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소설의 개요와 특징에 대하여
독특한 소재, 과감한 상상력,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단순하지만 급박한 상황전개로 독자를 강하게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지닌 소설이다. 사전을 전개시키는 단 한 가지 변수가 발생한다. 어느날 사람들이 갑자기 앞을 볼 수 없는 실명이라는 병에 걸린다. 이 병은 전염된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이미 병에 걸린 사람은, 그리고 아직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대응해 나갈까? 최근의 구제역 사태를 생각해 보면 많은 것들을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안과의사와 그를 찾아온 손님들로 구성된 소집단 이야기에서 사건을 전개한다. 이 도시에서 제일 처음 눈먼 사람과 이를 치료하던 의사. 그리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잠시 마주쳤던 그의 환자들이 모두 차례차례 시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이들은 집단수용소에 격리되어 살아간다. 여기까지는 보호하고 보호받는 사람의 구분이 가능한 시기이다. 그러나 상황은 도시의 모든 사람들까지 전염된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는 곳까지 악화된다.
눈먼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본다면 우리가 상황이나 사실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지어준 많은 것들이 의미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소설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몇가지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이름없이 소개된다. 그냥 의사, 의사 아내,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여자... 이런 식으로 소개된다. 눈먼 도시에서는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개성의 차이가 큰 의미없음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로는 소설의 표현형식이 독특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는 목차나 장절의 구분이 없다. 문장에서는 따옴표나 느낌표가 없다. 마치 어둠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물건을 파악해야 하듯이 누가 한 말인지는 독자가 주의깊게 읽고 파악해 나가야 한다. 마침표와 쉼표만이 상황의 전개를 담당하고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가장 단순한 구별만이 가능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독자들에게도 눈먼 생활의 단면을 컬러 대신 흑백TV로 상황을 중계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2.실명이라는 상황을 통해 살펴본 인간본성의 문제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소설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인간본성을 조명하는 측면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비도덕성과 잔혹함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감염자를 격리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태도에서부터 생존에 필요한 물과 음식을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싸움, 음식을 무기로 권력을 휘두르는 수용소내의 깡패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이기심과 잔혹함을 고발한다.
눈 먼 자들이 꼭 신체적 실명의 의미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는 것을 외면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의미의 실명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본문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안과의사 부인의 행동이나 다시 볼 수 있게 된 상황등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461쪽)
3.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
이 소설에 나오는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눈멀게 되지만 단 한 사람 예외가 있다. 안과의사 아내가 주인공이다. 장님들만 있는 곳에선 애꾸눈을 가진 사람이 왕이라지만 모두가 눈먼 도시에 혼자만이 볼수 있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항상 내 머리속에 맴돈 질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없는 능력을 갖는다는 건 하나의 파워임에 분명하다. 의도했건 아니건 안과의사 아내는 집단수용소내에서 강패들의 부당한 요구를 깨트리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그 이후의 소규모집단 생활에서도 살림을 꾸려가는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눈먼 자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추잡함과 지저분함으로
목도하면서 정신적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는 상황을 자주 경험했으리라 생각된다. 눈먼 자들과 눈멀지 않는 자를 대비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남의 눈을 통해서도 세상을 보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4.인류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통찰에 관한 문제
인간의 감각중에 시각 하나만 없어도 인류는 완전히 원시시대로 돌아간 듯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 물과 음식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곳곳에서 시도된다. 초기 발병자들을 집단소용소에 격리해 남은 사람들의 생존을 도모하는 장면에서부터, 안과의사 집단과 같이 소규모 집단생활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장면,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텃밭을 가꾸고 닭을 키우는 할머니의 모습, 음식을 찾아 도시의 이곳저곳을 헤메는 거리의 도시인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인류가 발전해 온 긴 역사를 대변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키워가는 것들이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의 문제를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이라면 도대체 어떻개 살아가야 하는가? 책을 덮으면서 이런 근본적 문제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대작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여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