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위해 연수 휴직에 들어와 닥치는 대로 읽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인 화두는 ‘자기 배려(인식)’다. 남들 사는 방식이 아니라 나다운 삶, 다양한 삶을 살아도 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임고에 합격해 바로 발령이 나서 12년을 근무해왔다. 내 성향으로 학교에서 근무할 때 어려운 점도 있지만 당연히 모든 인생사가 그렇듯 강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왜 그렇게 힘들었나를 돌아보게 하는 독서였다. 예민한 성향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개인적으로는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면 되지만, 내향인+민감인으로서 어떤 학생들을 불편하거나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항상 있었다. 독일 관계심리학자로서 여러 민감인을 만나왔던 저자가 민감인에 대한 교과서 격인 일레인 아론의 “센서티브”와는 또 다른 접근법으로 써내려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 나와 민감한 학생에 관해 이해하고 적재적소에서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돌아보면 교사로서 ‘세심함’은 강점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이 타고났고 바꾸기 어려운 성향은 같은 특징이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쓰느냐에 따라 강약점이 있다. 저자는 책 내내 강점을 강점으로 이해하고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예민하니까 살이 안 찌지." 같은 말을 듣곤 하는 많은 민감인이 이 책을 찾아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라며 공감할 테다. 나는 아래와 같은 부분에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자기 발견을 했다. 이를 테면 학교 생활 중 발생하는 ‘문제’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던 듯하다. 특히 강자가 약자에게 ‘갑질’을 할 때 투쟁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던 경험이 순환했다(악순환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떻게든 의미가 있었다고 믿는다). 교육정책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거나, 공부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갖곤 하는 문제의식도 그런 맥락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대부분 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며,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예민한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부당하거나 잘못된 일이 있으면 예민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감지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빠르게 깨닫는다. 또 인간성이 무시되는 경우, 그것을 제일 먼저 인식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23-24쪽.
저자는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부모님에게 양육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부모님이 예민하면 일상적 가정생활에서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자극들을 애써 참다가 자녀에게로 폭발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성인이지만 그 스스로 예민함으로 인한 어려움을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자녀는 두려워하거나 해소법을 배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자녀는 자신의 예민함 때문에 부모님이 곤란해 하거나 그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경우 점점 자기 예민한 감각에 대해 왜곡, 무시하는 습관을 기른다고 한다. 예민한 사람은 어릴 때조차 사소한 반응에서도 총체적으로 촉과 직관을 발휘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상황을 파악해버리는 사람들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이해와 공감은 너무나 중요하다. 예민한 아이에겐 그 어떤 말보다 섬세하게 느껴지는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부모의 이해와 공감은 아이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고, 잘하고 있다는 느낌,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부모의 이해와 공감이 부족하면 아이는 정말로 기가 죽는다. 든든한 지원군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스스로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예민한 지각이 부모의 이해와 공감을 방해할 수 있다니! 아이는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60쪽.
내향인, 민감인에 관한 여러 책을 읽어오고 있지만, 이 책에서 특별히 좋았던 부분은 저자 자신의 경험, 여러 민감인을 만났던 경험에 입각해 ‘오감 자극에 민감한 신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다루고 있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 내 경계를 침범하는 상황을 맞을 때 분노하곤 했던 듯하다. 학교에서는 보통 권한을 많이 가지고 있는 권력자가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발휘해야할 교육 영역에 대해 간섭하고 침해할 때 상대가 누구이든 솔직히 말하며 싸워왔다. 다시 말해 그런 상황에서 예민한 사람은 불의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고 투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어떤 예민한 사람들은 눈치가 빠르고 배려하는 성향 때문에 타인에게 무조건 맞추어주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민한 사람이 수행해야할 필수적인 과업은 ‘경계 설정’이다. 그래도 나는 필요한 걸 솔직히 말하도록 훈련된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괜찮아.”라고 자주 말해주었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솔직히 말해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간혹 솔직히 말하기 두려운 마음이 들 때 “죽이기야 하겠어?”를 되뇌이곤 했다. 길게 보았을 때 솔직히 말하는 편이 훨씬 좋다는 경험이 쌓여 있다. 그런데 눈치 보느라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나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아 몸과 마음이 망가진 부분이 있고, 자기 능력보다 과도하게 열심히 하다가 감당 못하고 방전되는 교사가 학교에도 많다고 생각한다. 민감인으로서 자기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를 돌보지 않고 너무 열심히 살았을 때 심할 때는 ‘자율신경실조증’이 아닌가 싶을 만큼 신체적으로 안 좋은 증상들이 나타나곤 했다.
“예민한 사람은 경계를 넘어설 때 매우 급진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평소의 태도가 180도 변할 수도 있다. 방금 전까지 아주 예민하게, 감정이입을 잘하고 남을 잘 도와주고, 배려하고, 사려 깊고, 신중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롭고, 관용적이고 예의 바르고 섬세한 사람이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것이다. 중성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완전히 반대로 행동한다. 그래서 완전히 둔감한 사람 같은 행동을 보인다.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예민한 사람보다 더 둔감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44쪽.
최근 읽은 “둔감력”이라는 책에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일본인 저자가 ‘예민한 사람보다 둔감한 사람이 잘 산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은 완벽하기도 어려우면서 완벽을 추구하거나, 온갖 자극에 민감하거나, 눈치가 빠르다는 등 타고난 성향적 특성이 있다. 바꾸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의지적으로 그러한 성향이 주는 어려움을 어떻게 다루고 내 인생에서 어떻게 좋게 쓸지 생각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이런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 역시 예민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다. 주변 세계에서 느껴지는 모순과 긴장에 대해서도 신경을 끄지 못하며, 낯설고 거슬리는 주변 세계에 대해 스스로 마찰을 겪기도 한다. 주변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억지로 맞추는 가운데 이런 행동과 자신이 원래 가진 본성 간의 내적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긴장은 만성 스트레스로 발전하고, 여기에 당면한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스트레스가 어느덧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한다.” 178-179쪽.
저자는 예민한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자주 겪는 상황의 원인도 짚어주고 있다. 경청하는 민감인들은 상대방의 말을 일단 잘 듣는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그 이야기가 납득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이유를 잘 설명해내려면 고민하기 위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 상대방이 급격히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느낄 만도 하겠다. 내가 평소에 구사하는 대화 방식을 돌아보면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특히 일상 대화가 아니라 특정 주제에 대한 대화가 논쟁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나는 그때까지 경청하다가도 자주 ‘엄근진’한 태도로 내 주장을 단호하고 고집스럽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태도로 돌변할 때가 있어서 함께 대화하던 사람이 무서워하거나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납득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예민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신뢰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각과 사고를 따르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고립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그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들인 생각과 뒤늦게 따라오는 자기 생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생각은 뒤늦게 찾아오지만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다. 그 결과 예민한 사람들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고 단절되며, 이런 단절은 다른 사람의 눈에 상당히 이상하게 보인다. 이런 경우 사고가 상당히 고집스럽고 경직되고 완고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급진적이고 현실과 유리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더구나 방금 전까지는 상대방의 생각에 녹아들어 있다시피 했기에, 갑자기 치솟아 올라온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는 경우 거의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분위기까지 연출될 수 있다.” 193-194쪽.
다시 자기 인식과 배려 화두로 돌아와서 내 직업 생활을 돌아보면, 그 직업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나 거의 마찬가지라는 저자의 주장 맥락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퇴사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지만 교직을 그만두지 않고 휴직 기간이 끝나면 학교로 돌아가려는 이유이다. 경솔하게 급 그만두기 보다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돌파할 방편을 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성향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근본적인 부분을 이해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전직해도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완벽함에 대한 욕심 내려놓는 자세, 내게 오는 자극에 대해 관리하고 몸 배려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힌트가 될 만한 구체적은 방법들을 다루고 있다.
“예민한 사람들 중에는 어떤 분야에서 몇 년 일하고 난 뒤 직업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주적으로 직업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적성을 따르지 못한 경우에는 그런 마음이 더욱 커진다. 너무 높은 요구를 설정하여 일이 여러 번 어그러지는 것을 경험한 데다, 거의 탈진에 이를 정도로 에너지를 소비한 경우에도 전직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된다. 지각을 다루고, 자극과 정보를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여간해서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높은 요구와 직업적 현실 간의 괴리가 문제가 된다는 것도 파악하기가 힘들다 보니, 직업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224쪽.
물론 12년 근무 내내 힘들었던 건 아니었다. 최근 몇 년 간 특히 교장님과의 마찰과 더불어 그 기저를 흘렀던 교육활동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상황들에 대한 답답함과 무력감에 더해 스스로 에너지가 방전되어 전에 비해 보람으로 견뎌낼 힘이 부족해진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의지로 쉬는 시간을 만들어 자기 이해를 위해 노력하기를 잘했다. 재선에 성공한 경기도 교육감께서 힘들어하는 교사를 위해 연수휴직 제도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교직은 사람을 대하는 너무나 감정 노동이기 때문이다. 요즘 교육계에서는 교사 고통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교사 끼리 ‘내 몸을 내가 챙기지 누가 챙겨주나’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안타깝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교사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게 나일 수도 있었다는 공감을 할 때가 있다. 우리 사회는 모든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실제로 전직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교사 이야기를 들고 있다. 분명 나만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요즘 ‘이 일을 정년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젊은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아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위기는 대부분 직업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몸담은 직업이 자신에게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의미란 원래 상대적이고, 늘 상황에 따라 구성된다. 똑같은 직업인데도 전에는 굉장히 의미 있게 보였다는 것을 간과해버리곤 한다. 의욕이 없고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 진이 빠지고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진이 빠진 것은 일에 대해 너무 이상주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거나, 에너지 관리, 즉 일의 경제성을 고려하는 면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26쪽.
나는 어렸을 때는 내향+민감한 성격을 싫어했다. 지금은 내향인, 민감인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며 이런 부류 사람들만이 가진 강점을 발견하고 있어서 좋다. 누군가는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 특히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 촉과 직관과 통찰력 같은 능력들을 사랑한다. 예민한 사람으로서 상황에 대해 고통스러워할 것인가, 기쁨과 행복을 느낄 것인가. 의지를 내어 내 삶을 잘 구축하기 마련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예민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강하게 지각을 한다. 나는 이런 강점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보고, 더 다채로운 체험을 하고, 더 민감하게 자극들을 연관 짓는 능력들을 잃고 싶지 않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의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높은 감수성으로 인해 더 민감하게 괴로움을 느끼지만, 그만큼 더 민감하게 기쁨과 행복도 경험할 수 있다. 단, 이러한 예민함이 우리의 삶에 유익이 되려면 지금까지 말한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273-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