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엔 주로 소설을 읽었다. 종종 시집도 들춰보고..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에세이를 즐겨 읽게 되었다. 왜 나는 에세이를 좋아할까 생각해보았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 생활반경은 비교적 협소했다. 단조로웠다고 삶이 쉬웠던 건 아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건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일찍 접은 미련이 남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좋다
책의 저자는 꼬박 챙겨봤던 <다큐멘터리 3일>의 VJ를 거쳐, <유 퀴즈 온더 블럭>의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깨우친 인생의 지혜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그녀의 겸손하고 따스한 시선들이 가득하다.
연탄 배달을 하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남편은 3년 전부터 투석을 받고 있어 하루를 쉬면 그 다음날 병원을 갈 수 없다. 배달하는 연탄이 내일의 병원비이기 때문에.
아침에 나와 밤에 무사히 들어가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다행히 트럭을 몰 수 있는 만큼만 눈이 내려서, 아내와 이렇게 무사히 하루를 마칠 수 있어서, 내일 또 그런 하루를 살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남편. 열심히 살아도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의 굴레를 원망하지 않고 지금 이런 삶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철학자 부부.
과연 나는 저런 상황에서 세상을, 배우자를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때로 고맙다는 말은 삶이 나를 종종 배반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상처 없고 고통없는 인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버텨 내다 보면 좋은 날이 꼭 올 거라고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포용의 말이 아닐까.(P279)
출장 중 모텔에서 인쇄소 사장님의 전화를 받은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3일내내 충무로 인쇄소에서 만난 사람들만 20명이 넘기에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너무 절박한 목소리에 차마 기억에 나질 않는다는 말은 못했다고.
지인에게 본인에게는 전부인 거액을 사기 당했는데, 경찰도 변호사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말만 한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새벽에 자신에게 전화를 건 사장님. 자신에겐 그럴 힘이 없다고 하자 그는 그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았냐고, 누구도 그렇게 자신의 생을 궁금해한 사람이 없었다고..제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몇 시간을 통화한다.
인생의 가장 절망스런 순간에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의지하려 했던 낯선이의 구원의 손길을 내치지 않고 저자는 오롯이 받아준다.
" 밖에서 보기에 별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 듯 보잘것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 있게 만든다. 어스름한 미명과 노을이 아름다워서, 누군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지금껏 버텨온 자신이 불쌍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울산 3인 자살 미수 사건 재판의 판결문>
책을 2주일에 걸쳐 조금씩 읽어내려갔다. 이야기마다 울림이 커서 종종눈물을 훔쳐내며, 마음을 꼭꼭 눌러가며 읽어나갔다.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추려내기가 힘들었다.
노숙자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매일 아침 2500원짜리 콩나물국밥을 만들고, 그들의 통장을 만들어주는 사장님, 고물을 주우며 삶을 윤이나게 가꾸는 사람들, 노인들을 위해 먼거리 왕진을 다니는 의사, 사명감 하나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험하게 변했을까 싶은 잔인한 뉴스들이 매일 나오지만 아직 세상은 따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믿는다.
추워진 날씨,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이 책 추천해봅니다
내가 마주한 사람이 오늘 하루 내 앞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적게든 크게든 연결돼서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래서 내가 조금의 여유와 선의로 대한 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세상이 덜 삭막해지지 않을까. (87)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기를..." 이 문장이 계속해서 머릿 속에 맴돌았다. 책 표지에 적힌 문장인데,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아차 싶었던 일들이 떠올라 죄책감이 들었고, 앞으로는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 한 문장의 파급력이 대단했던 만큼, 책 속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큰 울림을 주어 읽는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든 삶을 하루하루 버텨 나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퇴근 후, 하루 종일 내 신경을 건들였던 동료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던 순간이 있었다. 참 철없는 생각이지만, 확 그만둬 버릴까 라는 생각도 순간 스쳐갔고, 남들에겐 별일 아닌 일로 인해 생을 마감해버리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 잠시나마 이해가 되어 마음이 갑갑했다. 그때 이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을 해온 저자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과의 경험담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사람과 부대끼며 만들어낸 결과물이기에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가슴이 아려왔다가 이내 몽글몽글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고, 울고 웃으며 책 한 권을 읽었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도 고요해졌다. 거칠게 일던 파도가 잠잠해지며, 파랗고 광활한 태평양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이 책은 총 7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챕터별로 8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좀처럼 여유를 갖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보다 더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애를 쓰는 이웃들,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을 겪고도 상대를 용서를 하는 사람, 각종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고 간 여운 등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우리를 살게하는 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가장 큰 수확이란 생각이 든다.
박지현 작가님의 < 참 괜찮은 태도 > 을 이번에 100% 페이백 이벤트를 통해서 감상하고 후기 리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일을 하며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배운 단단한 삶의 태도 덕분에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남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흔들릴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나에게도 전달해주는듯해서 지혜를 얻었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나를 아끼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달 가장 알찬 도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담백하게 썼는데,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다큐멘터리 3일', '유 키즈 온 더 블럭' 둘 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카메라에서 사람을 존중하는 따뜻한 시각이 느껴지다니 신기한 일이다. 저자는 15년 넘게 카메라를 들고 길 위에서 수많은 현자들을 만났다. 세상에는 얼핏 아는 것 같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수많은 곳들이 존재한다. 교도소, 소록도, 조선소, 해병대, 알래스카, 국과수 부검실, 청와대, 인천공항 관제탑 등 접근이 어려운 곳에서부터 험지까지 취재했고, 덕분에 누군가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는 순간들을 함께했다. 거리의 철학자들에게 배운 삶의 태도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5년 넘게 원고를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손이 떨릴 정도로 두려워서 울먹거리고 있는데, 간호사나 의사들은 전혀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의료진들은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일을 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의사의 입장에서 일상을 함께해 보니 환자로 왔을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불안한 마음에 거듭 질문을 하는 환자의 말을 끊는 의사가 냉정하게만 보였는데, 의사의 입장이 되어 보니 때론 냉정함이 다수를 위한 현명한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갈치 시장에서 할머니가 앉으시는 낮은 의자에 앉아보니, 어떻게든 생선 하나 팔겠다고 손님은 붙잡고 안 놔주는 시장 할머니들의 억척스러움이 이해되고, 할머니한테 붙들려 생선을 강매당해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고 웃어넘길 여유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서운함이 오해나 착각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속내를 알게 되자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억울한 일들이 훨씬 줄어들었다." 나도 가끔,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봐야겠다.
한참 더운 여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창밖을 보았다. 보도블럭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이 보였다. '더운데 일하시느라 힘드시겠다'라는 섣부른 생각과 '땡볕에서 일하지 않고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 앉아 있다니 나는 참 감사하구나'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작가는 "상대방의 삶을 살아 보지 않고서 함부로 그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잘못된 편견일 수 있다. 상대가 원하는 건 섣부른 동정의 눈길이 아니라 그 어떤 편견도 없는 시선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온몸을 덮는 작업복과 용접의 불꽃까지 더해져 땀으로 범벅되어 있는 용접 기술자에게 "힘드시죠?" 라는 말 대신 "멋있으세요"라는 말을 건네야 했다고 말한다.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 후 마시는 물맛을 못 느껴 본 내가 어떻게 감히 저 고생을 동정할 수 있을까"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만난 사람. 그는 '실패의 두려움이나 사업에 인생을 건 후회는 없냐'는 질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고 대답한다. "저희 어머니 치료비로 3,500만 원이 들었어요. 그때가 마침 IMF가 터졌을 때였고 그 돈이 저희 가족의 전 재산이었죠. 하지만 전부를 걸었는데도 살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때 전부를 걸었다는 것, 최선을 다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고요. 결과가 어떤든." 나 또한 성공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도전을 하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도전을 꺼리는 스타일이다. 작가님처럼 '불확실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기분 좋은 간결함'을 느끼며,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의 선택을 믿고, 지금의 삶에 집중하는 간결함'을 갖고 싶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평생 일만 했다는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세상에 태어나 복이 많구나, 고생했어도 복이 많구나, 건강하게 일했으니까" 작가는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온전히 자신을 몫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온 사람만이 가지는 저 깊이'를 어떻게 헤어릴 수 있겠냐면서, 마치 할머니가 '70년 넘게 험난한 고통의 바다를 헤처 오며 삶을 꿰뚫는 지혜를 터득한 거리의 현자'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결론은 그냥 한번 사람을 믿어 보고 싶어졌다는 것. 세상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마음을 나눠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기를..."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멋지다면 쉽지 않고, 쉽다면 멋지지 않을 것이다." - 밥 말리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깍지 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최후의 최후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려 발버둥 치는 자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자'라고 말했다. 한없이 나약하고 일평생 엄살만 부리다가 죽는 사람을 '사이비 산 자'라고 했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을 쏟아 내고, 부드러운 말만 듣고 싶어 하고, 사실은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핑곗거리부터 생각하는 사람은 진짜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