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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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리뷰 총점 9.4 (6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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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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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희진처럼 읽기-내 인식의 성장을 알려주는 책 평점10점 | a*******5 | 2019.02.17 리뷰제목
<정희진처럼 읽기>는 내 인식의 성장을 알려주는 척도가 되는 책이다. 2014년 가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3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하고 무척 당황했다. 우선 저자가 언급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어본 책이 10분의 1도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해박한 지식의 향연처럼 느껴지는 글 속에 숨겨진 작가의 예리한 관점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 후 6개월쯤
리뷰제목

<정희진처럼 읽기>는 내 인식의 성장을 알려주는 척도가 되는 책이다. 2014년 가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3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하고 무척 당황했다. 우선 저자가 언급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어본 책이 10분의 1도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해박한 지식의 향연처럼 느껴지는 글 속에 숨겨진 작가의 예리한 관점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 후 6개월쯤 지나고 다시 읽었을 때 느낀 그 신기함을 잊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그 사이 저자가 언급한 책들을 여전히 읽지 못했는데 두어 권의 페미니즘 책을 비롯한 다양한 독서가 도움이 되었나 보다. 그 뒤로 가까운 책꽂이에 꽂아두고 가끔 꺼내 읽고 음미하며 생각하는 책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저자의 글에서는 배울 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책 속엔 저자의 노동이 있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의 어느 한 문장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 그만큼 부단한 사유의 노동이 들어간 책이다.


 


  작가의 독서 경험과 독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는 프롤로그 [나에게 책은]을 필사했다. 16쪽에 이르는 긴 프롤로그도 처음이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들을 깨닫게 한다.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통찰이나, '여러 권의 책을 한 권으로 읽는 사람과 한 권의 책을 여러 권으로 읽는 사람'이 있다는 말, '베스트셀러는 특성상 지적 자극을 주기 어렵다'면서 '대중은 균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책을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 생각하기를 권하'는 조언, '우리가 접하는 책들은 대개 서울 출신, 남성, 서양,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 건강한 사람, '학벌 좋은' 사람이 쓴 책'이라고 지적하며 '사회는 모두 이들 주류의 시각 안에 포섭되어 있다' 비판하고, '진부한 관점의 지당하신 말씀으로 종이를 낭비하는 책은 킬링타임을 넘어 지구 자원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라는 일갈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생각하도록 이끈다.

 

   그 후 저자가 언급한 책들을 한 권씩 읽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이런저런 책의 유혹에 이끌려 다니며 슬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밖에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제 책 내용의 상당 부분, 아마도 3분의 2이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 차이가 뭘까? 중요한 것은 '관점'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비판적 페미니즘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의 어느 면을 언급하더라도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어와 프레임의 관계를 다룬 박만규의 <설득언어>를 보면 '사고하기 위해서는 관점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말하는 관점에 따라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그 프레임이 다시 관점을 유도하고 말을 규정하는 거다. 그렇게 보면 비판적 페미니즘의 사고와 창의적 사고는 매우 가까운 지점에 있는 게 아닌가. 둘 다 기존의 프레임을 깨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페미니즘 필독서이자 비판적 사고와 읽기,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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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정희진처럼 읽기의 어려움 혹은 치우침에서 오는 불편함 평점6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m*****8 | 2016.02.06 리뷰제목
정희진이라는 저자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신문의 책 소개란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어 읽다.     나 역시 저자처럼 여성학, 패미니즘, 젠더, 군사학, 평화학 등 생소한 것에 도전을 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몸이 한 권을 통과한다는 ' 표지에 적힌 말처럼 저자의 독후감은 언급되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겐 불친절할 정도로 소개글이 없이 자신의 '관점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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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진이라는 저자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신문의 책 소개란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어 읽다.

 

  나 역시 저자처럼 여성학, 패미니즘, 젠더, 군사학, 평화학 등 생소한 것에 도전을 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몸이 한 권을 통과한다는 ' 표지에 적힌 말처럼 저자의 독후감은 언급되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겐 불친절할 정도로 소개글이 없이 자신의 '관점을 담은 말'만 쓰여 원저의 내용을 소개하는 다른 독서 감상글과는 확연히 불친절하다. 그래서 이 책을 그저그런 독서 일기 정도로 접근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울 것 같다.

 

 정희진은 책의 맨 처음에 있는 프롤로그와 좁은 편력부터 범상치 않은 자기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독서기가 통상적인 책 소개글이나 감동받은 것을 옮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서, 자신에 대한 '불친절하다' 혹은 '어둡다' 혹은 '어렵다'라는 평가를 미리 밝혀 놓고 있다. 나 역시 도전할 만한 자극이 없는 책은 읽다가도 덮어버리는 입장이라 저자의 생각에 십분 동감하며 다소 긴 서문을 읽고 1장부터 정독을 했다.( 어디 어떻게 다르게 읽었다는 건가 궁금해하면서.)

 

 이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글과 글이 서로 모순된 의견을 보이는 거나, 저자가 지나치게 넓은 범주를 다루려는 욕심이 앞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의 원래 글이 신문 칼럼임을 고려하면 글의 완결성이나 통일성이 미흡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몇 가지가 진정 불편했다.

 첫째, 정희진이 전제하는 남성은 가부장적인데다 위선적인 꼴통 남성만을 전제하여 자기 의견을 늘어놓기에 마치 있지도 않은 적을 상정하고 나무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가사 일을 돕는 맞벌이 남성이 극소수라는 전제, 여성의 능력을 자기 것인양 포장하는 파렴치한 지식인을 사례로 든 경우, 가사일을 끝까지 노동이라는 시선으로만 본다는 점, 여성의 위치를 어머니나 아내 혹은 여동생, 누이가 갖는 차이를 전혀 고려치 않는다는 점 등은 내내 불편했다. 이 시대의 남성들은 예전처럼 그 입지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넓지 않다. 지금 남성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변화된 현재애서 어떻게 역할을 찾아갈 것인가는 남녀 모두 고민할 문제이지, 여성의 인권이 곧 민주주의요, 평화의 시작이라는 말은 남성의 역차별이라는 결과를 가져올지 않을까. 지금은 남녀 공히 가정이나 사회에서 대등한 파트너십을 설정하는 것이 시대적 관건임을 다른 이들도 알고 있다. 다만 그런 앎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 남녀 모두 관습의 걸림돌이 있고 그것은 함께 타파해야할 요인인 것이다. 정희진은 자신이나 몇몇 선각자만 아는 양 답답하고 서운해하고 분노하며 의견을 피력한다. 이건 인간 관계가 같은 계급으로 둘러 싸인 지식인의 병패다.

 

둘째, 독서에 대한 지식인 혹은 먹물적 시각의 과잉이다.  저자는 어려운 글이 낯설고 좋고, 그런 문장을 이해하려면 문장에 사용된 인물이나 개념을 알아야 가능하다면서 '바바의 파농은 파농을 라캉으로 환원한 경우다'라는 문장을 이해하려면 세 사람의 사상을 다 섭렵해야 한다고 진지한 농(?)을 하고 있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독서는 결국 배경지식으로 전문성을 갖춘 자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행위일까. 그건 독서가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읽기다. 저자는 학문으로서의 읽기와 교양으로서의 읽기와 여가로서의 읽기, 실용으로서의 읽기 등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방법으로 다른 것을 배제하고 폄하하고 있다. 마치 이 책 내내 저자가 비판한 남성들의 배제의 정치를 본인이 범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저자가 외서나 번역본을 많이 읽은 탓일 수도 있지만, 지나친 명사형의 남용과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비문의 남용이다. 생각을 명료하게 하겠다는 강박관념이 말의 끝맺음을 서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풀어 말하지 못하고, 명사형으로 끝내는 건  서술할 능력이 없는 것이지, 사유를 위한 여백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그나마 대안은 24시간 긴장, 타인 존중, 말 줄이고 경청, 자기 몸을 작게 하기, 중단 없는 주제 파악......나부터"(140쪽)

이게 우리말 어법에 맞는가. 국어든 영어든 모든 언어는 무언가를 나열할 때는 그 단어의 형태를 동일하게 해야한다. 명사형으로 끝맺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나 구절의 구조가 동일해야 열거할 수 있는 것이다. '작게 하기'라는 명사형과 '긴장, 타인 존중, 경청, 주제파악'이 어떻게 대등하게 나열되는가. 이 책은 도처에 이런 비문들을 나열하여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이러면서 자기 글을 어렵다고 스스로 엄살을 부리는 건 난센스다. 모든 읽기는 정치적이라고 했는가. 그래서 저자는 규범에 맞는 글쓰기는  정치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일부러 문법을 파괴하고자 했던가. 궁금하다.

 

그러나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강점은 많다. 무엇보다 진지한 독서력과 그를 드러내고자 하는 진정성은 이 책을 정독하게 하는 힘이다. 또, 책 읽기의 의미가 '나'를 발견하고, 독서를 통해 위로받고 지침을 얻고, 삶의 외로움이나 우울을 견디게 한다는 것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도 공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학이란 학문이 이처럼 삶의 모든 것을 다루는 것임을 처음으로 알았다는 것, 그래서 여성 혹은 여성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즐거운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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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희진처럼 읽기 평점10점 | h*****7 | 2022.08.07 리뷰제목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책읽기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 제목에 ’~처럼‘이 붙어 있지만, 작가는 이렇게 읽는다는 뜻이지, 그것이 누구에게나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스스로 ’자극적인 책‘, ’이상한‘ 책만 읽는다고 했다. 각자 상황마다 선호하는 책이 있고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독자는 편협하다고도 했다. 이 말은 정희진이 읽은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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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책읽기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 제목에 ’~처럼이 붙어 있지만, 작가는 이렇게 읽는다는 뜻이지, 그것이 누구에게나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스스로 자극적인 책‘, ’이상한책만 읽는다고 했다. 각자 상황마다 선호하는 책이 있고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독자는 편협하다고도 했다. 이 말은 정희진이 읽은 책을 보며 위축감이 드는 우리에게 묘한 위로를 준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가 이렇게 읽는다고 해서 그것을 쫓아가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하는 차원에서 그중 관심이 가는 책을 몇 권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본문 내용은, <한겨레에 게재한 정희진의 어떤 메모의 일부이며 서평이자 독후감이자 칼럼이자 비평이라고 한다.

1장 고통 2장 주변과 중심 3장 권력 4장 안다는 것 5장 삶과 죽음, 이렇게 다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져 있고 읽은 책과 그 소회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항상 강조하듯이 책 내용보다는 읽은 사람의 생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프롤로그에서 독서는 혼자 강을 건너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책 읽기는 물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강을 건널 때는 온몸이 젖을 수밖에 없지만 작은 개천을 건널 때는 물방울 튀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깊은 강을 건너다가는 몹시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고, 작은 개울이라도 물이 불었을 때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비가 온다면 어느 물가를 건너더라도 온몸이 다 젖을 것이다.‘(p18)

 

 

 처음 본 순간에는 근사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내용을 읽고 나니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라 심층의 책 읽기에 관한 것이어서 더욱 공감했다. 여성학자로서 일반적인 독자와는 다른 책 읽기를 하고 있기에 사회적인 약자나 부조리한 제도에 대해 아파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으니 이러한 지론이 나올 만도 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책을 다 읽을 수는 어렵겠지만 관심 목록에 올린 몇 권의 책을 간단히 언급하며 리뷰하려고 한다.

 

 

1. 현기영의 순이 삼촌

 

학창시절 교과서에 익숙한 민족문학의 대표 작가다.

제목은 고향의 향수가 떠오르는데 비인간적인 현대사를 담고 있다는 대략의 내용만 알고 있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지면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직접적으로 다룬 문학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시 접하게 된 계기로 관심 목록에 올렸다.

 

 

2. 다자이 오사무의 이십세기 기수

 

 일본의 천재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언급도 있어서 반가웠다.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타입의 인간형을 좋아하지 않지만 읽는 이를 무장 해제시키는 그의 치열한 절망에 어깨부터 몸부림이 온다고. 그런데 검색해보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이십세기 기수는 나오지 않는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3. 이상문학전집1, 4

 

 이상 시인 하면 오감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난해한 시로 유명하다. ’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낯설지 않은 문장이다. 저자는 에이왁스(AWACS)를 언급하며 이상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수백 킬로미터 거리 밖을 볼 수 있어서 서울에서 평양 거리의 자동차 번호판까지 보인다는. 일제 강점기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던 민중, 그 상황에서 오감도가 나오고, 시에 은유, 메타포(metaphor)가 담겨있으니 난해한 건 당연하다. 더구나 일본어처럼 띄어쓰기도 없는 문장들이 반복되고 있다. 당시 시대 상황이나 시인의 시작 배경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시다. 1934년 이태준이 추천하여 30제 예정으로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를 시작했으나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중단되었다 한다. 그리고 오감도가 조감도(鳥瞰圖)‘의 오타라고 생각한 이들도 많았다 한다.

 

 

 <오감도에 대해 초현실, 절망, 환상, 난해, 공포, 아방가르드, 심지어 민족 독립을 위한 병법까지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지만 저자는 공포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역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다행히 시편 한 권이 있었다. 지금 읽어도 역시 온전히 이해하는 건 무리겠지만, 시를 다루고 읽는 1권이라도 읽어봐야겠다.

 

 

4. 프리모 레비의 살아남은 자의 아픔

 

 평균 생존 기간 3개월인 아우슈비츠에서 110개월 버티고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의 저서다. 수용소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많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아닌가 한다. 레비는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수용소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앓다가 1987411, 자택의 층계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한다.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

 

 

 정희진 작가의 책을 기회가 될 때마다 한 권씩 읽어나가고 있다. 평소에 익숙한 분야의 책만 읽기보다는 다양한 저자의 생각을 접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독서 내공과 글쓰기의 신장으로도 이어질 테니 말이다. 에필로그에는 다르게 읽기와 독후감 쓰는 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좋은 독후감을 쓰려면 다르게 읽기가 필수라고 했다. 물론 다르게 읽는다고 저절로 좋은 독후감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알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쓰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책을 읽었다고 해도 같은 독후감이 나올 수 없는 이유다. 나만이 쓸 수 있고, 저자가 쓰지 못했거나 쓰지 않은 부분을 써서 새로운 주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지런히 읽고 써야 그런 경지에 다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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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희진처럼 읽기-독자와 함께 성장하는 책 평점9점 | a*******5 | 2016.05.16 리뷰제목
두 번째 읽은 책이다. 1년 반 전에 읽을 때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걷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느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번에 읽고 대만족이다. 최근 이 책만큼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책은 없다. 독서법의 고전인  <독서의 기술>의 저자 모티머 J. 애들러가 말하는 '독자의 마음을 넓고 풍부하게 해주는' 책이다. 만일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리뷰제목

  두 번째 읽은 책이다. 1년 반 전에 읽을 때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걷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느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번에 읽고 대만족이다. 최근 이 책만큼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책은 없다. 독서법의 고전인  <독서의 기술>의 저자 모티머 J. 애들러가 말하는 '독자의 마음을 넓고 풍부하게 해주는' 책이다. 만일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기쁨과 만족을 누릴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만 읽는다면 독자로서 성장하지 못한다'고 한 애들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실감한다. 독서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나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

 

  이번 재독서로 발견한 생각할 거리를 몇 가지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인식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 한발 다가갔다는 점이다.

"지식은 인식자의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재현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순수한 보고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태도,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투사)다. 모든 발화는 객관적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칼 융은 사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그림자를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인류가 자신의 무의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연재해보다 훨씬 끔직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의식은 인간의 90%를 좌우하는 세계고 나머지 10%만이 의식의 세계다. 그런 만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재대로 알기 어렵다.    

 

  두 번째, 당파성에 대한 부분이다.

'당파성'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마르크스주의 용어라고 나온다. '계급 사회에서는 이론이나 예술이 불편부당이 아니며 계급적 이해의 제약을 받음을 말함'이라고 돼 있다. 저자는 "도그마, 관점, 당파성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종합과 객관화를 위해 보충 노력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다. 지성의 반대는 절충, 균형, 원칙, ... 이런 사고들이다."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다."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기존의 내 사고에 비춰보면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한다. 아직 전적으로 동의하진 못했지만 첫 번째 주장이 맞다면 이 두 번째 주장도 옳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마도 자신의 입장에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해온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볼 문제임에 틀림없다. 바로 내가 그렇다.

 

  세 번째는 여성주의, 여성학,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먼저 여성학이 간(間)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저자는 여성학 책을 통해 획득한 위치성(positionality)을 확보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위치성은 구조(역사, 사회, 상황, ...) 속에서 나를 알고 상대를 아는 방법'이라고 한다. 또 '여성학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관점, 세계관, 방법론'이라고도 한다. '여성학은 여성과 모든 타자를 종속 범주로 만들려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연구'라고 하는 정의도 들어있다.

 

  여성학의 관점은 내 현실 속에서 적용하며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 역시 일방적으로 주류(백인, 남성, 중산층, 정상인, 이성애자, 건강한 사람 등)의 시각에 포섭돼 살아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주류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내 위치성을 가지고 살고 싶다.

 

 넷째, 약자 혐오의 근원적 이유를 알게 됐다.

저자는 " 약자 혐오는 작금의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이제까지 인류(서구) 역사를 유지시켜온 기반이다"라고 한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이유다.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선함과 강함, 힘과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 선과 정의는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경쟁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종종 학대와 폭력의 대상이 되고 희생된다. 이들뿐 아니라 장기 농성 단식에 들어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일베가 보여준 혐오스런 행동도 있다. 우리사회에서 피해자는 약자다. 약자를 지키고 보살피지 못하는 나라는 아무리 최첨단 시설과 과학 기술로 무장하고 있을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야만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약자 혐오의 근원적 이유, 그것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임을 알았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쟁점들을 정리해보았다. 이외에도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지만 지금은 미처 다 소화시킬 여력이 안 됨을 인정한다. 내년쯤 다시 삼독을 하겠다. 저자가 소개한 훌륭한 책들 가운데 우선 내게 있으면서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게으름을 부린 책부터 읽어봐야겠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 등.

 

  첫 번째 읽었을 때 느꼈던 저자의 불편한 문체가 많이 익숙해졌다. 명사형과 문장부호가 많고 무엇보다도 사고의 전환을 요하는 역설적인 언설들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여성주의자는 기존의 언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의심의 꼬리표가 붙은 말들이 어떻게 편하게 읽히길 바랄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책이 좀 더 편하게 대중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1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3 댓글 16
종이책 다르게 읽고 쓰고 싶다면[정희진처럼 읽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l*****j | 2020.03.08 리뷰제목
책을 가까이 하면 독서에 대해 다룬 책에도 관심이 많아진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그냥 읽기에 대한 책이라 그렇다.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보겠다는 결심을 해본 적도 없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해본 적도 없다. 단지 빨리 읽고 싶다는 강박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 외엔 어떤 이름을 단 독서 이야기도 그냥 좋아서 읽을 뿐이다. 독서를 하니 독서법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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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가까이 하면 독서에 대해 다룬 책에도 관심이 많아진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그냥 읽기에 대한 책이라 그렇다.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보겠다는 결심을 해본 적도 없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해본 적도 없다. 단지 빨리 읽고 싶다는 강박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 외엔 어떤 이름을 단 독서 이야기도 그냥 좋아서 읽을 뿐이다. 독서를 하니 독서법에 대한 책이 관심 대상이 되고, 글쓰기를 하면 글쓰기에 대한 책에 자연스럽게 눈에 간다.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비슷한 내용의 책을 자꾸 구입해서 읽게 된다.

 

《정희진처럼 읽기》. 누구처럼 읽겠다는 결심을 하는 사람은 없을텐데 이 책은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읽다 만 이 책을 책장에서 찾았다. 저자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갖고 있는 걸 보니, '읽기'에 대한 책이라 구입해 놓은 수많은 책 중 한 권인 셈이다. 독서법, 읽기에 대한 책들에 진부함을 느껴 더 이상 구입을 하지 않고 다시 손에 들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다보니 다르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프롤로그가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책 내용보다 작가 자신에 대해 쓴 글이 더 흥미롭다. 그래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몇 번을 반복해 읽고 있다.

 

나는 '자극적인 책'만 읽는다. 예상 가능한 내용이나 가독성이 지나치게 좋은 책은 읽지 않는다._(P.15)

 

저자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책을 자극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그런 책은 여러 번 읽고 필사 하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한다. 목적을 가진 독서를 한다는 자체가 자극적이다. 덕분에 뭐든 손에 닿는대로 읽기 편한 대로 읽는 나 자신의 '읽기'가 부각된다.  별다른 자극을 주지 않아서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는 저자, 베스트셀러 위주로 접하며 그 중에서 골라 읽는 나. 공통 분모가 없는, 각자 다른 상황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읽는 베스트셀러는 내용이 절충적이거나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난 그저 게으른 독서가가 돼 버렸다.

 

《무소유》의 영향으로 지금도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 사람이 태어나 물건을 사고 관리하고, 나아가 집착하고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은 비참하다. 자기 자신, 사회, 지구를 위해 모두 좋지 않다._(P.32)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자극은 작가가 다르게 사는 사람이란 점이다. '무소유'는 알아도 실천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무소유 덕분에 최대한 단순하게 산다는 저자는 마치 딴 세상 사람같다.물건 사는 일을 제일 싫어하고, 운전 면허가 없고, 인터넷, 휴대 전화, SNS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심지어 여성 용품은 '당연히 없다'고 표현한다. 이쯤되면 정희진이란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다르게' 살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고, 한발 나아가 무소유 의지를 꺾는 강력한 환경의 유혹들을 저자 따라하기를 해서 무력화시키고 싶어진다.

 

나는 불교에 무지하지만 초기 경전 중 하나인 《숫타니파타》는 옆에 두고 읽는 책 중 하나다. 하지만 매번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사 노동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의식주 관리를 '우렁각시'가 계속 제공하는 줄 안다._(P.297)

 

불교는 모르지만 《숫타니파타》는 읽는 작가. 거기서 우렁각시 이야기를 꺼내는 작가.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이런 독특함 때문에 정희진이란 사람이 쓴 글을 읽는다. 관심은 관심을 낳는다고, '숫타니파타' 제목을 단 책을 벌써 '소유'해버렸다. 《정희진처럼 읽기》는 읽기에 대한 책이라 구입해 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읽기에 대한 책은 이제 그만!하고 결심한 순간 읽기를 그만 둔 것 같다. 지금은 정희진이란 사람이 쓴 책이라 읽는다.  다르게 읽고 쓰기뿐만 아니라 다르게 살라고 자극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신간이 나왔던데 '소유'해야 되나 고민이 많다.

 

이 책을 요약한다면 1)다르게 읽기와 2)자기 탐구로서 독후감이다. ... 좋은 독후감의 전제는 일단 '다르게 읽기'다. 단언컨데 모든 사람이 알 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나는 좋은 책이 반드시 좋은 독후감을 낳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독후감은 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과 읽기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책의 수준과 무관하다._(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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