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고헤이(오사카시립대 대학원 경제학과 부교수)의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을 얼마전 한겨레신문 책소개에서 알게 되어 읽었다.
책 표지 디자인이 빨간 바탕에 동그라미가 있어서 저자의 국기인 일장기의 느낌을 주는 한편,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기후를 시각화한 것 같기도 하다. 빨강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이 사용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책 표지 디자인은 책 제목의 부제인 기후 위기 시대에 다시 읽는 마르크스 자본론과 일본인 저자를 함께 은유하는 것 같다.
기후 위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발간되고, 최근에는 기후 위기를 줄이는 방안으로 에너지전환, 탈성장에 대한 논의들도 많아지는 듯 하다. 얼마 전에 읽었던 대니 돌링의 “슬로다운”이나 마야 괴펠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과 기본적인 생각은 같이 하면서도 마르크스 자본론에 바탕해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저자는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노드하우스 예일대 경제학 교수가 위험한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으로 1.5도나 2도가 아닌 3.5도를 설정한 것은 환경문제 해결을 고민하지만 경제성장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녹색성장 또는 그린뉴딜, 지속가능발전목표(SDG)에 대해서도 기후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 성장을 기대(기후 케인스주의에 해당)하고 있는데, 지구의 한계와 끝없는 경제성장은 양립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성장 계획을 수립하고, 작년에 문재인 정부에서 그린뉴딜을 한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면 경제도 성장하고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관점이 경제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개념이다. 보통 경제가 성장하면 화석연료의 사용도 들어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같이 늘어나는데, 신기술을 개발하여 경제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동반 성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환경경제학자인 팀 잭슨에 따르면,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에 비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는 속도가 느린 상대적 디커플링만으로는 부족하고, 경제는 성장하되 배출량은 감소하는 절대적 디커플링이 필요한데, 일부 선진국에서만 절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고 이 경우에도 다른 개도국에 제품 수입 등을 통해 배출량 증가를 떠넘기게 되고 개도국들에서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는 경제성장 대비 배출량이 다시 증가하는 리커플링(recoupling)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 맞서 절대적 디커플링에 근거한 경제성장, 즉 녹색성장 전략은 “잘못된 선택”이며 “친환경이라는 탈을 쓴 그린워시”라고 말한다.
저자는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의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대해서도 기온 상승 억제 시나리오에 아직 실현되지 않은 탄소포집및저장을 갖춘 바이오에너지(BECCS) 등과 같은 역배출기술(negative emission technology, 이산화탄소 배출량 보다 흡수량이 더 많아서 순배출량이 마이너스인 기술)을 포함시킨 이유는 IPCC의 분석 모형이 경제성장을 전제로 삼고있기 때문에 역배출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에게는 네 가지 미래 선택지(기후 파시즘, 야만 상태, 기후 마호쩌둥주의, 탈성장 코뮤니즘)가 있으며, 탈성장 코뮤니즘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상적 논거로 마르크스를 끌어들이고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목표하는 바가 시기별로 달랐다고 말한다.
공산당선언을 쓴 1840~1850년대는 생산력 지상주의(지속가능하지 않음)를, 자본론 1권을 쓴 1860년대는 생태사회주의(지속가능한 경제성장)를, 생태학과 공동체 연구에 몰두하고 자술리치에게 편지를 보냈던 1870~1880년대는 탈성장 코뮤니즘을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완성인 ‘자본론’에서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이어받는 새로운 해석에 도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는 아직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사두고 책장에 꽂아둔지 20여년이 되는데,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책을 통해 자본론의 주요 내용과 마르크스의 시기별 생각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도약하기 위한 주춧돌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산의 목적을 상품의 ‘가치’ 증대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두고 사회적 계획에 따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하는데 중점을 두어 생산하며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자
둘째,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활의 질은 높이자. 탈탄소사회에서는 에너지수지비율이 낮은 재생에너지를 쓰게 되면서 생산력이 저하될 것이기 때문에 사용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 무의미한 일을 줄이고 필요한 부문에 노동력을 배분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셋째, 노동을 획일하게 하는 분업을 폐지하여 노동의 창조성을 회복시키자. 기술 중에서 ‘열린 기술’을 활용하고 발전시킨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앙드레 고르츠에 의하면 열린 기술은 커뮤니케이션, 협업, 타자와 교류를 증진하는 기술이며, 닫힌 기술은 사람들을 분단시키고 이용자를 노예화하며 생산물 및 서비스 공급을 독점하는 기술을 말한다. 닫힌 기술의 대표적인 예는 민주주의적인 관리가 어려운 원자력발전과 역배출기술 등이 해당된다고 말한다.
넷째, 생산 과정에서 민주화를 진행하여 경제를 감속시키자.
다섯째, 사용가치경제로 전환하여 노동집약적인 필수노동(예, 돌봄노동)을 중시하자.
저자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꾀해야 할 것은 정책 전환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에서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사회 시스템 전환이라고 역설한다. 협동조합, 사회적 소유, 시민들이 운영하는 재생에너지발전회사, 국제적으로 열린 지방자치주의, 시민의 민주적 참여형태인 시민의회 등을 통해 경제 측면에서 자본주의 극복, 정치 측면에서 민주주의 쇄신, 환경 측면에서 사회 탈탄소화가 시너지 효과를 증폭하면 사회 시스템의 전환이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에 의하면,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임계점은 3.5퍼센트의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심으로 저항할 때라고 한다.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나아가는 열쇠 또한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문제에 관심있는 3.5퍼센트의 사람들부터 지금 당장 행동할 때 탈성장 탈탄소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탈탄소사회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시기와 수단들의 효과를 정량적으로 제시하는 책은 아니지만, 성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속에서 그런 감축 수단들로 탈탄소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탈성장 코뮤니즘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전환을 역설하는 책이다.
앞으로 탈성장 관점의 지속가능사회에 대한 논의들이 더 활발해 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자본론 관점에서 쓴 책이지만 상식적으로 읽어도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