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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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500년 역사가 답하는 리더십의 왕도

리뷰 총점 9.8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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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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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왕으로 산다는 것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k*******2 | 2023.07.31 리뷰제목
한양으로 천도한 후 해마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 피해가 심해지자 태종은 보다 근원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또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신하들에게 공표했다. 1411년 윤12월 1일 태종은 "해마다 장맛비에 시내가 불어나 물이 넘쳐민가가 침몰되니, 밤낮으로 근심이 되어 개천 길을 열고자 한 지가 오래이다. 지금 이 개천을 파는 일이 백성에게 폐해가 없겠능가> 아직 후년
리뷰제목

 

 

 

한양으로 천도한 후 해마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 피해가 심해지자 태종은 보다 근원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또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신하들에게 공표했다. 1411년 윤12월 1일 태종은 "해마다 장맛비에 시내가 불어나 물이 넘쳐민가가 침몰되니, 밤낮으로 근심이 되어 개천 길을 열고자 한 지가 오래이다. 지금 이 개천을 파는 일이 백성에게 폐해가 없겠능가> 아직 후년을 기다리거나 혹 자손 대에 이르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아직 후년을 기다리거나 혹 자손 대에 이르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하면서 개천 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이것이 백성들에게 부담아 되지 않을지 염려했다. 태조의 대표적 참모 하륜은"기쁨으로 백성을 부리고, 백성을 적당한 시기에 부리는 것은 예전의 도입니다. 만일 의리에 합한다면, 비록 칼날에 죽더라도 또한 분수가 있는 것입니다. (-29-)

불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만큼 세조에게는 늘 정통성 시비가 따라 붙었다. 1456년 (세조 2년)에는 성삼문, 박팽년 등이 중심이 되어 단종 복위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세조에게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세조는 문종, 단종 이후 추락한 왕권 회복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육조직계체를 부활시키는가 하며 <경국대전>,<동국통감. 과 같은 편찬사업을 주도하여 왕조의 기틀을 잡아갔다. (-55-)

"왕비 윤씨는 후궁으로부터 드디어 중전의 자리에 올랐으나, 내조하는 공은 없고, 도리어 투기하는 마음만 가지어, 지난 정유년(1477) 에는 몰래 독약을 품고서 궁인을 해치고자 하다가 음모가 분명히 드러났으므로, 내가 이를 폐하고자 했다. 그러니 조정의 대신들이 함께 청하여 개과천선하기를 바랐으며,나도 폐출하는 것은 큰일이고 허물은 또한 고칠 수 있으리라고 여겨, 감히 결단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뉘우쳐 고칠 마음은 가지지 않하고, 덕을 잃음이 더욱 심해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결단코 위로는 종묘를 이어 받들고 , 아래로는 국가에 모범이 될 수가 없으므로, 이에 성화 15년(1479) 6월 2일에 윤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는다. 아, 법에 칠거지악이 있는데,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사사로움이 있겠는가? 일은 반드시 여러 번 생각하는 것이니, 만세를 위해 염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72-)

일견 광해군은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연목대비를 거궁에 유폐하면서 정통성 시비를 없앤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이 두 사건은 오히려 광해군을 반대하는 정치 세력을 결집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서인과 남인이 비밀 회합을 하면서, 정권 타도에 나섰고, 마침내 1623년 3월 13일 인조반정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134-)

16세기 이래로 재야의 사림파 학자들은 사육신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고 이들의 정신을 따르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국가에서 이를 공인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육신의 복권은 노산군이 단종으로 명에를 회복하는 길과 맞물려 있었다. 사육신을 국가적으로 포상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어느 왕도 사육신을 '국가의 충신'으로 공인하는데는 주저했다. 그런데 230여 년이 지난 후, 숙종 스스로가 총대를 맸다. 숙종은 1691년(숙종 17) 사육신의 관직을 회복하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230-)

조선의 왕은 태조 이성계에서 시작하여, 순조 순조 (純祖) 이공(李?)에 이르기까지 27 대 임금을 모셔왔다.이 중에서, 세 명의 왕 , 단종(노산군) 과 연산군, 그리고 광해군을 주목해 보았다. 성리학, 유교의 나라 조선은 이 세 임금을 왕으로서 자격을 박탈하였고, 노산군, 연산군,광해군으로 명명하였으며, 그들의 업적은 노산군 일기, 연산군 일기, 광해군 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들이 사화에 연루되었던 이유는 세 임금이 살았던 당시의 사회적 여건과 가정환경과 연결되고 있다. 단종복위 운동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금성군이 이끄는 단종 복위운동은 실패로 끝났으며, 순흥도호부가 불타버린다. 연산군은 어머니 윤씨의 칠거지악에 의해 폐위되었고, 윤씨가 폐위 된 사실을 연산군에겐 함구를 지시했다.하지만 권력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연산군에게 윤씨 폐위를 발설하였고, 조선 시대 4대 사화중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를 일으켜 피비린내 나는 연산군의 폭정이 조선시대에 일어났으며, 연산군은 곧 폐위되고 말았다.

한편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종식하였고, 탁월한 외교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된 이후 ,자신이 해오던 일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는데, 광해군에게 왕으로서의 자격을 물은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으로 인해,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연목대비를 거궁에 유폐하기에 이르렀다.즉 역사적으로 볼 때, 광해군은 연산군과 다르다. 단 자신이 왕으로서, 서열 2위에 해당된다는 것은 재임 내내 골칫거리가 될 수 있었다. 태종 이방원이 두번의 왕자의 난으로 정적들을 제거하고,조선시대의 성군이 되었던 것처럼,광해군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창대군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서인이 주도한 인조 반정(1623년) 성공으로 인해 폐위되었다. 역사는 아이러니 하다.유투브를 볼 때, 억울하고 ,최악의 역사적 사건들이 있을 때, 어느 한 순간을 잘 넘어갔더라면, 역사의 큰 물줄기가 바뀔 수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 속에서, 지혜와 성찰을 얻기 위함이다..과거의 잘잘못을 답습하지 않은 것, 같은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의 줄기를 만들어 나가기 함이다. 그것이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 속에서 , 우리가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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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리뷰] 왕으로 산다는건 평점10점 | c********5 | 2023.07.23 리뷰제목
왕르로 산다는건 본 서형은 출판사의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조선 시대의. 왕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 조선의 왕의 국정을 운영 해야 하는 왕의 모습과. 그 외에 왕으로 올라오기 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쉬운것도 아닐것이다.또한 왕이 되면 모든걸 마음대로 할수 있을것 같지만 신하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살이 너무 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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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르로 산다는건

본 서형은 출판사의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조선 시대의. 왕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 조선의 왕의 국정을 운영 해야 하는

왕의 모습과. 그 외에 왕으로 올라오기 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쉬운것도 아닐것이다.

또한 왕이 되면 모든걸 마음대로 할수 있을것 같지만 신하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살이 너무 심하면 자기 뜻대로 진행을 할수가 없다

이 왕들도 대단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살아쓸거를 생각하면 어찌 보면 이것도 스트레스 쌓이는 직업일듯 하다

15 ~ 16 페이지 왕자의 난의 서막이라는 소제목에서 처럼. 태조 이성계와 이방원 간의. 갈등은 단순한 갈등에서 시작 된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충효 사상이 있는 아버지와 새로운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앞을 막는자는 제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방원 과의 대립이다

이방원은 우리와 뜻을 같이 하지. 않고 조선을 개국 했을때 게속 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사사건건 방해할 가능성이 많았을걸로

생각한 방원은 훗날 집권 하여 방해하는 세력을 줄이러고 했고 이러한 생각 차익라 결국은 비극의 시작이 된것은. 아닐까?

23페이지 무학댁사도 처음에는 태조에게 가서 설득 하는 일에 대해서 사신들이 가면 다 죽어서 오는 일이 있기 때문에

자기도 가서 어떻게 설득 하지도 모르고 혹여 자기도 죽임을 당할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읅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 해도 지금.시대에 생각 해도 나 같아도 가기 싫을거 같다 아마도 고믾이

깊었을 것이다. 고민 끝에 가서 태조를 긴긴 설득끝에 그래도 귀경 하게 만들었으니 함흥차사를 끝내는

계기를 만들었지 않은가 어쨋건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하나 풀어 낸 샘이지 않을까?

111페이지 선조는 다른 형제 들에 비애 학문 실력이 뛰어 나서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를 받아 춧날 선조가 된다

하지만 왕이 학문만 안다고 국정운영을 할수 없는 것인데 그게 선조의 무능함의 시작 이었을지 모른다.

115 페이지 선조가 즉위 하고 이후에 문을 중시하고 무 즉 국방을 무시. 하면서 나라의 국방이 약해지다 보니 훗날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는데 단초를 제공 했는지도 모른다

123페이지 전쟁이 시작 되자 마자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는 있었으나 상대의 밀려 오는 기에세 의해 속절 없이 밀리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124~125페이지 선조는 왕으로서 지금 같으면 대통령이다 현대의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전쟁이 낫다고 해도 수도를 지키면서 군사들을 지위하면서 더이상 침략하지 못하게 방어를 하거나 혹은 최적의 전략을

세워 상대를 공격하기도 해야 하는데 수도를 방어 하기 보단 자기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 했는지.

자기 백성을. 버리고 피난을 간다 결국 백성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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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조선 500년 역사가 답하는 리더십의 왕도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b******g | 2023.04.19 리뷰제목
저자 #신병주 교수님은 이야기꾼이다. 꾸밈이나 과장이 없고, 가만히 듣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역사를 전한다. 특히 #왕으로산다는것 내용은 조선 500년 역사를 통해 리더십에 대해 답하고 있다. 삶은 정치의 연속이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현 시점보다 더 먼 미래의 몫이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현 시점을 비추고 미래에 과오를 덜 남기고자 한다. 현재를 살아가며 주어진 상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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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병주 교수님은 이야기꾼이다. 꾸밈이나 과장이 없고, 가만히 듣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역사를 전한다. 특히 #왕으로산다는것 내용은 조선 500년 역사를 통해 리더십에 대해 답하고 있다. 삶은 정치의 연속이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현 시점보다 더 먼 미래의 몫이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현 시점을 비추고 미래에 과오를 덜 남기고자 한다. 현재를 살아가며 주어진 상황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다. 선과 악, 옮고 그름의 분명한 기준으로 나뉘어 지지 않기에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한 것은 뒷걸음 친 듯 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혼돈 자체인 것 같지만 인류의 시간 전체로 보면, 엎치락뒤치락 하지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도 답을 찾고 재건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이 있듯이 #조선500년역사 #조선왕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리더십의 왕도를 찾아본다. 왕이 리더로서 가졌던 능력도 살피지만 시대를 읽고 리더로서 갖춰야 할 소양, 감각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발굴된 인재와 함께 사회의 변혁을 이끌었던 역사적 판단 및 안목을 제시한다. 정치 및 사회 분야가 시끄러운 소식으로 가득할수록 고전과 역사 이야기를 찾는 이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답없는 상황과 이들을 선별하는 능력을 우리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맛깔나는 강의로 유명하고, 소탈한 웃음으로 가식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 #신병주 교수님의 강의를 글로 보는 재미가 여기에 있다. 왕의 업적이나 제도를 외우는 것에 그쳤던 과거 역사 학습과 달리, 왕의 행적과 판단의 이유를 들여다보고, 시대적 상황 뿐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 펼쳐진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하였다. 단, 전문적 지식과 해석보다는 시대를 읽는 안목을 기르는 역사를 보여준다.

■ 세조는 술자리를 정치의 장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했다. 홍윤성과 같은 측근 신하가 비리 혐의에 연루되어 탄핵을 받자, 세조는 직접 홍윤성을 불러 벌주를 내리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도록 했다. 또한 세조는 술자리를 신하들의 장점을 칭찬하는 자리로 활용하기도 했다. 궁궐 안에서 뿐만 아니라 흥이 나면 교외에서 신하들을 불러 술자리를 자주 베풀었다. (세조, 61p)

■ 중종은 반정에 의해 추대된 왕이었으나, 왕권 추구라는 왕의 본능을 포기하지 않았다. 조광조는 '개혁'에는 동의했지만 왕권을 점차 제한하고 신권을 강화하려는 입장이었으므로, 점차 중종과 조광조의 사이는 멀어졌다. 조광조는 개혁정치의 완성을 위해서 신권을 포기하지 않는 소신의 정치인이었다. (중종, 97p)


■ 당파 간의 학문적인 경쟁과 대립도 심해졌다. 이 과정에서 성리학이 이론적으로 강화되고 이황, 조식, 이이, 성혼 가은 학자들이 배출되는 '빛'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 사회가 전체적으로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게 되면서 국방 약화를 가져오는 '그늘'도 양산했다. (선조, 115p)

■ 서인의 논리에는 효종의 왕통보다 가통을 우선시하는 입장과 함께, 신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종, 206p)

■ 1728년(영조 4) 의욕적으로 추진된 탕평책은 이인좌, 정희량, 박필몽 등 소론과 남인 급진파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지에서 일으킨 무신란(이인좌의 난)으로 위기를 맞았다. .....중략..... 영조는 당쟁이 백성들을 반란 세력에게 합류시킨 일차 원인임을 지적하고, 앞으로는 당과 사를 옹호하지 말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협력해 중흥의 기틀을 삼자고 호소했다. 무신란을 계기로 당파를 철폐하고자 하는 영조의 정치적 승부수였다. (영조, 252-253p)

■ 어머니와 아버지의 회갑이라는 의미가 있는 해를 맞이하여, 화성의 행궁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성대히 열며 지극한 효성을 표현했다. 또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화성의 현륭원을 참배했다. ...중략.... 정조는 이 행차를 통해 왕권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자신의 친위 군대를 중심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자 했다. (정조, 313p)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한 역대 왕으로부터 폭정으로 지탄받는 이들, 굴곡의 역사를 너머 변혁의 시대를 이끌어낸 이들, 경술국치 전후로 풍전등화였던 나라의 위기 속 역사까지 500년 역사를 담았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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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조선의 역사를 다시보다 평점10점 | s*****9 | 2023.04.09 리뷰제목
#왕으로산다는것 #신병주#매일경제신문사 #조선500년역사가말하는리더십의왕도 조선27명 왕들의 시행착오를 빌려와, 현재에도 유효한 리더의 덕목과 지혜를 살펴본다. '반면교사' '과거가 없는 미래는 없다.'다 좋은 말이다. 열심히 과거를 공부하고 현재에 열중하고 미래를 연구해야겠지. 이번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조선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훑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한참 전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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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500년역사가말하는리더십의왕도

조선27명 왕들의 시행착오를 빌려와, 현재에도 유효한 리더의 덕목과 지혜를 살펴본다.
'반면교사'
'과거가 없는 미래는 없다.'
다 좋은 말이다.
열심히 과거를 공부하고 현재에 열중하고 미래를 연구해야겠지.
이번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조선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훑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한참 전에 한 권으로 읽는 ~ 시리즈로 고려, 조선을 읽었다. 애지중지 아끼던 책 들인데 한때 자영업을 하면서 매장에 뒀더니 누군가가 집어갔다.
(부디 그 가정에 마음의 양식으로 남았기를 바란다. )
다시 살까 했는데 잊었고, 이 책을 읽으니 생각이 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이 훨~씬 재밌다 ㅎㅎ
사이에 쉬어가는 페이지에 역대 왕들의 서체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달필이었다. 볼 때마다 감탄했다.

역사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천천히 읽다 보면 어느새 끝을 보고 있을 것이다.
신병주 교수님이야 이미 너무나 유명한 분이고, 강의 한두 번쯤은 방송에서 봤을 것이다. 딱 그렇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조선의 왕들은 유명한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에 대해선 어설프나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헌종이 너무나 애틋했다.
헌종은 정조를 닮고 싶어 했다. 규장각을 지어 수많은 서책을 연구했던 정조처럼 낙선재를 지었고 거기서 학문을 탐구하고 싶었고 정치개혁을 하고 싶었다. 정조가 1787년 정미년에 후궁을 들인것을 따라 꼭 60년만인 1847년 정미년에 헌종도 후궁을 들였다. 그러나 그 어떤것도 할 기회가 없이 승하했다.
왜 이리도 삶이 짧았단 말인가. 정조가 조금 더 오래 살고 그런 정조를 닮아 정치개혁과 민생을 위한 정치를 헌종이 오래 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어찌됐을지
안타깝지 그지없다.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땐 어떤 감정이 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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