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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푸른숲 | 2021년 4월 2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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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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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개의 눈으로 본 사람들 세상. 『개』 (2021 개정판)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h | 2021.05.02 리뷰제목
개의 눈으로 본 사람들 세상. 『개』 (2021 개정판)   정말 궁금하다. 다른 생물들도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인식하고 있을까? 아니, 사람들이 사는 모습, 하는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은 고양이를 화자로 내세워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소설은 개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다.
리뷰제목

개의 눈으로 본 사람들 세상. (2021 개정판)

 

정말 궁금하다.

다른 생물들도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인식하고 있을까? 아니, 사람들이 사는 모습, 하는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은 고양이를 화자로 내세워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소설은 개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김훈은 또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는 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주인공인 개, 이름은 보리다. 진돗개다.

먼저 보리라는 개가 세상과 만나는 모습을 살펴보자.

 

보리는 수놈으로 태어났는데, 그가 맨처음 세상과 접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내가 주둥이와 앞발로 엄마 가슴을 헤집고 젖을 빨아먹을 때, 세상의 느낌은 따뜻하고 포근했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17)

 

따뜻하고 포근한 촉감에 고소한 냄새, 그게 보리가 만난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다보니, 사람의 경우도 그와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그런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를 낳아서 젖을 먹이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바로 보리가 떠올린 정경이 그려지지 않을까? 젖먹이 사람에게도 세상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고소한 냄새까지 풍기는 곳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사람의 손으로 쓰여진 소설이 갖는 한계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의 느낌으로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말이다.  

그래도 이 소설은 최대한 개의 입장에서, 개의 시각으로, 개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개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이런 것 말이다.

 

냄새에도 거리가 있다. 먼 냄새가 있고 가까운 냄새가 있다. 독한 냄새가 다 가까운 냄새가 아니고 엷은 냄새라고 해서 먼 냄새가 아니다. (52)

 

이런 생각은 사람으로서는 여간해서 떠올리기 어려운 일일테니까.

 

보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인 개인 보리가 어떻게 사람과 인연을 맺어가는지 살펴보자.

 

아아, 나는 그때 사람의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다. 놀랍고도 기쁜 냄새였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정답고 포근해서 눈물겨운 냄새였다. (40)

 

그 냄새는 사람 몸의 거죽에서 나오는 냄새가 아니라 몸속에서 오랫동안 절여진, 아주 튼튼한 냄새였다. (41)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던 그 짧은 동안에, 사람의 몸 냄새는 내 일생에 잊지 못할 느낌으로 몸속에 깊이 들어와 박혔다. 새로 태어난 사람의 냄새와 오래 산 사람의 냄새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도 그날 알았다. 사람의 몸 냄새 속에 스며 있는 사랑과 그리움과 평화와 슬픔의 흔적까지도 그날 모두 알게 되었다. 그 냄새는 모두 사랑받기를 목말라하는 냄새였다. (41)

 

개는 냄새로 사람에게 다가가며, 냄새로 사람을 구분하며, 냄새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새벽 선착장에서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라면 냄새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사람 냄새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맡은 주인집 손자의 젖내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튼튼한 냄새였다. (74)

 

김훈의 냄새()

 

개가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인 냄새맡기를 계속해서 읽다보니, 저자 김훈은 여러 감각중 후각에 관한 묘사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훨씬 더 확실하고 튼튼한 냄새였다. (74)

 

향긋한 냄새가 가늘게 퍼져왔다. (78)

 

냄새들은 잘 말라서 바스락거렸다. (86)

 

비오는 날 개집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내 몸은 그 냄새에 절여졌다. (145)

 

나는 영수의 냄새를 맡고 사람 냄새를 처음 알았다. (85)

 

나는 사람의 몸속이 어떤 냄새와 어떤 느낌으로 차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 따스함과 축축함과 부드러움을 알게 되었다. (88)

 

벼 냄새는 봄에는 희미해서 풀 냄새와 같았으나 여름이 지나면 노르스름한 향기가 뚜렷해졌다. 나는 그 모든 냄새를 좋아했다. (99)

 

난 콧구멍으로 흙냄새가 들어오지 않으면 못 살아, 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할머니는 나하고 똑같다. (133)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냄새를 형용하는 말들을 모아보면 정말 어떤 흐름이 보이는 것 같았다. 김훈이 피력하는 냄새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른 작품까지 넓혀 살펴본다면, 정말 김훈의 냄새론하나 나올 법하다.

 

김훈은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도 야백이라는 말을 통해 냄새를 묘사한다.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야백은 네 다리로 섰다. 네 다리가 땅을 디딜 때, 야백은 그 다리에 와 닿는 느낌으로 땅의 든든함을 알았다. ( ...........) 세상은 향기로웠고 힘이 가득 차 있었고, 끝이 없었다. 흙에서 햇볕 냄새가 났다. (위의 책, 68)

 

바람이 불어와서 피가 흩날렸다. 야백은 제 피의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진하고 비렸다. 제 몸 깊은 곳의 냄새였다. (위의책, 89)

 

나하를 건너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말똥 냄새로, 야백은 물 건너편에 수많은 말이 모여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몸 냄새가 다른 말들이었다. (위의책, 98)

 

추억으로 남아있는 할머니의 강아지

 

  • , 우리 강아지 이리 온. (39)

 

개 보리가 강아지였을 시절,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마루 쪽으로 부지런히 달려간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주인 할머니는 강아지 보리를 부른 게 아니라 돌을 막 지난 손자 영수를 부른 것이었다.

  • , 널 부른 게 아니야.

하면서도 할머니는 팔을 뻗어서 나를 품에 안았다. (40)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를 강아지라 부르셨던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중학교 때의 일이었는데 눈이 펑펑 오는 겨울에 학교에 갔다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께서 나를 맞이하시면서 아이구 추웠지, 내강아지 .. 어서 들어와 몸좀 녹여라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손자를 귀여워 하시던 그 다정한 그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강아지 보리를 통해 그런 할머니를 보여준, 저자 김훈은 한국인인 것이 분명하다.

 

개에게 공부란? 사람에게도 공부란 

 

개가 공부한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김훈은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습득하는 것을 공부라 한다. 해서 개에게도 공부는 필요하다. 그럼 개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할까 

 

개의 공부는 매우 복잡하다. (28)

 

선생님은 많다. (29)

 

나는 몸으로만 공부를 한다. 글씨나 숫자로 하는 공부는 무슨 공부인지 나는 알 필요없다. (120)

 

내 공부는 오직 내 몸뚱이로 비벼서 알아내는 것이었다. (78)

 

그렇게 공부하는 개, 보리는 공부한 결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앎, 우리도 알아야 한다.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을 치사하고 비겁하게 여기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도 개처럼 남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남들이 슬퍼하고 있는지 분해하고 있는지 배고파하고 있는지 외로워하고 있는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 지겨워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척 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31)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는 살아가지를 못한다.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 (48)

 

그렇게 우리의 선생이 되는 보리에게 공부는 끝이 없다.

 

개들의 공부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기초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무엇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괴롭히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31)

 

이 말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 대신에 타인, 다른 사람이라는 말을 집어넣으면, 그건 우리 사람에게 향하는 말이 될 것이다

 

해서 보리의 어록, 사람 사는데 적용해도 될 것들이다.

 

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그러나 어느 때 짖는가를 보면 그 개가 어떤 개인지 알 수 있다. (111)

 

사람 동네에서 개 노릇 하기가 쉽지 않았다. (114)

 

싸움은 슬프고 외롭지만,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 (115)

 

이런 문장, 읽으면 저절로 미소가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는 날, 나는 내 목줄을 잡은 영희를 따라서 보건지소에 갔다. (........) 개가 저 혼자서 예방주사를 맞으러 갈 수는 없었다. 개 혼자 가면 사람들은 예방주사를 놓아주지 않는다. (162)

 

비발디의 사계>, 보리의 사계

 

비발디의 사계만 들을 게 아니다. 보리가 관조하는 사계는 더 들을만하다.

 

봄의 흙은 향기로웠고, 그 흙 속에 고소하고 따스한 봄볕이 스밀 때 우리는 기쁨을 참지 못해 흙에 몸을 비비며 뒹굴었다. (50)

 

벼 냄새는 봄에는 희미해서 풀 냄새와 같았으나 여름이 지나면 노르스름한 향기가 뚜렷해졌다. 나는 그 모든 냄새를 좋아했다. (99)

 

가을 햇볕에 나무가 말라가면서 풍기는 향기를 나는 사랑했다. (135)

 

세상의 소리들이 메말라서 깨끗해지는 겨울의 헐거움을 나는 좋아했다. (167)

 

나는 겨울이 힘들어서 봄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봄이 신기해서 봄을 기다렸다. (168)

 

다들 추워서 그런지, 겨울에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 같았다. (169)

 

가만히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

우리가 자연이 주는 이 좋은 것들을 얼마나 놓치고 살아가는지를. 요즘 누가 봄의 흙냄새를 맡기나 하며, 가을 햇볕에 나무가 말라가는 것을 생각이나 하고 살까, 그런 것 다 놓치고 살아간다. 개도 신나게 누리는 그 자연의 즐거움을.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우리 엄마의 모든 슬픔은 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21)

 

땅을 놀리면 벌 받는다. 노는 땅에 쪼이는 햇볕이 아깝지도 않냐? (137)

 

다시, 이 책은 

 

이 세상의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노을 진 저녁들은 모두 입을 벌려서 쉴 새 없이 무어라 지껄이면서 말을 걸어온다. 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개는 그 말을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인다. 늘 그러하니,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 (16)

 

자연이 건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들, 아니, 그런 말을 아예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사느라고,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라고 개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도 보리는 그 다음 말에서 우리 가슴을 울린다.

 

나는 그 고통과 슬픔보다 개로 태어나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자랑을 먼저 말하려 한다. (16)

 

이 발언이 개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람에게도 그대로 해당되었으면 좋겠다. 슬픔과 고통속에서도,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자랑을 말할 수 있다면!

 

이 책, 200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2021년에 개작한 것이다.

작품의 기조는 변함이 없어, 다시 읽게 되는 입장에서 줄거리보다는 김훈이라는 작가의 글에 조금더 신경을 쓰면서, 읽을 수 있다. 해서 다시 한번 이 작품의 매력을 흠뻑 맛볼 수 있었다는 점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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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개 - 김훈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t******8 | 2021.04.30 리뷰제목
김훈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읽으며 공통적으로 느낀 바는 일상적인 단어로 만들어내는 문장이 지닌 마술같은 변화이다. 늘상 읽고 듣는 단어들을 조합해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집중하고 몰입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개>는 2005년에 발간된 작품의 개정판이다. 오래 전 읽었다는 기억과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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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읽으며 공통적으로 느낀 바는 일상적인 단어로 만들어내는 문장이 지닌 마술같은 변화이다. 늘상 읽고 듣는 단어들을 조합해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집중하고 몰입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개>는 2005년에 발간된 작품의 개정판이다. 오래 전 읽었다는 기억과 잔향만 남아, 전반적 줄거리조차 희미해져 버린 <개>를 다시금 읽게 됐다. 

 

<개>는 진돗개 '보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세상이다.  어린 보리, 청년이 된 보리, 그리고 성년이 된 보리가 겪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약간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주인공 보리는 한 마리의 개로써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자신의 코와 수염과 굳은 발로 스스로 터득해 나간다. 보리의 모습은 사람의 기준에 비춰보자면 단순하기 그지 없지만 그의 삶은 작은 것들에도 신비함을 느끼고 어디서든 행복을 발견한다. 개보다 훨씬 지능이 높은 인간의 삶이 온갖 불만과 불행으로 얽매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리에게도 슬픔이 없진 않다. 맏형을 일찍 떠나보내야 했고 어미와 헤어져야 했으며 다른 형제들과도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리고 김춘수의 '꽃'의 한 구절처럼 "주인님이 보리! 하고 나를 부를 때, 나는 비로소 이 세상의 수많은 개 가운데 한 마리가 아니라 주인님의 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주인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보리는 군자(君子)처럼 생각한다.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보리는 즐겁다.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것도 즐겁고 주인들의 곁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지키는 것도 즐겁다. 보리에게는 어떤 것도 싫증나지 않고 어떤 시간도 충만하지 않은 때가 없다. 스쳐지나는 바람 한 조각, 땅에서 올라온 희미한 내음, 숲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조차 보리를 기쁘게 할 수 있다. 겨울이면 봄을 기다리고 여름이면 다시 겨울을 기다린다. 겨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이 빛과 힘으로 충만한 봄이여서 고대하는 것이며 여름이 싫어서가 아니라 겨울에는 별들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고대하는 것이다. 보리에게 삶이란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정이다. 풍경도, 계절도, 사람도 아름답다. 그러나 정작 사람은 그들 자신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 보리를 의아하게 한다. 

 

보리는 흰순이를 만나 사랑을 배운다. 누가 그것을 사랑이라 일깨워주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를 수 있지만 사람의 기준으로 보자면 '사랑'이 맞는 것 같다. 흰순이를 만나는 길에는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악돌이라는 덩치 큰 개를 이겨내야 한다. 악돌이는 심술굳게 다른 개들을 윽박지르고 초라한 행색의 사람을 무시하지만 말끔한 차림의(지위가 높아보이는) 사람에게는 저항하지 않는 얄미운 개다. 보리는 갈등한다.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한 상대를 마주해 넘어서야 하는 상황, 보리는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고민한다.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보리는 회피하지 않는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그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해답이 없다는 사실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어한다. 

 

보리는 모험을 즐긴다. 도전을 받아들인다. 무섭다고 돌아서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별이 왔을 때조차 '지나간 날들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단지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 하고 짖으며 추억을 남길 뿐이다. 

 

 

 

 

<개>를 통해서도 김훈 작가의 달필을 접하게 된다. 글을 참 잘 쓰신다.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단어들을 조합해 몇번씩 되내여 볼만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 주인이 고깃배를 타고 출항하는 모습에서 '달의 부름을 받아 떠나는' 것으로 표현하는 장면처럼 번뜩이는 재치가 <개>의 곳곳에 묻어있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글들이 책에서 나와 스크린에 재생되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눈발이 점점 굵어졌다. 바람이 눈을 휩쓸고 몰아갔다. 흰순이의 모습은 바람 속에서 나타났고,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멈추고 눈발이 곱게 내릴 때, 흰순이는 눈 속에서 희미한 윤곽만 보였고, 바람이 눈을 휩쓸어갈 때 흰순이는 바람이 쓸어가는 눈 속으로 사라졌다가 바람이 잠들면 다시 희미한 윤곽으로 나타났다." (171 페이지) 

 

<개>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교훈적이다. 보리의 가치관은 무척이나 단순해 보이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시간 속에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삶의 방향이 '행복 추구'라면 보리를 통해 '내가 너무 복잡하고 각박하게 사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댓글 0
종이책 김훈 장편소설 개 "전지적 개의 시점" 평점10점 | y********3 | 2021.05.04 리뷰제목
#개 #장편소설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 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이 세상의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노을 진 저녁들은 모두 입을 벌려서 쉴새 없이 무어라 지껄이면서 말을 걸어온다. 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개는 그 말을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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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장편소설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 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이 세상의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노을 진 저녁들은 모두 입을 벌려서 쉴새 없이 무어라 지껄이면서 말을 걸어온다. 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개는 그 말을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인다. 늘 그러하니,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 p16

 


그것이 엄마의 본래 마음이다. 그러니까, 슬픔조차도 본래부터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엄마의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간 맏형의 몸은 엄마의 영양분이 되고 엄마의 젖이 되어 눈도 못 뜬 우리의 목구멍 안으로 다시 넘어왔을 거다. 우리는 그 젖을 빨아 먹었다. 쪽쪽 빨아먹었다.

p27

더 중요한 공부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무엇이 사람들을 기쁘게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괴롭히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눈치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잘보는 사람을 치사하고 비겁하게 여기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도 개처럼 남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남들이 슬퍼하고 있는지 분해하고 있는지 배고파하는지 외로워하고 있는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 지겨워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척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p31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란다. 사람들에게 개의 눈치를 봐달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끼리의 눈치라도 잘 살피라는 말이다. 남의 눈치 전혀보지 않고 남이야 어찌 되건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 이런 눈치 없고 막가는 사람이 잘난 사람 대접을 받고 또 이런 사람들이 소신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소리를 들으면 개들을 웃는다. 웃지 않기가 힘들다. 그야말로 개수작이다.

p34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는 살아가지를 못한다.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

p48

개들은 언제나 지나간 슬픔을 슬퍼하기 보다는 닥쳐오는 기쁨을 기뻐한다.

p58

나는 어린 영수가 싼 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나는 똥을 먹은 일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동을 먹는다고 해서 똥개가 아니다.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다. 하지만 내가 똥을 자꾸 먹으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제는 똥을 먹지 않는다. 먹고 싶을 때도 참는다.

p86

나는 나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는다. 믿음은 확실해야 하고 판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다급히 짖을때나 싸울때 나는 짖지 마, 이리 와, 라고 외치는 주인님 말을 듣지 않는다. 들리지가 않는다. 주인님은 사람이라서, 눈앞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죄송하지만 어쩔수 없는일이다. 싸워야 한다는 믿음이 흔ㄷ르리는 개는 개 축에 들지 못하고 판단이 정확하기 않은 개는 좋은 개가 아니다.

p112

나는 되도록이면 싸우거나 달려들지 않고, 짖어서 쫓아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사람들의 동네에서 살아야 하는 개의 도리다. 또 쓸데없이 싸우다가 다치지 말고, 기어이 싸워야 할 때를 위해서 몸을 성히 유지하면서 힘을 모아두어야 한다. 사람 동네에서 개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p114

전지적 개의 시점으로 바라본 김훈님의 장편소설 '개'

2005년에 자신의 소설을 손보아 다시 엮은 책이라고해요.

소설 "개"를 읽다보면, 개에 대해,

개의 시선으로 인간을 지켜볼수 있는데,

관찰력과 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작가님이네요.

인간들을 바라보는 진돗개 '보리'의 이야기예요.

엄마 배속에서 다섯형제들과 함께 세상에 나와,

냄새로 감각으로 세상을 익히고,

조금 커서는 온몸으로 세상을 마주한 보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수몰지역에서 함께 살다가,

둘째 아들이 사는 어촌으로 옮겨가고,

바다와 아이들을 벗삼아 살아가는 보리의 파란만장한 일상이 담겨있어요.

흰둥이를 몰래 지켜보는 사랑도 있고, 악돌이와의 싸움도 있고,

개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고할까요?

개의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감각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냄새를 글로 표현한 문장에 감탄사가 절로나왔네요.

바다에 고기잡으러 간 주인이 죽은후, 할머니 가족들이 큰아들네집으로 가지만,

남겨진 보리의 미래는 똑똑한 보리도, 알수 없네요.

개가 인간을 이해할수 없듯, 인간도 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본문에 등장하듯,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한 서로의 수수께끼가 되겠지만

일본작가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인간은 시크하고 우습게 바라보던 고양이와는 달리,

김훈님의 장편소설 '개'는 인간을 친구로, 영원한 동반자로 바라보는 그 시점이 좋았네요.

전지적 "개"시점!!

김훈님의 장편소설 "개" 추천해요~!!

 

*독서리뷰어스클럽에서 도서만 무상제공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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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김훈 소설 개 평점8점 | s****a | 2021.05.13 리뷰제목
한 참 한국 소설을 즐겨읽던 시절, 특히 소설가 김 훈의 소설 전 권을 찾아 읽을 때 접했던 책이다. 그때는 푸른숲 출판사 2005년 판 '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으로 된 책을 읽었었다. 소설 속 '개들아 죽지마라' 로 시작되는 김 훈 작가 특유의 풋내가 나며 살아있는 날 것의 문장이 표현해 내는 진돗개 보리는 개를 잘 몰랐던 내게 신선하면서도 서늘한 아픔과 애잔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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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 한국 소설을 즐겨읽던 시절, 특히 소설가 김 훈의 소설 전 권을 찾아 읽을 때 접했던 책이다. 그때는 푸른숲 출판사 2005년 판 '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으로 된 책을 읽었었다.

소설 속 '개들아 죽지마라' 로 시작되는 김 훈 작가 특유의 풋내가 나며 살아있는 날 것의 문장이 표현해 내는 진돗개 보리는 개를 잘 몰랐던 내게 신선하면서도 서늘한 아픔과 애잔함으로 다가온 소설이었다. 때 맞춰 그 즈음부터 6년 째 키우고 있는 반려견도 아마 이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인연이 닿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김 훈 작가 소설 가운데 수작으로 손꼽았던 '개'가 이번에 푸른숲 출판에서 개정되어 출간되었다고 해서 호기심에 다시 읽게 되었다.

작가는 개정판 서문에서 ' 큰 낱말을 작은것으로 바꾸고 들뜬 기운을 걷어내고 거칠게 몰아가는 흐름을 가라앉혀 서늘하게 유지' 했으며 '가파른 비탈을 깎아 아트막한 언덕 정도로 낮추었다'고 개정의 변을 밝히고 있다. 그래선지 말 그대로 소설의 문장들이 순해졌다. 특히 흰순이 에피소드는 많이 수정됐다. 아마도 동물권이 거론되는 시대인 만큼 동물학대에 대한 시선을 의식했음직도 하다. 다만 초판의 기억이 생생한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겠다.

 

이 책의 주인공 보리는 진돗개 수놈이다. 보리는 보리밥을 잘 먹고 잘 소화 시켜서 보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보리는 사람이 붙어준 이름따윈 철 없던 시절을 보낼 때는 관심이 없었는 데 사람들이 '보리'라고 불러 주는 이름의 맛을 차츰 알아가며 인간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똑똑한 개 보리는 개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개의 방식으로 인간과 친화해 가고 개의 방식으로 인간을 사랑한다. 언제나 바쁘고 신나는 개 보리에게 사람은 아름다움을 품은 대상이자 자신이 지키고 충성해야 하는 대상이다.

사람들의 세상을 동경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보리만의 방식으로 사랑하지만 개의 세계에서 보리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늠름하다. 그것이 개 보리가 보여주는 개들만의 성정이다.

인간의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개의 역사, 김 훈 작가는 왜 개의 시선으로 소설을 썼을까?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짖고 또 짖을 것이다

김 훈 개 중에서

어쩌면 그것은 개의 말이 아니라 소설을 업으로 삼아 글을 쓰는 김 훈 작가의 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꿔 본다면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쓰고 또 쓸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는 언젠가 부터 예전같은 문장을 기대할 수 없는 노쇠한 작가를 바라보는 독자의 욕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판의 생생한 날것의 문장이 그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판의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설 '개' 반려견 천만시대에 천만의 집사들이 다 읽어도 좋음직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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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k | 2022.08.23 리뷰제목
김훈작가의 개 원래부터 김훈작가님 팬이어서 당연히? 읽어보고자 구매했습니다. 인간이 개의 마음 동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따듯한 표현으로 잘 써내려가 너무 좋았습니다. 짧은 문장마다 깊이가 느껴지고 감동이 었습니다. 기억나는 문장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딛히며....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며 사람들의 불쌍함이며,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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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작가의 개

원래부터 김훈작가님 팬이어서 당연히? 읽어보고자 구매했습니다.

인간이 개의 마음 동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따듯한 표현으로 잘 써내려가 너무 좋았습니다.

짧은 문장마다 깊이가 느껴지고 감동이 었습니다.

기억나는 문장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딛히며....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며

사람들의 불쌍함이며,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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