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투자자의 근황
무예 초보에게 가장 신나는 수업이 뭘까. 틀림없이 '겨루기' 수업일 거다. 무공의 원리를 배우거나 내공심법을 익히는 것도 물론 즐겁겠지만 바로 눈앞에 상대를 두고 실전을 치르는 흥분에 비할 바는 아닐테니. 겨루기에서 이긴 날은 이긴 흥분으로 진 날은 진 아쉬움으로 밤 늦도록 뒤척이겠지. 요즘 나의 밤들이 그렇듯.
투자 포트폴리오를 이렇게 맹렬하게 뒤섞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비록 몇 개월 안 되는 투자기간이지만 함부로 주먹을 내지르며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헌데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다 걸음이 꼬여 휘청거리는 모습이랄까. 간결하게 다섯 개로 종목을 추려서 긴 호흡의 투자를 이어가려 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포트에 열 다섯 개의 종목이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는 오래 째려 본 이름이 익숙한 녀석뿐 아니라, '얘를 왜 샀더라' 도무지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 낯선 녀석도 있었다. 맙소사.
남일이라면 질풍노도의 시기인 것 같으니 잘 추슬러봐라, 한마디 하고 말았을텐데 본인 일이다보니 꽤 위태롭게 느껴진다. 주화입마에 빠지느냐 아니면 정공법의 효용을 깨우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왕이면 후자의 길로 가고 싶다.
채권쟁이 서준식의 다시 쓰는 주식 투자 교과서
가투소 고수님께 선물받은 책이다. 작년 11월 10일에 선물을 받았으니 읽는 데 거의 100일이 걸렸다. 참으로 면목이 없다. 그래도 명절 전에 읽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음력으로는 아직 해가 바뀌지 않았다.
“사는 집을 빼면 전부 다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과격한 주장일지 모르겠지만, 난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간다. 채권 투자해서 얼마나 받나. 이거 저거 제하고 나면 1~2%다. 예금과 별 차이 없다. 그걸 투자하느니 저평가된 배당주를 사겠다.” -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2016.09.25 중앙일보 인터뷰 (https://news.joins.com/article/20632083)
내가 채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주식도 잘 모르는데, 주식쟁이가 되려는 사람인데, 채권이 웬 말이냐, 했던 거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기존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시장상황이 바뀌면, 즉 시중금리가 오르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하면 그때는 채권투자를 본격적으로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 몇 년처럼 채권의 금리가 1~2%대에 불과할 때는 경기가 많이 나빠져도 추가로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채권의 위험 분산 기능이 많이 약화되어 있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채권의 비중을 낮추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처럼 채권 금리가 많이 낮을 때는 배당수익률이 높은 채권형 주식을 매입해 주식 비중을 높여 부족한 현금흐름을 보완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281p)
책도 현재와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채권 투자의 메리트가 작다고 설명한다. 채권 투자가 빛을 발하는 때는, 경기가 활황인 고금리 시기에 만기가 긴 채권을 투자했는데 경기가 하방으로 꺾이는 경우다. 경기가 하강하면 주가는 하락하지만 경기 하강은 곧 금리 인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채권 시장에서는 기존 채권의 가격이 올라간다.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금리 변동에 의한 수익이 더 커지는데, 이를 '롤링효과'라 부른다고 설명되어 있다.
- "지금 지방채가 7% 내외, 각종 시중 은행 후순위채가 8% 내외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개인이 매수하기에 좋은 채권들이죠."
오래지 않아 한국은행은 5% 이상이던 콜금리를 2%로 급히 낮추었고, 이에 따라 채권 가격은 순식간에 급등했다.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낮추기 전에 채권을 매입한 투자자는 주식 투자로 입은 손실의 상당 부분을 채권 투자로 만회할 수 있었다. 보통 주가가 떨어지는 동안 채권 가격은 상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시는 시장의 혼란으로 그러한 메커니즘이 곧바로 작동하지 않아 채권 가격이 뒤늦게 상승했으며, 덕분에 채권과 주식 간 위험 상쇄 효과를 아는 투자자는 흔하지 않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65p)
"채권 펀드 매니저는 어둠의 자식들 같아." 친한 친구가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경기가 엉망이 되어 주가가 하락하고 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인데, 금리 하락으로 채권값이 상승해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이 좋아지니 채권쟁이의 표정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권시장의 호황기는 대부분 경기 하강기에 있어 그 친구의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 (165p)
265페이지는 2008년 금융위기 때의 이야기인데 채권 투자의 메리트가 잘 드러나 있다. 경기가 호황일 때 '인버스보다 채권으로 헷지하면 더 괜찮겠는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위의 지식을 써먹기 위해서 꼭 오래 기다려야만 하는 건 아니다. 투자의 세계는 글로벌하기 때문이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투자자의 위험은 현금흐름과 많이 연동되므로 현금흐름이 많은 자산(배당률이 높은 주식, 이머징 마켓 채권 등)에 비중을 두어 배분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주식 비중이 월등히 높은 투자자는 채권 부문에서 장기채나 초장기채를 보유하는 것이 적절하다. (283p)
이머징 마켓 채권이라면 현재로서도 투자 매력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 회사채 3년 BBB-의 수익률이 8.45%이기 때문이다. 이머징 마켓의 동일 등급 채권의 수익률은 이보다 높을 것이고, 투자자금을 차입해서 동원한다면 자기자본 이익률은 상당히 우수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채권을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가. 그것도 이머징 마켓 채권을?
일반 개인 투자자에게 권하는 채권 매입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증권사에서 채권을 매입한다. 대형 증권사 등의 창구에서 개인을 대상으로 각종 국공채, 여러 등급의 회사채 및 각종 신종자본증권 등을 판매한다. 안전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신용등급이 A 이상인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 좋다. 증권사의 HTS에서도 채권을 매입할 수 있지만, 전문성을 가지지 못했다면 채권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직접 창구로 가서 세후수익률은 얼마인지, 수익률은 복리로 잘 계산되어 있는지를 따져가면서 매입하는 것이 좋다. (94-95p)
친구 S와 함께 처음으로 브라질 채권을 매입한 것인 2015년 3월 27일이었다. 당시 헤알화 환율은 356원이었다. S는 8년 정도 남은 채권을 1억 원어치 매입했다. 그 전부터 투자해 손실을 봤다는 다른 친구가 손사래를 쳤지만, 금리가 13%로 높고 이자 관련 세금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134p)
주의해야 할 사항은 해외 채권에 투자할 경우 환율도 중요 고려 대상이란 점이다. 이쯤되면 그냥 주식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역시 이코노미스트보다는 애널리스트가 내 적성에 맞다.
주식 투자 교과서
채권 얘기만 했는데 이 책은 엄연히 '주식 투자 교과서'다. 채권 이야기가 길게 쓰여있는 건 채권 분석 관점으로 주식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 정수가 "5장 워런 버핏 투자법의 핵심, 채권형 주식 투자"에 기술되어 있다.
"채권을 살 때는 미래의 일을 정확히 예상할 수 있다. 9% 이자율의 10년 만기 채권에 투자한다면 10년간의 이자표에 9%에 해당하는 금액이 인쇄되어 있는 셈이다. 주식 투자 역시 이자표가 있는 무엇인가를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이자표에는 이자율이 인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자표에 금액을 인쇄해 넣는 것이 내 일이다." - 워런 버핏 (219p)
이를 위한 "주식의 기대수익률 산정 방식 5단계"가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산정 방식
1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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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형 주식의 현재 가격과 순자산 가치를 확인한다.
(예) 가격 2만 원, 순자산 가치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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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방식
2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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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ROE 추이 관찰 등을 통해 미래 10년간의 평균 ROE를 추정한다.
(예) 미래 ROE 평균을 8%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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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방식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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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예상되는 채권형 주식의 순자산 가치를 구한다.
현재 순자산 가치 × 미래 추정 ROE 10년 승수 = 10년 후 예상 순자산 가치
(예) 3만원 × 2.16(연 복리승수 조견표에서 10년, 8%에 해당하는 수) = 6.4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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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방식
4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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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순자산 가치를 현재 가격으로 나눈 값이 10년의 몇 퍼센트 승수인지를
찾는다.
예상 순자산 가치 ÷ 현재 가격 = 기대수익률 10년 승수
→ 기대수익률 10년 승수에 해당하는 수익률을 찾는다.
(예) 6.48만 원 ÷ 2만원 = 3.24
→ 10년 복리승수 조견표에서 3.24에 해당하는 수익률 = 약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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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판단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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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된 채권형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투자자의 목표 기대수익률보다 높을 경우
채권형 주식에 투자한다.
(예) 12.5%는 목표 기대수익률 15%보다 낮아 매입을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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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식의 장점은 각 주식의 기대수익률을 구할 수 있어 각 주식간 투자비교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라 모형을 단순화 시키다 보니 실제 투자시 중요한 고려 요인(부채비율이라든가 배당성향이라든가 자사주매입 등의 친주주 정책 같은)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나 그런 요소들은 차후에 다른 책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을테니 여기에서는 그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위 모형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이는 위 사례를 실제 투자 분석에 적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논의다.
위 모형의 가정에는 현재는 주가와 순자산 가치가 2만원과 3만원으로 다르지만, 10년 뒤에는 주가와 순자산가치가 일치됨을 전제하고 있다. PBR 0.66에서 PBR 1.0이 된다는 가정인 거다. 가격과 가치의 괴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소된다는 것이 가치투자의 전제임을 감안할 때, 위 모형은 내재가치가 순자산가치와 동일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10년 뒤의 주가를 추정하지 않고 10년 뒤의 순자산 가치를 그대로 현가한다)
직관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한 기업의 PBR이 역사적으로 0.5~0.7 수준을 왔다갔다 했다면, 위의 방식으로 분석하면 고평가가 될 것이다. 반대로 어떤 한 기업의 PBR이 역사적으로 4.0~5.0 수준을 왔다갔다 했다면 위의 방식으로 분석할 때 저평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위 모형을 적용할 때 해당 기업의 역사적 평균 PBR을 고려하여 "산정 방식 4단계"의 순자산 가치에 해당 PBR을 곱한 후 산식을 적용한다면, 보다 흥미로운 수치가 도출될 것이다.
복리 투자의 블루오션, 비상장주식[장외주식]
- 오래전부터 나는 주위 투자자에게 비상장주식 투자를 권유했다. (...)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싼 주식이 많다. 현재 수많은 상장주식 중에 버핏식 산정 방식 기준에 따른 매수 가능 종목을 찾기는 무척 힘들다. 반면 비상장주식 중에는 앞의 기준에 따른 매수 가능 종목이 있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익이 잘 나고 자산 가치도 좋은 상장주식은 이미 가치와 가깝거나 그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반면 비상장주식 중에는 자세히 살펴보아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저평가 종목이 다수 있다. (237-238p)
- 기업 재무제표 등 정보의 기본은 금융감독원 웹사이트 내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상장 기업뿐 아니라 비상장 기업의 감사보고서, 재무제표 등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비상장주식의 기본적인 분석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239p)
- 한편 2014년에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장외 거래 시장인 'K-OTC 시장(www.k-otc.or.kr)'이 생겨, 이곳에 등록된 꽤 많은 비상장주식을 증권사 HTS를 통해 쉽게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239p)
비상장주식 중에 꼭 하나 투자해보고 싶은 기업이 있다. 헌데 마음만 있고 투자하는 방법을 몰랐는데 책을 읽은 기념으로 투자 방법을 알아봐야겠다. 현재는 코넥스에 상장되어 있는데, 코넥스 기업은 증권사 hts에서 바로 매매가 가능한가 알아봐야겠다. (유전자가위 기업이다. 이 기업도 다른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독서의 힘이란!)
더욱이 비상장주식 시장이 저평가 기업의 보고라면, 따로 시간을 내어 보물창고를 뒤져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하다.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가슴이 설렌다.
서평을 마치며
초보 투자자로서 적정가치 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여러 책을 살펴보고 있다. 입문자를 위한 적정가치 구하는 법이 적힌 책으로는 <채권쟁이 서준식의 다시 쓰는 주식 투자 교과서>, <모닝스타 성공투자 5원칙>, <현명한 초보 투자자>,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이 자주 거론된다. 올해 투자 기업의 적정가치를 구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고 싶은데, 현재는 투자 기업의 업종에 따라 가치 산정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갈 길이 멀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 했다. 다음 책으로는 조엘 그린블라트의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을 읽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