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 분투기다. 무엇보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이 반가워서 구입한 책이다. 어쩌다 보니 몇 달이나 걸려 읽었다. 작가들의 습관, 성격 등 내밀한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유명한 작가는 물론 처음 알게 된 작가들도 수두룩하다. 이야기는 1장 쓸 수 없다 2장 그래도 써야 한다 3장 이렇게 글 쓰며 산다. 4장 편집자는 괴로워로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소제목만 보아도 글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그리고 부러움 약간과 위로까지도.
글을 쓰다 보면, 그것이 서평이든 원고든 술술 써질 때도 있지만 막힐 때도 있다. 유명 작가들은 어떨까. 보통 독자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런 고민 없이 술술 쓸 것 같은 작가들도 그런 고뇌가 있다는 것에 묘한 재미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고 혼자 써야 하는 것이 글이다. 여러 감정에 둘러싸여 마치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어떻게 글쓰는 삶을 살아가는 걸까.
‘빗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은 쓸쓸해도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제법 도움이 된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곳에서 태어난 탓인지 나는 비라는 녀석이 좋아서 미치겠다. 여름비, 겨울비, 봄비, 어느 계절에 내리는 비라도 저마다의 정취가 마치 포근한 솜처럼 기분 좋게 머리를 에워싼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는 보통 때보다 두 배 정도 글이 잘 써진다. 아니, 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p31, 호조 다미오의 <쓰지 못한 원고 중>)
그래도 잘 써지고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날이 있다는 건 작가에게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날만 있겠는가.
‘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 밖으로 나오다 이번에는 격자문에 머리를 내리친다. “으음, 으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따위 글을 써봤자 뭐가 된단 말인가. 그저 노동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 것을(p43, 요코리쓰 리이치의 <쓸 수 없는 원고> 중)
그럼에도 써야 하는 것이 작가의 삶이겠지. 기쿠치 간은 신문소설을 쓰던 중의 고통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신문소설만큼 뼈가 휘도록 힘겨운 일은 없다‘면서 작가 지옥 중 신문소설 지옥이 가장 괴롭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나는 아침에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신문소설은 한 회당 원고지 네 매면 충분하니 금세 쓸 듯해도 펜을 들기 전에 이미 두세 시간 허비한다. 다 쓰고 나면 일이 고된 만큼 두세 시간 넋이 나간다. 결국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을 전부 신문소설에 뺏겨버리니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펜이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의 괴로움이란, 뼈를 깎아내는 것처럼 견디기 힘들다.‘(p121)
작가들이 이럴진대. 묘한 위로가 되지 않는가. 벽에 부딪혀보고 결국엔 샘솟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렇게 환희를 느끼며 글쓰기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시간을 견디고 즐기다 보면 글쓰기는 늘게 되어있다. 그럴 거라는 희망을 가져 보자.
나쓰메 소세키 또한 신문소설을 연재하며 데뷔했으니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역시나 신문소설을 쓰는 동안은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정말이지
하루에 책을 읽을
시간이 얼마 안 된다.”(p122)
소세키는 문인의 생활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대 유명한 스타 작가였으니 막대한 부를 쌓았다느니 굉장한 저택을 지었다느니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고 한다.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면 이렇게 더러운 집에 살 턱이 있겠느냐, 이 집도 내 집이 아니라 셋집이다, 라면서 소세키는 반박을 한다. 그러면서 더 밝은 집이 좋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햇빛 쏟아지는 미닫이창 아래서 쓰면 가장 좋지만, 이 집에는 그런 장소가 없으므로 종종 양지바른 툇마루에 책상을 꺼내 놓고 머리에 햇빛을 흠뻑 받으며 펜을 든다. 너무 더우면 밀짚모자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글이 잘 써진다. 결국 밝은 곳이 제일이다.‘(p151)
평생 독서를 하고 원고와 씨름하는 작가들의 눈은 피로를 넘어 혹사당할 것 같다. 밝은 곳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싶다. 원고 쓰기에 몰두하며 툇마루에 앉아있는 소세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 직접 원고지에 손으로 써야 하는 수고도 상당했을 것 같다. 작가들의 삶의 배경을 보면 가난 속에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는 어떤 중압감이 항상 따라다녔을 것 같다. 행간에 그들의 무거운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왔다.
맨 나중 이야기는 편집자로서 고뇌를 얘기하는 작가들이 나온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부터 다니자키 준이치의 글을 싣고 있다. 이 중 편집자와 밀당을 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도저히 쓸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데도 편집자는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 찾아왔는지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령 원고지 세 장이든 다섯 장이든 좋으니 써달라고 매달렸다. 전혀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아쿠타가와가 세 장 쓸 정도면 열 장 쓰겠지만 지금 재료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아무리 해도 쓸 수 없다고 거절하자 편집자는 그럼 한 장이든 두 장이든 좋으니 써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아쿠타가와가 원고지 두 장으로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편집자는 원래 당신 소설은 짧으니 두 장이라도 제법 괜찮은 소설이 된다. 오히려 재미있는 소설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포기하지 않았다.‘(p233, 무로 사이세의 <아쿠타가와의 원고> 중)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는다.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줄다리기를 보는 듯하다.
이 밀당을 지켜보았던 무로 사이세이의 말은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얼핏 작가가 윗사람으로 보이지만,
작가가 무서워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편집자다.”
-무로 사이세이-(p237)
그런가 하면 편집자가 되어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와 기쁨으로 충만한 <편집 여담>을 얘기하는 마키노 신이치도 있다. 짧은 편지글 형식의 글인데 그 일부를 소개해 보겠다.
‘올 7월에 입사하여 잡지 『소녀』『소년』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지금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건 독자라는 많은 친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정원에 핀 꽃들이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일 만큼 싱그러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술술 풀릴 리가 없지요. (중략) 다만 언젠가는 노력의 결과가 진주가 되어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꼭 오리라고 굳게 믿을 따름입니다. 미래는 깁니다. 편집자로 활동하며 예술을 쌓아 올릴 작정입니다.’(p251, <입사의 변> 중)
‘정원에 핀 꽃들이 미소 짓는 것처럼’ 여겨질 만큼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결국엔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각오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결국, 글쓰기는 좋아서 하든 해야 해서 하든 작가는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독자는 그것을 즐길 뿐이다. 작품 너머의 내밀한 작가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