 이렇게 어려울까? 노동의 신성함이 사라지지 않아서일까. 없어도 되는 일이 계속 생겨난다. 몇십 년 전 보다 훨씬 발전했지만 그것만큼 편해지지도 않았다.

  수렵채집의 시대는 하루 세 시간 노동했다. 농경의 시대에 '분'이라는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고 중세에도 시간은 15분 단위였다. 현대는 초를 세어가며 산다.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기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학과 인문학의 절묘한 콜라보가 돋보이는 책이며 또한 우리 세상 또한 그래야 함을 얘기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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