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확실히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맞나 봅니다. 관(官)에서 강요한 충. 효 위주의 사관(史觀)이 지배적일 때에는, 조선이건 고려건 그저 두루뭉술, 무색무취, 운명, 필연 위주의 시야를 강요당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세상이 장밋빛으로 충만하지도 않고, 순리보다는 모순과 비위가 더 많은 곳이라는 사실을 굳이 은폐하려는 세력이 수그러든 다음에는, 그저 양반님네들이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다스렸을 것만 같은 조선의 역사도, 요즘이나 마찬가지로 음모와 모략, 부정과 불의가 판을 쳤다는 사실에 일반 대중도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덕일 씨 같은 대중저술가가 인기를 끈 것도, "가면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의 폭로에다가, 특유의 상상력까지 가미하여 재미있게 펼쳐 내는 그의 솜씨 덕분이었을 줄 압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열었을 때에는, "우리가 몰랐던 또 어떤 무서운 진실을 저자분이 시원하게 파헤쳐서, 진실만이 안겨다 줄 수 있는 건강한 카타르시스를 맛 볼 수 있을지"가 기대되었습니다. 태종, 연산군, 인조, 영조 등 그러잖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잔혹 군주" 외에, 우리가 그저 명군, 성군, 혹은 인격자로만 받아들이던 나라님들에 대해서까지도 그 숨겨진 어떤 잔혹한 면이 더 있었을까 생각하면, 환상이 깨지는 두려움보다는 잘 짜여진 미스테리의 결말만이 안겨줄 수 있는 짜릿한 각성의 쾌감에 설레기에, 이런 책은 표지에서부터 먹고 들어가는 면이 있습니다.
막상 책을 열고 보니, 이 책은 날것의 진실이 안기는 충격 외에, 몰개성의 외피 안에 숨겨져 있던, 왕들의 빼어난 자질과 개인적 매력을 샅샅이 파헤쳐 주는, 대단한 무게가 느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잔혹사"가 아니라, "매혹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수백만 인민의 삶과 삼천 리 국토의 얼개를 어루만졌던, 빼어나고 영명한 이들의 연대기가 좍 펼쳐지더군요. 동시대(조선 전기 기준)에 대륙 저편에서, 일부러 그리 가려 뽑으려 해도 어려울 것 같은 암군, 혼군들이 줄을 서서 제국을 다스린 사실과 대조하면, 이씨 왕조의 DNA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인 통치자들이 시대와 공간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륙에 비해 왕권이 강력하지 않았기에, 개인으로서 왕위 계승자들이 그만큼 권신들에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긴장, 노력을 한 결과 아니었을까 짐작도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저자분이 연산군에 대해, 각별한 정성을 쏟아 그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월탄 박종화 같은 분들도, 이 휘를 "융"으로 쓰는, 자격과 혈통에 아무 하자 없는 젊은 군주에 대해,그 빼어난 잠재력을 내심 아까워하는 마음을 작품에 표현하는 데에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gimmick이 그리 굳어버렸으니, 후대인이 그를 상기할 때 애써서 그 밝고 축복받고 매력 가득한 기남자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 게 당연했습니다. 작가분이 이 책에서 그려내는 연산군은, 마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과도 같은 장엄한 파멸의 주인공입니다. 체자레 보르자를 형상화한 시오노 나나미가 연상될 정도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는 대단히 신중한 자세로, 그 인격의 단점과 한계, 미숙함을 지적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주인공에 저자가 지나치게 빠져들어 허구와 진실을 스스로 혼란시키는 게 역사책에서는 가장 볼썽사나운 폐단입니다. "알고 봤더니 모두를 매혹시킬 만한" 참으로 멋진 남자 이융에 대해, 저자는 그 억울한 평가에 대해 상당 부분 교정을 시도하면서도, 지적할 것은 매섭게지적하고 넘어가는 태도가 돋보였습니다.
선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불어닥친 충무공 열풍 덕분에, 선조는 조선 역대 군왕 중에서도 최악의 찌질이로 대중에 낙인이 찍히다시피했습니다. 굳이 억지스럽게 선양하려 들지 않아도, 그저 진실만 눈 앞에 펼쳐줘도 결론은 동일하게 날 것을, 부자연스럽게 국가주의 교육과 결부하다 보니 이처럼 새삼스러운 재평가 과정을 거치게 된 충무공. 그 최종 평가야 달라진 게 없지만, 그 부작용으로 선조 임금은 완전히 만인의 공적, 경멸 대상으로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예전만 해도, 나이 드신 교육자 중에 선조를 좋게 말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역사 왜곡의 희생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좋은 점이 있으니까 그런 작은 인식상의 트렌드도 남아서 전했겠죠. 저자는 1차 문헌을 꼼꼼히 조사한 후, 개인적 미덕이나 장점, 혹은 가능성 등은 확실하게 평가를 해 주고 넘어갑니다. 물론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출범(즉위) 당시만 해도 꽤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정부가, 왜 최악의 국난을 맞이하여 국가를 초주검 상태로 몰고 간 주범으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군주 개인의 특성과 성격에 초점을 맞추어 차근차근 반추하는 서술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연산군을 평가할 때에도, 저자는 예능(요즘 TV 버라이어티 쇼에서 말하는 그 "예능"이 아닌)적 자질이 뛰어났던 개인적 특질에 유난히 초점을 둡니다. 행정적 능력, 학문적 능력은 어쩌면 조선 같은 문치주의 체제에서 드물게 보는 자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술적 천재성은, 당시 같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지배 계층 출신이 쉽게 꽃피우거나 드러낼 것은 아니었죠.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한 순간에 결론에 도달한다거나, 복잡한 현상 뒤에 감춰진 진상을 한눈에 꿰뚤어 보는 능력은, 예술적 자질을 지닌 천재라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연산군, 그리고 효명 세자처럼, 머리도 영특하고 유난히 예술적 기질이 강했던 왕재들에게 큰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효명세자가 김조순의 등쌀에 덜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조금만 적게 받아서, 20대 후반 정도까지 건강을 잘 관리하여 넘겼더라면 이후 조선의 역사는 어찌되었을까요?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란, 그리고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현실이란, 꽉 짜여진 제약과 초기 조건의 수레바퀴에 그저 압살되어 끌려가야만 하는 운명은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모이고 모여, 있을 수 없는 기적도 일어나는 것이고, 뻬어난 천재, 개인의 중요성은 그래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미처 피지 못하고 져 버린 그 숱한 가능성 때문에, 핏빛의 잔혹은 모두를 매혹하는 장밋빛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우리는 척박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벅찬 희망에 더욱 부푸는 것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