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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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로맨스

우리가 몰랐던 조선 왕실의 결혼과 사랑 이야기

리뷰 총점 9.5 (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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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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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선 왕실 로맨스를 통해 본 삶의 내면들 평점8점 | YES마니아 : 골드 c******4 | 2021.10.08 리뷰제목
천하를 호령하는 왕도 결국 한 명의 남자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없을 리 없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대로 여인을 취할 수 있었던 자리라 왕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느냐에 따라 여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조선시대 왕 들 중에는 10여명의 부인과 20여명의 자식을 거느렸던 경우도 많았다. 이런 관계가 관료주의 근간을 구성했던 사대부들과 가문과 출세 등
리뷰제목

천하를 호령하는 왕도 결국 한 명의 남자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없을 리 없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대로 여인을 취할 수 있었던 자리라 왕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느냐에 따라 여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조선시대 왕 들 중에는 10여명의 부인과 20여명의 자식을 거느렸던 경우도 많았다. 이런 관계가 관료주의 근간을 구성했던 사대부들과 가문과 출세 등에 큰 영향을 끼쳤고, 다양한 형태의 영욕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시대 왕들의 애정 전선을 살핀다. 26명의 왕들의 정치적 치적에 대해서는 역사공부나 드라마 등을 통해 많이 들어 왔지만 비공식적인 사랑이야기를 정리해 듣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이 책은 왕과 왕족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방편으로 삼아도 좋고, 그냥 한 인간의 애정 문제 차원에서 가볍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총 26개의 사랑 이야기가 소개된다. 대부분 왕의 이야기지만 양녕대군과 같은 왕자의 로맨스도 가끔 등장한다. 이 중에서 조금 의외로 다가오는 사랑 이야기는 세종의 로맨스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도 있고, 자식도 많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달성하느라 밤낮으로 일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잠자리 봐주는 여인, 문서 챙겨주는 여인, 책 심부름 하는 여인, 밥상 차려 주는 여인, 중궁에서 아내의 시중을 드는 여인 등등 눈에 들기만 하면 여지없이 자기 여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책에 소개된 공식적 숫자로 부인 13명에 18남 7녀를 두었다. 그러면서도 수 많은 여인들간의 불화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모두를 섭섭하지 않게 잘 챙겼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역사적 업적을 남긴 세종이 이런 사랑꾼이자 어장 관리자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좀 놀랍게 다가온다.

 


물론 일편단심형 사랑을 한 왕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오직 한 여인만 사랑한다. 왕실에서 맺어준 아내가 있어도 그가 원하는 여인은 오직 그녀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여인은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이후로도 그는 무려 15년 동안 집요하게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래도 그녀가 허락하지 않자, 급기야 그는 자신의 권위와 힘으로 그녀를 취한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두 아이는 모두 일찍 죽어버리고 그녀도 죽고 만다. 이 때문에 그는 평생 그녀를 가슴에 묻고 애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가져왔던 정조 이야기이다. 비운에 죽은 아버지와 궁중 권력관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의 사랑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 외에도 다양한 조선왕들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각 왕들을 유형에 따라 이름짓기를 하는데 참 재미있다. 태조 이성계는 직진형 순정남이고, 태종 이방원은 전투형 뒤끝남이며, 문종은 결벽형 도도남으로 소개된다. 예종은 조숙했는지 12살에 아비가 되었고, 성종은 호색형 열정남으로 분류되어 있다. 중종은 조강지처를 버린 야누스형 배신남으로 이름을 올렸고, 명종은 마마보이형 유약남으로 분류된다. 결국 사랑은 개인의 성격과 자란 환경을 반영하는 종합적 산물이라 하겠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애정이라는 측면에서 왕이란 자리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기 마음대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왕의 자리가 부러운 사람이 많겠지만 결국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이고 60세를 넘겨 장수한 왕이 6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복잡한 여성관계에 기인한 점도 상당히 크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왕의 로맨스라는 것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음도 알게 된다. 결국 왕들의 애정 전선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왕과 권력자들의 '본능과 이성, 그리고 이익의 삼각함수'가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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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왕실의 사랑을 통해 역사를 안다(3)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j****3 | 2019.11.22 리뷰제목
조선 왕실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사람 사는 것이 대동소이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랑이 있고 미움이 있으며, 질투가 있고 인내가 있는 삶들이구나! 권세가 있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든 모두가 관계를 가지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삶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위치에 이는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다는 것
리뷰제목

조선 왕실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사람 사는 것이 대동소이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랑이 있고 미움이 있으며, 질투가 있고 인내가 있는 삶들이구나! 권세가 있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든 모두가 관계를 가지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삶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위치에 이는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왕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내용은 바로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왕실이 평온하면 백성들의 삶이 비교적 피었고, 그렇지 못하면 백성들이 유리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득권자들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살펴볼 수 있는 일이리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힘을 가진 자들이 어떠한 삶을 사는가가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조선 왕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인조는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것이 소현세자와 그의 자식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런 성격이 여자 문제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제한적으로 후궁을 두었다. 인조의 첫 여인은 인열왕후 한씨였다. 그는 왕이 되기 전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 광해로부터 역적으로 몰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는 광해의 어머니인 공빈의 연적인 인빈이다. 그녀의 아들이 정원군이고 이종은 정원군의 장남이다. 이종이 광해의 감시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와중에 동생이 사건에 연루되어 죽자, 인조 이종은 더욱 떨리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정원군도 홧병으로 죽고 장례를 치르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여자도 아내 한씨 뿐이었다. 왕은 왕비가 있어도 후궁을 두는 것이 상례다. 그래서 왕비가 후궁 둘을 들인다. 조씨와 김씨였다. 조씨는 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왕자를 둘이나 낳는 조귀인이 된다. 인조의 총애를 안고 그녀의 위세가 대단했다. 왕비 한씨가 죽고 왕비 간택령이 떨어졌다. 새로운 왕비로 간택된 여인은 조창원의 둘째딸이다. 그녀는 잉태하지 못했고 그것은 왕이 조귀인에게 마음이 빼앗겨 있기 때문이다그 후 인조는 조귀인의 욕심에 따라 휘둘린다. 조귀인은 자신의 자식을 왕위에 올리고 싶어 한다. 그런 야욕을 드러내는 그녀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세자 소현을 죽게 하고 그 아내 강씨를 역적으로 내몬다. 인조는 소현이 죽자 봉림을 세워 세자로 삼는다. 조귀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그 후 인조가 병들어 눕게 되자 효종이 수렴청정을 하고 왕의 길을 닦는다. 결국 인조의 죽음과 함께 조씨가 왕을 삼으려는 아들들의 이야기도 물거품이 되었다. 흥미롭게 읽혀진다.

 

조선조에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은 5명이다. 단종, 예종, 현종, 경종, 순종 등이 그들이다. 단종은 어려서 예종, 경종은 병약해서 순종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현종은 재위 기간도 15년인데 의외다. 현종은 11살에 명성왕후 김씨는 10살에 결혼했다. 꼬마신랑 신부였고, 의좋은 부부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왕자는 숙종 한 명 뿐이었다. 왕가에 후궁을 들이는 것은 뒤를 잇기 위한 일인데 후궁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부인을 사랑했어도 그렇다. 물론 명성왕후는 15녀를 낳으며 계속 아이는 가졌다. 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명성왕후의 성품이 거셌다고 전해진다.그러면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게다. 명성왕후를 배려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또한 외척 세력도 조정에서 힘이 있었다. 그들에게 눌린 것은 아닐까? 드센 기질의 여인이 집안을 다스려나간다면 기질이 약한 남자들은 여자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 한다. 현종이 후궁을 들이지 않은 것은 그런 경우가 아닐까하지만 현종에게 단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말년에 접한 여인 김상업이다. 그런데 그녀는 첩지를 받지 못했다. 그녀가 잉태를 하고 갑자기 현종이 죽는다. 그로인해 숙종이 들어서고 김상업은 쫓겨나며 아이는 엉뚱한 사람의 아이로 둔갑한다. 당시 그녀를 돌봐주던 현종의 사촌이었던 복창군의 아이라 칭한 것이다. 모두 명성왕후의 농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홍수의 변이라 한다. 하지만 복창군 형제들의 세력도 있었기에 풀려난다. 명성왕후는 숙종 앞에서 울며불며 닦달을 해 다시 김상업 일파를 감옥에 가둔다. 이 일은 확대되어 경신환국으로 나아간다. 경신환국은 서인들에 의해 남인들이 몰락하는 사건이다. 여기에 당한 사람들이 복창군 형제, 허적 조희맹 등이었다. 그 후 남인 세력들이 은인자중하면서 기회를 노리는데 그 도구가 되는 사람이 장옥정이다. 아마 현종이 좀 더 살았더라면 많은 후궁도 거느리고, 김상업도 좋은 입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숙종14살에 왕위에 올랐고 드센 어머니가 수렴청정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친정을 할 수가 있었다. 나이든 고관대작들이 어린 임금 앞에서 벌벌 떨었다는 애기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인 문제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맞이한 왕비가 인경왕후다. 인경왕후는 딸만 놓다가 일찍 죽는다. 숙종은 모든 왕가의 여인들이 정책적으로 혼인이 이루어지는데 아픔을 느낀다. 그럴 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여인이 있는데 장옥정이다. 이 장옥정을 남인의 줄기라 생각한 명성왕후(대비)가 장옥정을 사가로 쫓아낸다. 숙종은 사랑하는 이와 생이별을 하는 것이다. 그 후 숙종은 서인 민우중의 딸 인현왕후와 결혼한다. 유학계의 거두 송시열과 명성왕후가 결탁하여 만든 배필이었다. 숙종은 어린 인현왕후에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가에 나가 있는 장옥정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서 장옥정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서슴지 않고 한다. 즉 귀양 보낸 장옥정 편 사람들을 풀어주는 일 등 말이다. 그런 가운데 명성왕후가 죽는다. 그것은 장옥정에게는 큰 유익이 된다. 대왕대비 조씨가 숙종의 마음을 읽고 장옥정을 입궐시키는 것이다. 그 후 3각 관계는 희빈이 된 장옥정의 승리로 끝나는 듯한다. 장옥정이 아들을 낳고 그를 원자로 지정한다. 신하들의 반대가 많았지만 숙종은 완고하게 밀어부친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 세력들은 장옥정의 아들을 원자로 할 수 없다고 선포하고 종묘에 고한 것을 철회하라고 숙종을 몰아 부친다. 그것은 인현왕후를 사가로 내쫓는 계기가 되고 장희빈을 왕비가 되게 만든다. 왕비가 된 옥정은 건강이 좋지 못하게 되고 숙종이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리게 한다. 그것이 무수리 최씨다. 숙종은 최씨를 만나면서 숙정에 대한 사랑이 식는다. 그리고 최씨는 아들을 낳게 된다. 이런 일련이 일들이 진행되면서 인현왕후 북위운동을 서인들이 벌이고 숙종은 그것을 그냥 둔다. 그것은 장옥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최씨가 장옥정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말을 하고 숙종은 장옥정을 괴씸하게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결국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옥정을 몰아내게 된다. 결국은 사약을 내린다숙종은 장옥정과 남인 세력들에 등을 돌리고 서인을 선택한다. 즉 장옥정은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것은 경종의 이른 죽음, 영조의 등극과도 관련이 되어 나타난다.

 

영조는 무수리 최씨에게서 태어난다. 어릴 적 연잉군으로 불렸다. 그는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로 있었기에 왕이 될 생각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때 불품 없는 가정의 딸과 혼인한다. 그녀가 정성왕후 서씨다. 그녀는 33년간 왕비로 있다. 하지만 둘 사이는 냉랭했던 것 같고 자녀가 없다. 그래도 어진 성품 때문에 여인으로서보다 국모로서 영조도 인정을 했던 여인이다. 정성왕후가 먼저 죽고 15살 적은 왕비를 새로 맞는다. 정순왕후다. 하지만 연잉군의 첫사랑은 훗날 정빈이씨로 불린 동갑내기다. 그에게서 효장세자와 화순옹주를 낳는다. 연잉군이 무력하게 있을 때 당시 숙종은 와병 중이었다. 그리고 숙종은 경종의 연액함 때문에 내심 연잉군을 다음 왕으로 정한 듯한 행보를 보인다. 그러면서 왕권다툼이 일어난다. 경종과 연잉군을 사이에 둔 세력들의 알력이다. 그런 가운데 숙종이 서거하고 경종이 왕 위에 오른다. 노론들의 강한 입김때문에 연잉군은 세제로 책봉된다. 그러면서 정빈 이씨도 첩지를 받는다. 5품 소훈이다. 하지만 정빈 이씨가 독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경종 편의 소론, 연잉군 편의 노론이 경종의 병약함을 근거로 세제청정을 주장하고 수용하고 거둬들이고 하는 일들이 지속된다. 그러면서 그래도 왕의 세력들이 득세하여 노론이 물리쳐 진다. 그런 가운데 정빈 이씨 독살 사건의 고변이 있게 되고 노론 세력들이 대거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를 당한다. 이를 신임사화라 한다. 이 사건의 중심 세력으로 몰린 연잉군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대비의 노력으로 살아남는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따른 진실도 파내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에 놓인다. 그런 가운데 경종이 죽고 연잉군이 왕 위에 오른다. 이가 영조다. 왕 위에 오른 영조에게 한 여인이 다가왔는데 영빈 이씨다. 효장세자는 10살로 단명한다. 영빈 이씨가 딸만 놓자 거처를 옮겨보게 하기도 하고 효장세자 사후 후계에 대해 영조는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사랑하는 이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선이다. 나중에 사도세자가 되는 이다. 선은 성장하면서 경종의 죽음과 관련된 노론들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면서 부왕 영조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신이 하는 행동을 속이는 행위도 한다. 그것이 영조에게 들통 나고 꾸중을 들으면서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이 강해지고 관계의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대리청정을 하지만 영조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그것은 질타의 요인이 된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선은 더욱 불안해 지고 공황장애 증세까지 보인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칼로 죽이기도 하고 자살 시도도 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영빈 이씨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영조와 그것을 시행에 옮긴다.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것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심정, 그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안쓰러움이 세손이었던 정조를 지키는 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왕의 과도한 훈육이 아이의 성장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줬고, 그것이 성장하여 광적으로 나타난 인물이 사도세자다. 사도세자는 의경세자가 죽고 태어난 영조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기에 어렸을 때부터 왕의 훈육을 시켰다. 그리고 합당하지 못하면 호된 꾸중이 따랐다. 그것이 사도세자는 트라우마로 작용한 듯하다. 여인과의 관계에 광적인 요인이 많이 나타났다. 사도세자는 같은 나이의 혜경궁 홍씨와 혼인을 했는데 둘 사이는 보통의 부부처럼 호불호도 없아 자식 놓고 그렇게 살았다. 별 문제가 없이 생활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영조가 나이가 들어 세자가 대신 정사를 보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가 하는 일이 영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영조의 왕에 관한 훈육이 과도해 지고 그것이 사도세자는 고통이 된다. 하여 세도세자는 의관을 입을 때 발작적인 모습을 보인다. 옷을 입는 자체가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었다. 이를 의대병이라 한다. 그것을 혜경궁 홍씨는 받아내야 하는데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그리고 영조가 세자의 그런 모습을 보고 왕위를 바로 세손 이산에게 넘겨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아들까지 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혜경궁 홍씨는 가만히 있으면 자신과 아들까지 죽을 듯한 느낌이 들어 사도세자의 친 어미인 영빈이씨에게 하소연한다. 영빈이씨가 사도세자에게 광적인 행동을 멈추라고 했지만 오히려 친 어미마저 죽일 것 같은 행보를 보인다. 영빈이씨도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영조에게 차라리 아들이 죽는 것이 낫겠다고 전언한다. 이런 일들을 심화시킨 하나의 일도 있다. 사도세자와 서로 지극히 사랑한 빙애라는 여인이 있다. 자식도 둘이나 낳은 여인이다. 이 여인이 사도세자의 광기 앞에 주변의 사람들을 보호하다가 맞아 죽는다. 심지어 아들까지 연못에 던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사도세자의 광기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영조는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뒤주 안에 가두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혜경궁홍씨와 영조의 그늘에서 자란 정조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서 왕위를 물려받는다.

 

정조의 사랑은 의외다. 어린 시절 본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다른 모든 것을 능가했다. 그 여인의 신분은 그리 높지 않았다. 청지기를 아비로 둔 성덕임인데, 홍봉한의 집에 기거하는 중에 외가에 놀러갔던 정조와 만났고, 정조의 사랑이 싹 튼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 당시에는 사랑인 줄도 몰랐다. 정조는 11살에 덕임과 같은 나이의 효의왕후 김씨와 결혼한다. 하지만 애정이 그리 깊지 못하였고 자녀도 낳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덕임이 나인으로 혜경궁의 처소로 들어오게 되고 15살이 되어 후궁을 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정조는 덕임에게 후궁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덕임이 완강히 거부한다. 그 이유는 세손빈이 아기를 낳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 정조는 보류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왕비는 회임을 하지 못하고 정조는 왕위에 오른다. 이번에도 정조는 덕임에게 후궁이 되어줄 것을 권한다. 또 덕임은 후궁을 3명 들이는 것이 순서라고 거부한다. 그 후 정조는 원빈 홍씨, 화빈 윤씨 등을 후궁으로 들인다. 그런 연후에 덕임에게 승은을 받으라고 요구한다. 덕임이 사양을 하자 정조는 덕임의 하녀들을 무섭게 꾸짖고 벌을 내린다. 덕임도 이제는 정조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알고 받아들인다. 그때가 정조가 29, 덕임이 28살이다. 그 뒤 둘은 금슬이 너무 좋다. 자식도 많이 낳는다. 정조가 처음 가진 왕자, 문효세자가 그들의 아이다. 덕임이 빈의 첩지를 받고 많은 자녀를 가졌지만 아이들이 일찍 죽는다. 문효세자도 5살에 죽는다. 그녀의 아이들의 명이 그리 길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그녀도 문효세자의 죽음으로 상심이 크다가 결국 사망한다. 정조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사랑하는 여인과 자식들이 모두 먼저 떠나간 것이다. 정조는 일편단심, 한 여인을 알고 그녀에 대한 사랑이 한결 같았던 왕이었다.

 

고종 이형은 왕궁에 들어오면서 연상의 여인에게 빠졌다. 아홉 살이나 많은 이순아, 영보당 이씨다. 그런 와중에 고종 이형은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민치록의 딸 자영이다. 이때가 왕이 된 지 3년 후다. 그런데 왕은 왕비의 처소보다는 영보당에 많이 찾는다. 그런 관계로 영보당에서 임신을 한다. 낳은 아이가 고종의 첫아들 완화군 이선이다. 고종은 너무 기뻐 세자로 세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말린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그 후에도 아기는 영보당 이씨에게만 들어선다. 영보당의 입지가 강해져 간다. 이런 상태에서 민비는 대왕대비에게 지극 정성을 다해 섬기고, 조대비의 도움으로 다른 궁녀들과 자신이 싸울 수 있는 힘을 비축한다. 이순아가 임신을 했을 때 왕의 마음을 끌어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자신도 잉태한다. 하지만 잉태한 아이들의 생명이 길지 않다. 그렇게 3명이 죽는다. 고종은 이런 아내의 사정이 안타깝다. 그래서 그녀에게 정도 주고 위로도 해준다. 결과 순종이 되는 아이가 태어난다. 그것은 민비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민비도 힘을 휘두른다. 영보당이 죽고 난 후에 쉽게 다른 여인들이 고종의 옆에 머물지 못한 이유가 거센 성격의 민비 때문이다. 결국 일제의 위세 앞에 조선의 자존을 지키려다가 시해되고 말았지만...... 조선의 마지막을 의연하게 보여준 왕비였다.

 

조선왕실 로맨스를 다 읽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왕실의 사랑을 읽는다는 것은 위정자들의 마음을 통해, 그들의 삶을 통해 백성들에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도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여러 편으로 나누어 리뷰를 남기는 것은 내용의 기록하기 위함도 있고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함도 있다.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한 시대가 어떻게 다음 시대로 이어지며 그 속에서 백성들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마음에 담아보는 기회를 가지기 위함이다. 이렇게 왕들의 사랑을 자세하게 기록해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되고, 다음에 이 흔적만 보면 책이 온전히 마음에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나에겐 고마운 읽기였다.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댓글 4
종이책 구매 왕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읽혀 진다.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j****3 | 2019.11.14 리뷰제목
로맨스를 통해 조선의 역사, 그 심층부에 들어가 본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것은 애정 전선에서 많은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실행에 옮겨진다는 뜻일 게다. 특히 왕조 역사의 주체가 되는 왕들이 가지는 정서나 기분 등은 그대로 여과 없이 정치적 행위로 나타난다. 그럼 의미에서 왕의 로맨스는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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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를 통해 조선의 역사, 그 심층부에 들어가 본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것은 애정 전선에서 많은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실행에 옮겨진다는 뜻일 게다. 특히 왕조 역사의 주체가 되는 왕들이 가지는 정서나 기분 등은 그대로 여과 없이 정치적 행위로 나타난다. 그럼 의미에서 왕의 로맨스는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대를 이끌어 가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이 책은 시대별로 왕들이 만난 로맨스를 통해 시대의 추이와 사건들을 더듬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역사의 질곡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가령 양녕대군 같은 경우는 아버지 태종의 무자비한 정치적 행위가 고통으로 스며들었고, 성장하여 그것에 대한 반발심이 여성 편력으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라는 항변은 이런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여 행해진 일이라는 것을 잘 반증한다. 정치적 행위에 대한 혐오감,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등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괴이한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우동의 경우도 당시 양반들의 행태가 그런 인물을 만들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소박을 당한 여인이 할 수 있는 복수는 무엇이겠는가? 맞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시대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회였기에, 또한 당대의 왕이었던 성종이 자신도 그런 경우를 당하고 있기에 희대의 색녀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시대적 상황들이 왕들의 로맨스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음에, 이 책은 그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

 

이성계는 조강지처 한씨와 20년의 시간을 지내며 숱한 자녀를 낳았다. 부인 한씨는 당시 안변의 호족이었던 한경의 여식이다. 둘은 지방의 명문가끼리 정략결혼의 성격을 가지고 결혼을 했다. 한씨는 이성계와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며, 전장에 나가 활동하는 그의 조력자로 살았던 듯하다. 그런데 이성계는 그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조정에서도 역할을 해야 하고, 개경에도 부인을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마 강씨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말하고 있다. 강씨는 20여 세 나이가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에게 시집 오고 이성계는 그 여인의 매력에 빠진다.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것이 이성계가 그 여인과 결혼을 하려는 이유였고, 무너진 집안의 여인은 이성계에 그의 가족을 맡겼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그것은 성공해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조선 최초의 왕비까지 된다. 이처럼 이성계는 많은 여인을 옆에 두지 않고, 한 번 마음이 빼앗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열정으로 보이는 여인 관계를 가졌다. 이것을 저자는 직진형 순정남이라고 표현했다. 한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만들어 가는 것, 여성의 힘이야말로 집안을 지키고, 힘을 낼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이 되는 것이라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성계의 성공 뒤에는 부인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정종은 2 년여 왕위에 재위했지만 힘은 없었다. 실질적인 힘은 이 당시 1, 2차 왕자의 난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방원에게 있었다. 정종은 이렇게 권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많은 여인들을 거느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자식도 성종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10여 명의 여인에 자식은 25, 많은 편이다. 정종도 아버지처럼 처음엔 일편담심으로 부인만 챙겼다. 17년을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고 둘이 살았다. 하지만 뒤에 가서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게 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실권 없는 왕의 모습을 이겨 나가지 않았나 싶다. 사랑은 골치 아픈 일을 두고 빠져들기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왕을 저자는 읍소형 비운남이라 호칭했다. 그렇게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는 별명이다. 왕은 자매들을 부인으로 거느리기도 하고, 자신의 첩이 성적 스캔들에 연루되는 것도 지켜본다.

 

태종 이방원은 무장 집안의 아킬레스건인 학문을 할 수 있었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개경에 올려 공부를 하게 하였다. 그는 당시 개경의 내로라하는 명문자제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았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일찍 급제하고 부인도 맞이할 수 있었다. 16살 때, 부인은 학문이 높은 민제의 딸을 얻었고, 그녀는 당시 18살이었다. 둘은 금슬이 좋았다. 4명의 대군과 4명의 공주를 가질 정도로. 둘은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역성혁명이 일어나고 방원이 큰 공을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의붓어머니인 강씨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방원은 세자 방석을 위협할 위험한 인물로 간주될 뿐이었다. 그것을 민씨가 동생들을 통해 무기를 감추어 두고, 왕자의 난을 일으킬 수 있는 배경을 마련했다. 결국 1, 2차 왕자의 난을 겪은 방원이 왕위에 오르고 민씨는 왕비가 된다. 방원이 왕이 되는 데는 민씨의 힘이 컸다는 말이다. 왕이 되기 전에는 방원이 민씨를 소중하게 대했는데, 왕이 되고 난 후에는 이리저리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왕비의 곁에 있는 여자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그것은 왕비와 전쟁의 씨앗이 된다. 왕은 효빈 김씨, 신빈 신씨 등을 모두 그렇게 취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와중에 왕비와 사이가 나빠진다. 그 후에도 왕은 많은 여인들을 취한다. 그때마다 왕비는 노골적으로 왕을 질타한다. 왕은 그것이 왕비의 집이 강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왕비의 동생들을 죽이고 민씨 집안을 풍비박산 낸다. 남자는 여인과 관련되면 격정적이 되는 모양이다.

 

양녕대군 이제는 주로 기생들과 많이 놀았다. 미모의 기생들에게 마음이 쏠리면 힘을 앞세워 취했다. 그것이 누구의 품에 안겼던 여인일지라도 상관이 없었다. 백부, 매형, 고관 등의 여인이라도 관계치 않고 품었다. 봉지련, 초궁장, 칠점생, 어리 등 하지만 그는 이들과 놀아도 아버지 태종의 제재를 받았다. 데리고 놀다보면 그 기생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처형되거나 귀양을 갔다. 이처럼 그는 사랑 놀음도 제재로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결국 폐 세자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 이제가 하는 얘기가 마음에 남는다. 왜 아버지는 많은 여인을 들이는 일이 되는데 나는 안 되는가? . 야사 속에서는 양녕이, 동생 충녕이 더욱 나은 왕제라고 여겨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여성 편력을 했다는 미담도 얘기하지만, 양녕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외가를 쳐내는 아버지의 포악한 면모를 보면서 반항하는 마음이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세종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모든 면에서 갖춘 사람이다. 여성 편력을 들춰 봐도 참으로 지혜로운 모습을 보인다. 양녕이 문란한 여성 관계를 통해 세자 위에서 쫓겨나면서 세자에 오르고 왕이 되는 세종이다. 그는 12살 아무 것도 모를 때, 14살의 소헌 왕후 심씨와 결혼한다. 그렇게 결혼해 같이 성장하고 금실 좋은 부부가 된다. 다른 이들이 첩을 권할 때도 태종이 죽기까지는 거부하면서 심씨를 지킨다. 소헌 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가정이 풍비박산 날 때도 아내를 지킨다. 많은 사람들이 역적의 딸을 세자빈에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상소를 올려도 부왕에게 맞서 아내를 지킨다. 그래서 소헌 왕후는 폐출되지 않을 수 있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태종을 의식한 일이었다. 태종이 죽고 삼년상이 끝난 후 세종은 여인들에 관해선 달라진다. 홍씨 성을 쓰는 궁녀에게 빠지고 난 후부터다. 그 후 가까이 있는 궁녀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도 하면서 많은 후궁들을 거느리게 된다. 세종은 한 번 은혜를 끼친 여인들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그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배려해 나간 모습을 보인다. 즉 은혜 입은 그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싸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취한 여인을 버리지 않는 그의 품성에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 저자는 그를 여인들을 대하는 데도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문어발형 팔방미인이라 언급하고 있다.

 

문종은 여복이 별로 없었다. 첫 번째 부인인 휘빈 김씨는 안동 김씨로 뼈대 있는 가문의 자녀였다. 하지만 문종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정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김씨는 사랑을 얻기 위해 방술을 행했고 드러나 쫓겨나게 되었다. 두 번째 부인은 순빈 봉씨다. 이 여인에게서도 문종은 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혼인한 지 2년이 지나도 애기가 없자 세종은 그에게 후궁을 들이기로 한다. 한꺼번에 3명을 들인다. 권씨, 정씨, 홍씨 등이다. 이 세 명은 모두 마음에 들어 한다. 이들이 자녀를 낳자 순빈 봉씨는 위기감을 느끼고 힘들어 한다. 그런 가운데 이상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동성애를 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것이 세종에게 드러나 쫓겨난다. 그 후 세자빈 간택을 하지 않는다. 그러자 대신들이 세자빈이 없어선 안 되니 후궁 3 명 중에 한 명을 세자빈으로 정하자고 하고 권씨를 세자빈으로 세운다. 이 권씨가 단종을 낳고 산욕으로 죽는다. 그 후 세자빈 간택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명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3명의 정부인 외에도 8명의 후궁을 거느린 것이다. 하지만 자식복도 없었고 여복도 없었다. 후궁들도 빨리 죽는다. 자신도 빨리 죽어 단종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으니, 조선 시대 가장 안타까운 왕 중의 한 명이다.

 

세조 이유는 특별한 성장을 한다. 그는 궁궐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성장한다. 소헌 왕후가 궁궐로 들어올 때 임신 중이었고, 궁궐이 어수선했기 때문에 같이 들어오지 못했다. 또 외할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에 그랬다. 그 후 국상이 나고 형제들을 임신하고 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세조 이유가 궁궐로 들어오는 일이 자꾸 미뤄진 까닭이다. 그래서 형제들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그것이 아마 형제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한다. 새조가 궁궐에 들어가 부모와 같이 산 것은 유년기가 지나고서였다. 그리고 2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새신랑이 되어 궁궐 밖에 사저를 마련하고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조의 가계도에 오른 여인들은 왕비와 3명의 후궁밖에 없다. 하지만 세조가 여인들을 많이 거느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14살부터 기생방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기생첩도 많았다. 하지만 이 기생들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것이 그가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깨끗하다고 인식되는 이유가 된다. 부모들도 그것을 인정했다. 아마 여인 관리를 잘 했던 듯하다. 하지만 기생첩 중 하나가 왕의 아이까지 낳았으면서 왕이 찾지 않자 다른 남자에게 연정을 느낀 모양이다. 박덕중이란 여인이다. 결국 들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세조의 딸을 금계필담을 통해서 전하고 있다. 딸은 아버지가 사촌 오빠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는 것이 대의에 어긋난다고 반발을 한다. 그때 딸은 아마 16-7세 정도 되고 결혼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왕을 힐책하는 말을 하니까 세조는 그녀를 죽이려 했고, 어머니는 그 딸을 몰래 빼돌려 달아나게 했다. 그녀는 속리산 쪽으로 몸을 숨기게 되었고, 결국 그 곳에서 한 사내의 도움을 받게 된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에 서로 마음이 끌리게 되고 결혼해서 살게 된다. 그 후 그들은 서로의 내력을 얘기하는데 공주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니까 남자도 자신은 김종서의 손자라 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던 날 혼자 도망쳐 이렇게 숨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주에게 어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의로운 마음을 가졌냐고 하면서 더욱 정이 깊어 갔다.

한 편 태종은 만년에 피부병이 나 산수 좋은 곳에서 치료하기 위해서 속리산을 찾는다. 길을 가다가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본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어떻게 된 연유인지 알아보고 공주를 만난다. 왕은 지난날을 회억하면서 공주와 부마가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궁궐로 같이 들어가자고 한다. 하지만 공주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이게 대강의 얘기다. 여러 사료를 보면 세조의 딸 하나가 사라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표현해 우리들의 시선을 잡는다. 드라마에서도 이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본 기억이 있다.

 

임영대군 이구는 소헌 왕후와 사이에 태어난 세종의 넷째 아들이다. 그가 태어날 때는 국상이 여러 번 있었다. 정종이, 원경왕후가 또 조금 뒤에는 태종이 거푸 상을 당했다. 그래서 임영대군은 부모의 따뜻함을 입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것이 성장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세종의 아들 중 유일하게 사고 뭉치였다. 특히 여인 관계는 거침이 없었다. 왕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반반한 여인이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위력으로 관계를 가졌다. 세종이 다각도로 노력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영응대군 이염은 소헌 왕후에게 태어난 막내다. 그는 송씨와 결혼을 했는데, 송씨가 세종에 의해 내쳐졌다. 병이 원인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영응대군은 송씨를 잊지 못했고, 나중에 다시 찾는 일도 생긴다. 그리고 딸도 한 명 놓는다. 아마 세종이 영응대군을 과잉 사랑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가 저자가 생각하고 있다.

평원대군 이임은 소헌 왕후에게 태어난 7째다. 그는 19년을 살다가 갔다. 그런 그에게도 몇 명의 여인이 있었다. 아내 홍씨가 있고, 그녀는 7년 평원대군과 살았지만 자녀는 없다. 그 외에도 초요갱이란 기생, 백이라는 의녀 등이 있었으나 평원대군이 일찍 죽는 바람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서러운 신세가 되었다. 의녀는 원래 양반가에서 첩으로 들이길 좋아하는데, 백이를 첩으로 들인 사람은 아들이 사랑한 여인을 들였다 하여 세종의 미움을 받아 내쳐지기까지 했다.

 

조선 왕조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자식을 본 왕이 예종이다. 그는 12살도 되지 않아 아비가 되었다. 남녀 관계가 뭔지도 모를 나이다. 아마 조숙했던 모양이다. 예종은 의경세자가 요절하면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원래 왕가의 법도는 세자가 잘못 되면 원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예종은 운 좋게도 왕세자가 되었다. 그는 11살 때 한명회의 딸과 결혼했다. 한씨는 예종보다 5살이 많았다. 아마 정순왕후가 손을 빨리 보고 싶어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명회의 입김이 작용해서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후 바로 한씨는 아기를 가진다. 예종이 조숙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예종은 아내복도, 자식복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한씨, 자식 모두 바로 보낸다. 그 후 후궁을 들이고 자식을 낳고 했으나 일찍 죽는 자식이 많았고, 별로 자식복도 없었던 듯하다. 20살 때 죽었으니 그의 여인들도 힘 드는 삶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왕가에 들어온 여인들의 삶을 보면 왕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살펴볼 수 있다. 왕비들이 온전하게 자리 잡은 왕들은 그래도 위엄 있는, 힘이 있는 왕조를 구축했다. 하지만 왕비가 힘이 없는 경우엔 왕들도 마찬가지다. 왕의 힘이 왕비의 힘으로 이어지고, 나라의 안정으로 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의 치세에는 더욱 그렇다. 조선왕조 로맨스는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의미 있는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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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조선 왕실 사랑 이야기(2)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j****3 | 2019.11.21 리뷰제목
조선 왕실 로맨스를 자세히 읽다 보니 각 왕들의 사랑이 못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이 역사가 되었고, 그것이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되어 있는 것을 만났다. 그래서 비교적 소상하게 그들의 여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것은 나에게도 조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여 기록하여 남긴다.   제안대군은 기구한 운명의 대군이다. 그는 예종의 원자로 태어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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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로맨스를 자세히 읽다 보니 각 왕들의 사랑이 못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이 역사가 되었고, 그것이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되어 있는 것을 만났다. 그래서 비교적 소상하게 그들의 여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것은 나에게도 조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여 기록하여 남긴다.

 

제안대군은 기구한 운명의 대군이다. 그는 예종의 원자로 태어났으면서 예종이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우여곡절을 겪는 인물이다. 예종이 죽을 때 그의 나이 4살이다. 그래서 왕은 의경세자의 둘째인 성종에게로 넘어 간다. 그리고 제안대군은 성종의 왕권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평원대군의 양손이 된다. 그것은 아마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게 하기 휘한 고육지책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제안대군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두 번 이혼하고 한 사람과 두 번 결혼하기도 한다. 두 번 결혼한 사람은 첫 번째 아내인 김씨다. 김씨와 결혼해 살고 있는 가운데 후손과 관련되어 김씨가 아프다는 근거를 대면서 궁중에서 내보내게 된다. 그리고 박씨는 또 아내로 들인다. 하지만 제안대군은 첫 번째 아내인 김씨를 지우지 못하고 사가에서 만나는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그런 와중에 박씨가 동성애를 한다는 것이 알려진다. 그리고 퇴출된다. 그 후 성종은 다시 제안대군의 비를 들이고자 하나, 그는 반발하여 김씨가 아니면 여인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세우고 있다. 성종도 어쩔 수 없이 재결합을 허락한다. 참 이례적인 예이고,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성종13살에 왕위에 올라 25년간 용상에 있었다. 재임 기간이 거의 젊은 시절이었기에 여인들 문제도 많았다. 왕비가 3, 후궁도 14명이나 되었다. 한명회의 4째 딸이 성종의 아내였다. 공혜왕후 한씨다. 성종이 자을산군으로 있을 때 열한 살의 나이로 12살의 공혜왕후와 결혼했다. 그는 결혼 당시에는 왕이 될 가능성이 희박했다. 예종이 젊었고, 예종비가 공혜왕후의 언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종이 죽고, 자을산군에게 기회가 왔다. 그것은 바로 국구를 바라는 실권자 한명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왕이 되었고 공혜왕후는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왕비는 1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왕비의 죽음은 성종이 여성 편력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공혜왕후가 병석에 있게 되자 후궁들을 들이게 되고 후궁들의 암투가 시작된다. 왕비가 되기 위한 암투다. 그런 가운데 연산군의 어미인 윤씨가 두드러진다. 그녀는 연산을 잉태함으로 유리한 조건이 되고 결국 왕비가 된다. 하지만 왕이 후궁들에게 드나들고 하는 과정에 윤씨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가운데 후궁들이 합세해서 왕비를 공격하게 되고 왕비도 대응한다. 과정 속에 비상과 방술서가 방에 있는 것이 성종에게 발견되고 성종은 윤씨를 내칠 것을 결정한다. 결국 내치는데, 신하들의 주청에 의해 사약을 내린다. 그것이 나중에 연산이 분노하게 되는 결과를 만든다. 책엔 호색한인 성종이 안달해 후궁을 만들기 원했던 소춘풍이란 기생이 그 청을 거부하는 얘기도 들어 있다.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왕가에 시집간 박어울우동, 그녀는 색녀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어을우동은 태강수 이동에게 시집간다. 하지만 이동은 아내를 두고 기생 연경비와 어울린다. 그리고 기생을 첩으로 들이면서 아내를 쫓아낸다. 그것이 연유가 되었는지 어을우동도 맞바람을 피운다. 그것이 태강수의 친족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소문이 나게 되고 결국 조정에 까지 알려진다. 성종이 알고 어을우동의 행적을 조사하라고 하니 갈수록 태산이다. 어울우동과 어울린 사람은 왕족, 고관, 양반과 중인, 평민과 천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그래서 그 음란의 파급효과가 대단하고, 온 조정을 들썩이게 했다. 성종도 이대로 두면 풍기가 문란해 져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벌백계을 하겠다는 생각도 한다. 당시 성종도 폐비 윤씨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였고, 뇌두면 관계를 했던 많은 인물들이 곤경에 처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결국 교수형 처한다. 어을우동이 음란한 구석이 있었으나 당대의 흐름으로 보아 남편이 그녀를 내치지 않았으면 색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연산군은 월산대군의 부인인 승평부대부인 박씨의 슬하에서 많이 자랐다. 자식이 없는 부인이 어미를 잃은 연산을 아끼며 키웠기 때문이다. 융이 성장하면서 많이 아프고 했을 때 박씨의 보살핌으로 이겨나가곤 했다. 그래서 왕이 되어서도 박씨의 집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많이 찾곤 했다. 그것이 이상한 소문으로 번질 정도로. 융은 13살 때 동갑인 신씨와 결혼했다. 금슬이 좋았다. 그래서 많은 자녀들도 두었다. 하지만 자녀 복은 없어 태어나자 거의 죽었다. 이것을 신씨가 슬퍼하자 안쓰럽게 여겨 위로까지 하는 융이었다. 또한 이 때에는 명민한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오사화가 발생하면서 그의 폭력성과 색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초 때문에 사림들을 일거에 없앤 사화다. 이 때 유명한 조의제문’ ‘부관참시등이 나온다. 이극돈, 유자광 등이 김일손을 공격하는 가운데 김종직 이하 사람들을 몰아세운 것이다. 융은 이 무오사화를 기점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그리고 주위에 아첨하는 무리로 채운다. 전국에 채홍사를 파견하여 여인들을 뽑아 오게 하고, 그들과 즐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장녹수다. 연산이 장녹수에게 마음이 완전히 빼앗긴다. 그래서 장녹수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장녹수에게 질투를 드러낸 2궁녀를 능지처참시킬 정도로 그의 폭력성은 대단했다. 결국 반정으로 인해 그의 애정 행각도 끝이 난다.

 

중종은 성종의 셋째 아들이다. 연산군보다 12살 정도 어리다. 연산이 폭력적인 왕이 됨으로 박원종 등이 중심이 되어 반정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역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반정에 성공한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다. 중중의 비는 신수근의 딸 신씨다.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으로 실권자였다. 그래서 반정이 일어났을 때 척결되었다. 그 딸이 왕비가 되니 반정공신들이 일어났다. 그냥 둘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중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씨를 내친다. 내치고도 그리워하곤 한다. 단경왕후 신씨가 쫓겨난 후 왕비가 된 이는 장경왕후 윤씨였다. 그런데 원자 호를 낳고 산욕으로 죽는다. 박원종의 위세에 그의 조카와 결혼은 했으나 둘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 듯하다. 자식이 둘 뿐인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중종이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은 경빈 박씨다. 그런데 그녀에게 사약을 내린다. ‘작서의 변때문이다. 즉 원손을 저주했다는 이유다. 중종은 장경황후 3년 상이 끝나고 셋째 부인을 맞이한다. 그녀가 문정왕후다. 그녀는 원손을 잘 보살필 것이라는 기대로 궁궐 어른들이 추천하여 된 왕비다. 그녀는 자신이 자식을 놓을 때까진 원손을 잘 돌보았다. 하지만 명종을 낳고는 태도가 바뀐다. 원손 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미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중종은 이중적인 모습이 있었다. 여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빈처럼 사랑하다가도 갑자기 죽여 버리는 모습도 보인다. 누구에게도 연연하지 않은 여인 관계를 보여준다. 아마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는 환경적 특성이 그렇게 하지 않았나 여겨지기도 한다.

 

조선에서 부마는 어려운 자리였다. 관직에도 나갈 수 없고 아내인 공주나 옹주를 상전 모시듯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첩을 들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만일 부인을 어렵게 하는 일이 왕궁에 알려지면 부마는 어려운 일을 당한다. 그런데 2 여인을 사랑한 부마가 있다. 중종의 부마가 된 조의정이란 사람이다. 조의정의 부인은 효정옹주였는데 옹주가 시집갈 때 시녀로 풍가이를 데리고 갔다. 둘이 나이가 같고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에 데리고 간 것이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조의정이 풍가이를 사랑하고 옹주도 친자매처럼 여긴 풍가이를 남편에게 첩으로 들일 것을 권유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의좋게 지내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이 궁에 알려졌다. 중종은 효정에게 애처로운 특심이 있었다. 어미도 모르고 자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중종에게 효정이 홀대받고 있다는 소리는 격노케 하는 요인이 되었고 결국 중종은 노발대발했다. 그로인해 풍가이는 매질을 당하게 되고, 조의정도 유배를 가게 된다. 그 후 풍가이를 옹주의 묵인아래 빼돌렸지만 옹주가 아기를 낳으면서 산후증으로 사망하자 결국 다시 유배를 가게 된다. 효정의 이모인 궁중에 있었던 이은대는 풍가이 때문에 효정이 죽었다는 생각에 풍가이를 잡아 매질하여 죽게 만든다. 결국 사랑 때문에 죽음을 당한 풍가이고 유배를 당한 부마가 된다. 조선조의 부마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명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문정왕후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문정왕후는 갖은 노력을 다해 자신의 유일한 아들 환을 왕위에 올린다. 그 과정에서 이복형인 인종의 죽음이 있다. 뭔가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명종이 왕위에 12살 때 오르고 문정왕후는 섭정을 한다. 그것이 시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섭정이 끝나고도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명종이 무엇 하나 제대로 자신의 의지로 했을 리가 없다. 여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문정왕후가 지어준 짝을 배필로 둔다. 청성 심씨다. 하지만 너무 어려 결혼을 했고, 15세가 되면서도 아기를 가지지 못한다. 문정왕후는 빨리 자식을 보길 원한다. 그래서 후궁을 들인다. 그들과도 모두 사랑을 나눴으나 잉태가 안 된다. 문정왕후의 위세 앞에 모든 것이 유약해져 버린 명종이었던 모양이다. 몇 명의 후궁을 더 들이나 잉태가 되지 않고 문정왕후는 아들을 향한 노골적인 시선을 보낸다. 후손을 가지라고. 그런 가운데 심씨가 7년 만에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순회세자다. 그런데 순회세자가 열세 살 때 급작스럽게 죽는다. 결국 명종은 대를 이을 자식을 가지지 못하고 선조에게로 넘어간다. 아마 어미의 등쌀에 명종은 모든 면에서 심약한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후손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선조는 명종의 배다른 형으로 4살이 많은 덕흥 대원군의 아들이다. 즉 명종의 조카인 셈이다. 명종이 이른 나이에 후사가 없이 죽자 왕위를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런 선조는 당시로 보면 늦게 장가를 든다. 18살에 장가를 드는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장가를 들 기간에 상을 당해 아버지, 어머니를 잃게 되면서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을 마치고 그에겐 갑자기 왕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명종이 후사가 없이 병약한 몸을 지탱해나가는 와중에 후계자로 그를 점찍은 것이다. 명종의 3년 상이 끝난 후 박씨를 왕비로 맞는다. 의인왕후다. 하지만 그녀는 선조가 좋아할 타입이 아니었다. 선조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인이 나타나는데 공빈 김씨다. 임해, 광해를 낳은 분이다. 그런데 광해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게 된다. 선조는 공빈을 보내면서 다른 궁녀들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질투로 공빈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다른 여인이 있었다. 바로 인빈 김씨였다. 선조가 박절하게 굴어도 따뜻하게 감싸준 이 여인이 나중에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선조와 사이에 45녀를 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조는 이 여인으로 인해 오히려 죽은 공빈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된다. 하여 선조에게 저자는 순애보 형 집착남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광해를 명민한 혁신 군주라고 흔히 말한다. 중립외교 노선를 통해 조선의 살길을 도모했던 정책은 당시엔 현명한 처사였다. 하지만 여인들에 휘둘린 모습을 보이고, 폐위된 상황을 보면 그렇지 만도 아닌 듯하다. 이 글에선 광해의 3여인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광해가 십여 명의 후궁들이 있었으나 그 중 특히 총애한 여인은 3명이다. 김개시로 잘 알려진 광해의 대표적인 여인 김상궁이 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광해를 알았다. 하지만 광해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 그렇지 않았겠나 말한다. 그것은 방중술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김상궁은 광해의 전폭적인 지지로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조정 대신들이 그녀에게 놀아났다. 나라를 망치게 만든 장본인으로 표현된다. 광해가 쫓겨나고 만들었고 결국은 처형되었다. 인물 좋고 애교 많은 소용 임씨가 있다. 반정에 참여한 이귀, 김자점 등을 살려준 인연으로 반정 후 죽음을 당하지 않고 광해 곁에 유일하게 머물 수 있었던 여인이다. 말 잘하고 업무처리에 뛰어났던 소용 정씨가 있다. 대전의 문서를 관리하고 왕을 대신하여 교서를 내리는 일까지 했다. 그녀는 반정이 일어나고 유일하게 목매어 자살한 여인으로 나온다. 외에도 후궁들이 더러 있었으나 폐위된 왕이라 그렇게 자잘하게 드러나진 않고 있다.

 

왕실의 사랑은 특별한 것이 많다. 그런데 절대 권력을 지니고 있기에 여인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 어떤 이는 후덕한 모습으로 내조만 하고, 어떤 이는 왕의 마음을 녹여 자신의 뜻대로 권세를 가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왕의 사랑을 얻고, 어떤 이는 물리쳐 지기도 하면서 역사를 이루어 왔다. 왕의 여인들을 살펴보면 역사의 한 모습을 알 수가 있다. 좋은 경험이 되는 조선왕실 로맨스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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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오류 너무 많네요. 평점2점 | YES마니아 : 골드 k*******8 | 2022.01.20 리뷰제목
부쩍 역사에 관심이 많아져 여러 책을 구입해 읽어가며 공부중입니다. 조선왕조에 대한 색다른 접근인 듯 해 구입했는데 오류가 너무 많아요.양녕대군이 세종의 아들로 가계도가 그려져있고(실제 양녕대군은 세종의 형임),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가 15살 어리다고 기록(실제 정순왕후는 15살에 왕비가 되어 당시 남편인 영조와 51살 나이차가 남)되어 있는 등 역사 왕초보인 제 눈에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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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역사에 관심이 많아져 여러 책을 구입해 읽어가며 공부중입니다. 조선왕조에 대한 색다른 접근인 듯 해 구입했는데 오류가 너무 많아요.
양녕대군이 세종의 아들로 가계도가 그려져있고(실제 양녕대군은 세종의 형임),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가 15살 어리다고 기록(실제 정순왕후는 15살에 왕비가 되어 당시 남편인 영조와 51살 나이차가 남)되어 있는 등 역사 왕초보인 제 눈에도 여기저기 실수가 많이 보이네요.
이런 몆 오류로 인해 책 전반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지고, 소장하고자 구입한 게 후회됩니다. 잘못된 부분을 고쳐 중고책으로 내놓을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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