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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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저편

리뷰 총점 8.4 (5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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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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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쓴 것은 좋은 소설입니까, 나쁜 소설입니까'

여성차별, 가정폭력, 아동학대 같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나오키 상, 에도가와 란포 상,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요미우리 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신작으로 ‘누가 표현을 자유를 가로막으며 예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말만 퍼져가는 사회를 욕망하는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어린이 성애증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한 작가 마쓰는 문예윤리위원회라고 자칭하는 조직으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어느 바닷가의 격리된 건물에 감금된다. 위원회가 밝힌 감금의 이유는,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남자들을 등장시키는 소설 속 장면을 마땅치 않게 여긴 독자들의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예윤리위원회의 요구는 간단했다. 누구라도 공감할 아름다운 이야기만 쓰라는 것. 이에 대한 반론은 허용하지 않으며 반항하면 감금 기간이 늘어난다. 외설, 폭력, 범죄, 체제비판이 담긴 글을 쓰던 작가들은 이곳에 갇혀 형편없는 취급을 받지만 위원회가 원하는 글을 쓰면 처우가 달라진다. 갱생과 투쟁의 갈림길에 선 작가의 운명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입에서 나온 대사 하나만을 뚝 떼어내 “이건 남성 혐오다”, “저건 여성 차별이 아닌가”라며 마치 작가가 실제로 남성을 혐오하고 여성을 차별한다는 식으로 트집을 잡는 사람들과, 이와 같은 흐름을 아무런 검증 없이 ‘논란’이라며 부추기는 미디어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종이책 회원리뷰 (33건)

일몰의 저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꿈*******자 | 2023.04.19 | 추천8 | 댓글2 리뷰제목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개인의 생각이 독자로 하여금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내 생각이 타인의 생각으로 침식될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요즈음은 생각한다. 세상의 이슈를 무시하고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읽는 이로 하여금 좋은 인상을 주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글이 주는 힘을 알기에 글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리뷰제목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개인의 생각이 독자로 하여금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내 생각이 타인의 생각으로 침식될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요즈음은 생각한다. 세상의 이슈를 무시하고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읽는 이로 하여금 좋은 인상을 주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글이 주는 힘을 알기에 글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강약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아마추어인 나도 이럴진대 작가들은 더 많은 생각을 하며 글을 쓰지 않을까? 그래서 나와 취향이 맞는 작가를 만나는 걸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한때는 열심히 찾아 읽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책. 시들해졌고 무시했던 시간이 제법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녀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아니 독자에게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은 무엇인지. 그런 기준은 과연 누가 나누는 것인지.

 

성애 소설을 쓰던 작가가 문예윤리위원회라고 칭하는 조직의 소환장을 받고 그곳에 찾아간다. 금방 풀려날 거라고 믿었던 작가. 그곳은 핸드폰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으로, 바닷가의 격리된 건물이다. 위원회의 요구는 단 하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것. 즉 누가 읽어도 이상하지 않을 올바른 글을 쓰라는 것. 외설, 폭력, 범죄 등이 담긴 글을 쓰면 거지 취급을 받지만, 위원회가 원하는 글을 쓰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위원회. 과연 이곳에서 작가들은 나갈 수 있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 자유로운 글을 쓰는 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일까? 얼마나 자유로운 글을 써야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노래나 영화 혹은 드라마도 심의위원회가 있어, 타당하지 않은 것은 방송되지 않았다. 그 타당한 이유가 누구에게든 납득 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규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아닐까? 나는 예술에 진지한 사람도 아니고, 예술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할지 정확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예술의 범위가 예술인지 외설인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애 장면을 묘사하더라도 그게 성애를 위한 성애인지, 과정을 위한 성애인지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 자체가 매일 희망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라고 강요하는 게 맞는 것일까?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가진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이 책에서처럼 어느 날 작가들이 고립된 바닷가 어느 곳으로 끌려(?)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얼마만큼 저항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며 불의를 보면 되도록 참으라고, 어떻게든 못 본 척하라는 말을 한다. 나선다고 달라지지 않는 세상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의 아이들이 피해 입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이, 삶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신념이 어느 순간 변절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 주는 부모일까? 신념을 가진 채 움직이고 행동하라 말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읽은 기리노 나쓰오의 책. 반짝이는, 신박한 재치가 숨어있는 건 아니지만, 작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창작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고민하게 되는 책이다. 우린 창작이나 표현의 자유에 얼마나 유연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우리는 속박이 전혀 없는 것인지,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의 구분은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댓글 2
구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향하여 제기되는 또다른 물음의 시작점...기리노 나쓰오, 일몰의 저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i | 2022.10.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마쓰 유메이 (본명 마쓰시게 간나)가 쓰는 소설은 흔히 성애 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장르의 것이다. 마쓰 유메이, 나는 작년에도 한 권의 소설을 냈는데 ‘세상 사람들의 금기나 양식 따위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지점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독자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 나는 ‘강간, 페도필리아, 페티시’를 모두 포함시킬 정도로 공을
리뷰제목

  마쓰 유메이 (본명 마쓰시게 간나)가 쓰는 소설은 흔히 성애 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장르의 것이다. 마쓰 유메이, 나는 작년에도 한 권의 소설을 냈는데 ‘세상 사람들의 금기나 양식 따위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지점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독자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 나는 ‘강간, 페도필리아, 페티시’를 모두 포함시킬 정도로 공을 들여 소설을 썼다.

 

  “... 우매한 자들이 소설을 샅샅이 뒤져서 편향 혹은 변태라 판정하고 작가의 성격을 뜯어고치려고 한다. 요양소, 그리고 정신감정. 그다음에는 또 뭐가 있을까. 붕붕 소리를 내며 도는 풍력발전 터빈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느낌이 들며 신경이 마비될 것 같았다.” (pp.72~73)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가 보낸 소환장을 받게 된다. 내용인즉슨 내 소설을 읽은 독자 중 누군가가 내 소설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출석을 요구하였으나 내가 회답을 하지 않아 다시 아래의 기일에 요청한 장소로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출두 장소인 바닷가 도시에서 ‘약간의 강습’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숙박 준비물도 부탁한다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배가 고프다. 화장지가 줄어들고 있다. 전화통화가 안 된다. 메일도 라인도 안 된다. 인터넷도 쓸 수 없다. 감시당하고 있다. 동료와 이야기도 못 한다. 밖에 나가고 싶지만 못 나간다. 이렇게 모든 자유를 빼앗긴 것을 알고 나면 사람은 순종적이 되는 걸까. 어제는 명치를 얻어맞고 구속복에 갇힌 여자를 보며 그토록 격분했는데 오늘의 나는 이미 활력을 잃은 상태다.” (p.158)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는 바닷가 도시에 있는, 외부와 단절된 장소의 요양소에 감금당하게 된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작가들도 존재하는데, 그들과의 교류는 철저히 막혀 있다. 식사 시간에도 겨우 눈만 맞출 수 있을 뿐이고, 샤워 시간도 개별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다만 절벽의 숨겨진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A45와 (나는 이곳에서 이름이 아닌 B98로 불린다) 몇 마디의 말을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뇌 과학자 소마를 달갑게 않게 여기는 다다는 아키미와 불륜 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다의 아내에 대한 질투를 숨기지 못하는 아키미. 휴일이면 성인업소에 드나드는 니시모리. 아무리 봐도 시골 아줌마로 보이는 가니에가 숨은 실력자이며, 난폭한 오치는 문학적인 인간 같다는 뜻밖의 결말. 여의사 소마는 무려 ‘시치후쿠진하마의 멩겔레’란다. 우리 가운데 누구를 실험 재료로 삼을지를 선별한다고.” (p.234)

 

  요양소의 소장은 다다이고, 다다와 비슷한 힘을 가진 것은 정신과 의사인 소마이다. 입소 후 몇 차례 직원들과의 대립으로 벌점을 받은 나는 특별한 관리 대상이 된다. 나는 또한 베갯잇 안에서 이 방을 사용한 전임자의 메모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만약 작위적인 것이라면, 누군가가 내게 제공되기를 원하는 정보일 뿐이라면...

 

  “이때에 이르러서야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뇌를 산산이 부숴 버리면 스튜에 어울릴지 어떨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351)

 

  소설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다만, 그 논쟁의 한가운데로 (새로운 우파의 득세에 일조하였다고 여겨지는) PC함, 정치적 올바름을 끌어들이는 것이 적당한지는 의문이다. 소환장을 보내고 요양소를 운영하는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혐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PC함까지를 억압의 선상에 놓는 것에 동조할 수도 없으니... 

 


기리노 나쓰오 / 이규원 역 / 일몰의 저편 (日?) / 북스피어 / 367쪽 / 20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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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표현의 자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o* | 2022.09.2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창작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 일몰의 저편. 관리감독(?)하는 저놈의 단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만 보는게 아닌이상 이 세상에 나오는 모든 창작물들에는 어느 ‘’정도’’의 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제한선이 참 애매모호해서 문제겠지만 말이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의 글들은 기본적으로 읽으면서 막 분노하게 되는 요소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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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 일몰의 저편. 관리감독(?)하는 저놈의 단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만 보는게 아닌이상 이 세상에 나오는 모든 창작물들에는 어느 ‘’정도’’의 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제한선이 참 애매모호해서 문제겠지만 말이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의 글들은 기본적으로 읽으면서 막 분노하게 되는 요소들이 있다. 마냥 편하게 볼 수만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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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일몰의 저편] 사느냐 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키* | 2022.03.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중견 소설가 마쓰는 어느 날 문예윤리위원회라는 조직으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그곳으로 향한다. 조직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지명도 알기 힘든 어느 바닷가 마을의 격리된 건물. 어떤 조직인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소환된 건지 영문도 모른 채 마쓰는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건물에 수감된다. 알고 보니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모두 현업 작가. 누구나 공감할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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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소설가 마쓰는 어느 날 문예윤리위원회라는 조직으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그곳으로 향한다. 조직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지명도 알기 힘든 어느 바닷가 마을의 격리된 건물. 어떤 조직인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소환된 건지 영문도 모른 채 마쓰는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건물에 수감된다. 알고 보니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모두 현업 작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소설을 쓰지 않지 않고, 성, 폭력에 대한 과도한 묘사와 혐오, 차별 표현 등으로 대중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불려온 것이었다. 

 

자신이 소환된 이유를 알게 된 마쓰는 위원회를 비난하며 구속을 거부하지만, 점차 이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빠르게 상황에 적응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마쓰는 조금씩 자신이 바라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살기 위해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은 옳은 일일까. 처음에는 이 질문이 위원회로 상징되는 검열 당국(정부)에 대한 것으로 읽혔으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해 대중성에 영합할 것을 요구하는 출판사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글만 찾는 대중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위원회는 계속해서 마쓰의 소설을 헤이트 스피치와 비교하는데,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내 생각에 소설이나 만화, 영화 등은 이용료를 지불한 사람만이 제한적으로 볼 수 있는 미디어인 반면, 헤이트 스피치나 무료 웹툰, 공중파 방송 등은 불특정 다수가 제한 없이 볼 수 있는 미디어라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위원회가 마쓰의 소설을 헤이트 스피치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타당하지 않고, 마쓰는 자유롭게 소설을 써도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쓴 소설이 안 팔리면, 그때는 정말 쓰고 싶어도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마쓰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정치권력이 아니라 자본 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자세히 말하면, 과거에는 성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든 폭력에 대한 묘사가 과하든 잘 팔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던 출판사들이, 이제는 독자들을 방패 삼아 작가들에게 '자체적으로' 수위 조절을 요구하는 현실... 팬이라는 명분으로 작가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독자에 대한 묘사도 나온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SNS 계정을 만들기를 요구하고, 독자가 작가에게 SNS 계정으로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요즘에는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라 너무나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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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에 맞서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g********m | 2022.01.1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소설을 썼다가 한 소설가가 감금됐다. 작가는 그곳에서 '올바른'소설을 쓰는 교육을 받는다. 교육과 반성을 거부하면 죽음만이 남는다.   작품은 감금된 작가가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어딘지도 모른채 갖힌 작가가 자기가 갇힌 곳의 정체를 알아 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저항, 그리고 탈출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일본 소설은 이런 식의 추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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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소설을 썼다가 한 소설가가 감금됐다. 작가는 그곳에서 '올바른'소설을 쓰는 교육을 받는다. 교육과 반성을 거부하면 죽음만이 남는다.

 

작품은 감금된 작가가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어딘지도 모른채 갖힌 작가가 자기가 갇힌 곳의 정체를 알아 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저항, 그리고 탈출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일본 소설은 이런 식의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형식을 띠는 작품이 많은 것 같다.

 

단순히, 이런 감금과 탈출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라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이 작품이 좋은 이유는 작가가 갇힌 이유에 있다. '올바른' 작품을 쓰지 않았고, 권력이 올바른 작품을 쓰도록 강요한다는 전제가 깔려 재미있다.

 

'올바른'이 있을 수는 있는 데 그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문제는 권력이 그 기준을 정한다는 데 있다. 권력은 국가일수도 있고 대중일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 대선이 다가오는 한국에서, 대선 보도를 하는 언론과 대선에 대해 얘기하는 주변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떠올렸다. 왜 이렇게 언론은 편향됐지? 왜 이렇게 주위 사람들은 보수적이니? 결론적으로 왜 이렇게 한국 사회는 '올바르지'않지 라고 분노하는 나의 시선을 떠올렸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과 나에게 그 '올바름'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문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 작가들은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권력의 요혹은 더 강력하다. 이 작품은 그런 어려움에 처한 작가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독자, 자본, 국가를 향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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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읽고 싶은 소설을 선택할 자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자*련 | 2021.12.09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자유롭게 읽고 쓴다. SNS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의견을 말한다. 개인적인 공간에 남긴 기록은 한순간 사회적 공론에 휩싸일 때도 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생각에 댓글로 다툼이 이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교정 같은 단순한 일부터 문맥이 맞는지 주장에 대한 근거가 있는지 살피게 된다. 좋아서 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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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읽고 쓴다. SNS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의견을 말한다. 개인적인 공간에 남긴 기록은 한순간 사회적 공론에 휩싸일 때도 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생각에 댓글로 다툼이 이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교정 같은 단순한 일부터 문맥이 맞는지 주장에 대한 근거가 있는지 살피게 된다. 좋아서 쓰던 글이 타인과 소통을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 의문이 생긴다.

 

궁극적으로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일까. 글의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순한 행복, 기쁨, 즐거움은 아닐까. 그 모든 것을 충족하는 장르 중 하나가 소설일 것이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가공의 이야기, 그 안에서 독자는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한다. 하나의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에 일률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러니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나누는 획일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인간을 탐구하는 문학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니까.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정부가 관리하고 판단하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나오키상과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요미우리문학상 등을 수상한 기리노 나쓰오의 장편소설『일몰의 저편』(북스피어, 2021)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성애 소설을 쓰는 작가인 주인공 ‘마쓰’는 ‘문예윤리위원회’(이하 문윤)라는 조직으로부터 소환장을 받는다. 독자의 고발이 있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설명 없이 강습에 참여하라는 내용이었다. 며칠이면 끝날 거라는 직원의 설명에 아무런 의심 없이 길을 나선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 말이다. 마쓰가 도착한 곳은 외부와 단절된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한 ‘요양소’다. 마쓰에게 지정된 방은 형무소와 같았다. 작은 책상, 화장실, 지급되는 생필품으로 생활하며 식사, 목욕도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했다. 인터넷도 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다. 감시 카메라와 스피커가 설치되었다. 건물 곳곳에서 자신과 같은 복장의 사람들을 지나쳤지만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언제 이곳에 왔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말 그대로 고립 상태에 놓였다.

 

그곳에서 마쓰는 이름이 아닌 ‘B98’번이었고 소장이라는 사람과 상담이 시작되었다. 마쓰가 쓴 소설이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라고 문윤이 판단해 요양소에서 갱생과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간은 마쓰가 얼마나 문윤의 조치에 따르고 협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B98번이 된 마쓰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설은 그저 허구이며 상상의 세계가 아니던가. 단지 한 장면의 묘사, 몇 줄의 표현으로 인해 소설 전체를 평가받는 일은 부당했다. 독자의 호불호가 있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당연한 감정이다. 작가에게 그 누구도 그런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제재를 가할 수 없으니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주의 국가에서 개인을 갱생한다는 상상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소설은 너무도 비참한 방법으로 마쓰를 구속하고 학대한다. 자신들이 정해 놓은 규정을 위반하면 요양소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도 묵살했다. 그들의 설명은 산책이나 운동을 하면서 창작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산책을 빌미로 요양소를 탐색하는 마쓰가 알게 된 사실은 더욱 잔인했다. 하루하루 요양소에 적응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처음에 끓어올랐던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작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말이었다.

 

마쓰가 그들의 요구대로 쓴 글을 읽고 검열하며 문윤은 그녀가 충분히 갱생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윤에서 원하는 글은 명확하고 단순했다. 누구나 감동을 느낄 착하고 아름다운 글이었다. 그런 소설이 좋은 소설이고 훌륭한 소설이라며 노벨문학상을 언급한다. 마쓰도 쓸 수 있었다. 요구하는 대로 변절자, 배신자도 충분히 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건 작가가 원하는 글이 아니고 쓰고 싶은 글이 아니었다. 무엇을 쓸지 창작의 영역까지 허락이 필요한 세상이 도래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글은 다양성과 고유성은 무시한 AI나 써내는 글이 아닐까. 기능적으로 소설을 잘 쓰는 작가를 원할 뿐 마쓰라는 인간 개인의 글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과 국가의 싸움이었다. 누가 봐도 개인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마쓰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정하며 그녀를 자극했고, 도발하게 만들어 마침내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드는 게 문윤의 전략이었다. 인간은, 그것도 예술가인 작가는 갱생되거나 교정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소설은 마치 문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교묘하게 포장한다. 독자에게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을 선별할 능력이 있냐는 듯 말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문학이라는 세계, 작가의 창작적 자유는 그들의 집단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작가는 곧 개인이며 독자다. 소설속 문윤의 논리에 따르면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처럼 좋은 소설만 읽는 독자가 필요하다. 그것은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이다.

 

이쯤에서 독자인 나는 어떤 독자인가 생각한다. 더불어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지난 정부의 예술가 명단을 떠올린다. 정부의 뜻에 반하는 목소리를 지닌 이들은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불이익을 받는 이들이다. 정치가 예술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예술가의 정치적 신념은 작품과는 별개다. 설령 같다고 해도 그건 개인의 자유 영역이다. 그렇다면 소위 문학상 수상작, 베스트셀러, 고전만 읽어야 하는 것일까. 다양한 시도를 하는 실험적인 소설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고발 소설과 추악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탐사 소설은 읽지 말아야 할까. 그렇다면 작가 마쓰가 아닌 비주류 소설을 읽는 독자도 문윤의 요양소에서 갱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인 21세기에 불가능한 이야기라 장담했지만 막상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자행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아무도 모르는 권력이 움직이는 검열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쓰는 이 글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317쪽)

 

“내가 말하는 건 작가가 책임을 지고 표현한 작품이야. 허구의 이야기 말이야. 허구는 다양한 인간을 묘사하지. 개중에는 차별적 인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지. 왜냐하면 인간 사회가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의 고통을 그리는 게 소설이니까 아름다운 것만 쓸 수 없지.”(317쪽)

 

그리하여 마쓰의 처절한 외침은 곧 내 것이 된다.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고 좋은 소설만 읽으라고 강요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으로 꾸며진 세상은 좋은 세상일까. 인형처럼 똑같은 얼굴과 마음을 지닌 인간들이 가득한 사회를 상상하자 오싹해진다.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마쓰의 목소리를 통해 묻는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어떠냐고 말이다. 소설 속 디스토피아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인간의 심연을 포착한 글이 소설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는 이유다.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배우고 소통하기 위해서다. 마쓰가 문윤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그 때문이다.

 

단순하게 재미만 놓고 봐도 스릴 넘치는 소설이다. 하지만 묵직한 여운을 안겨 준다. 흥미롭게 진행된 마쓰와 소장의 토론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다 정신을 차린다. 읽고 싶은 소설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하나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독재의 사회가 될 것임을 알기에 모든 소설을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논리를 따라갈 수 없다. 작가와 독자의 인격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를 따를 수 없고 따라서도 안 된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마쓰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현명한 독자가 되려는 묘한 욕망과 함께 말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문학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소설 밖 현실에선 ‘일몰의 저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Littor》 33호에 수록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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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찐팬임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s*******3 | 2021.11.1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반가운 신간!기리노 나쓰오 신간을 기다려서 한 달에 한번씩은 검색해 본 듯하다.한동안 너무 뜸해서 안 나오려나 하고 있는 도중 그냥 한 번 여느때 처럼 검색 해봤는데 딱 나와 있어서 바로 구매했다. 이번 책 디자인도 예쁘고 소설도 좋고 너무 마음에 든다. 아껴 읽는 중이다. 독서의 계절에 딱 맞춰 나온듯한 신간인 것 같아서 더 좋다.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올 가을 겨울 기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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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신간!
기리노 나쓰오 신간을 기다려서 한 달에 한번씩은 검색해 본 듯하다.
한동안 너무 뜸해서 안 나오려나 하고 있는 도중 그냥 한 번 여느때 처럼 검색 해봤는데 딱 나와 있어서 바로 구매했다. 이번 책 디자인도 예쁘고 소설도 좋고 너무 마음에 든다. 아껴 읽는 중이다.
독서의 계절에 딱 맞춰 나온듯한 신간인 것 같아서 더 좋다.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올 가을 겨울 기리노 나쓰오 세계로의 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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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저편, 기리노 나쓰오/북스피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v********0 | 2021.11.0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성애 소설 작가 마쓰 유메이,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한 통의 파란색 봉투가 배달됐습니다. 소설가들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늘 파란색 봉투에 갖가지 사연을 보내오던 이웃 때문에 이사까지 오게 됐는데, 또다시 그 보기도 싫은 봉투가 배달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 마쓰 유메이는 그저 그걸 무시, 아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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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 소설 작가 마쓰 유메이,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한 통의 파란색 봉투가 배달됐습니다. 소설가들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늘 파란색 봉투에 갖가지 사연을 보내오던 이웃 때문에 이사까지 오게 됐는데, 또다시 그 보기도 싫은 봉투가 배달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 마쓰 유메이는 그저 그걸 무시, 아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날도 짜증스럽게 그 봉투를 연 순간, 어쩌면 판도라가 된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장난이기도 한 것 같은 것이 들어있었으니까 말입니다. 바로, "소환장" 그것도 들어보지도 못한 문예윤리위원회라는 곳에서의 말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시를 하기엔 너무나 마음에 걸려 간 곳은 마치, 푸른 수염의 아내가 된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과연 저 계단 밑,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모르면서 내려갔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녀가 가지 말라는 곳을 간 것과 마쓰는 오라고 해서 간 곳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 지하 플랫폼에 한 발짝 내려놓으면서 시작됩니다. 왜냐면, 주위의 많은 작가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뚜렷하게 좋은 소설을 쓴다고도 생각지 않았으나,그곳에서는 방침 혹은 사상은 과연 여기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고, 2020년이 넘은 지금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곳이었습니다.그곳을 "교육"을 빙자하면서 "수용소"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지만 결코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 적응되는 작품을 써라. 그것이 좋은 작품이다.

처음, 이 말에 그녀 마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걸 누가 강제할 권리가 있죠? 펜을 떠난 후,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몫이고 그들의 것입니다.

 

하지만, 마쓰가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던가요? 아뇨,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독자이면서 이웃인 파란 봉투를 피해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다만, 그녀에게 자유가 다 뺏어긴 지금은 그 생각이 절실해진 것입니다. 내 작품들이 어째서..?라고 말입니다.

 

자유란 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것도 내 자유로의 글 쓸 자유를.

인터넷의 쓰레기 같은 글들부터 시작해 명작으로 불리는 글까지 읽히고 쓰고, 그리고 팔리는 지금 이 세상에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처음엔 몰랐고,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다음 다가오는 것은 나간다 한들 또 그들이 찾아와 이 상황이 되풀이돼, 영영 끝나지 않을까 봐서,입니다.그게 바로, 자유를 앗아가는 일인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하는 건, 마쓰도 그리고 거기 온 작가들도 그랬습니다. 모두가 말입니다.

 

 

 

이야기는 어찌 보면, 과장된 느낌도 줍니다. 설마 AI 시대, 4차 혁명 시대에 무슨 검열을 하겠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제가 음성으로 덧글이나 글을 작성할 때, 조금 발음이 이상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그 발음을 삭제해 버리는 핸드폰을 들여다봅니다.왜 어째서지? 싶은 순간, 별생각 없이, 손으로 그 부분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미묘한 검열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설마 있을까? 하는 찰나,에 저자인 기리노 나쓰오가 묻습니다.

 

_ 그래서, 당신의 소설은 좋은 소설입니까? 혹은 그렇지 못합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기리노 자신에게도 하는 것을 우리는 또 압니다. 모든 글이 다 좋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그 가치가 높은 것도 아니고 또 재미없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란 것을 말입니다. 그건, 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엔터테이먼트에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좋은 문화를 즐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문화가 과연 좋은 문화인지, 나쁜 문화인지 무엇으로 결정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일이 정말로, 없었던가요.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요.

 

 

 

 

화려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분명,암흑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분명, 그 소설 속에서 수용소의 사람들의 말처럼 작가들은 "잘난 척하는 혐오, 차별주의자들"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그들이 그랬다고 한들그 누구도 그들에게 자유를 앗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건,

 

"시시한 논리 들먹이지 마.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 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 그게 검열이야. 파시즘이라고." 본문 317p

 

당신의 소설은 좋은 소설이냐,의 질문에 그녀가 자문자답처럼 써 내려간 답은 저것일 겁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그 답들은 어쩌면 다 알면서 획일화돼 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인가 하면, 아뇨, 여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어딘가 섬뜩하면서도 <일몰의 저편>은 우리에게 주는 의외의 묵직성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하드보일드를 남성보다 더 강하게 써온 기리노 나쓰오의 선명한 메시지이면서 경고처럼 들렸습니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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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한 작가의 작품에 관한 절박한 목소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분**이 | 2021.10.27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소설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읽어야 하는데 특정 부분 특정 단어만 끄집어 내서 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문맥으로 읽어 준다면 그런 남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 70   '기리노 나쓰오'라는 이름을 오랜만에 대면한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작가님의 이름을 앞에 두고 있으면 망설여지는 것은 매한가지. 그가 그리는 세계가 어떨지 이미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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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읽어야 하는데 특정 부분 특정 단어만 끄집어 내서 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문맥으로 읽어 준다면 그런 남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 70

 

'기리노 나쓰오'라는 이름을 오랜만에 대면한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작가님의 이름을 앞에 두고 있으면 망설여지는 것은 매한가지. 그가 그리는 세계가 어떨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마치 평범한 모든 것은 거부한다는 듯 작가님의 세계는 내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것, 되도록이면 살면서 접하고 싶지 않은 일들로 가득차 있다. 금기 따위는 멍멍이나 줘버리라는 듯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드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 인생은 빛과 희망이 아니라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라도 한 듯한 새드엔딩 of 새드엔딩. 이런 그의 작품을 읽고 어찌 심신이 멀쩡할 수 있으랴.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로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난 다음에는 꼭 앓아누웠었던 지난 날.

 

여기서부터는 잠시 기리노 나쓰오가 아닌 나카야마 시치리 이야기. 시치리의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를 읽고 다시는 이 작가와 상종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거냐며, 설마 이건 상상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실행이라도 해 본 것이 아니냐며, 이런 기이한 정신상태를 가진 작가의 작품은 더 이상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 때. 지금도 여전히 <개구리 남자> 시리즈나 <비웃는 숙녀> 시리즈 같은 이야기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작품과 이야기 속 인물에 대한 혐오감일 뿐 작가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왜 기리노 나쓰오 책을 읽고 나카야마 시치리가 떠올랐는가. [일몰의 저편] 주인공 마쓰 유메이는 '세상 사람들의 금기나 양식 따위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지점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독자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고 싶은' 작가다. 그런 그녀가 일명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라는 곳에서 소환장을 받는다. 그들은 마쓰의 작품이 문제라는 독자의 밀고를 받았다며 그녀에게 작품 성향의 전환을 위해 '요양소'에 머물 것을 강요했다. 결국 요양소에 갇힌 채 탈출의 기회만 엿보게 된 마쓰. 그런 마쓰와 그녀가 주장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기리노 나쓰오 같은 다크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얼마나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을지 실감하게 되었다. 기리노 나쓰오도, 나카야마 시치리도 과연 대중의 시선에 얼마나  신경을 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작가라면 독자들의 평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을 터.

 

[일몰의 저편]은 독자의 시선 뿐만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국가의 권력으로 강제되는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유에 대해 다룬다. 요양소는 요양소가 아니라 생존 게임이 진행되는 또 하나의 살육의 현장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식욕을 인질로 삼아 작가들을 길들이며 '올바른' 작품을 쓰라고 강요하는 주체는 소장이고 국가이지만, 그 뒤에 존재하는 독자들과 시장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 분위기에 '쎈 언니' 기리노 나쓰오마저 갑갑함을 느꼈을까. 결코 해피엔딩일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씁쓸한 결말에 다다른 마쓰의 모습이 마치 기리노 나쓰오인 것 같아서 붙잡고 싶었다.


시시한 논리 들먹이지 마.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 그게 검열이야, 파시즘이라고.


p317

 

논란이 될만한 소재가 충분한 작품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좋은 소설, 나쁜 소설이 존재하는지 판단을 내리기에는 내 자신이 미흡하다고 여겨졌다. 다만,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잔인하고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다. 문학이 시대를 반영한다면 아름다운 모습만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선호도와는 상관없이 삶의 잔혹한 부분을 그려냈다고 해서 '나쁜 소설'이라고 평가되지는 않기를. 작가들이 글을 쓴 의도를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기를. 그리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일몰을 바라보며 절벽에 내몰리지는 않기를 바라본다.

 

북스피어의 새로운 시리즈 <이판사판>의 신호탄을 쏜 [일몰의 저편]. '지금껏 북스피어가 만들어 온 장르문학의 맥을 이어나갈 도서들로 어차피 이렇게 이름 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고 저렇게 이름 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이판사판'이라는 시리즈 이름은 안 잊어버리겠지'라는 마음으로 만드셨다고 한다. 딱 10권만 만들고 이 시리즈 끝장을 볼 생각이라는데, 노노, 부디 승승장구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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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일몰의 저편] 03 (완독)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분**이 | 2021.10.2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시시한 논리 들먹이지 마.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 그게 검열이야, 파시즘이라고. p317 기리노 나쓰오인만큼 결코 행복한 결말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확 다가온 마지막에 깜짝 놀랐다. 마쓰가 마치 작가 자신처럼 보여서. 아름다운 것만 그리는 것이 소설인가. 나쁜 세상을 그리는 것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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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논리 들먹이지 마.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 그게 검열이야, 파시즘이라고.
p317

기리노 나쓰오인만큼 결코 행복한 결말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확 다가온 마지막에 깜짝 놀랐다. 마쓰가 마치 작가 자신처럼 보여서. 아름다운 것만 그리는 것이 소설인가. 나쁜 세상을 그리는 것은 과연 검열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성찰과 비판을 보여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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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리뷰 (1건)

구매 일몰의 저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고****가 | 2022.03.18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된 작가인데 이로서 두번째 작품이네요. 처음 읽은건 절판된 로즈가든이었고, 이런 류의 소설을 별로 많이 읽어보진 않았는데 장르소설? 작년에 사놓은건 무지 많은데 거의 안읽고... 일몰의 저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고 앞으로도 팬 될것 같아요. 절판되었던 로즈 가든도 이북으로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작가의 나이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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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된 작가인데 이로서 두번째 작품이네요. 처음 읽은건 절판된 로즈가든이었고, 이런 류의 소설을 별로 많이 읽어보진 않았는데 장르소설? 작년에 사놓은건 무지 많은데 거의 안읽고...

일몰의 저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고 앞으로도 팬 될것 같아요. 절판되었던 로즈 가든도 이북으로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작가의 나이가 현재 칠순?정도라고 들었는데 이런 감각이 나온다는거에 감탄했고 너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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