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을 빛낸 최고의 단편소설을 엄선한 이효석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책 소개에 이끌려 무작정 구매해 봤습니다.
한 권으로 여러 수상작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대상 수상작인 미조의 시대인데 길지 않은 내용 안에 등장인물의 감정 묘사, 내용의 기승전결 그리고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잘 드러나 있어 단편소설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상작품집을 읽다 보면 그 시대의 가장 치열한 주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현재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 가장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작품들에 녹아 있고, 시대상에 비추어진 인간 존재에 대해 타인이 사색한 흔적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수상작품집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이번에도 비록 해는 지나갔지만 그런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 즐거웠다.
모든 작품들이 버릴 것 없이 가치 있고 재밌었으나, 가장 공감한 작품은 최진영 작가의 '차고 뜨거운'이었다.
최진영 작가의 경우,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라는 책으로 처음 접했다.
작가 특유의 서늘하고 담담한 문체에 담긴 냉소적인 시선 끝의 위로를 좋아한다.
모든 문제에 한 발짝 물러선 듯한 관조적인 시선이 결국 말하는 것이 관계 속의 애정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어머니와 부딪히는 과정에서 가부장 사회에서 짊어진 무게를 복기하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주인공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불행을 모으면서 안심하는 사람'이자 '아빠의 어떤 부분을 닮아버린 사람'이다.
주인공의 세계가 넓어지고 어머니의 궤도에서 벗어나면서, 주인공의 세계는 주인공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구축된다. 그 중 하나가 아버지를 없애는 것이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존재는 무쓸모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실제로는 밥을 안치거나 빨래를 하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아버지 자체가 실용적이지 못한 존재로 생각된다.
'사고를 치고 행패를 부려도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므로 가족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존재'.
과연 성인, 또는 가장이라는 단어로 치환될 수 있는 존재인가?
주인공의 세계에 여전히 어머니가 남아 있는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일말의 감정들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랑할 사람이 어머니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주인공의 세계의 확장과 더불어 스러진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 간의 관계는 변화할 수밖에 없는데, 가족은 그 이름만으로 절대 틀어지거나 뒤집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된다.
자신의 감정을 딸에게 들이붓는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밑에서 자란 딸.
그 딸이 다시금 어머니가 될 때, 주인공이 하는 일은 어머니의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공주님'이라는 지칭, 말을 하는 시기, 아이를 키우는 법.
어머니의 방식이 키운 주인공은 본인이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그 궤도에 속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만 안다'는 말로 딸을 함께 묶으려는 어머니의 시도는 '엄만 나 몰라. 나도 엄마 모르고'라는 주인공의 말로 실패한다.
주인공에게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지칭되는 것은 '이모네 가족'이다.
잠시간 이모네에 머무르면서 다정한 가족을 접하고 융화되었던 기억은 주인공의 가족이 '당연한 형태'가 아니었다는 깨달음과, 그 다정함을 갈망하는 계기로 화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모네 가족이 기억하는 자신과, 어머니가 기억하는 자신 사이의 괴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비로소 주인공은 누군가의 세계에 편입된 자신이 아닌, 스스로 존재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닮기를 거부하는 그 사람은 그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억할 뿐인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그 사람을 구축하는 것은 결국 내 편협한 시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각자의 세계는 각자의 생으로 존재하고, 그 생에서 없애버려야 할 만큼의 누군가보다는 닮고 싶은 누군가가 되고 싶다.
올해 연말은 연말 같지 않은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비로소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매년 하나의 루틴처럼 수상작품집 하나를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다시금 시작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