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그들은 끝끝내 살아남았다, <작은 땅의 야수들>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 신화를 물론이고 과거 우리 조상님들이 남긴 민화와 민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물이 바로 호랑이이다. 한반도 모양이 위로 솟구친 호랑이 모양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젊은 세대들도 알고 있다.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도 산군(山君)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호랑이라는 동물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경외심은 남달랐다. 아주 오래 전, 이 땅에는 엄청난 몸집으로 포효한 호랑이들이 어슬렁거리며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야생의 맹수가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일제 강점기 시절, 해수구제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호랑이와 표범을 마구잡이로 잡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사람과 물자만 수탈해간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마저 물불 가리지 않고 파괴시켰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인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은 바로 그런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잔혹한 시절을 살아가던 우리네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옥희, 연화, 월향, 정호, 한철, 명보, 예단 등 중심인물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별개로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숟가락 하나 덜려고 엄마 손에 이끌려 기생집에 오게 된 옥희는 그곳에서 월향과 연화 자매를 만나게 된다. 화려한 미모는 가지지 못했어도 지혜롭고 당당한 결의를 갖춘 옥희는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못한다. 옥희를 둘러싼 한철과 정호 역시 자신들의 결심대로 인생의 길을 개척하지는 못한다. 이 세 사람 외에도 여러 등장인물들은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상황에 굴복하기도 하고 악의를 가진 주변인들에 의해 곤란한 상황에 휘말리기도 한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의 그런 고난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될 수밖에 없고, 이들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가를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다이나믹 코리아, 헬조선이라는 극단적인 수식어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도 힘들다. 하지만 당시 일제로부터 자유를 빼앗기고 온갖 분야에서 수탈과 착취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몸소 경험했던 조상들의 삶만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참혹한 시절에 참혹한 곳에서 태어난 운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는 가슴 깊숙한 곳을 찔러댔다. 아무래도 큰 줄기는 옥희, 정호, 한철이라는 세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오해와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가진 생동감 역시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인물들이 만들어낸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한데 모아지면서 대서사시를 완성해낸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작가라는 이력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 당시 우리나라의 자연환경과 인물에 대한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희가 제주도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다 읽고 나니까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수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고 수탈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이지만 그런 비극을 딛고 일어나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이런 위상을 갖게 된 배경에는 위대한 민초들이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이어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려낸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영상화 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이런 묵직한 작품을 완성해낸 작가의 노력과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며 좋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앞서 조선 말기, 일본식민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올렸었다. 그때의 감정이 아직 채 가시지않은 상태에서, 도시적이고 문학적이며 지식인층의 이야기들이었다면, 이번엔 신식(?)의 사고가 채 여물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냥꾼과 기생, 군인, 그리고 보통사람들, 또한 전쟁의 고통 속에 빈민층의 사람들, 그리고 대한제국의 독립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어떻게든 훑고 겪어내야만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이 공감하기도 답답해하기도 했다. 실상 우리에게 더 가까운 친근한 우리의 민낯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9살에 이민을 간(본인은 한국어를 늘 사용해 한국어에 자부심을 갖는다하였지만서도), 주관이 확립될 시기를 외국에서 보낸 저자는, 한국식 정서보다는 타인의 사고 정서에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는 글체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던 이야기들이다. 물론 많은 고증과 함께 "한국이라는 작은 땅의 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낸" 것은 맞고 놀라웠고 경탄했다. 그리고 이미 작품 자체로 부족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작가의 능력에 칭찬한다. 이 작품은 작가 6여년에 걸쳐 집필하였다 한다.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한국의 역사를 전 세계 독자에게 알리는 동시에 자연 파괴, 전쟁, 기아를 맞이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지 제시하는 소설을 썼다" 말한다.
이 책은 전 세계 13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하며, 영미권 40여개 주요 매체에서 극찬하였다. 특히나 출간 1주년을 맞아 출간된 리커버 판은 특별하게 '호랑이'라는 콘셉을 갖고 출간되었으며, 이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당시 일본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일환으로 호랑이 사냥을 했다, 호랑이가 우리 국민에게 연민의 대상이자 용기를 불어놓어 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작은 땅덩이인 한반도에서 오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호랑이 같은 맹수가 인간과 공존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자연에 대한 경의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뜻을 기려 참혹햇던 시대를 견기도 살아남은 한국인의 기개를 표지에 담았다.
우리 역사속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참으로 현실감이 떨러지지않나 하는 느낌을 항상 떨칠 수 없었다. 이 작품 속 인물들 역시 몇몇 부분에서 그러한 감을 느꼈다. 하지만 또 고집스러운 부분도 있고, 뭐랄까 '인연'이라는 것을 중시하게되고, '운명' 역시 비중이 크게 보인다. 삶과 상황의 순응보다는 야수의 모습을 보이고자했지만, 정작 등장인물들의 역할이-심경이 축소되었다고 느껴질정도로 조금 더 적극적이고 조금은 난폭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일본군은 눈하나 깜짝 않고 살인을 벌이거나 시간을 하면서도 짐승의 본능에 충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모습은 호랑이의 야수같은 기백을 기대할 수 없다. 조국을 위해 의사나 열사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긴박한 모습에서조차 강인함과 기백보다는 왠지 로맨스 속 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습을-역사를 알리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는 최소 책을 접한 모든 나라에서는 통했을 것이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를 호랑이에 비유하고, 호랑의 기상과 정신을 가진 나라로 보는 작가와 그의 작품에 독자의 입장에서 '국뽕'에 차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저자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근대사는 고리타분한 역사가 아니라 현실의 한 부분이었다. 그의 조부 시절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반도는 왜적을 피로 물리쳤으며, 야수들은 아직 분단되지 않은 남과 북의 영토를 넘나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가까운 한국의 역사를 전 세계 독자에게 알리고 싶었고, 나아가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의미 있는 사람을 살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야수는 짐승을 말하기도 한다.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생각하게 한다. 그 속에서 "한국의 근대사는 고리타분한 역사가 아니라 현실의 한 부분이며, <작은 땅의 애수들>은 단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저 멀리 작은 땅에 살았던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전 인류의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강조하는 저자의 메시지에 공감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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