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화살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홍한결
윌북/2021.7.30.
sanbaram
2019년 늦가을, 박쥐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불시에 인간에게 훌쩍 옮겨 갔다. 중국 우한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코로나19로 명명된 이 바이러스는 세계 각국으로 삽시간에 퍼졌으며, 노령층의 많은 사망자를 냈다. 결국 세계 각국은 국경을 폐쇄하고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였으나 이미 세계적인 대 유행이 번진 후였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늦어지면서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역병에 시달려온 인류 역사를 되집어 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나타낸 것이 <신의 화살>이다. 저자 니컬스 A. 크리스타키스는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 학위와 공중보건학 석사 학위를, 펜실베니아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통섭형 학자다. 하버드 의대에서 13년간 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예일대에서 휴먼네이처연구소장으로 지내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행복은 전염된다>(공저)와 <블루 프린트>가 있다.
<신의 화살>에서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생물학적, 사회학적으로 조망하고, 인류가 과거에 비슷한 재난들을 어떻게 겪어냈는지 알아보고, 우리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게 될지 설명하고자 한다.(p.18)”고 말한다. 모두 8장 ‘1장 극미한 존재, 2장 천적의 귀환, 3장 단절, 4장 비탄, 공포, 거짓말, 5장 우리와 타인, 6장 연대, 7장 변화, 8장 전염병의 종식’ 등으로 이루어졌다. 바이러스가 통제를 벗어나 인간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는 지난 수백 년간 각종, 호흡기 질환 범유행마다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생물학적 변화 과정을 그대로 밟아왔다. 그리고 사회적 변화 과정 또한-경제 붕괴에서 허위 정보 유통에 이르기까지-수천 년간 인류가 여러 심각한 유행병을 겪으며 거처 온 수순을 그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회복과정 또한 그러리라는 사실이다.
“인류는 최소한 3000년 전부터 도시에서 큰 집단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이래 늘 역병에 시달려왔다. 기원전 430년에 아테네 역병이 돌았다. 기원후 541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가 유행했고, 1347년에는 흑사병이 창궐했다. 1918년에는 스페인 독감이 맹위를 떨쳤다.(p.64)” 고대 신화에는 역병의 신들이 등장한다. 그리스의 아폴론뿐 아니라 인도 신화의 루드라, 중국의 온신도 있다. 역병은 인류에게 친숙한 오래된 적이다. 그 역병이 2020년에 다시 등장했다. 바이러스가 생물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하지만 지금 SARS-2가 보이는 행동은 여느 생물과 다를 게 전혀 없다. SARS-2는 인플루엔자, 홍역, 감기 등의 바이러스처럼 계속 인간 사이에 돌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류는 이 바이러스와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전까지 많은 이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병원체는 이미 인간 세상에 자리 잡았고, 어떤 형태로는 영원히 우리 곁에서 돌게 될 것이다. p.65
“2003년 사스 범유행은 현대 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대처할 수 있었던 첫 범유행이기도 하다.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전체가 거의 순식간에 해독됐고, 변이체를 가려냄으로써 각 변이체의 지리적 분포를 파악할 수 있었다.(p.81)” 이와 같은 방법은 훗날 SARS-2 범유행 때도 유익하게 활용됐다. 백신 개발 노력도 신속히 진행되어 동물 실험 단계까지 갔으나 이후 중단됐다. 범유행이 잦아들면서 경제적 타당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SATS-2는 감기 수준의 전파력과 SARS-1 수준의 치명성을 모두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SARS-1이 SARS-2보다 통제하기 쉬웠던 이유로는 환자가 증상을 보이기 전까지는 대체로 전파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SARS-1 감염자의 상당율이 의료 종사자였던 것도 그래서다. 반면, SARS-2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전파될 수 있다. 초기에 중국, 이탈리아, 영국, 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SARS-2 감염자의 대략 20%가 입원 치료를 필요로 하고 대략 5%가 중환자실 치료를 필요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SARS-2가 의도적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음모론은 바이러스가 출현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20년 1월에 등장했다. 2월 말경에는 일부 논평가가 음모론을 지지하고 나섰는데, 이들이 제시한 근거 중 하나는 중국 정부가 미생물연구소들의 안전관리 개선책을 발표한 것이었다.(p.235)” 톰 고튼 아칸소주 상원의원도 이 바이러스 기원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해 퍼뜨렸다. 트럼프 대통령도 2020년 5월까지 음모론을 계속 퍼뜨렸다. 정통한 유전학자들과 미국 정보기관에서 바이러스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결론지었지만 소용없었다. 이 음모론에 반하는 증거는 많다. SARS-2는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에게 특히 치명적이니, 생물무기로서 딱히 효과가 크지 않다. 즉 피해를 최대화하려면 젊은 사람과 건강한 사람을 표적으로 하는 바이러스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따로 있다.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자세히 분석한 결과 이전에 출현했던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후손의 특징을 보이며, 의도적인 유전자 조작으로는 나타날 수 없는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관찰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전까지는 스페인 독감, 일본 뇌염, 중동 호흡기증후군을 비롯한 많은 병원체에 처음 유래했거나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붙였다. WHO가 수년 전부터 병원체의 이름을 지을 때 유래한 지역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한 것은 지역 차별 행위를 막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2003년 SARS-1 범유행 때도 관찰됐다. 홍콩에서 24세 미만 환자는 사망한 사례가 없었지만 65세 이상 환자는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한편, 전체 사망률이 미국 내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 이유도 연령 분포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p.265)” 소수집단은 일반적으로 환자와 사망자가 지역 인구 구성비에 비해 많이 발생했다. 질본에서 2020년 5월28일까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히스패닉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백인보다 SARS-2 감염률이 약 3배, 치명율이 약 2배 높았다. 그런 경향은 시골, 교외, 도시 할 것 없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0년의 코로나 19 범유행은 해묵은 격차와 불평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게다가 전에 없던 구분 선이 새로 그어지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우한 출신자와 그 외 지역 출신자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생겼다. 우한 주민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는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여러 종류의 백신이 완성되어 어린이, 고령자, 면역결핍자 등 인구 집단별로 더 적합한 종류를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19는 우리 개인의 사고방식과 습관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밖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돌고 있고,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며, 경기는 침체된 상황에서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하려는 마음이 커졌다. 손씻기, 마스크 쓰기, 자가격리 등의 일부 비약물적 개입 조치도 개인이 책임지고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 밖에도 자립심을 발휘해야 하는 일들은 많았다.(p.355)” 이번 범유행을 계기로 재택으로도 많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특히 가정용 혈압측정기, 혈당측정기, 산소측정기 등의 장비를 통한 기본적 정보 수집이 병행된다면 더욱 유리했다. 위기의 정점에서 재택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된 변화들은 범유행이 진정된 후에도 폐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번 범유행을 계기로 자동차가 줄어든 세상의 모습을 엿봤지만, 이렇게 의료상해가 줄어든 세상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경제에도 단기적, 중기적으로 수없이 많은 측면에서 큰 영향을 끼치며,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세계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켰다. 교육산업의 경제적 측면과 운영 모델, 그리고 교육 종사자들의 상황도 여러 면에서 변화하고 있다. 유아 보육과 학교 혁신 문제는 수세기 동안 논의된 주제이지만, 비로소 어떤 변화가 정착될 가능성이 보인다. 온라인 학습으로 옮겨 가게 되면 대학들이 제공할 수 있는 효용 자체가 많이 달라진다. 2024년 무렵 범유행 과도기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일상과 사회, 기술과 경제에는 코로나19와 우리의 방역 대응으로 인한 여파가 남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막강했던 첫 등장을 뒤로하고 종국엔 풍토병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작지만 일정한 규모로, 꾸준히 인간 사회를 돌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두 번째 종식 시나리오, 즉 앞에서 살펴봤던 집단면역이다. 바이러스는 여전히 돌고 있는데 확산이 대단히 어려운 상태다.(p.427)” 정리하자면, 앞으로 우리가 집단면역에 이르거나, 병원체가 진화 해 치명성이 약해지거나, 인류가 진화해 저항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상이 생물학적 종식 시나리오다. 하지만 범유행은 인간의 관념과 행동이 몰아가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므로, 사회적 종식 또한 존재한다. 그 종식 시점은 공포와 불안과 사회경제적 혼란이 가라앉거나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다.
미생물은 인류 탄생 이래 인간의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유행병은 수만 년 동안 우리의 진화에 기여했다. 신화 속 아폴론의 화살처럼, 인류역사와 늘 함께해왔다. 우리는 이전에도 우리 손에 쥔 생물학적, 사회적 수단으로 번번이 유행병을 이겨냈다. 우리는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역병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역병처럼, 희망도 존재하는 한 늘 인간과 함께한다. 바이러스19의 세계적 유행이 가져온 변화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