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만큼 충격을 받고, 그 책으로 인하여 내 삶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책을 읽는 동안 그런 경험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책이에요'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책. 그 여정 중에 만난 이 책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저자는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 14권을 다시 읽고, 그 느낌들을 담았다. 고3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심코 뽑아 읽었던 '죄와 벌'에서 도입부의 첫 문장에 꽃힌 후 많은 질문을 던지며 읽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약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악덕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악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사회악을 완화하거나 중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죄와 벌]은 내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떠난 독서와 사색, 행동과 성찰,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그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었다.-p20
이 책이 그의 인생에 큰 역할 하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처음 읽었을때 보이지 않았던 사람을 주의깊게 보고, 다른 면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니 재독의 기쁨이 이런것인가보다.
[대위의 딸]은 줄거리만 보아서는 잘 모르겠는데,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연애소설을 위장한 역사소설이며 정치소설이란 말에 공감이 된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읽는다면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에 대한 글에서 그는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예전에 보았던 장면들에서 한 측면만 보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들려주는 말이 와닿았다.
문화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설의 아름다움도 역시 읽는 이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인가.-p140
영등포 구치소에서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분명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한데, 웃음이 나오기도 하니 저자에게는 조금 미안한 맘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곳에서 읽는것보다 훨씬 그 책에 빠져들수 있지 않았을까?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대해 그는 이런 평가를 내렸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이 자유와 존엄성을 파괴하는 전체주의 독재의 끔찍한 폐해를 어떤 문학작품보다 생생하게 '폭로' 했으며 어떤 정치학 논문보다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p 200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기 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스티브 존스의 [진화하는 진화론], 마크 리들리의 [HOW TO READ 다윈] 같은 책을 읽으라는 팁을 주었다. 저자가 인용한 [종의 기원]속 구절들을 읽어보니 어렵기는 하지만, 인간에게 어떤 진실들이 숨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책장에 꽂혀있는 [종의 기원]이 먼지를 털어낼 수 있을려나?
[공산당 선언]을 읽고 가슴이 설레이는 젊은이라면 반드시 다윈을 읽어야 한다. 세상이 원래 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인데 국가가 무엇 때문에 빈부 격차 해소나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역시 다윈을 제대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p 225
대학 입학 후 법과대학 학생들이 창립한 '농촌 법학회'라는 학회에 가입했는데, 그 학회 필독서 목록 첫 번째 자리에 있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후 지식인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으로 사는 지를 배웠다고 했다. 신입생 시절 만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책이 아닌가싶다. 그 책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의 기적을 일으켰고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딛게 하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결론을 진지하게 읽고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자기 자신이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이 될 필요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p316
[인구론], [맹자], [진보와 빈곤]등 새로운 책을 많이 만났지만, 중국 역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의 보물창고라는 [사기]와의 만남이 큰 의미가 있었다. 단순히 두려워만 하고 있던 [사기]에 대해서 서술형식에 대한 설명도 듣고, 가장 중요한 인물인 한고조 유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는 인간과 권력의 관계가 [사기]의 핵심주제라고 했는데, 그 안에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보이고, 현대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읽혀지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겠지.
그를 사로잡았던, 그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을 수도 있는 14권의 책들과의 첫 만남의 순간들부터 책을 읽는동안 느꼈던 수 많은 감동들, 가르침들을 듣는 시간 많이 행복했다. 문득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알쓸신잡'을 통하여 그의 박학다식함에 또 한번 놀랐었다. 지금의 그를 만든것은 책들의 힘이 많이 작용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고전들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던 것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책 한 권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이 책 속에 있는 책들을 이제 세상에 나가 길을 찾는 내 아들, 딸에게 읽히고 싶다. 물론 벌써 세상에 나와 있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도 읽어야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