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전미연 역
열린책들/2021년 5월 30일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통한
고양이의 새로운 문명은 가능할까?"
1. 들어가며
번식력이 강한 쥐떼들의 증가와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 창궐로 인해 인간은 멸망 직전에 다다르고 고양이를 비롯한 다른 생물들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쥐들에 의한 세계 지배로 인한 디스토피아 사회가 도래할지 모른다. 마치 그 모습이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죽어가고 매일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가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백신이 보급되었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한 공포에 떨고 있다. 마치 책 속에서 맹위를 떨치는 티무르의 천하무적 쥐떼 군단을 보는 것 같다.
이 디스토피아 사회 속에서는 오직 독재와 복종, 지배와 피지배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암울한 인류 멸망에 앞서 이 디스토피아 사회에 반하는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하고자 선봉장에 선 인물이 있다. 그 인물은 인간이 아닌 고양이이며 이집트 바스테트 여신의 전신인 암고양이 '바스테트'이다. 이 고양이가 쥐떼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들까지 구해내고 지구상의 평화를 가져올 영웅인 것이다. 바스테트를 도와 샴 고양이 피타고라스와 인간 집사 나탈리는 새로운 문명 건설에 앞장서고 위험에 처한 바스테트를 도와주는 조력자이다. 그들은 시테섬을 둘러싼 쥐떼군단의 포위를 뚫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시테섬에는 고양이 200마리와 인간 수십 명이 남아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오직 희망은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 나탈리가 데리고 올 구원군에 있다. 그들은 과연 구원군을 데리고 시테섬으로 가서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 고양이에 의한 새로운 문명은 건설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2권의 책장을 넘겨보았다.
2. 책 속으로
이상적인 미래, 새로운 문명은 가능한가
이 책 [문명]은 전작 [고양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바스테트가 소설의 화자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권에 비해 2권에서는 바스테트의 활약과 도전, 성장이 주를 이룬다. 바스테트가 가진 자신감처럼 진정으로 그가 지도자, 영웅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 3의 눈을 가지게 된 바스테트는 이제 더이상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다. 그는 이제 인간의 감정인 웃음, 슬픔 등을 이해하게 되고, 제 3의 눈을 통해 인간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 예술과 관련된 정보를 얻고 그 지식을 통해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ESRAE'(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의 확장판)를 통해 인간 지식을 문명 건설의 기초로 삼고 그 지식을 개, 돼지, 독수리 등 다른 생물종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새로운 문명 건설도 지식과 정보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모든 지식과 정보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고, 책 속에서 수록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이 책 [문명] 시리즈에 있어서 중요한 이야기의 구성이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인류의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얼마나 중요시하는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이 합쳐져서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은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생각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다음은 바스테트와 아들인 안젤로와의 대화이다.
"엄마가 그리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거예요?"
"다음 세대들이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로 생겨날 미래란다."
"인간과 고양이들 말이죠?"
"아니, 개들, 돼지와 소들, 양들, 늑대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새들, 물에 사는 물고기들, 땅에 사는 곤충들까지. 모든 동물을 포함해서 말하는 거야."
"엄마는 식물도 영혼이 있다고 믿어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영혼이 있단다.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어떤 생명 에너지가 있다고 나는 믿어. 각각의 존재가 가진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바로 그 에너지지. 그것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연결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돼."
"그런 다음에는, 생명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조화롭게 작동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이롭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해."
-p. 259~260-
새로운 문명은 어쩌면 암 고양이 바스테트의 힘만으로는 힘들지 모른다. 안젤로와의 대화 속에서 비로소 바스테트는 깨닫게 된다. 모든 생물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고 다른 생물들과 소통과 연대를 통해 이상적인 미래, 새로운 문명은 건설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바스테트는 비로소 1권에서 인간 집사인 나탈리가 이야기하였던 인류 문명을 창조하기 위한 세 가지 개념인 사랑, 유머, 예술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인간이 느끼는 위대한 사랑 - 위대하다는 표현을 강조하고 있어 - 은 상대방과 자기 자신이 동일체가 된 것처럼 느끼는 감정의 상태를 의미한대. 그것은 연민을 포함하는 감정이래.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된대.
유머는 일시적으로 정신의 균형이 깨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대. 탁 놓아버리는 상태. 이때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서 긴장이 풀리고 순간적으로 호흡이 가빠지는데, 인간한테서만 관찰되는 이런 현상을 <웃음>이라고 부른대.
진정한 예술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된대. 이때의 느낌은 단순히 쾌락 정도가 아니래. 너는 아직 상상도 못 하겠지만 일종의 계시를 받는 느낌이 든다는 거야.
(1권 p.152, 153)
어떻게 보면 이 세 가지 개념인 사랑, 예술, 유머는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진 고양이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점이 웃을 수 있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예술을 안다는 것이다. 책 속 바스테트가 고양이는 웃을 수 없는데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는 언급, 처참하고 잔인하게 죽어간 자신의 동료들과 페허로 변한 시테섬을 보고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그림을 보고 예술적 감상에 젖어 기절한 점, 나탈리와 로망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보고 피타고라스와 육체적, 정신적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장면 등을 통해 이 세가지 개념을 비로소 획득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사랑, 유머, 예술 외에도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을 거야. 종이에 촘촘히 박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해바라기 씨만 한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겠지.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머릿속에 얼굴이 나타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심지어는 목소리와 음악이 들리는 마법을 경험한 인간들이 있대. 상상만 해도 온몸이 짜릿짜릿하지 않아? 완벽하게 글을 읽게 되면, 그다음에는…… 글을 써볼 거야! 모름지기 꿈은 크게 꿔야 하는 법이니까. 허황된 꿈이라고? 두고 봐, 그런 날이 꼭 올 테니까. 당장은 이 두 가지 목표가 요원하다는 거 알아. 일단은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현재 주어진 재능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물론 인정해, 내 능력이 아직 대단치 않다는 걸. 그래서 지금 내 앞에 있는 너희들, 독자가 아닌 청중들에게 한 야옹 한 야옹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잖아. 아직은 내 모험담을 글로 써서 너희에게 보여 줄 수 없으니까.
-1권 pp.13~14
" 모름지기 세상 모든 문명의 중심에는 책이 하나씩 있지. [오디세이], [성경], [바가바드기타], [포폴 부], [자본론]과 [마오쩌둥 어록], 이런 책은 수많은 인간에게 영향을 끼쳤지! 이제 네가 우리 고양이들의 가치를 이야기에 새길 차례야. 책 제목은 [내일은 고양이] 어떨까."
그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세상의 모든 문명의 중심에 책이 있고 인류의 문명은 글을 통해서 계속 유지되어왔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인간만이 상징 체계인 문자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고 문자를 통해, 글을 통해 기록함으로써 인류의 지식을 보존하고 전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 속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이 이 지식체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제 3의 눈'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인류의 지식을 모두 담은 ESRAE가 쥐떼 군단의 우두머리인 티무르까지 그것을 소유하려는 싸움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이 ESRAE가 지금의 모든 문제와 위기 상황들을 해결해주고 절망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꼭 필요하단다. 그걸 명심해. 글을 쓰는 순간 네 생각이 정리되고 흐름이 생기면서 단단해지는 걸 느낄 거야. 글쓰기는 네 정신에서 액한 것은 내보내고 옹골찬 것만 남겨 주어 네가 가진 진정한 힘이 뭔지 깨닫게 해줄 거야. 네게 닥치는 불행을 숙성시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게 해줄거야. 글쓰기는 그 어떤 깊은 대화나 성찰보다도 너를 더 멀리 도약하게 해주지. (중략) 글로 쓰지 않는 한 네 생각은 모호하고 불완전한 채로 사라져 버리고 말 거야. 명심해. 너는 그 가치도 모른 채 그저 사소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거니 생각할거야. 하지만 네 감정이 문장이라는 형태를 갖추는 순간 그때 비로소 너라는 존재는 예민한 수신자이자 강력한 발신자가 되는거야."
- 2권 p. 237 -
글쓰기에 대한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 또한 글쓰기를 통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잡고 그 생각들을 구조화할 수 있다.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들이 그저 스쳐지나가서 기억조차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를 통한 인간의 지식 전수가 새로운 문명 건설의 토대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양이 문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가능하다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네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았으면 하찮은 고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네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렴. 너를, 그리고 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작품을 쓰기 시작하거라. 그래야 고양이 문명이 존재할 수 있어. "
- 2권 p. 239 -
이렇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류 지식과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도 보낸다. 인간의 무분별한 동물 실험과 동물 학대 등으로 인해 쥐떼 군단 우두머리 흰색 쥐 '티무르'는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수 십 차례의 동물 실험과 오직 실험을 위해서 동물의 생명도 하찮게 여기고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한 결과이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찬 동물들의 모습이 개와, 돼지, 쥐 등을 통해 나타난다. 돼지들의 인간 재판이나 티무르의 독백에 의한 실험동물의 현실은 인간의 이기심과 생명경시현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제가 알게 된 사실들에 근거해 말씀드리면, 모든 인간은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벌로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배심원들께서도 저들에게 사형을 선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재판을 방청 중인 돼지들이 일제히 동조를 보낸다. 몇몇은 발뼉을 치기도 한다. 꿀꿀거리는 응원 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운다.
-p.66~71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동물 해방 선언이라도 하듯이 고양이에 의한 인간 지배, 복종의 세계를 설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티무르의 말처럼 인간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제 3의 눈이 자신들을 파멸시키는 독이 될 줄은 몰랐으리라.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기술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오. 하위 종들에게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들의> 인터넷에 접속하게 해준 거요. 그 오만함이 치명적인 독이 될 줄은 모르고 말이야."
- 2권 p. 206 -
어쩌면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도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와 야생동물의 남획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코로나 사태를 보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멸망을 예견한 것은 아닐까. 인간이 자연파괴를 멈추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런 디스토피아 사회가 머지않아 도래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책 속 바스테트의 모험을 통해 인간에게 이러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바스테트 일행은 쥐떼 군단의 위협 속에서 다른 생물종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위기에서 번번히 탈출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렇게 바스테트는 'ESRAE' 를 지키고 새로운 희망의 땅 뉴욕으로 향한다. 새로운 문명 건설을 위한, 쥐떼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데리고 기회의 땅.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미국으로 간다. 마치 종교의 자유를 위해 영국을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떠난 청교도인들처럼 말이다. 그들의 자유와 희망을 쫓아 떠난 그들, 그들은 그 땅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이 책을 읽으면서 찾기를 바란다.
3. 나가며
"인간들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오.
세상은 그들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들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까."
책 속 돼지의 말처럼, 이제 인간들은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 모든 생물종들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지구는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들을 위해 존재하며 그들 또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모든 생물들은 이렇게 서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하는 것이다. '식물도 영혼이 있고 모든 생물들은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이다'라고 말하는 바스테트의 말처럼, 이 지구상의 생물들은 우리 인간이 지배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함께 소통하고 존중하며 연대할 때 새로운 문명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 문명은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만을 위한 문명이 아닌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을 위한 문명일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죽어가고, 일상 생활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 코로나 극복의 열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