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차 초등교사이자 워킹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한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의 주부로서 어떤 점이 힘든지, 여자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책을 읽는 동안 32명의 인터뷰이들의 사연을 읽으며 나의 사례와 비교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과연 '여자들에게 좋은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의 여성들은 어떻게 자신의 직업과 가정의 일, 아이의 양육을 동시에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또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그 사람들의 고민과 생각들이 정말 궁금했다. 아마도 이 모든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모두 다 그들 나름대로의 기쁨과 슬픔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쓴 이슬기 작가님과 서현주 작가님은 모두가 80년대생이다. 이 책에는 전직 기자로서, 전직 초등교사로서 그들과 같은 또래의 직업과 삶에 대한 진지한 '레퍼런스'가 많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며 2020년 코로나시기에 읽어던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라는 책이 많이 생각났다. 그 무렵 읽었던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우리의 직장과 일터는 흔히 말하는 MZ세대라 일컫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생이 이미 들어와 있었고 교직에도 이제 곧 2000년대생을 맞이할 날도 멀지 않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X세대이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호황기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OECD에 가입하던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너무나 자유롭게 큰 걱정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99년에 임용과 동시에 첫 교직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110만원 정도의 첫 월급을 받으며 X세대라는 자유로움보다는 상하관계가 정확한 그 당시 교직문화에 맞춰 고분고분 직장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2020년 무렵 학교생활을 하면서 80년대생~90년대생 후배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 이 분들은 우리와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건 비단 교직뿐만 아니라 일반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세대갈등이 하나의 직장문화였던 것이다. 나이 많은 선배 교사들 앞에서 의견을 잘 내지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오던 이전의 문화가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내고 공개석상에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그 세대를 보며 깜짝 놀라던 때가 생각난다.
이렇듯이 우리 사회에 어엿한 직장인이 된 이 세대는 그 이전 세대보다 훨씬 자기 주장이 강하고 무엇보다 그 이전 세대보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보다 더 정확하게 눈을 뜨고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세대가 자라던 어린 시절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바로 그 시기였기 때문에, 특히나 IMF에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경제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그 어떤 세대보다 중요한 요건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공저자 서현주 작가님이 교대를 다니던 시절인 2005년은 교대와 교사의 인기가 가장 절정이던 시기였고 그 이유는 이 책에도 나와있듯이 IMF이후 안정적인 직장으로 공무원과 특히, 여자에게는 교사라는 직업이 가장 각광을 받을 때이다. 이 무렵 대학원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양육을 하는 그 힘든 일들을 해오면서 계속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자립'에 대한 욕구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교대를 다니던 시절 적성에 맞지 않아서 휴학했던 2년이 어쩌면 큰 도움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교과를 다 다루어야 할 초등교사의 특성상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예체능 교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나 심해서 이 직업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예체능 전담교사도 있고 디지털 수업자료나 에듀테크 플랫폼이 너무나 일반화되었지만 그 시절은 인터넷이 없던 90년대였다.
내가 근무한 26년을 쭉 되돌아보면 분명 교사라는 직업은 선망의 직업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후배 교사들을 보면 그들이 왜 힘들어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에 더 안타까울 뿐이다. 교직을 떠나는 '의원면직' 컨텐츠를 보면 교직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사의 많은 업무중에서도 '돌봄'영역이 특히 부각되면서 수요자중심의 시장원리에 따른 학부모 인식과 맞물려 지금 학교는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은 진단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돌봄'을 천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내용을 읽으면서는 약간 충격이었다.
'돌봄'이야말로 AI시대에 어쩌면 가장 부가가치가 높고 인간적인 고효율의 노동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의 '돌봄'이라는 말은 가치절하된 용어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제공하는 돌봄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돌봄을 제공하는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자식이든, 그 누구든 그 일을 천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돌봄의 문제와 돌봄노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인지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지 않은 월급때문에 더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교직을 떠나는 일들도 많다. 이 문제도 요즘 젊은 선생님들에게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나도 안다. 절대적인 부족도 있지만 이 문제는 아마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도 매우 클 것이다. 다른 직종에 있는 친한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허무함과 초라함을 그저 인내하고 버티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으며 든 느낌은 한 편의 무거운 사회적 이슈를 다룬 탐사보도 프로그램 끝까지 다 본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 책에 나온 인터뷰이들을 카메라로 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방방곡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일상을 화면으로 본 듯하고 그들의 깊은 내면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다. 심지어 각 개인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서사는 너무나 훌륭했고 덕분에 나 자신도 나의 서사를 가만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피, 땀, 눈물...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한 편의 분투기처럼 느껴졌다.
이제 난 어느새 50대 교사가 되었고, 이제 30년차를 바라보는 워킹맘이다. 언제가부터 고령화와 은퇴와 연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잘못된 노후문제를 아이들과 토론하는데 진심인 나이가 되었다. 무너져가는 교직에 힘들어 하는 후배교사들이 좀 더 힘을 냈으면 좋겠고 자신의 진로 탐색에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의 권유도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공부하고 선택하는 삶을 사는 진정한 '자립'의 삶을 살아갈 때 모든 사람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초등학교 5~6학년 <실과> 교과가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자 가치가 '자립'이다. 전 생애를 걸쳐 우리는 '자립'을 위해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성장하고 공부를 하고 일자리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겁고 어려운 주제지만 왠지 희망이 있는 좋은 책을 써 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