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작가의 작품으로는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욘 포세 3부작>을 읽게 된 것은 ‘잠 못 드는 사람들’이라는 중편의 제목에 끌렸던 까닭입니다. 헨릭 입센과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라는 이유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욘 포세 3부작>은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 등 세편의 연작 소설로 구성되었습니다. 3부작이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이야기의 맥락이 연결되고 있으니, 한편의 장편소설이라고 불러도 되지 싶습니다.
3부작을 구성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노르웨이 서남부 해안의 피오르드 안에 숨어있는 벼리빈(지금의 베르겐입니다)을 무대로 펼쳐집니다. 뒬리아에 살던 아슬레와 알리다는 열일곱 남짓한 젊은이들인데,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알리다가 임신을 하여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아버지가 폭풍에 실종된 이후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아슬레는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보트하우스의 주인이 나타나 집을 비워달라 하고 합니다. 알리다 역시 아슬레를 집으로 들일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은 무작정 벼리빈으로 향한 것이었습니다.
벼리빈에서도 역시 결혼하지 않은 두 젊은이들에게 하룻밤 묵어갈 방을 내줄 정도로 따듯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여관마저도 다 찼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결국은 막아서는 노파의 집에 우격다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리다는 출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두 사람은 지지리 복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부모로부터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물려받은 것도 없오 빈털터리로 벼리빈까지 흘러든 셈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아슬레는 올라브로, 알리다는 오스타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바르멘에 살고 있다고 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은 여전히 벼리빈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는 올라브라고 하는 노인이 등장하는데, 올라브라고 주장하는 아슬레의 정체를 알아봅니다. 노인은 뒬리아에서 두 건의 변사사건이 있었다고 아슬레에게 이야기합니다. 보트하우스의 주인과 알리다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2부의 말미에는 이야기가 더 확장되면서 올라브가 두 건의 변사사건과 연관이 되어있지 않느냐고 추궁합니다. 그리고는 맥주를 한 잔 살 것을 요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올라브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 노파가 실종된 것과도 연관지으려 합니다. 올라브는 맥주집에서 노르웨이 북단에 있는 섬 뫼소이에서 왔다는 오스가우트를 만나게 됩니다. 올라브는 오스가우트가 약혼자에게 주려고 샀다는 금팔찌에 이끌립니다. 그리고 오스타를 위하여 금팔찌를 사고 싶어 합니다. 결국은 오스가우트의 도움을 받아 금팔찌를 사지만 거리의 여자에게 도둑을 맞습니다. 오스타가 기다리는 집에 돌아온 올라브는 벼리빈을 떠나기고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을을 떠나기 전에 노인의 고발에 따라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의 화자는 알리다의 딸 알렉스입니다. 알렉스는 알리다와 오슬레이크 사이에 태어난 딸입니다. 그러니까 아슬레가 처형당한 뒤에 의지할 데가 없는 알리다를 발견한 것은 오슬레이크였습니다. 알리다가 어렸을 적 뒬리아에 살던 오슬레이크는 벼리빈에서 발견한 알리다에게 비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해달라고 합니다. 갈곳이 없던 알리다는 오슬레이크를 따라 비카로 갔고, 그와 같이 살게 됩니다.
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작품해설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쉼표있으나 마침표가 없는 글이었던 것입니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마침표가 없으면 모든 텍스트는 사람들이 내적으로 생각하고 고심하는 모습을 담아낸 길고 긴 덩어리의 형식(263쪽)”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지만 아슬레가 벌이는 행적이 미심쩍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작품해설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 작품에 대한 것일 수도, 전혀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글을(목정원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저 마다 다르면서도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한 “어떤 상태…우리가 죽음으로써 도달할 그 곳으로의 구원.
[도서] 욘 포세 3부작 책을 읽는데 마침표가 하나도 없고 쉼표만 있어서 당황했고 그래서 초반이 잘 안읽히는 듯 하다. 상황묘사같은것이 별로 없고 거의 생각과 대화로만 내용이 전개되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빠르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 기준으로 본다면 알리다와 아슬레는 영적인 감이 발달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영혼으로 대화하는 듯한,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것처럼 느낄 수 있는 듯 하다. |
연주하듯 써내려간 소설, 마침표 대신 쉼표
[서평] 『3부작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욘 포세 저, 홍재웅 역, 새움, 2019. 10.04.)
존 포세는 언어로서 음악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분위기와 역동성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했다. 일찍부터 음악을 배웠고 록밴드 활동을 했다. 그렇게 바이올린과 기타 등을 거의 병적으로 연주하던 열여섯 살의 어느 날 음악을 끝내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는 언어를 음악처럼 다루었다. 『3부작』은 크게 호평을 받았고 2015년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문장은 마침표가 없었다. 궁금증을 유도하여 다음 문장으로 이어가도록 독자들을 이끄는 힘이 있었으며 거대한 갈등은 그려지지 않았다. 인물은 주인공을 제외하고 따로 언급이 되지 않았다. 대신 “높은 모자를 쓰고 얼굴에 턱수염이 나고 긴 지팡이를 들고 긴 외투를 걸친 그 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85p)와 같은 묘사를 반복하여 인물을 나타내고 있었다.
가여운 커플의 인생사
1부 <잠 못 드는 사람들>에는 알리다와 아슬레가 나온다. 둘은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인데, 알리다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둘은 묵을 방을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방을 빌려주지 않았다. 1부의 주요 사건은 두 주인공이 묵을 곳을 찾아 떠도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 두 주인공의 상태와 대사, 심리 그리고 떠돌게 된 배경과 가족 관계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배경 묘사는 주로 대화로 이루어졌다.
“저기, 배들이 전부 정박된 곳 너머에 저기 광장 말이야, 저기에, 저기 온통 사람들과 가게들이 있는 게 보이지, 거기야, 라고 말하자, 알리다가 우린 저기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거리 반대편으로 가면 어때, 저긴 사람들이 적으니까 다니기 편할 것 같아, 라고 그녀라 말한다,”-40p
알리다의 출산이 임박하자 아슬레는 결국 어느 노파의 집에 들어가 그녀를 알리다 몰래 죽이고 집을 차지하고서 아기 시그발을 낳게 했다.
이야기는 2부 <올라브의 꿈>으로 넘어간다. ‘올라브’라는 생소한 이름이 등장하여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지만,
“이제 난 아슬레가 아니라 올라브야, 그리고 이제 알리다는 알리다가 아니라 오스타고, 이제 우린 오스타와 올라브 비크야,”-90p
라는 시작 부분으로 보아 주인공 커플이 이름을 바꿨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올라브는 자신들의 관계를 공식화시켜줄 반지를 구입하러 길을 걷다가 자신의 과거 행위를 알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그리고 어느 술집에서 그 노인을 다시 만나지만 무시했다. 그런데 올라브는 시내에서 여러 유혹을 당하고 만다. 와중에 자신들이 위험에 빠졌음에 달아나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고 올라브는 경찰에 붙잡혀 교수형을 당했다.
하이데거와 포세의 예술
문장 가운데 운율과 리듬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저 남자는 체구가 크지 않고 오히려 무척 작아 보여, 그리고 검은 옷을 차려입고 조금 구부정하게, 느릿한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그런 식으로 걸어, 마치 걷다가 생각하다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걸어, 그리고 머리에는 잿빛 두건을 쓰고 있어, 그런데 왜 저렇게 느리게 걷는 거지, 저자는 느리게 걷고 있는 게 분명해, 내가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난 느리게 걷고 싶지 않은데, 난 가능한 한 빨리 걷고 싶어,”(91p)
와 같은 부분의 경우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듯 묘사됐지만 음악적인 리듬이 있었다.
이야기는 3부 <해질 무렵>으로 넘어가는데 또 다시 생소한 이름이 나온다. 3부의 배경은 수십 년이 흐른 미래였다. 알리다는 늙어서 죽었고, 죽기 전까지 오슬레이크라는 동향 사람과 결혼해 자녀 여럿을 둔 상태였다. 책의 2부가 아슬레의 이야기에 중점을 주었자면, 3부는 알리다 이야기가 주였다. 아슬레의 교수형 이후 어떻게 알리다가 오슬레이크를 만나 지금에 이르렀는지가 묘사되었다.
“하지만 아슬레가 죽었다는 말은 충격이었어, 그가 목 매달렸다니, 퓐텐에서 그가 목이 매달렸다니,”-227p
이야기는 주로 사실만을 묘사해 나열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 없이 독자로 하여금 감정을 느끼고 음미하게 이끌었다. 감정을 직접 나타내는 문구는 없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책을 덮고 나서도 가난하고 춥고, 배고픈 두 주인공의 심정이 너무도 깊이 와 닿아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작가 포세는 희곡 『이름』으로 노르웨이의 입센상을 수상하였다. 근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자주 거론되는 중이다. 초기에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서른 편 정도의 희곡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소설로 장르를 옮겨 선보인 작품 가운데 대표작을 꼽는다면 단연 이 『3부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품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문장 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모든 텍스트는 사람들이 내적으로 생각하고 고심하는 모습을 담아낸 길고 긴 덩어리의 형식이었다. 유일하게 글의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찍는 쉼표들이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는 읽어내기 어렵지 않았다. 포세의 작품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 고독, 절망 등이 묘사되고 있었다. 특별한 갈등 구조는 없었다. 두 주인공이 떠도는 부분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의 고독, 원초적인 고독이 표현되었다.
또한 소박한 수사나 간결한 내용, 단순하고 짧은 대사로도 충분한 예술성을 그려졌다. 시간 전개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 없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포세 작품의 근본을 이루는 주요한 토대는 그가 학창 시절에 심취해 있었다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었다.
그 운명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슬픔이라고, 무언가에 대한 슬픔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픔이라고 답할 게다,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은 가벼워질 수 있고 떠오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떠오름은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를 해야만 하는 거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이 슬픔의 무언가가 남아 있는데 그게 수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듣는 걸 즐기는 이유야, 음악이 그들의 삶을 들어 올리고 고양시켜 주거든, p.49
이야기는 17세 두 연인이 머물 곳을 찾아 헤매는 것으로 시작한다. 연주자인 아슬레와 현재 임신한 상태인 알리다는 몇 시간이나 거리들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 어디서도 방을 빌린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들이 아직 결혼을 치를 요건이 되지 않는 어린 나이 아직은 떳떳하지 못한 관계로 보여서 일수도, 혹은 알리다가 만삭이라 언제 출산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늦가을이고, 어둡고, 춥고, 곧 비도 내리기 시작할 것 같았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고, 알리다는 그곳에서 아기 시그발을 낳는다. 1부 <잠 못 드는 사람들>은 그렇게 아기의 탄생에 이르는 과정으로 끝이 나고, 2부 <올라브의 꿈>이 시작된다.
아슬레는 이제 올라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고 있었고, 반지를 사기 위해 도시를 헤맨다. 그러다 자신을 아슬레라고 부르는 어딘가 낯설지 않은 노인을 만나게 된다. 노인은 한 남자와 어떤 여인이 죽은 채 발견되었고, 그 후로 딸이 자취를 감추고, 한 늙은 산파 여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게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올라브의 발목을 잡는다. 누구나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법, 모든 것은 결국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3부 <해질 무렵>에서는 시간이 꽤 흘러 아슬레가 곁에 없는 알리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리다와 아이는 여전히 살 곳이 없어 거리에서 지내는 중이었고, 제대로 먹지 못해 무척 야윈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는 오래전 동네 어른을 만나 아슬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전해 듣는다. 그러나 알리다는 자신과 아슬레가 여전히 서로 함께 한다고, 자신은 그 안에 있고, 그는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존재하고 있어,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와 함께 살아 가야만 한다.
너 거기 있구나, 우리 착한 아기, 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기야,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지, 여기 반짝, 저기 반짝, 겁내지 말렴, 우리 아기, 우리 소중한 아기, 그러자 아슬레는 푸르게 반짝이는 피오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리다가 잘 자라 우리 아기, 너는 그저 떠오르고, 너는 그저 살아가고, 너는 그저 연주하렴, 우리 착한 아기, 라고 말하자 그는 푸르게 반짝이는 피오르를 넘어 높이 푸른 하늘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리다가 아슬레의 손을 잡고 그는 일어서서 알리다의 손을 잡는다 p.187
욘 포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얼마 전 출간되었던 <아침 그리고 저녁>이었다. 고독하고 황량한 피오르를 배경으로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고 또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던 그 작품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등장 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며,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한 이야기도 아닌데 이상하게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는 마법 같은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전작에 비해 최근에 발표된 이야기들이다. 「잠 못 드는 사람들Andvake」(2007)과 「올라브의 꿈Olavs draumar」(2012) 그리고 「해질 무렵Kveldsvævd」(2014)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 2015년 북유럽 문학 최고의 영예인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3부작>은 세상에 머물 자리가 없는 연인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한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고, 분량도 길지 않지만 사실 읽기는 만만치 않다. 마침표와 구두점 없이 쉼표로만 이어진 텍스트는 작품을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덩어리로 보이게 하고, 반복되어 사용되는 어휘와 구절은 소설을 자유시나 음악처럼 읽히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욘 포세는 일찍이 음악 활동을 했었고, 음악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음악의 형식을 글쓰기에 적용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고유한 구조와 수많은 반복을 지니게 되었고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면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구를 반복하고 그 리듬을 살리는 수사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나 최소한의 인물과 최소한의 대사로 구현되는 이야기이지만,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여러 번 읽고,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