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혼자'들의 독립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녘 출판사의 에세이 브랜드 '디귿'에서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바로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앞서 나온 두 권의 에세이도 좋았지만 세 번째 책은 정말 좋았다. 디귿의 에세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생각의 한계를 깨뜨려주고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하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의 일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달리는 여자, 사람의 달리기 이야기
집 바로 앞에 전국구 스포츠 경기가 개최되는 비교적 큰 규모의 트랙이 있다. 지금이야 코로나 탓에 출입이 제한되지만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걷기도 달리기도 한다. 빠른 속도로 전력질주하듯 달리는 러너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었지, 그들이 왜 달리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달리기'라는 것에 그렇게 큰 소우주가 존재할 줄이야,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의 깊고 단단한 이야기를 읽고 나니 어느새 나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만 같은데, 계약이 종료될 때면 나는 매번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떤 관계는 노력과 상관없이 한순간에 끝났고, 또 어떤 관계는 이유도 모른 채 멀어지기도 했다. 끝까지 가지 못하고 이탈해버린 일들 사이에서, 실패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저런 일들의 총합으로 인해 어느새 내 안에는 '해도 잘 안될 거라는' 무기력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흘린 땀과 내딛었던 한 발 한 발이, 1분 1초가 그대로 몸에 축적돼 근육으로, 지구력으로 쌓였다. 시간을 들인 만큼 더 잘 달리게 되었고, 더디지만 결국 목표에 다다랐다. 내게는 그런 경험이 간절히 필요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는 일.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p.34"
나 역시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이탈해버린 일로 인해 짙은 무기력함에 팽배해있었다. 이 무기력함은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할 용기와 긍정적인 마음을 갉아먹었고, 종국에는 나 자신을 갉아먹기에 이르렀다. 무언가를 잃어가는 것에 가속도가 붙어버리면 중간에 멈추기가 참 어렵다. 내 눈앞에 다가온 기회일지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놓쳐버리며, 나 자신을 잃어가는 일에 무감한 날들이 이어졌다.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을 읽는 동안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저자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기본 체력이 좋지 못해 잔병 치레가 잦고, 어려운 인간관계는 쳐내는 게 차라리 쉬운, 모든 일에 잘 지치는 나와 너무도 닮은 모습에 위로가 되었다.
내게는 여전히 '이거 아니면 안 된다'싶을 정도로 확신이 생기는 게 없다. 몽상가처럼, 어쩌면 아직 발휘되지 않은 잠재적 재능이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p.58
내가 그렇듯, 나보다 먼저 나아간 친구들 또한 확신으로 각자의 길을 찾아간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한 발짝 떼기도 두려웠던 날조차 불안과 망설임을 안고서 달려갔던 걸까.<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p.83
마음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좋아하는 마음도 고갈된다. 언젠가 성급하게 서로를 알아갔던 연인과는 더 빨리 끝났고, 꼭 무리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나면 번아웃이 왔다.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에도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나는 계속해서 달리고 싶어서 좋아하는 마음을 잘게 쪼개어 꺼내 쓴다.<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p.89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은 달리는 여자,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달리기로 시작했지만 달리기 그 이상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이런 이유로 달리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나와 비슷한 면을 가진 사람을 만났고 또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책이다. 회사를 다닌 지 10년이 넘었지만 어려운 것들은 아직도 쉽게 풀리는 법이 없고, 나도 모르는 무언가, 내가 잘하는 게 있을 거라는 몽상은 여전하다.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만 뒤처지는 느낌은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마음의 에너지는 유한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고갈된다. 나의 가장 멋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 '때'를 기다리며, 나도 마음을 잘게 쪼개어 꺼내어 써야겠다.
중학생 때 시민 10km 달리기에 친구와 지원해서 달려보았다. 학교 체육 시간의 오래달리기로는 늘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빨리 잘 달리는 분들이 많은 세상인 줄 덕분에 배웠다. 겨우 완주는 했다. 하프나 풀코스 마라톤에 대한 경외가 엄청나게 커졌다.
대학입시가 본격화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스포츠 활동뿐만 아니라 예체능 전반에 대한 참여시간이 줄고 자제당하기도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대신 가끔 아주 오래 걸었다. 대학/대학원 시절은 가장 바빴던 시절로 기억한다. 매일하는 운동 대신 가끔 등산을 다녔다.
유학 가서 우연히 태권도 유단자를 알게 되어 뒤늦게 조금 배우다가 말았다. 걷기 명상을 배워 가능한 자주 걷긴 했다. 차라리 매일 달리는 습관이 굳건했다면 오랜 세월 체력을 잘 채웠겠다 싶은 아쉬운 생각은 종종 들었다.
“불쾌한 말이 나를 할퀴는 날에는 그 기분 속에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무조건 한번 달리고 오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옷을 챙겨 입고 나선다. 그렇게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기분에서 벗어난 스스로가 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고는 깨닫게 된다. 내 기분을 결정할 사람은 나여야만 한다는 것을.”
귀국해서 출퇴근하면서 루틴을 만들었다. 6시에 운동센터에 가서 20분을 기계 위에서 달리고 다른 운동 좀 하다 샤워하고 아침 사서 출근하는 일. 달리기 시작할 때마다 이걸 왜 하나 싶게 괴로워지다 그 순간이 지나면 내려오고 싶지 않은 러너스 하이를 맛보는 반복이었다.
“나는 언제고 나와 함께 붙어 있는데, 함께 있는 나 스스로를 좋아하지 못해서 그렇게 타인을 찾아 다녔는지도 모른다. (...) 기꺼이 혼자가 되기 위해 달리러 나간다.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절실히 돕고 싶어진다.”
그리고 슬슬 게을러지다 판데믹으로 적어도 운동 일상은 다 무너졌다. 마스크를 하고 할 수 있는 운동은 적어도 내 정신 건강에 아주 유해했다. 마스크를 벗어 박박 찢거나 분노를 표출하게 될까 두려웠다. 아파트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내리는 일도 지겹고 이젠 산책만 종종 한다. 아주 말랑한 몸이 되었다.
‘어설픈 뜀박질이 남은 생을 구원했다’는 저자의 글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걷고 뛰면 몸을 바로 세우고 자세를 찾게 된다. 시선도 달라진다. 당연히 체력도 달라진다. 근육이 하는 일에 비하면 청순가련 우유빛깔 따위는 삶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운동복을 입고 달릴 때마다 나는 점점 진짜 ‘나’에 가까워진다. 내 몸은 ‘예쁘게’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잘 달리기 위해’,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갖게 되고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는 경험은 귀하다. 인류 문명은 지금도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연대하는 방법도 알려 줄 것이다. 적어도 외모를 품평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니까. 더 작고 약한 몸을 가진 다른 생명들에게 친절하고 싶어질 테니까.
“노랑이가 그리워질 때마다 나 또한 아주 작은 원자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언젠가는 나도 죽어서 사라질 것이고, 우리 둘 다 똑같이 원자 단위로 흩어져 또다시 먼 여행을 할 것이다.”
디귿의 에세이 시리즈 세 번째 도서인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역시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었다. 여성 러너로서 배우고 느낀 점, 자신의 성장 이야기, 불편한 점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멈칫하게 만드는 문장 또한 더러 있었다.
레깅스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지만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불쾌한 일의 가능성을 모두 차단하고 싶었다. p.26
이 문장은 여성으로서 특히나 공감되었는데, 박정훈 기자의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의도치 않게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남들의 편견 안에서 내가 안전하기 위해 편안한 나의 상태들을 숨기곤 했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여성이고 싶지 않아서, 그들의 화젯거리에 조금도 속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에 있어서도 여성이기에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저자에게서 나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남들처럼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지만, 파워와 스피드는 확연히 달리지만, 강해지기 위해 느리고 꾸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p.71
그때 우리는 뭐가 될 수 있을지 몰라 괴로워했다. 넘쳐흐르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젊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p.95
내가 마주한 풍경을 뒤로 하지 않는다면 달린다고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것도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은 달리기에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살아간다는 감각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p.124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연연하며 또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는 말한다. 우린 여전히 여기에 존재한다고. 우리는 늘 과정 속에 있어 이 혼란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저자는 달리며 뒤로 물러날 것들을 충분히 느끼며 흘려보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지나쳐야만 했던 것들이 곧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이해한다면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달리기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