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4주기쯤 ‘세월호 지겹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밝혀진 건 아직 하나도 없는데 이미 사람들은 잊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때 저자인 산만언니가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의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이 화제가 되어 정식 연재하게 되었고, 그 글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날, 스무 살이었던 저자는 지하 1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실내는 푹푹 쪘고, “이건 비밀인데 위층에 에스컬레이터가 어긋나버렸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와 같은 말들이 돌아다녔다. 사고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 같이 일하던 아줌마들과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가 누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에 식품코너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굉음과 함께 불어온 어마어마한 돌풍에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단 몇 걸음 차이로 생과 사가 나뉘었다.
저자는 얘기한다. 자신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어린 시절엔 큰 오빠의 폭력이 있었고, 스무 살엔 아버지의 자살과 삼풍 사고를 겪었다. 사고 후엔 PTSD, 자살 시도, 자해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 고통 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작은 오빠의 사업 실패로 인한 파산과 가난, 그리고 직장 내 왕따까지 왜 불행은 혼자 오지 않고 다른 불행을 줄줄이 엮어 오는가. 너무나 많은 일을 겪어왔고, 많은 날들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계속되는 조울증과 불면의 밤. 어쩌다 잠깐 잠에 들었다가도 금세 일어나 혼자 벽을 치고 흐느끼고 괴로워했다.
그런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때만 생각하면 먼지 냄새, 피 냄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힘에 부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라고 했다. 누군가 본인의 불행을 보고 위로받기를 바란다고.
“그 모든 일들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아온 세상은 따뜻했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살아 있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살아만 있으라고. 그러다 보면 가끔 호사스러운 날들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이 말을 하고 싶어 쓰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건.
그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계실 텐데요.
그럼에도 비슷한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지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터지지만 왜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고 희생자들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걸까요?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런 중차대한 사고들이 더 이상 그 당사자들만의 것이 아니며,
모두가 연대해서 앞으로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회적 시선으로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가늠해 보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누구나 아는 큰 사건, 사고를 치른 사람에게는 쉽게 동정할 수 있을지언정 마음 깊이 헤아리는 시간은 너무 짧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삼풍백화점 사고의 생존자 자칭 '산만 언니'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간 겪어왔던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제때에 치료하지 못해 긴 시간 그녀가 경험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담담히 걷어낸 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고들에 대해 사고 생존자의 시선으로 담아내어 가슴 깊숙한 곳에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그녀가 특히나 주목하는 사고는 바로 세월호 침몰 사고입니다.
삼풍 사고와는 판이하게 달랐던 사고 처리 과정과 진상 규명 결과들, 그리고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놀란 그녀가
사고 생존자로서 사고 희생자의 유가족들,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덤덤하게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는 꼭 그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공감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도 상식의 선이 아닌,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누어 구분한다는 것.
그러한 사회 현상으로 아픈 사람은 더 아프게 만든 다는 것은 저 또한 통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삼풍 붕괴 사고 희생자들과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에 다른 잣대가 들이대어진 것은 사회적 상황과 많은 부분 맞닿아 있었습니다.
고속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소비가 활발해지던 때에 부자 동네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붕괴사고와
저속 성장과 경제 침체 시기에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침몰 사고는 정치판에서부터 지역주민, 그리고 여론에서까지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그녀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고 대책 본부 현장에서 자원봉사하며 느꼈던 것과 자신이 겪은 사고의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었지요.
어떠한 비극이든 누구에게도 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예단하지 않아야 하며 그들의 아픔을 온 마음으로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야 그들이 건강하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음을 사회적 책임과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이야기해줍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나만 아니면 돼'가 되었던 걸까, 타인의 비극이라고 왜 경중을 쉽게 따지려 들까,
사회가 이런 사건, 사고들을 경험하며 새로운 사안들이 만들어지듯이 우리는 이 희생자들 덕분에 훨씬 더 안전한 삶을 가꿀 수 있게 되었고 저자는 이러한 것들이 그들에 빚을 진 것이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산다'라는 글귀가 그렇게 와닿을 수 없었는데, 이런 사고들은 다수의 유기적 공조와 이를 방관하고 침묵하는 태도, 그리고 책임을 떠넘기고 미루는 것으로 사회에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기에 재발방지를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눈이 앞에 달린 인간은 아무리 노력하고 산다고 해도 뒤에서 던지는 돌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옆 사람한테 대신 좀 봐달라고 부탁하며 살아야 한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_ 147 p.
하루아침에 일상이 흔들리는 경험으로 많은 것을 잃기도 했지만, 또 지금껏 견뎌온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답니다. 아예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었지만,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이런 비극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도 힘겹게 한다는 것을, 그녀가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었을 때는 몰랐던 사실들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씩 경험하고 안정을 찾기까지 그들로부터 깨닫게 되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꼭 큰일이 닥쳐야만 무언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듯,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녀가 겪은 일상의 나열을 통해 마음을 내어놓고, 내어놓은 만큼 타인의 마음도 어루만져 줄줄 알았기에 그녀의 곁에 마주 앉아 제 마음을 톡 건드리는 토닥거림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글은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런 큰 사고들을 방지해야 할 사회적 의무와 책임의 목소리를 함께 내며 이제 자신보다 주변을 돌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고 생존자나 희생자의 유가족 분들이
내가 너무 힘들다고, 그 큰 사고에서 이렇게 살아났거나 내 피붙이가 희생되었다고,
그러니 나 좀 바라봐 달라고, 아프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안고 가고자 하는 마음만이라도 진실되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매해 추모 시기가 오면 '그만해라', '그만 우려먹어라',라는 비수 꽂는 말들은 접어두고 그간 힘들지 않았는지, 마음은 잘 추스르고 있는지 함께 사는 이웃으로써 돌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고 생존자이기에 그간의 불편한 시선들에 그녀가 전하는 가감 없는 메시지를 일독을 권합니다.
‘삼풍 백화점’ 잊혀진 이름을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쓰라립니다.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망막에 떠오르는 뿌연 먼지가 시야를 흐리게 합니다.
강남의 부유층을 겨냥한 초호화백화점으로 소문이 난 유명 백화점이 허무하게 무너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튼튼해 보이던 백화점 건물이 그렇게 힘없이 무너지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그의 나이 20살인 1995년 일당 3만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사고로 실종자가 6명, 사망자가 502명, 부상자가 937명이라는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서른 살에 PTSD증상이 뉘늦게 찾아 왔다고 합니다. 현재 40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직 미혼입니다. 이 책은 딴지일보에 2018년 봄에 쓰기 시작하여 금년 6월에 책으로 출판하였으니, 2년 반이 걸린 셈입니다.
미루어 생각해 보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같은 일들을 다시 기억해 내고, 글로 써나가면서, 잊고 있었던 아픔을 다시 겪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카톨릭신자로서 용서도 했다고 쓰고 있지만, 글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찌꺼기 속에서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와 유사한 사고인 세월호에 대한 아쉬움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삼풍의 사고는 불법 증개축 등의 원인이 확인되었지만, 세월호는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불법 과적과 물의 흐름, 담당 공무원들의 비위 등이 사고로 연결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피력했는데, 일부러 학생들을 수장시키려고 물에 빠진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더 이상의 원인은 무엇이 더 있을까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삼풍의 사고를 세월호로 더 확대하는 듯한 논지가 약간 불편하기도 합니다.
삼풍 백화점의 사고로 인하여, 재난관리법이 제정되었고 여타의 관련법들이 개정되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는 의미에서 공헌한 바가 되었듯이 세월호도 그런 의미에서 값비싼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으리라 자위해 봅니다.
그러나, 삼풍이나 세월호나 그 사고로 희생된 당사자나 가족들의 슬픔을 헤아리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조차 어렵기만 합니다.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해 봅니다.
저자의 남은 인생에 무탈과 행복을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