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도용금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역사.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어렵다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해 심리학'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때문이였다. 개인적으로 심리학과 관련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어렵다고 생각하는 역사를 좀 더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500년 조선사를 움직인 27인의 조선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역사를 기술하고 심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읽어보고 비교적 공통된 부분들을 자료로 삼았다고 한다. 조선사를 움직인 27인의 조선의 왕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의 첫 시작을 한 태조부터 500년 조선의 막을 내리게 한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제인 고종의 이야기까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만나볼 수 있다.
27인의 조선의 왕을 아버지와 아들, 고부갈등, 강한 어머니와 아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투쟁이 왕에게 준 영향 등 이런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펴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런 다양한 관계 속에서 왕의 성격이 형성되고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 막을 내리는 것도 의존적인 성격의 고종이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휘둘리는 신세가 되면서 부족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의 1대 왕 '태조 이성계'. 조선의 개국공신 중에는 이성계를 진정으로 도운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야심에 의해 이성계를 전면에 내세운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면이 있다. 태조가 느끼는 '양가감정' 과 다르게 태동은 놀라운 결단력과 추진력을 발휘하는데 이런 태종의 모습을 프로이트의 '공격성과 사랑의 에너지'로 접근할 수 있다. 상반된 성격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나타나고 공존이 불가능한 반목과 갈등으로 이러지는데 조선 건국 과정에서 등장하는 태조와 태종이 이 관계에 속한다. 약한 아버지와 강한 아들의 모습이다.
조선의 왕들 중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조와 세조의 심리를 살펴보기도 한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모르는 상호아에서 단종과 세조의 관계를 '대상관계이론'으로 살펴보기도 한다. 끊임없이 대상관계를 반복하면서 살고, 생사관계를 반복하는 심리적 기제인 '투사적 동일시'를 경험하기도 하는 모습으로 단조와 세조의 심리를 살펴보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느끼지만 조선의 왕에게 어떤 쪽으로든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 가족이란 존재이다. 특히 어머니와 아내. 여자들. 고부 간의 갈등은 역사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렇다면 아들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한 왕은 어떤 심리를 가지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까. 고부갈등이 낳은 희대의 폭군 연산군을 만들어낸 인수대비와 폐비 윤씨를 통해 이야기 한다. 연산군은 조선의 왕들 중 가장 악한 왕으로 알려져 사극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며느리의 입장과 시어머니의 입장을 살펴보고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강인해져야만 했던 인수대비와 연산군의 심리를 알아볼 수 있다.
고부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강한 어미니와 약한 아들은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효가 강조되던 조선에서는 어머니를 배반할 수 없어 순종적이 되는 일이 많았고, 왕 역시 그랬다. 자녀를 조종하여 자신의 유익을 추구한 악독한 어머니의 모습을 중종의 중궁이자 명종의 친모였던 문정왕후를 통해 볼 수 있다.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왕이 된 중종, 중종이 죽자 왕의에 오른 인종, 인종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계모 문정왕후를 미워하기는커녕 자신의 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고 한다. 인종의 태도는 자신을 향한 주변의 기대(예언)에 따라 행동한다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심리학적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문정왕후의 행동들은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는 '편집적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문정왕후는 가장 대표적인 자기편인 아들 명종에게도 강하게 대했고 명종은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왕이 되었다.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느끼기도 하고, 자녀는 아버지에게도 느끼기도 하며 열등감은 대물림되기도 한다. 선조와 그의 아들 광해군이 그 주인공이다. 광해군은 갓 태어난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위험한 의사결정으로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아들 소현세자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조, 공허한 마음으로 인해 조선 최고의 나르시시스트로 평가받는 숙종,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들을 죽이고 마는 영조. 의존적 성격이 강했던 고종까지 조선의 왕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그로 인해 일어난 결과 왕이 바뀌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를 심리학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중간중간 심리학적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 어렵게 느껴지는 역사를 심리학으로 접근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왔던 왕의 모습들을 심리학으로 살펴보며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