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려면,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전방위로 방어 태세를 취해야 한다. 성폭력을 당한 후에는 '완벽한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너무 표정이 밝아도 안 되고, 남자와 술을 마시거나 태연하게 데이트를 해도 안 된다. 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나는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공포 속에서도 최선의 저항을 하였음'을, '피해를 당한 후에는 피해자답게 행동했음'을 소명해야 하는 걸까."
#소년심판 의 마지막 사건이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이었는데, 피해자는 친한 친구 부모의 차가운 말에 손목을 그어야 하고, 가해자들은 "사실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냐?"라며 뻔뻔스럽게 말하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는데, 성폭력, 성추행 등의 고통 속에서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죄 혹은 명예훼손죄로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현재 진행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은의 변호사도 대기업에 다니면서 겪었던 경험이 직장인에서 변호사로 인생을 바꾸게 한 사건이 되었으며, 도움이 필요한 많은 여성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냉철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담아 피해자를 변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도둑맞은 이에게는, 문을 잘 잠그지 않아 도둑이 들었으니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상해를 입은 이에게, 가해자를 화나게 했으니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다르다. '나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세상의 시선에 추가 가해를 입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만 남겨지게 되는 상황을 보며, 이 땅에 사는 여자들이라면 언제까지 이런 걱정을 안고 살아야 할까 싶은 착잡한 마음이 든다.
더 이상 강간 피해자들에게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 및 협박이 있었느냐?"라는 질문이 아닌 충격 받은 상태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하며, 사회와 법의 시선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 책을 많은 여성들이 널리 읽고 깨닫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좋은 게 좋은거다'는 개소리고,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 시대를 살아가는 약자이자 여성으로서 내가 나를 지키고, 이 사회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반드시 들려줘야 한다.
"법은 세상이 소란스러운 이유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법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다면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세상의 인식과 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가 온당하다면 묵직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이름은 늘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에 등장한다.
피해자측 변호인. 그는 피해자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낸다.
변호사가 된지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니 본인이 피해자이던 시절부터 홀로 서 있던 시절까지 합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법조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실명을 밝히지 못한 무수한 익명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가해자였다가 시스템의 지지자 혹은 가해자의 방조자이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일 수도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건들 아래 가려진 그 얼굴들의 단면을 본다. 그는 그 얼굴들 안에서 무자비함을 봤다가 오랜 권력의 권위를 보았다가 숨으려 하는 가엾은 얼굴들을 보았다가 결국에는 타의에 의해 강해져야 하는 피해자의 얼굴을 본다.
이 책은 어쩌면 좌절의 역사이고 간간히 등장하는 승리의 서사시이다.
전쟁에 참가하는 저자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다가 넘어졌다가 우연한 응원에 다시 일어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좌절의 강을 건너기를 반복한다.
책에 등장하든 등장하지 않은 현실의 벽을 마주한 그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님을 되뇌인다.
그렇다. 세상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피해자가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피해자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법원만의 노력으로, 사법기관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가 함께, 범죄의 수단이 되는 폭력과 협박의 외연을 넓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89쪽
"세간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만 있으면 믿어준다'라며 역차별을 운운하지만, 지금까지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형사처벌은 이렇듯 피해자들이 여러 편견과 난관을 이겨내고 용기내어 한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를 객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151쪽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느낌이나 의견을 적었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오늘 하루와 어제 하루는 달라진 것 같지가 않은데
1년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허나 그러한 발전과 성장이 개개인의 피해자를 달래줄 수는 없는 일이다.
<상냥한 폭력들>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함께 더 많아진 피해자들의 투쟁을 담고있는 책이다.
미투 이후에 더욱 피해를 고백하는 이들이 늘어났지만 그에 못지 않게 늘어난 것이 무고죄 소송이다.
이은의 작가는 그런 현실 속에서 투쟁을 위한 이들의 칼과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이들의 투쟁을 우리가 알아봐주고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연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