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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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진화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리뷰 총점 9.5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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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 과학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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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그동안 자연선택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진화론에 대해 성선택으로 올바른 균형을 잡아주는 책! 평점10점 | l****1 | 2019.05.10 리뷰제목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세상에 발표한다. 거기서 주장한 '자연선택론'은 이제 거의 생명의 진화에 있어 정설이 되었다. '자연선택론'은 한 마디로 유용성을 중시한다. 생존에 적합한 형질만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숫사슴의 거대한 뿔 같은 것. 그건 도망칠 때마다 자주 나무에 걸려 생존엔 오히려 방해만 되는 존재였다
리뷰제목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세상에 발표한다. 거기서 주장한 '자연선택론'은 이제 거의 생명의 진화에 있어 정설이 되었다. '자연선택론'은 한 마디로 유용성을 중시한다. 생존에 적합한 형질만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숫사슴의 거대한 뿔 같은 것. 그건 도망칠 때마다 자주 나무에 걸려 생존엔 오히려 방해만 되는 존재였다. 더구나 그 정도로 뿔을 자라도록 하는데 몸의 에너지를 대부분 써버려 단순히 살아가는 것조차 유용하지 않았다. 역시나 화려하지만 쓸데없이 커서 동작을 굼뜨게 만들기 때문에 포식자에게 쉽게 잡아 먹히게 만드는 공작의 꼬리까지 포함하여 생존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 없는 아름다움'이 생태계에 그토록 많이 있는 것을 본 다윈은 아무래도 자연선택론 외에 다른 것이 또 진화의 법칙으로 작용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1871년에 발표하게 된다.


 '자연선택'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성선택'은 번식을 위한 것이다.

 '성선택'이란 배우자 짝짓기 과정에서 같은 암컷을 두고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개체가 형질을 진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숫사슴의 커다란 뿔도, 공작의 꼬리도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오직 자신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암컷에게 간택받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납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윈의 논지에 대해 학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발표될 당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선택'이 진화에 있어 지고의 권위를 갖는 지위로 오르는 동안 '성선택'은 내내 그 그늘에서 무시 받고 있었다. 그것은 다윈의 착오, 오류의 산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열 살 때부터 새를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내내 그 일을 하고 있는, 미국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인 리처드 프럼은 전혀 다른 말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성선택'도 '자연선택' 못지 않게 생명의 진화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명은 배우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생존에 별 유용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꾸준히 진화시켜 왔다고. 그런 자신의 주장을 평생동안 연구한 새들의 생태를 통해 충실히 증명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나온 '아름다움의 진화'라는 책이다.




 책은 모두 12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인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은 다윈이 진화를 이끌어가는 두 가지 거대한 법칙(2대 핵심 요소) 중의 하나로 여겼던 '성선택'이 어쩌다 찬밥 신세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힘과 동시에 '성선택'이 과연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런 상황을 창출한 이는 다윈과 거의 동시에 '자연선택'을 발견했고 다윈과 같이 논문을 쓰기도 했으며 다윈이 죽을 때까지 평생 서신을 교환한 '앨프레드 러셀 윌리스'였다. 다윈이 살아있을 때, 그의 성선택을 과학적 토론으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윌리스는 다윈이 죽자 성선택을 아주 과격하게 공격하여 수컷의 자기 과시가 중점이 되는 성적 장식물은 결국 적응적, 공리적 가치가 있을 때에만 진화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성선택이란 결국 자연선택의 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1970년대까지 진화생물학에서 잊힌 존재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리처드 프럼은 이런 윌리스의 주장에 대해 책 전체를 통해 크게 두 가지 점을 들어 비판한다.

 하나는 적응적 혹은 공리적 가치가 없는, 그렇게 임의적이고 오직 미학적인 것이라 할 지라도 진화에 있어 결코 불필요하다거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며 장식적인 것도 진화를 이끌어 온 거대한 동력이었다는 사실이다. 윌리스의 후예들은 여기에 대해 많이들 난감을 표했다. 대표적으로 아모츠 자하비가 그러하다. 그는 윌리스의 입장에 서서, 과시밖에 없는 성적 장식물들은 선택을 받고자 하는 배우자에게 이렇게나 쓸데 없는 것을 가지고도 살아남았기 때문에 사실은 꽤나 강한 존재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선택 받는 것에 유리하기에 진화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흔히 '신윌리스주의'라고도 부르는 이런 이들은 성적 장식물이 배우자에게 내가 생존에 어떤 자질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정보로 여기고 그 때문에 진화했다고 판단하는 측으로써 여기엔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다. 하나는 아름다움은 오직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자 짝짓기에서 관계를 주도하는 능동적인 주체는 어디까지나 수컷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전제가 틀렸다고 꼬집는다. 생명은 생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오로지 임의적이며 미학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진화시키는 데 주력해 왔으며 배우자 짝짓기는 암컷과 수컷 모두가 대등한 존재로 참여하여 벌이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5장, '백악관을 뒤흔든 오리의 페니스'는 이걸 충분히 입증한다.


 5장은 이 책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암컷 오리가 알을 낳은 뒤에 처한 상황이었다. 설마 오리의 세계에서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강간 행위가 이뤄질 줄은 몰랐다. 오리는 수컷의 수가 암컷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늘 하나의 암컷을 두고 많은 수컷이 경쟁을 벌인다. 때문에 짝짓기를 하지 못하고 총각 귀신이 되는 수컷 오리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짝짓기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번식을 향한 욕망이 사그라들지는 않아서 수컷 오리들은 이미 짝짓기를 한 암컷 오리조차 강간해버린다고 한다. 때론 단 하나의 암컷 오리를 수컷 오리들이 집단적으로 몰려가 윤간까지 감행한다고 하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신윌리스주의 입장에 따르자면 암컷 오리는 관계를 이끌어갈 능동적 힘이 없으므로 당하면 당하는 대로 있어야 할테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순식간에 발기하여 사정할 수 있는(오리가 조류에서 아주 예외적인 존재로 페니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수컷 아르헨티나푸른부리오리의 페니스는 무려 42cm라고 한다.) 수컷 오리가 잘 삽입하지 못하도록 꼬불꼬불하고 복잡한 구조의 질을 진화시켜 왔던 것이다. 어쩌면 수컷 오리의 급속 사정도 그러한 암컷 오리의 질 구조 때문에 진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리의 성생활은 배우자  짝짓기가 암컷과 수컷이 서로 대등한 참여자로써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여기서 다윈이 성선택을 말하며 주장했던 것이 또 하나 증명되었다. 바로 '성선택'은 공진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공진화란 쉽게 말해 같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프럼은 이것을 무엇보다 새의 깃털을 통해 증명하는데, 새의 깃털이 가지는 화려한 색깔과 유려한 곡선미 그리고 문양의 정교한 배치등은 모두 암컷이 수컷의 진화에 발맞춰 스스로를 진화해 온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수컷이 온갖 정성을 다해 프러포즈하는 동안, 안목 있는 암컷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시종일관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마치 불감증 환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냉철한 짝짓기 결정이야말로 수백만 년 동안 수컷의 용모를 아름답게 빚어온 원동력이다. 수컷 청란이 수백 개의 황금색 공이 주렁주렁 달린 원뿔형 부채를 공중에서 빙빙 돌리며 흔드는 것도, 그녀의 까다로운 안목이 공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p. 102)


 이러한 성선택 공진화의 과정은 다양한 새들의 생태를 보여주는 2장에서 7장에 걸쳐 전개된다. 이 책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귀한 새들의 생태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장이자 깃털의 진화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 수 있는 장이며 또한 성선택이 자연선택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얼마나 잘 말해줄 수 있는지 체득하는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새들의 생태와 관련해서만 성선택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범위를 넓혀서 우리 인간과 문화까지 아우르는데, 그건 8장과 11장에 걸쳐 얘기된다. 특히 9장에 나오는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여성의 오르가슴에 있어서도 신윌리스주의의 남성중심시각이 여지없이 드러났는데, 그들은 여성의 오르가슴을 진화 과정에서 우연적으로 발생한 부산물로 보거나(부산물 가설) 아니면 매력이 많고 유전적 자질이 좋은 남자와 수정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적응적 매커니즘으로 보아왔다.(흡입 가설) 그러나 부산물 가설은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짙고 흡입 가설은 여성의 오르가슴이 상대방 남성의 매력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더구나 흡입 가설에 따른다면 남성은 여성의 오르가슴에 신경을 쓰고 거기에 대응하여 진화해 왔어야 했는데 '많은 사회에서 남성들은 최소한의 전희 만으로 섹스를 시작하여 여성의 쾌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만의 절정'으로 직행'(p. 408)하는 게 현실이다. 2000년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대졸 남성 중 42퍼센트가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해 무지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남성의 좋은 유전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매커니즘이라는 지적엔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여성의 오르가슴 또한 독자적인 진화를 해왔을지 모른다며 바로 그 이유를 진정한 다윈주의의 핵심인 '미적 진화의 시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미적 진화는 자연선택이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위치에만 머무른 반면, 진화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인식하고 생각하는지, 그 주관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에 모든 개체들을 주체로 만든다. 한 마디로 모두를 대등한 관계자로 참여시키기에 쉽게 우생학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자연선택의 위험 역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윤리적 측면과 사상적 측면에 더 할 나위 없는 이점 또한 가져다 주기에, 또한 허다한 새들의 생태가 과학적으로 증명하듯이,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성선택에 이제 많은 과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식으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에 대한 새로운 지적 자극과 익히 알려진 것이라 해도 그것을 무턱대로 신봉해선 안되며  늘 나름의 숙고를 매개로 진지한 비판의 시선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아름다움의 진화'는 정말 재밌고 흥미로 꽉 찼으며 머릿속 곳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독서였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까지 자연선택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그 곳에 성선택을 통해 균형을 바로잡아주는 책이기에 무엇보다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 오직 지적인 포만감을 위해 읽는다고 해도 새들의 배우자 짝짓기 과정이나 성선택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더욱 잘 해명되는 인간의 성생활이나 문화 등, 읽을 거리가 정말 차고도 넘치기에 충분히 권할만하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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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성적 자율성은 우리 인간이 진화해 온 결과이다. 평점9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1 | 2019.06.06 리뷰제목
진화론 하면 우리는 먼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떠올린다. 그리고 진화의 방식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적 진화라고 믿고 있다. 나 또한 리처드 도킨스나 제래드 다이아몬드가 쓴 진화론과 관련된 많은 책을 읽으면서 이를 의심치 않았다. 지금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만이 살아남았고, 그러지 못한 개체들은 자연선택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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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하면 우리는 먼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떠올린다. 그리고 진화의 방식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적 진화라고 믿고 있다. 나 또한 리처드 도킨스나 제래드 다이아몬드가 쓴 진화론과 관련된 많은 책을 읽으면서 이를 의심치 않았다. 지금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만이 살아남았고, 그러지 못한 개체들은 자연선택을 통해 제거되었다는 진화론은, 이제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태계를 설명하는 과학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진화론에서도 여러 학자들 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배우자선택을 통한 성선택이다. 다윈주의자들은 자연선택만이 진화를 추동하는 유일한 원동력이라 보고 있으며, 성선택은 자연선택의 또 다른 형태로 성적 장식물은 자질과 조건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직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진화론을 설명해온 대세이기도 하다.

 

이 책 [아름다움의 진화]를 쓴 조류학자 리처드 프럼은 이에 대해 아니라고 말한다. 진화의 결과 탄생한 성적 장식물은 배우자의 자질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호전달자와 선택자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적장식물이란 미적 형질로 그 진화는 주관적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주관적 평가는 타 개체의 지각과 평가를 통해 기능을 발휘하고, 성선택을 통해 그 결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개체의 감각적 판단과 인지적 선택을 통해 전개되는 진화과정을 그는 미적 진화라고 부른다. 이런 미적 진화를 연구하려면 과시형질이라 부르는 욕구의 대상과 짝짓기 선호인 욕구 자체의 형태, 즉 성적매력의 양쪽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며, 성선택의 작동방식을 이해함에 따라 드러나는 사실은 이들 욕구대상과 욕구 자체는 공진화 해왔다는 것, 즉 성적 아름다움이란 공진화의 결과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다윈이 1859년 발표한 [종의 기원]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적 진화가 주제라면, 1871년 발표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가 주제이다. 자연계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윈의 미적 진화 이론을 빌려올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성선택을 가장 활기차고 적응적인 배우자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부차적 수단으로 간주한 것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폭넓은 성선택의 개념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진화이론의 모든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만연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다윈이 논증한 배우자 선택이론에는 또 하나의 혁명적 아이디어가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의 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암컷의 성적자율성이라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것이 다윈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태로운 개념으로 여겨졌고, 신다윈주의자들이 성선택을 새로운 진화 메커니즘의 하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고 저자는 추정하기도 한다.

 

이 책은 조류학자인 저자가 평생에 걸친 조류관찰의 결과를 가지고 다윈의 잊혀진 이론 성선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란 부제가 말해주듯 성선택이 진화의 또 다른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윈의 성선택에 내포되어 있던 혁명적 아이디어인 성적자율성을 연구와 관찰 끝에 과학적으로 도출해 내어 페미니즘이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각종 동물의 진화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조류에서 나타나는 성적 과시형질을 통해 성선택이 자연선택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다. 새들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서 서로를 관찰하고, 자신이 관찰한 것을 평가함으로써 사회적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즉, 새들은 특정 깃털, 색깔, 노래, 과시행동에 대한 선호도를 바탕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고, 그 결과는 성적 장식물의 진화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는 수컷 청란과 마나킨의 경우 성적장식물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은 인간의 눈에는 경이롭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암컷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모든 정교한 장식물이 그에 못지않은 정교한 미적 안목과 공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암컷의 냉정한 결정이야말로 수백만 년 동안 수컷의 용모를 아름답게 만들어온 원동력인 셈이다. 또 이런 과시형질은 자연선택의 이점과 성선택의 이점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선에서 진화하였지만, 이 균형이 건강이나 생존능력의 극대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적 이점이 생존적 이점을 능가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시형질 레퍼토리는 다양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진화적 유산과, 특정한 종에서만 진화한 새로운 과시형질 두 가지 요인에 의존한다. 이중에서도 어떠한 조상의 특징과도 상동관계에 있지 않는 과시형질의 등장은 바로 성선택에 의한 진화적 혁신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또 조류의 관찰과 연구를 통해 성적자율성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오리의 경우 수컷의 생식기는 암컷의 길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길고, 암컷의 생식기는 구불구불하고 험난하여 수컷의 생식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복잡하다고 한다. 이는 암컷의 선택을 받지 못한 수컷들이 종종 강제교미를 시도하고 암컷들은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생긴 군비경쟁의 결과라고 한다. 이처럼 성선택에는 수컷의 과시형질에 대한 암컷의 미적 선호에 기반을 둔 배우자 선택과 수컷의 권리를 둘러싼 수컷 간의 경쟁이라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하는데,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은 진화적으로 서로 상반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성적자율성의 개념은 성적폭력과 강압에 대한 방어기구가 진화한 이유뿐만이 아니라, 성갈등을 극복하는 다른 독특한 경로가 진화한 이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먼저 조류를 통해,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의 성적자율성까지도 성선택 이론을 통해 진화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바우어새의 미적 극단성은 진화적 힘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런 바우어새를 통해 미적 리모델링의 생생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미적 리모델링이란 수컷의 성적 과시행동과 암컷의 미적 선호가 공진화함으로써 암컷의 성적자율성이 향상된 것을 의미한다. 바우어새과의 수컷들은 배우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구애용 정자 즉, 구조물을 짓는다. 이들이 짓는 바우어는 둥지가 아니라 오로지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구조물로 용도는 오직 하나, 성적과시를 위한 무대라고 한다. 따라서 수컷은 바우어를 짓고, 바우어를 장식하는데 온 힘을 쏟는데 수집하는 물건의 종류나 배치하는 방법은 종마다 다르게 진화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식물과 재료들은 암컷의 짝짓기 선호와 함께 공진화한 수컷의 미적 선호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바우어는 어떻게 진화하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바우어새의 관찰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바우어는 그곳을 방문한 암컷이 수컷의 폭력, 강제교미 등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즉, 바우어는 암컷이 선호하는 수컷의 공격적 과시행동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을 해소해 주었고, 따라서 바우어는 암컷들의 선택기준이 되어 그때부터 진화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암컷이 자신의 성적자율성을 확보하고 나면, 그녀들의 미적 선호는 수컷의 과시행동 및 장식과 지속적으로 공진화하여, 훨씬 더 복잡하고 포괄적인 미적구조와 공연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택의 자유는 성적자율성을 보장하며, 성적자율성은 아름다움의 진화를 추진하는 원동력’(313쪽)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는 단지 바우어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나킨새 수컷들의 구애조직이 사회적관계로까지 발전한 것도 암컷 마나킨새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군집화를 배우자 선택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적 강제와 물리적인 억압만 있다면 아름다움이란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 것이지만,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비로소 아름다움에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저자는 조류에서 살펴본 미적 진화, 성갈등, 미적 리모델링과 같은 힘들이 인간과 그 영장류 조상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추론하고 있다. 저자가 여기서 추론이라고 한 것은 앞으로 이것들이 비교연구 및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검증되고 분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의 진화심리학자들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그것을 인간생물학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그들은 인간의 성적장식물과 행동을 좋은 형질에 대한 정직한 광고와 적응전략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에서 배우자 선택을 통해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은 장식용 특징들을 살펴보며 인간의 진화에서 미적 선택의 작용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인간은 양성이 모두 배우자 선택에 관여하는 상호적 배우자 선택을 하는 종이라고 한다. 인간의 체모 감소가 적응이든, 미적형질이든 간에 특화된 털, 즉 겨드랑이나 음부, 눈썹, 두피 등에서 부분적으로 잔류하고 있는 것은 장식용이 분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양성 모두 공통인 것은 바로 상호적 배우자선택을 통해 진화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암컷의 성적장식물에 대한 수컷의 배우자선호는 ‘생명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인간계통에서만 독특하게 진화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 남성의 성적 까다로움은 오직 인간의 가지에서만 나타나는 배타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포유류 가운데 영구적인 유방조직을 가진 종은 인간밖에 없다. 이는 생식자체를 위한 것도 아니고, 자연선택 될 만한 이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남성의 배우자선택을 통해 진화한 미적형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반해 인간 남성은 인간 여성과 달리 형태학적 장식을 별로 보유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여성의 배우자선택이 신체적 형질보다는 주로 사회적 형질에 초점을 맞추는 형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조류들이 암컷의 성적자율성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심미적 배우자선택을 통해 수컷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개조했듯이, 인간 여성 역시 남성의 난폭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심미적 배우자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인원 계통에서 수컷들의 몸집은 암컷에 비해 월등히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졌지만, 인간의 몸집은 성적 이형성이 뚜렷하게 감소했고, 남성과 여성의 송곳니가 똑같은 것이 그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의 성적자율성이 남성의 성적강제를 감소시킨 증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이 남성적 시선을 적응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차별적 경향을 인간의 진화생물학에 투사해 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반쪽의 배우자 선호를 설명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아름다움, 구애 및 짝짓기 관행, 성적 행동은 문화의 영향을 받는 다른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한다. 보편적인 짝짓기 가치에 대한 진화심리학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문화 없는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존재하지 않으며, 문화에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는 다양성 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즉,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은 많은 신체적 다양성을 잉태하며, 이 진화적 메커니즘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진행 된다’(395쪽)는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추론하고 있다. 동성간 성행동의 이유를 진화적 메커니즘 속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배우자 선택에 수반된 미적평가는 자연계에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진화의 원동력’(484쪽)이라는 다윈의 생각은, 그가 살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급진적이라고 한다. 이는 동물의 감각적 평가와 성선택이 진화함에 따라 새로운 진화적 행위 주체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을 설명하는데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아름다움이 제각기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에는 쓸모없는 아름다움도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30여 년 동안 현장을 답사하며 새의 생태를 관찰했다는 저자의 성선택에 관한 이야기는 진화의 다른 면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한 면 만을 가지고서 자연을 이해하려 했던 우리에게, 그는 진화에 대한 새로운 면을 알려주고 있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남성과 여성은 평등함을 추구하도록 진화해 왔다는 것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야 할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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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진화의 동력, 아름다움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n*****m | 2019.04.29 리뷰제목
다윈은 1859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내세운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이후 자연선택은 진화에 있어서 확고부동한 원리가 되었다. 그런데 다윈에게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공작의 화려한 무늬나 사슴의 커다란 뿔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었다. 분명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데 왜 그런 게 진화했을까? 그후
리뷰제목

다윈은 1859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내세운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이후 자연선택은 진화에 있어서 확고부동한 원리가 되었다. 그런데 다윈에게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공작의 화려한 무늬나 사슴의 커다란 뿔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었다. 분명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데 왜 그런 게 진화했을까? 그후 다윈은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출판한다. 이 책은 두 가지 의미로 중요한 책이다. 한 가지는 『종의 기원』에서 극구 꺼렸던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자연선택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었던 생물의 과시형질(display character)에 대해서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는 메커니즘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성선택이란, 동식물의 심미적 선택이 공작의 화려한 무늬나 사슴의 커다란 뿔 같은 것을 진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선택과는 달리 성선택은 과학자 사이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특히 자연선택의 공동 주창자인 월리스 같은 이는, 성선택을 아예 무시했다(그는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인간을 동물과 완전히 구분하기도 했다). 그리고 진화학이 확고한 과학의 학문으로 우뚝 서게 되는 계기가 된 1930년대의 현대종합설(Modern synthesis), 혹인 신다윈주의(neo-Darwinism)에서는 자연선택만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삼고, 성선택은 그 하위 개념으로 포함시킨다.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위 개념으로 삼는 것은, 새의 아름다운 깃털 색깔 같은 것이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의미를 지닌다는 얘기다. 이른바 적응주의인데, 아름다운 깃털은 자신의 건강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물론 현대종합설의 태두 중 한 명인 피셔는 폭주설을 주창해서 그들과 다른 의견이었지만).

 

신다윈니즘, 내지는 적응주의는 현대 진화학의 주류다. 노골적으로 자신이 확고부동한 적응주의자라고 하는 진화학자가 있을까 싶지만, 연구 방법에 있어서나 연구 결과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나 특정 형질의 진화를 설명할 때 적응(adaptation)’의 관점을 과감하게 지워버리지 못한다. , 그 형질이 어떤 쓸모가 있을 거라는 가정을 미리부터 한다는 얘기다. 적응주의는 유혹이기도 하다.

 

리처드 프럼은 여기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었다. 이 책이 성선택을 주제로 삼고 있다고 하면서, 새롭다는 얘기를 듣고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선택에 관한 책은 이미 나와 있고, 진화를 얘기하면서 성선택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성선택의 메커니즘에 관해서도 몇 가지를 꼼꼼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뭐가 다를까 싶었다.

 

그런데, 다르다. 그 다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름다움을 부연해서 설명해야 하는 무엇인가, 아니면 그 자체인가(“아름다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에 관한 견해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적응주의자의 관점은 아름다움은 무엇을 나타내기 위한, 이를테면 좋은 유전자’, 형질이지만, 프럼의 관점은 아름다움은 그저 심미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이며,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다른 무엇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에 선택되고, 과시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은 새를 예로 든다(리처드 프럼은 우선은 조류학자다).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새들(청란, 마나킨새)과 정자를 지어 암컷을 유인하는 바우어새 같은 경우에 그런 형질을 진화시킨 것이 좋은 유전자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단지 암컷들이 성 결정의 선택 권리를 지니게 됨으로써 수컷들이 그런 과시 형질들을 보여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 나아간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다른 측면도 있지만, 인간 역시 기본적으로 그것이 어떤 다른 이득을 보여주기 위한 형질로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보기 좋다는 이유로, 혹은 암컷이 수컷들의 공격성을 완화시키기 위한 선택으로서 암컷과 수컷의 형질들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조금 당혹스러운 설명도 있고, 또 자꾸 반박하는 메모를 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나도 적응주의자인가 싶기도 했다(나 역시 진화학에 발을 걸치고는 있으니 별수 없나?). 그 얘기는 다시 말해서 프럼의 주장이 혁신적 측면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프럼의 주장에서 의문스러운 점을 한 가지만 들자면, 적응주의가 모든 형질을 적응의 관점에서 설명하면서 오류를 범하는 것처럼, 프럼도 모든 형질을 심미적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프럼은 자연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동등한 진화의 한 메커니즘으로 봐야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을 위해서인지 자꾸 모든 것을 성선택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성선택을 영 가설(null hypothesis)로 삼아서 그것을 부정하려면, 그 부정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적응주의자도 그렇게 주장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적응주의가 영 가설이고 그것을 부정하려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자면, 적응주의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는 날카롭고 둔중한 논리가 자신의 주장에서는 조금은 무디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프럼의 주장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모든아름다움이 어떤 것의 증거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고, 의문을 품었었다. ‘모든아름다움이 그냥 아름답다는 이유로 진화했다고는 여전히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진화에 대한 보다 날카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또한 그런 관점이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가 있다. 부정하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진화학 주변을 어른거리는 우생학(eugenics)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성선택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프럼의 주장은 새로우면서도 의미가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책 앞에 실린 스물 한 개의 아름다운 새 사진을 즐기는 것만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은 이미 반 이상은 달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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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새의 구애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없다,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자연사!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c | 2019.04.30 리뷰제목
저자 리처드 프럼 교수는 예일대 조류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그는 30년 이상 조류를 관찰하면서 깨달은 자연의 성선택과 그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온전히 전해준다. 책에는 각양각색의 새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양이 인간 세상마냥 한껏 펼쳐진다.   생명과 진화의 역사 한복판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조류 중에 특히 공작새와 원앙이 여기에 어울리겠다.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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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처드 프럼 교수는 예일대 조류학과에 재직하고 있다그는 30년 이상 조류를 관찰하면서 깨달은 자연의 성선택과 그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온전히 전해준다. 책에는 각양각색의 새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양이 인간 세상마냥 한껏 펼쳐진다.

 

생명과 진화의 역사 한복판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조류 중에 특히 공작새와 원앙이 여기에 어울리겠다.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이들은 교미의 횟수는 많을지언정 생존에는 유리하지 않다. 더군다나 원앙은 교미 후 먹튀(?)할 정도로 암컷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 거의 없다. 부부사랑의 상징으로 알려진 원앙의 실제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르다.

 

저자 리처드 프럼(Richard O. Prum) 교수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책은 내게 새틴바우어새(Satin Bowerbird)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컷 바우어새는 구애를 위해 '바우어(bower)'라 불리는 아름답고 독특한 구조물을 만든다. 수컷은 바우어 앞마당에 갖가지 재료로 한껏 장식해놓고 암컷을 유혹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암컷이 자신의 선택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수컷 오리와 암컷 오리는 오랜 기간 성결정권을 놓고 싸워왔다. 수컷이 강제로 교미할 때면 암컷은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그 결과 수컷의 페니스는 지나치게 길어졌고, 암컷의 질은 미로같이 복잡해졌다.

바우어새는 오리와 달리 독특한 진화를 보였다. 수컷들은 고도로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하고 활동적인구애를 통해 암컷에게 완벽한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특히 진입로형 바우어(사진)의 경우 진입로는 암컷이 몸을 겨우 들여놓을 정도로 좁다. 만일 암컷이 자세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수컷이 뒤에서 강제로 교미하려고 할 경우 암컷은 재빨리 전진하여 날아가버리면 그만이다. 수컷은 바우어의 벽 사이를 그만큼 빨리 통과할 수 없으므로 곧바로 암컷을 따라갈 수 없다.

 

진입로형 바우어(avenue bower)

    

 

수컷 새틴바우어새는 진입로형 바우어를 지으며, 주변에서 발견한 감청색 물건으로 앞마당을 장식한다.

    

 

뉴기니 서부에 서식하는 보겔콥바우어새의 수컷은 오두막집 모양의 앞마당에 이끼 정원을 조성하고, 신기한 물건과 재료들로 장식한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빨간 과일, 녹색 곰팡이가 슬어썩은 나무부스러기, 새까만 숯과 곰팡이와 썩은 과일, 프레이키네티아(Freycinetia) 덩굴의 빨간 꽃, 딱정벌레의 반짝이는 겉날개, 블루베리, 앰버트리의 끈끈한 분비물이 놓여 있다.

본문에서 바우어새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너무나 세밀해서 마치 바우어새가 구애를 위해 아름다운 바우어를 짓고 있는 모습을 눈앞에 보고 있는 듯하다.

자연의 성선택을 연구하면 인간 세상의 성역할을 둘러싼 갈등과 해법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존중받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크다. 그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여성의 배우자 선택이 성적 자율성을 크게 발달시킨 것은 맞지만, 뒤이어 진화한 인간의 문화가 성별 갈등을 야기하는 새로운 문화적 매커니즘을 등장시켰다"고 지적한다. 이어 "현대 여성들이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완전히 향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주범은 '가부장제도'의 진화"라고 말한다.

남성이 사회의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문화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억압하고 남성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자연계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대부분은 무의미하고 임의적이며, 선택자에게 칭찬받거나 선호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이득도 없다.” - 228

 

오늘날 우리는 새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무런 이득'도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표지를 보라.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의 깃털마냥 화려하기 그지없다.

겉표지와 띠지를 헤치면 소박한 디자인을 한 속표지가 나온다. 다행스런 것은 독자에게 실속이 더없이 크다는 점이다. 일독을 적극 권해드린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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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Think 1. '성선택'으로 설명 가능한 모든 것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z******8 | 2019.05.02 리뷰제목
각설하고,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증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진화론'의 결론은 간단하다. '모든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조금 어렵다면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이해하면 좀더 수월할 것이다. '환경에 적응한 생물만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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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증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진화론'의 결론은 간단하다. '모든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조금 어렵다면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이해하면 좀더 수월할 것이다. '환경에 적응한 생물만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반대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은 멸종한다'...뒷말이 더 여운이 남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암튼, 이 모든 걸 종합하면 [자연선택]으로 귀결이 된다.

 

  그러나 [자연선택]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다윈을 토 나오게 했던 바로 그 동물, '공작'이다. 이를 살짝 설명을 해본다. '진화론'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존'이라는 매커니즘을 이해해야만 한다. 즉, 살아남기 유리한 조건을 갖춘 생물만이 환경을 적응하고 종족 번식을 할 수 있다는 매커니즘 말이다. 그런데 공작은 이런 설명이 통하지 않았다. 수컷의 꽁지깃이 하릴없이 길고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다윈은 생각했다. '도대체 저런 꽁지깃을 달고도 천적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암컷 공작은 수컷의 화려한 꽁지깃에 반해서 짝짓기를 하려 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선택]의 부족함을 채워서 [성선택]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성선택]이라는 건 참 절묘했다. 다윈의 토를 멈추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자연선택]을 설명하였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라는 책으로 [성선택]을 설명하며 '진화론'의 매커니즘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진화론'이 인정받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아직 '유전자'와 'DNA 구조'를 밝혀내기 전이었기 때문에 진화의 매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내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그나마 멘델이란 수도사가 1856~1863년까지 '완두콩 교배'를 실험하여 1865년과 1866년에 두 차례로 나누어 논문을 발표했지만 이를 '멘델의 유전법칙'이라고 정리한 것은 한참 뒤인 1915년이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해가 1859년이었으니 '멘델의 유전법칙'을 참고만 했더라도 더 이른 시기에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 다윈은 멘델도 몰랐고 멘델이 발표한 논문은 보지도 못했단다. 여튼, '진화론'은 종교계의 반발로 인해 널리 인정 받지 못했고 소수의 지지를 받으며 오랜 논쟁의 물꼬를 트고 말았다.

 

  그러나 진리는 언젠가 인정 받기 마련이다. 소수의 지지자들의 똘끼 충만한 '극성'(?) 덕분인지는 몰라도 과학계에서 '진화론'이 서서히 인정받고 자리 잡기에 성공했다. 심지어 과학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까지 '진화론'은 널리 쓰이며 다양하게 써먹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진화론'이 인정받으면서부터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였다. 바로 '진화론'은 인정하지만 [자연선택]만 인정하고 [성선택]은..쪼끔 성(性)스런 부분이 있으니 과학계에서 '퇴출'이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것도 다름 아니라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공동으로 발표했다고 알려진 '월리스'가 앞장서서 다윈의 [성선택]은 틀렸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대중들도 다윈의 <성선택>은 '문란하고 난삽하며 추잡한 내용'이 담겼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철저히 외면 받았다. 무려 100년이 넘게 말이다.

 

  그런데 또 여기엔 묘한 점이 있다. 또 다시,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다. 아니, 순수한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믿음의 방식' 말이다. 마치 자신이 믿는 신이 하나인 것처럼 '과학적 설명' 또한 '유일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다윈의 [자연선택]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성선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로 '진화의 매커니즘'을 오로지 [자연선택]만으로 이해하고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려 100년이 넘게 말이다. 이를 테면, 암컷 공작이 화려한 꽁지깃을 가진 수컷만으로 고집하는 까닭을 '험난한 환경에서 천적들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저렇게나 높은데도 하릴없이 길고 화려한 장식을 가진 수컷이니 생존에 유리한 무언가를 가진 것이 틀림 없기 때문에 암컷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라고 길게 설명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설명이 바로 [자연선택]에서 '수컷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성선택]적 관점으로 '공작의 꽁지깃'을 설명한다면 그냥 '아름답기' 때문에 암컷이 반했다라고 설명이 가능하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한 법이다. 굳이 '오컴의 면도날'을 예로 들면 더욱 그렇다. '두 가지 설명이 모두 맞다면 더 단순하고 쉬운 설명을 고른다'. 이건 [자연선택]으로도 설명이 가능하고 [성선택]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면 단순명료한 설명이 더 진리에 가깝다는 얘기다. 좀더 [성선택]을 이야기해보자. 새들도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다면 더 아름다운 이성을 고를 거라는 설명은 매우 명쾌하다. 그걸 굳이 '아름다운 신체가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복잡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새들의 그 기준이 인간의 경우와 일치 할지 안 할지는 더 연구를 해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짝짓기'에 대해서만큼은 [성선택]적 설명만큼 명쾌한 것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자연선택]이 틀렸고 [성선택]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존법칙'에 대해서는 [자연선택]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짝짓기'를 설명하려면 [성선택]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의 종족번식을 '생존' 개념을 적용해서 설명할 수도 있다. 남자의 '경제적 능력'이 높을수록 여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져서 '종족번식의 기회'가 더 많다는 [자연선택]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매력적인 이성에 끌려 자기도 모르게 '종족번식'을 실천하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성의 '경제적 능력'을 검증하지도 못했는데, 또 안락한 노후생활과 자식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이성인지도 체크하지 못했는데 '종족번식'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하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다윈도 [자연선택]의 부족함을 [성선택]으로 보완하려 했다. 이 둘을 서로 갈라놓고 따로 설명하려 했던 오랜 노력(?)이 부질없어 보이지 않은가.

 

  아, 물론 이 책의 내용은 온통 '조류'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본다. 이 책의 길고 긴 '조류 이야기'는 아무리 책읽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본 적도 없는 새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그런 새들의 일상까지 과학적 논쟁으로 설명하고 또 설명하려드는 글쓴이의 고약함(?)을 견딜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런지...그래서 유용한 팁을 하나 알려드린다면, 이런 과학책은 절대 '연역적인 방법'으로 책을 읽으려하지 말고, '귀납적인 방법'으로 읽기를 권한다. 왜냐 하면, 연역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개별적인 단서들을 모아모아서 최종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는 방식인데, 귀납적인 방법은 먼저 최종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 그 결론에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진화론'과 같은 '확연한 증거'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읽을 때에 적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암튼, 다윈의 '진화론'을 총정리할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자연선택]과 [성선택]으로 증명할 수 있는 '진화론'의 깔끔함 말이다. 아, 끝으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라는 책보다는 이 책을 권한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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