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20명 선정)
<저자는>
저 : 문미순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첫 소설집 『고양이 버스』를 펴냈다. 2023년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으로 제19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읽고 느낀 바>
경제적 여유는 있는데 건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말한다. 돈 필요없어요, 건강이 최고라고. 대부분의 사람은 건강은 한데 경제력이 문제라서 고민이 많다. 20억을 주면 친구를 팔 수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에 말도 안 돼 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현실이 돈 없이는 어려움에 처하는 걸 너무 많이 보고 아니까. 자식이 원하는 걸 못 해주면 왜 낳았냐는 소리를 듣는 현실이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어도 경제적 문제가 있으면 주저하게 된다. 경제력이 약해도 자식이 원하면 대다수는 바로 해주면서.
여동생의 딸, 조카가 몸에 문제가 생겨 급비만자가 되었다. 얼굴은 갸름하고 뽀얀 피부에 이쁘다. 세상 갖은 멋은 다 내는 조카였는데 공황장애도 생기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원하는 PT도 끊어줬고...시누이 딸 둘이 비만으로 상담받은 한의원에서 무리없이 감량되는 걸 보고는 1년 여의 비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시누이 딸 둘과 다르게 조카는 갑자기 찐 물살이고 많이 먹지 않는다는 게 차이점. 1달에 1킬로 감량으로 시작한다는데 조카는 4킬로가 빠지면서 생기도 돌아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길게 얘기한 건 '돈'이 들어간다는 것.
명주는 50대 여자인데 부잣집 남자를 만나 딸 연진을 낳았다. 돈 많은 시모는 며느리가 오로지 반찬을 만들도록 살림을 시켰다. 노는 꼴을 못 본거고, 남편은 자신 덕에 편하게 살면서 그것도 안하냐는 짝. 돈은 가졌으되 인성은 별로인 모자에게 수모를 당하다 딸만 받고는 위자료도 못 받았다. 그렇게 데리고 온 딸년이건만 싸가지 없는 게 영낙없는 지애비 핏줄임을 몰랐다. 중학생 년이 알몸 사진 찍어서 유부남 꼬여내 그 아내가 찾아오게 만들더니 지 애비한테로 갔다. 재혼하여 나이차 많은 남동생이 태어나고 정착하지 못하나 나오지도 않는다.
딸년 데리고 사느라 일자리 전전하다 급식조리실에서 발등에 화상을 입었으나 어느 의사도 장애등급에 앞장서 주지 않고 본인만 아는 통증은 고스란히 명주를 괴롭힌다. 밀린 의료 보험료에 만신창이가 된 그녀에게 살갑지도 않았던 엄마가 같이 살자고 해 어쩔 수 없이 엄마네로 들어온다. 701호에서 치매기 있는 엄마를 건사하는 수입은 엄마의 연금 100만 몇 천원. 자신이 벌이도 못하니 엄마라도 잘 모시겠다는 마음였다. 싱크대 구멍에 대변을 쑤셔넣고 여기저기 처바르라 묻은 두 손. 그 몰골을 발견한 자신에게 벌벌 떨던 모습은 최악이었다.
그렇대도 엄마가 늘 계셨는데 하필 그날은, 마트에서 좀 더 싼 것들을 고루고 기분도 꿀꿀해 노래방에도 갔다가 늦게 돌아왔다. 작은 방을 가려던 모습으로 방바닥에 엎푸러진 엄마는 기어가는 자세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76세 황 여사. 애잔한 슬픔보다는 이 지겹게 반복되는 상황이 끝났다는 안도감. 그만큼 지쳐 있었던 명주는 엄마의 진통제를 먹고는 며칠을 죽은 듯 잤다. 인터넷으로 나무관과 여러 제품을 시켜서 엄마를 둘둘 싸고 소독약 등을 넣어 작은방에 모셨다.
여기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 짓을 하는겨. 사람이 그것도 지 엄마가 죽었는데 장례를 치르는게 아니고 미라를 만들어. 언제 들통날 지 모르는데. 정상인 사람이냐고. 처음엔 울화통이 터졌다. 다음 순간 이건 도덕적인 문제인데 명주가 처한 상황에서는 이 행동이 나쁘다고 비난하기도 뭣했다. 그녀가 너무 가여워서. 이 지경이 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마음 아펐다. 먹고 살기 위해 삶의 현장서 발은 화상 입었고 그 고통은 현재진행형. 장애등급도 못 받아 보험료 연체, 병원도 갈 수 없어서 엄마 약을 먹고는 엄마처럼 분장하고는 엄마 보험으로 약을 타온다.
삶의 의지가 없어서 엄마가 아퍼서 타 온 약을 다 먹고는 따라갈 심산이었다. 그런 생각을 정리한 아침에 엄마 폰으로 연금 입금이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가 남긴 연금으로 당분간은 살아보리라. 그러자니 시신인 엄마를 들켜서는 안 된다. 옆집 702호 총각이 안부를 묻길래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둘러대고, 마트 사장님, 관리사무소 직원이 물어도 똑같이 답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는 걸 실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중 엄마 폰으로 여러 번 전화가 걸려오고 문자가 온다. 엄마를 애틋하게 걱정해 주는 남자가 있었단 사실에 아연실색.
702호 20대 총각 준성은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낯에는 휠체어를 밀고 나가 재활 훈련을 시키고 주무시는 밤에 대리 운전을 한다. 아버지 연금 60만원으론 병원비도 벅차다. 천성이 바르고 밝다. 모든 이들이 준성을 칭찬하는데 준성은 형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아파트 대출금을 빼서 괌으로 간 형은 연락을 끊었다. 아버지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이렇질 않았던 것 같은데 알콜중독이 심하고 뇌경색으로 약간의 마비도 있다. 늘 가스불 말고 전자렌지 쓰라는 건 화재 위험때문인데 결국 우려하던 일이 난다.
성기랑 다리 안쪽 부분에 화상을 입어 119에 실려가고 중환자실서 일반병실로. 병원비로 더 입원할 수 없어서 집으로 모셔왔다. 다행히 상처는 덧나지 않고 잘 아물었다. 대리 운전하며 운수 좋던 날 킥보드로 이동하다 순목을 살짝 삐긋했는데 그것도 다행이다 했다. 벤틀리 주차를 하다 그 손목이 삐긋해 문짝을 긁히고. 대리 운전시 보험료를 매달14만원 공제해 안심했더니 7만원만 보험가입하고 나머지는 착복해 자가로 합의할 금액과 렌트비. 준성은 세상이 원망스럽다. 열심히 성실히 산 댓가가 이런 거라니.
아버지가 아들이 대리 운전 나가면 가끔씩 술을 사가지고 오던 걸 사람들은 기억한다. 화상으로 생긴 딱지가 아물고 냄새가 나 목욕을 시키기 위해 잘 씻으면 술을 사드린다고 꼬셨다. 맘이 변해 안 하겠다는 아버지를 씻기던 중 다친 손목이 삐긋해 아버지를 놓쳤다. 아버지는 세면대와 변기에 머리를 부딪쳤고 그렇게 급사했다. 자신의 피 묻은 손을 어쩌지 못하고 복도로 뛰어나갔다가 701호 명주를 만났고 명주가 준성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벌벌 떠는 총각에게 냉정히 상황을 설명한다. 신고하고 잘못으로 아버지 죽였다고 자수할 건지? 일단 명주의 엄마처럼 미라를 만들고 나중에 잘 모실래? 물리치료사가 꿈이니 일단 아버지 연금 60만원으로 생활하고 공부해 합격하는 건 어때? 상의조차 할 사람이 없던 상황에서 준성은 명주가 대단한 위안이 되었다. 동병상련. 둘다 가난이 죄고 둘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두 죽음을 맞았다. 결국 준성의 아버지도 나무관에 모셔 명주네 집으로 옮긴다. 도덕적 잣대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다. 두 남녀의 죄의식은 개나 줘버릴만큼 이들은 절박하다.
책을 하루 만에 읽어버렸다. 가볍지 않은 문제임에도 술술술 넘어가는 글력. 마치 이웃의 어떤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 지인의 이야기를 목격하는 듯한 현실감 대단하다. 장수하는 게 축복만이 될 수 없는 현실. 건강과 경제력이 있는 장수는 누구나 바라지만 꿈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기사로 짤막히 읽던 걸 상세히 알려주는 것 같다. 701호와 702호 두 사람을 단죄할 수 있을까. 글력이 좋으면 악당이라도 어느새 응원하게 되는 그런 상황 같았다. 너무나 가여웠다. 대학을 졸업하는 딸년 연진이는 지엄마를 필요시 돈줄로만 본다. 영악한 딸년은 없는 게 낫다. 무자식 상팔자다.
자세한 이야기는 독자몫으로 남기지만 명주와 준성이 벌을 받는다해도 정상참작이 되길. 그네들이 처했던 상황이 종료되어 그나마 안심이다. 그건 억지로 저지르지 않은 일이니. 자연사한 할머니, 사고로 인한 죽음이니. 죄값도 받아야고 해결할 문제들도 첩첩산중이지만 일단은 부양해야할 엄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고인에게도 산 자에게도 다행이다. 그네들의 짐이 가벼워진 게 정말 안심이다. 그네들이 그런 결정을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되는 결말이라서 참 다행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