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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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세계

한 권으로 읽는 인류의 오류사

리뷰 총점 8.1 (3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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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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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우리는 어리석음의 오수관을 통과해 낼 수 있을까 평점9점 | k**u | 2021.05.15 리뷰제목
"멍청이들은 (...) 지혜를 가졌다고 믿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약점이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지식은 그저 일시적이고 임시적이며 이로움을 주는 망각의 영역으로 물러나야 한다."    -118쪽   책, 『바보의 세계』는 영장류 인류 진화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효율성과 비인간적 개인성을 이상으로 하는 '인간 재(再) 디자인'의 기획인 트랜스휴머니즘에 이르는 인간사(史)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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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들은 (...) 지혜를 가졌다고 믿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약점이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지식은 그저 일시적이고 임시적이며 이로움을 주는 망각의 영역으로 물러나야 한다."    -118쪽

 

책, 『바보의 세계』는 영장류 인류 진화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효율성과 비인간적 개인성을 이상으로 하는 '인간 재(再) 디자인'의 기획인 트랜스휴머니즘에 이르는 인간사(史)를 통하여 역사의 원동력을 이해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서 '어리석음'이라는 인간의 '비극적 열정'을 조명하는 일종의 빅히스토리라 할 수 있다.  심리, 종교, 정치, 지식경영, 경영과학, 언어학, 환경공학, 심리학, 고고학, 저널리즘을 망라한 35인의 분야별 전문가가 인간이  "진화의 오수관(汚水管)을 피해 갈 만큼 지혜로운" 종(種)인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이 시도는 인간의 행동적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지적 예민함을 찾으려는 분투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어리석음이라 두루뭉술하게 부르는 것은 무지나 지성 결여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시쳇말이 있듯이 무분별한 실행력의 내재적 조건이기도 하다.  결국 무지와 자만(오만)은 붙어다닌다. 여기서 '어리석음'이란  무지, 무분별, 오만, 그릇된 생각, 도를 넘은 욕망(분노, 증오, 집착, 광기)과 같은  의미들을 총합하는 언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사는 바로 이 어리석음의 역사 그 자체가 아닌가하는 물음에서 역설적이게도 지속되고 있는 인간 역사의 추동력이기도 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문명이란 것을 움켜쥐고 있으며 오늘날 인간의 보편적 가치라는 자유와 평등, 존엄성을 일구어 냈다는 의미에서 그것이 퇴행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진보를 향한 무모한 발걸음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역설의 사례는 바로 지금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주류적 흐름을 형성한다. 역사전문 저널리스트 '로랑 테스토'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세계 경제 성장율을 6퍼센트에서 0.1%로 낮추는데 기여한 '도널드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국제 무역을 감소시켜 지구환경을 보호했으니 진정 타당한 제안이지 않은가?   어리석음이야말로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한국 사회라 다를 것이 없다.  배움의 부족이나 알량한 지식에 대한 자기 과잉 의식에 매몰된 인간들이 설쳐대는 세계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철학자 '마르틴 그루'는 계몽적 이성을 주장하는 '디드로'와 '볼테르' 중심의 『백과전서』파와  예수회와의  '과학적 이성'에 대한 맹렬한 싸움을 통해  '축적된 오류, 자발적 성찰의 부재, 알지도 못하면서 내리는 판단', 즉 어리석음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수회는 이때 과학적 이성을 부정하기 위해 일종의 프레임을 구축하는데, 일명 '카쿠악(Cacouacs)'이라는 서툴고 야만적이며 잔인함의 의미를 백과전서 집필진에게 씌워버린다.  즉  『백과전서』의 내용이 아니라 집필자들을 겨냥한 인신공격을 가해 대중의 무의식에 각인된 고착된 도덕적 감정의 스위치를 작동시켜 아예 상대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본질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여전히 자신들의 의견에 반하면 빨갱이를 부르짖듯이 수구적 비열함이란 18세기나 21세기나 한결같다. 

 

사람들이 일종의 '자기 노력에 대한 정당화 현상'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매우 강력한 자기 정당화 기제로 작동할 때 자신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정보를 무조건 간과하고 외면하곤 자기 합리화와 기존 판단의 고착화에 매달리게 되어 인간의 삶으로부터 귀중한 가치의 퇴행을 야기한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거'가  "인간의 상식이란 믿을 만한 근거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며, 인류 역사 내내 이렇게 하는 것에 익숙해진 멍청이 일 뿐"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늘상 인간은 어리석음에 직면해야하며 이것의 극복을 향한 처절한 행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일 게다.

 

역사학자 '오렐리 다메'가 소개하는 어리석음과 지략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대결이라 부르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의 이야기는 탐욕과 지적 결핍, 완벽한 자기확신이 만들어내는 어리석음과 자기 성찰을 가능케하는 지적 노력의 혹독함을 보여준다.  앎이란 수많은 반복과 층위로 이루져 많은 학습과 시간적 노력의 투입을 요구한다.  결국 편협한 자기 견해 복사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니 자기 판단과 진실과의 간극이 발생할 때마다 찾아오는 불쾌감에 혐오와 증오를 쏟아내며 반목하는 양상이 사회를 지배한다.  이 자기 기만적 방식의 불안 해소가 사회를 침식할 때 수구적 포퓰리즘의 세계가 활짝 열린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의 『대중의 반란』속 문장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 밖에 있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관념의 창고에 안주하고 자기 폐쇄의 메커니즘'을 반복하는 편협성, 바로 무지의 어리석음에 터 잡은 포퓰리즘"을 경고했다.  어리석음, 프로파간다, 적의(敵意) 충만한 언어로 인간본능의 가장 저열한 부문을 자극해 점점 지배력을 확장하게 될 때 열광했던 대중들, 그 자신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될 지 상상해 낼 수 있는 지성이 없었음에  때늦은 절망을 부르짖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제도 바깥이 아니라 제도 중심에 존재한다는 사실,  (...) 지식과 권력이 결합된 곳이라면 오만(어리석음)은 어디에라도 존재한다."    -  267쪽

 

이제 어리석음의 또다른 형태인 오만으로 옮겨가 보자. 현대 사학자 '안 카롤'은 의학적 어리석음인 오만을 의학계의 일탈과 오류의 실재 속으로 안내한다.  의학이 어떻게 배타적 전문성을 구축했는지 의학사를 거닐며 '보이지 않은 위험'에 관한 권위를 독점하는 양상을 규명하고 있다. 훌륭한 인간을 만들어내자는 우생학에 기초한 마구잡이식 도덕적 지적 결함의 짝짓기로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의학적 규정들, 이를테면   "극단적 나태함, 무지, 연약함을 보이는 인간들은 자손 번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샤를 리셰'의 유전법칙 통제의 기이한 변은 오늘날 의료계 오만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이 우생학에 기초한 결혼 허가 권한이 의사에 있다는 법률이 프랑스에서 2007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다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끈질기게 인류 삶의 진보를 붙잡고 있는지 를 입증한다. 

 

위험천만하고 오만한 의학적 오류는 의학계의 이단아이자 살인자로 불렸던 외과 역사상 가장 기이한 심장 외과 수술을 감행한 '릴러하이'의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수술의 위험성을 정당화"했던 것처럼 그 예는 수천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지 모른다.  경영과학자 '로버트 서튼'은 말한다.  "권력을 많이 가질수록 공감능력은 줄어들고 개인적 욕구는 늘어"나기에 "진짜 인성, 즉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어리석음을 거리낌없이 드러나게 해준다"고 지적한다.  오만이 권력과 함께한다는 것은 결코 새로운 규명은 아니지만, 그것이 곧 세상의 퇴락, 삶의 질을 후퇴시키는 어리석음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되새길 이유는 될 것 같다.

 

정치학자 '엘리자베스 드카스텍'의 트랜스휴머니즘에 도사린 개인적 자유지상주의와 기술맹신의 오만성에 대한 비판으로 맺어야 하겠다.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으로 이름을 알린 '닉 보스트롬'의 주장은 그야말로 편협과 탐욕스러움, 그리고 오만으로 그득함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태생적 인지편협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인지능력 향상을 위해 인간을 기계적이고 생명공학적인 존재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인데. 오직 개인에게 이득되는 요소만 고려되고 사회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새로운 우생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현존하는 인간이란 그저 진화의 한 흐름에 불과할 뿐이라는, 다시 말해 인간에게는 본질도, 존엄성이란 것도 없으며 자연이란 인간 조건은 그저 제어하고 지배할 대상이라는 오만이 넘실댄다.  진정 진화의 오수관을 피해 갈 수 있을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어리석음의 마지막 심판대에 올라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는 어쨌든 이 문제에서 벗어나게 될 거예요. (...) 진짜 문제는 살아남은 인류의 세상이 어떨지, 얼마나 고통받을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시기를 놓치지 않고 변화에 대응하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저는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어요."  - 433쪽

 

물론 어리석음은 모두(冒頭)에서 언급했듯이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인류 문명은 오만, 질투, 탐욕과 같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들로 즐비하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유럽의 하늘 높이 솟은 첨탑을 자랑하는 대성당들, 그리고 사치를 뽐내기 위한 과시의 산물들로 빼곡하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의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세상은 인간의 빗나간 '비극적 열정' 축적의 장이라 할 것이다.  원시 정주생활의 시작에서 고대 신화을 거슬러 올라가고 중세의 연금술을 거쳐 근대의 계몽주의와 댄디즘을 경유하여 노예제와 인종차별, 세계전쟁의 참화를 벗어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환경문제, 제2기계시대를 마주한 오늘의 인류 사회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어쩌면 이 책은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에 능숙한 우리 인간 존재의 실체를 반추하며 오늘날 소통의 흐름을 차단하여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교착상태에 빠뜨리는 사고의 양극화를, 그 필연적 독단성을 반성케 하고, 진실 파악 불능의 능력을 회복시키려 하는 노력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흥미로운 논제들로 빼곡하여 읽는 즐거움도 만끽하게 하지만 지성과 어리석음의 대결이라는 역사적 양상을 지켜보는 지적 성취도 만만치 않은 지성사적 만찬이라 해도 지나친 수사가 아닐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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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역사를 인간들, 어리석음의 관점으로 보다 평점9점 | 이달의 사락 j****3 | 2021.05.28 리뷰제목
들어가기   인류의 역사가 바보들의 행진으로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서두에 밝히면서 그런 관점으로 역사의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새로움을 찾는 것,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행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일들이 힘자랑이다. 개인은 개인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힘자랑이 자행되면서 그것은 인간의 삶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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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가 바보들의 행진으로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서두에 밝히면서 그런 관점으로 역사의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새로움을 찾는 것,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행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일들이 힘자랑이다. 개인은 개인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힘자랑이 자행되면서 그것은 인간의 삶을 파괴해 가고 황폐화시켰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세계 석학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겐 공감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발전이란 이름으로, 편리란 이름으로 무수한 다른 존재들을 이용해 왔으니까 지혜로웠다고 자평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의 조금의 편의가 후세 사람들에게 엄청난 시련의 시간이 되고, 고통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잘 안다. 우리 이후 세대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할지를.

 

내용

 

이 책을 읽으면 대충은 뭐가 바른 길이고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나가야 할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리석음이라는 것들이 어떻게 포장되었고, 어떻게 각되었는지? 책은 그런 불편한 진실을 우리들에게 잘 그려보여 주고 있다. 즉 세계 석학들의 35가지 인류의 바보짓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우리의 조상 호모 에릭투스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약 30만 년 전부터 점차 호모 사피엔스로 변모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 중 가장 무책임한(혹은 가장 멍청한) 개체들은 약 16만전 전 차츰 아프리카를 벗어나 덜 매력적이고 더 추운 지역으로 모험을 감행했다. 25,000년 전에는 얼어붙어 있었을 베링해협을 거쳐 꿋꿋하게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했고, 다시 남반구로 내려왔다. 애초에 떠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쉬웠을 것을! 그렇게 그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현지에 서식하는 모든 동물 개체 및 먼저 자리 잡고 살고 있던 먼 사촌뻘 되는 인간 종까지 대규모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현재 가속화 중이며 대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발단이다.

 

책은 인간의 삶이 발전적이라기보다는 멍청한 짓의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점을 두고 얘기해 나간다. 눈에 뻔히 보이는 앞날의 대재앙 결과를 생각하면서 과거 인간의 모습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그 원인들에 해당하는 일을 자행한 인간들이 멍청했다고 결과론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정말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것은 지난 시절 만들어온 결과물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는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역발상으로 이루어진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학자들이 발전이라고 하는 것을 멍청한 짓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은혜를 저버리고 개척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쟁취하고 하는 일들이 결국은 파괴의 한 속성임을 말하고 있다. 오늘 나타나고 있는 결과가 그것을 반증한다. 전쟁과 자연 질서의 파괴, 그것은 인간들을 자멸의 길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들의 멍청한 짓은 동굴의 벽화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500년 전, 에티엔 들라보에티는 소논문 자발적 복종에서 이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던졌고 제법 설득력 있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는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관습을 꼽았다. (관습에 관한 특히 멍청한 명언으로는 대안이 없다가 있다) 두 번째로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피라미드 조직망을 지적했다. 세 번째로는 그는 사후에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미명하에 순종과 인내를 가르치는 종교를 자발적 복종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실제로 군주들은 자신이 초월적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의식을 치를 때 성경에 맹세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신격화했다.

 

몇몇 사람이 권력욕을 가져 지배 계급이 되었다. 지배 계급이 족장으로부터 권위를 물려받아 결국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결성하고 그곳에서 권력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몇 사람의 권력을 사람들은 왜 인정을 해 주었을까?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영육간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 상태를 그들 스스로 만들어준 결과를 가져온 일인데 말이다. 권력을 인정해 주면서 자발적 복종이 이루어진 원인에 대해 분석해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함으로 국가 단위의 조직이 완성되고 지배 계급이 생겨나면서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치르는 전쟁 같은 것에 일반인들이 희생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지금은 이 권력이 갈수록 더욱 공고하게 되어가는 결과가 되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일인칭으로 지칭할 때의 어리석음은 나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도, 나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어리석음이란 나약함도 무지도 아닌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며 인간을 구분하는 한 부분이다. 공자의 논어몇 구절만 떠올려보아도 이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옛사람에게는 세 가지 한계가 있는데, 지금은 그 한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옛날의 사나운 사람은 대범했으나, 지금의 사나운 사람은 방탕할 뿐이다. 옛날의 잘난 척하는 사람은 청렴했으나, 지금의 잘난 척하는 사람은 성내며 거스를 뿐이다. 옛날의 어리석은 사람은 정직했으나, 지금의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속일 뿐이다.

 

어리석음은 결점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의 어리석음 자체에는 악의가 없다. 논어에서 어리석음을 논하는 것은 당대 세습 귀족들의 타락에 맞서 스승을 세우려는 도덕적 신흥 선비들에 대비되는 일반 서민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공자에 따르면 신흥 선비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인격도야를 위해 지난한 배움의 과정에 기꺼이 뛰어든 사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난의 배당이 되는 것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인간의 거친 본성이 아니라 나태와 폭력, 표리부동이다. 이 때는 그래도 어리석음이 진일보의 계기가 되고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의 사람들은 어리석음만 있고 어리석음이 가진 순수와 열정은 없다. 어리석음은 그대로 어리석음으로 끝이 난다. 훈민정음 서문에 어리다라는 말이 어리석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에는 그렇게 사용되었다. 그 어리석음에는 순수의 의미가 가미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의 어리석음은 모자람의 의미가 강하다. 역사 속에서 찾아낸 어리석음은 순수의 열정과 닮은 구석이 많다. 오늘의 어리석음의 의미로만 해독하면 역사가 곡해된다. 저자의 어리석다는 말을 우리는 잘 음미해야 할 듯하다.

 

2001510, 프랑스에서는 노예무역과 노예제를 반인권범죄로 인정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노예제와 노예무역은 인류의 정신에 극단적 폭력의 이미지를 각인했으며 극심한 인종주의를 발생시킨 주범이었다. 그런 만큼 이에 관한 교육이 권장되고 있지만, 실행에는 난맥상이 드러난다. 어처구니없게도 유럽은 대서양의 노예제가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또는 중동의 노예제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펼치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노예제, 노예무역은 인류가 저질렀던 가장 참혹한 역사 중의 하나다.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인권 침탈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은 땅을 빼앗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전쟁에 승리할 경우 같이 싸우는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삼아 생사여탈권까지 쥔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거나 인간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노예제는 정말 인류 역사상 가장 바보짓이다. 기득권자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이런 일들인데 말이다.

 

프랑스에서 2001년에 이런 반인권범죄로 법이 발의된 것은 그동안 얼마나 노예가 습관적으로 자행되었는가는 잘 보여준다. 이기에서는 노예제의 비교를 운운하면서 노예제가 서로 다름을 표현하려고 하고 있지만,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할 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인권을 침탈하는 행위들이다. 인간들이 제 무덤을 파고 있는 일이다. 자신들이 노예를 부리는 일이 자신의 후손들이 노예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노예제는 책이 아니라도 인류가 행한 가장 바보스러운 일 중의 하나다.

 

전쟁이 역사학계와 역사 편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쟁 영웅들과 정복을 과시하는 왕들의 무용담을 풀어놓은 역사책의 초반에서부터 우리는 전쟁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전쟁은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의 역사를 빚어냈다. 그렇게 전쟁은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발전시킨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개념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전쟁의 기저에는 폭력성과 이기심이 들어 있다. 전쟁이 인류 공동체에 내재된 것이라면 우리 조상들은 딱 지금의 우리만큼만 폭력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폭력을 드러내는 도구가 다양해 졌고 과격해 졌다. 그러기에 똑같은 폭력성이라도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오늘날의 폭력성이 더욱 더 폭력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은 이런 폭력성에 기인해 악을 쌓아왔다. 이 폭력성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뻔한데, 이는 메아리인데 그것을 인간들은 간과한다. 내로남불만 외친다. 지구를 사용하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렇게 사용하지 말라는 말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인간이 공동으로 절제하고, 사용해야 할 소중한 시공간을 우리 공동체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해진 마스크도 쓰지 않고, 거리두기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그들이 자신에게 똑같이 돌아가는 것을 모를까? 아니 다 알고 있으면서 우선은 자신에게 이롭게 보이니까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자행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인류의 탄생기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불길을 일으키는 어리석음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바보짓을 하면서 살았다. 그 바보짓이 권력, 전쟁, 노예, 개발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결론적으로 공멸을 향해 가는 길의 한 과정이다. 그러기에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바보짓이란 일깨움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부추기고, 실수를 키우며, 진실을 막고, 희망을 배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결국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인간을 희생하게 만들며 고통당하게 한다. 인간들은 이들의 피해자가 되고 공범자가 되기도 한다. 모험이라는 것이 인류의 삶을 확장시켜 왔다고 볼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피폐하게 만들어 나가는 주범이 된다. 역사를 보라. 하나의 패러다임이 생겨나 바뀔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입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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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가 걸어온 길을 분석하면서 그들의 삶이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인간의 속성이 그런 면도 있지만 인간끼리의 쟁투가 가져오는 아픔은 말할 수가 없다. 이들을 치유하려면 자연이 필요하다. 자연이 자연스러워질 때, 좀 더 질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인간이 개인의 유익을 구하면서 만들어진 세상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어리석음, 바보짓이라는 말로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가 이렇게 바보라는 말로 재단되어 표현되고 있을까? 생각하는 마음에 인류에 대해 안쓰러움이 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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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간은 멍청이인가?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n*****m | 2021.06.14 리뷰제목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장프랑수아 마리미옹이 엮은 《바보의 세계》는 무려 35명의 저자가 참여하고 있다. 역사학자, 심리학자, 고고학자, 경영학자 신경과학자, 중국, 인도 전문가 등이 다양한 저자들은 인류 역사에서의 ‘어리석음’을 증언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류의 어리석음, 오류에 관한 역사책이 많이 나왔다. 《진실의 흑역사》 같은 책들이 그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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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장프랑수아 마리미옹이 엮은 바보의 세계는 무려 35명의 저자가 참여하고 있다. 역사학자, 심리학자, 고고학자, 경영학자 신경과학자, 중국, 인도 전문가 등이 다양한 저자들은 인류 역사에서의 어리석음을 증언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류의 어리석음, 오류에 관한 역사책이 많이 나왔다. 진실의 흑역사같은 책들이 그것인데, 사실 역사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한 방향 전환이 흔했던 만큼 역사책의 절반은 굳이 그런 제목이나 광고를 달고 나오지 않더라도 오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보의 세계가 다른 점이라면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 속 어리석음을 다루고 있고, 또 그 어리석음이 면면히 이어지는 현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멍청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연선택에 의한 인간의 진화 자체가 오류라는 지적에서 시작한다(스티븐 핑커와의 대담). 신석기 농업 혁명의 시작 자체가 멍청한 선택이었고, 그 이후 지배 계급에의 복종, 전제군주제의 등장, 종교, 그리고 사이코패스라고까지 지적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 어리석은 인간의 선택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지역을 막론한다.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 인도 신화에서도 멍청이는 등장하고, 당연히 중국 역사에도 수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라고 다를 바 없다.

 

저자들은 역사 속에서 부당한 취급에 대해서도 다룬다. 유럽의 역사에서 야만족에 대한 취급, 여성에 대한 차별, 노예제, 반유대주의 등이 그런 것이다. 다른 책에서는 그런 역사를 오류나 멍청이, 어리석음으로 분류하지 않는데 반해 여기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반영되었다는 시각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리석지 않고서는 저지를 수 없다는 생각인 셈이다.

 

당연히 점성술이나 주술, 계몽주의에 대한 폄훼, (지금 지식으로는) 어처구니 없는 의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고, 전쟁, 어리석은 리더가 어떤 폐해를 끼치는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현대에는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세계화에 대한 시각, 테러리즘, 트랜스휴머니즘의 발흥, 기후 온난화 등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인 듯하다. 장프랑스아 도르티에는 어리석음이 역사의 원동력이었다고 쓰고 있지만(맨 마지막 꼭지의 글이라 거의 결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잘 읽어보면 이 표현 자체가 풍자적이고 자조(自嘲)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어리석음이었냐 하면, ‘앞일을 살피지 않는 무분별’, ‘그릇된 이데올로기‘, ’거대함을 바라는 오만‘, ’과도한 사치 취향‘, ’비극적 열정‘, 이런 것들이다. 이것을 역사 속에서 찾았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앞일을 살피지 않고 무분별하게 일을 저지르며, 여전히 그릇된 이데올로기가 판치고 있으며, 거대한 탑을 세우듯 쓸데 없이 높은 빌딩을 짓고 있으며,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데도 과시를 위해 소비하며, 소문에 의해 선동된다. 우리가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없다.

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9 댓글 0
종이책 구매 내용의 구성이 산만 평점2점 | YES마니아 : 로얄 b*******n | 2021.06.02 리뷰제목
세계사를 좋아해서 서평과 제목을 보고 구매했다.나름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건 같은데,내용이 상당히 산만해서 차분히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렵다사람이름 인용구가 상당히 많이 나오고 그 내용들을 짜깁기해놓아서 작가가 무슨 의도로 서사를 펼치는지 알기 어렵다특히 그 사람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있지 않은경우 이 책에는 그 맥락에대한 설명이 매우 부족하여 이해를 못할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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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좋아해서 서평과 제목을 보고 구매했다.

나름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건 같은데,
내용이 상당히 산만해서 차분히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사람이름 인용구가 상당히 많이 나오고 그 내용들을 짜깁기해놓아서 작가가 무슨 의도로 서사를 펼치는지 알기 어렵다

특히 그 사람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있지 않은경우 이 책에는 그 맥락에대한 설명이 매우 부족하여 이해를 못할 가능성이 높다

중간중간에 내용이 갑자기 바뀌거나 전개가 되어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산 책은 보통 아까워서 다 읽는데 이책은 반만 읽다가 덮었다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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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바보의 세계_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편저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d*****2 | 2022.03.10 리뷰제목
어리석음과 지혜는 우리 인간사에서 쌍둥이처럼 붙어 있고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며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환경 재앙의 암흑에 둘러싸인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진화의 오수관을 피해 갈 만큼 충분히 지혜로운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역사는 자기가 한 일이 뭔지 모르는 멍청이들에 의해 쓰인다.”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서 이 말이 떠오른다.  ‘아니,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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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과 지혜는 우리 인간사에서 쌍둥이처럼 붙어 있고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며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환경 재앙의 암흑에 둘러싸인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진화의 오수관을 피해 갈 만큼 충분히 지혜로운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역사는 자기가 한 일이 뭔지 모르는 멍청이들에 의해 쓰인다.”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서 이 말이 떠오른다. 

‘아니, 어째서 이런 멍청이가 저렇게 큰 힘을 쥐고 세상을 휘두르는 거지?’ 우리의 직장에서, 학교에서, 모임에서, SNS를 하다가, 뉴스를 보면서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생각이다.

윈스턴 처칠의 이 말이 이번 대선에 딱 맞아들어가는 것 같아서 슬프다.

 “인간사에서 어리석음의 지분은 늘 악의 지분보다 컸다.” 사실 어리석음은 그 어떤 요소보다도 인류의 탄생기부터 현시대까지 끊임없이 역사의 불길을 이어온 원동력이었다. 

 

『바보의 세계』에서는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시공간에서 우리 인간들이 행한 멍청한 행각, 각 시대와 문화마다 어리석음을 규정하던 방식을 각 분야의 석학들의 유쾌한 필치로 만날 수 있다.
심리학자이자 인문과학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저자는 전작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로 화제를 일으킨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이다.

이번 책에서는 인류사적 차원에서 어리석음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려 각 분야 전문가를 찾아서 이야기를 싣고 있다. 

다양한 시대에 따라 선사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미래까지, 지역별로 고대 문명 발상지인 이집트, 인도, 중국과 그리스, 로마시대를 지나 저자의 연고지인 프랑스까지를 넘나든다.  

분야별로는 문학, 정치, 의학, 환경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슈별로 인종, 식민, 성차별, 유대인 문제 등을 망라하는 35개 주제마다 해당 분야 전문가의 해박한 지식이 드러나는 유의미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지금같은 과학의 시대에도 점성술이나 사주, 기타 각종 예언 등을 믿고 있지만 중세만 해도 이런 점성술은 과학적 학문이라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성을 띤 분야였음에도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마져 도리어 내로라하는 지식인들보다 더 과학적인 사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처럼 당시는 어리석다는 평을 들었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는 더 슬기로웠다는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속에서 어리석음과 멍청함이 또 어떻게 역사를 바꾸고 우리 인류 삶의 원동력이 됐는지 역사적인 통찰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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