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 죽음으로 달려가는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삶과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까. 그 어떤 것보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다른 것보다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개념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는 없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까?
죽음이 있어 삶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건 맞지만 그것과 더불어 따라오는 두려움과 막연함이라는 감정은 떨쳐내기 힘들다.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삶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도 역시 쉽지 않다. 본질적으로 의미없는 삶 속에서 이유를 찾아내기란, 그만큼 얼마나 본인을 이해하고 있으며, 여러 시간동안 고찰을 해봐야 드러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조금이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죽음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냉철하게 다루며 평소에 한번쯤은 궁금했을 법한 질문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답해준다.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의 윤리, 도덕적 문제나 종교적 의무로써의 이야기가 아닌, 그 자체를 심도있게 들여다보며 실체와 점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죽음이란 어떠한지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삶의 이유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며 죽음과 삶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는 많이 높아진 추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기피하는 주제가 아닌, 자기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수단이자 삶의 동반자로써 더욱 널리 인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 있어 의미를 잃었더라도, 다시 방향성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무렇게나 쓰여진 마무리가 아닌, 나만의 마침표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한 번은 이 책으로 자신에게 닥쳐오게 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매우 무겁고, 우울한 주제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질 수 있겠으나, 이 책에서 언급된 건, 남은 인생을 잘 보내기 위한 생각을 해보면서 죽기 직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기에 좋은 강의로 인생강의를 마주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는 도서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이란무엇인가#웅진지식하우스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10주년 기념판!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영생이란 절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결코 죽음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요소로 이루워져 있다는
이원론과 육체만 존재하는 일원론이다. 이는 인간은 특정한 형태의
물질적 존재에 불과하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고하고, 의사소통하고,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감정을 느끼고,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사랑하고, 꿈을 꾸는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은 육체다.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다.
정신은 육체와 다른, 육체를 초월한 존재다.
플라톤이 말하는 형상은 영원하며 소멸하지 않는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순함이란 하위 구성물로
이뤄지지 않는 순수한 존재를 의미하는 형이상학 용어다.
정신이 육체가 만들어내는 조화와 같은 것이라면, 악기를
망가뜨려 화음을 파괴할 수 있듯이 육체를 망가뜨려 정신을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물체를 분해해 다시 조립한다고 해서 처음과 똑같은
물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심판의 날에 내 육체가 부활했다고
해도 그건 내 몸이 아니다. 이것이 육체적 부활에 대한 피터
반 인와겐의 지적이다.
인간의 몸에서 어느 부분이 핵심인 걸까? 만약 뇌를 다쳤다면
우리는 똑같은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을 인격적 동일성에서도 발견할
수도 있다.
인격이 같다면 동일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믿음, 욕망,
기억 등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생존 그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진화하는 동일한 인격도 아니다. 요컨대 내가 원하는 건 지금
나와 '비슷한' 인격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는 것이다.
죽음이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우리는 죽음이 죽은 사람에게 절대로 나쁜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죽음이 나쁜 것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한테다.
살아 있다면 얻을 수 있는 삶의 좋은 모든 것들을 박탈해버리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하는 설명은 오늘날 '박탈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뭔가를 잃어버려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는 상태를 '상실'이라고
한다면, 아직 갖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 갖게 될 상태는 '쉬모스'
라고 정의하기로 한다. "왜 우리는 '쉬모스'보다 '상실'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가?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 매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기억과 마찬가지로 관심, 욕망, 취향 역시 그렇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관심과 욕망도 변한다.
미래에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존재라면, 그 사실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쾌락주의에서 행복이란 쾌락을 경험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첫 번째 태도인 '부정'은 일단 치워두고,
두 번째 태도는 죽음에 관한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에 따라 살아 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세 번째 '무시'는
죽음을 부정함으로써 오류를 범하거나 이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 말고,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즉, 죽음을 아예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직 죽음의 예측불가능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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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물리주의는 아직까지 의식의 존재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이원론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아직까지 어느 관점도 우월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양측 모두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_p67
무척 궁금했었던 예일대 명강의,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 하나의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상태가 죽음인가에 대한 물질적인 부분위주의 일원론과 영혼이 있다고 믿는 의견에 기인한 이원론, 그리고 만약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 영속성이 가져오는 계속 되는 질문들.... 만약 윤회라면 이전 생의 기억을 망각한 그 다른 존재가 과연 나인가 하는 의문들...
만약 내가 아니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합리적인 물음표...
죽음이라는 것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존재한다’ 라는 것의 의미, 그 범주, 육체적/인격적 차원의 정체성, 시간 속의 우리..... 등
죽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에서 인간의 실체, 존재성은 무엇이며, 영혼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등 때론 철학적으로, 과학적인 예도 들어가며, 그리고 자주 인문학적인 토론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정답은 없다. 이 책은 ‘개론서로 다양한 주제들로부터 이 책의 내용보다 훨씬 더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으로 읽는 이들에게 풍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듯하다.
어렵게 생각되었던 제목이였지만, 의외로 쉽게 설명되어 있었고, 어떤 관념이나 지식에 대하여 깊은 생각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어떻게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하고 추론해서 논점에 이르게 되어야 하는지를 어렴풋이나마 배운 독서였다 - 이런 스승에게서 배운 학생들이 참 부러워지는 부분이였다.
우리가 하루에도 적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내용들도 많아서 몰입감 있게 읽어갈 수 있었는데,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죽음의 필연성,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자살에 관한 내용까지, 생각이 쭉 이어지도록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막연히 나의 존재, 정체성에 머물러 있었던 생각을 과감히 객관적으로 해체하게 되는 계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 말하고 싶다.
_나와 아무 상관없는 존재가 ‘1000년 뒤의 나’라고 해서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내 이런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아마도 “죽음으로부터 내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생존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것이다. 영혼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해도, 그 영혼이 단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를 얻어낼 수 없다._p233
_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감정은 두려움도 분노도 아니다. 대신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일 뿐이다. 물론 분노와 마찬가지로 감사 또한 특정 인격체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거라면, 그리고 비인격적인 우주를 인정한다면 감사 또한 적절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다행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_p423
_이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적어도 한 번은 신들처럼 살아봤으니”라는 휠덜린의 말에 동의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_p442
*관심있던 도서였는데, 웅진지식하우스 서평단 모집에 당첨돼 제공받았다 :)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어도 살 수 있을까? 죽음은 '옳은 것'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번 쯤 죽음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해 봤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이야기해 볼 수는 없을까. 셸리 케이건은 죽음에 대해서 같이 한 번 논의해 보자 말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이 책은 '죽음'이라는 주제로 예일대 철학과 교수인 셸리 케이건이 진행한 소크라테스식 강의다(물론 혼자서 제시하고 반박한다. 그의 스타일이 그렇단 말이다). 교양 수준의 강의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깊은 이론이라든지 어려운 말들이 등장하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다. 죽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철학적 논의들을 논하며 논리적으로 사고를 뻗어 나간다. 하지만 그저 가볍게만 다루진 않으며 독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계속해서 묻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곳곳에 스며있는 그의 유머까지.
책의 전반부에서는 죽음의 '형이상학'을 다룬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을 죽음이라고 정의하는가?" 따위를 묻는다. 말 그대로 죽음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제논의 역설을 떠올리면 되는데, 그 대상이 죽음으로 바뀐 것이다. 먼저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 지로 시작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논한다. 여기서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원론, 육체 자체로 인간이라는 일원론과 물리주의 관점, 영혼 자체가 인간이라는 유심론적 관점을 제시하며 각각의 주장을 전달한다. 특히 플라톤의 <파이돈>을 언급하며, 사후세계에 관한 소크라테스와 제자들 간의 대화들을 다시 뜯어보며 논리적 전개를 재구성해 본다. 그러면서 케이건은 자신의 주장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영혼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며, 물리주의적 관점을 가진다고 말한다. 우린 어떤 주장이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후반부에서는 '가치론'에 주목한다. "죽음은 왜 나쁜 것일까?" "영생은 좋은 것일까?" 하는 질문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왜 죽음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지, 영생이 과연 좋은 것인지,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와 같은 논의를 한다. 죽음에 대한 논의를 쌓아 올리면서, 13장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에서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을 한다. 어찌 됐든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케이건은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신중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을 운명이기 때문은 아니다. 객관적인 차원에서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목표가 매우 '많이' 있고, 그런 목표들을 달성하는 게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에 비해 우리의 수명이 너무 짧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전해야 할 목표가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이루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는 식으로 인생을 허비할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결국 이 짧은 삶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떤 목표가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으며 의미 있는 것인가?", "우리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셸리 케이건은 단순한 죽음의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결국 '삶'에 대한 논의이라 생각한다.
사실 논의하면 할 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그의 논의는 풍부하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삶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이자 이후이기도 하지만, 논의를 이어간다면 죽음 이전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논의를 이어가다 보면 사색에 빠지게 하는 핵심적인 질문들을 마주한다. 가령 "영생을 누려도 좋을 만한 형태의 삶이 존재하는가?", "죽음은 삶이 줄 수 있는 축복을 앗아가기 때문에 나쁜 것이지만, 삶이 나쁘다면 죽음은 오히려 좋은 것이지 않을까?" 같은 것이다. 이 질문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셸리 케이건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이란 하나의 답을 찾아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이런 질문에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철학이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사고하는 과정 자체 말이다.
그저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죽음은 단순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고 철학적으로 사유하다 보면 인간이 왜 특별한 존재인가를 넘어서 '왜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근거들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논의에서 살펴봤듯이, 근거를 쌓아갈수록 또 다른 모순에 부딪힌다. 케이건도 완전하고 탄탄한 논리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의 주장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그렇게 케이건은 가치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장 "자살,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에서 자살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를 논의한다. 결론적으로 의무론과 공리주의의 대립을 통해서 서로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음을 말하고, 시원한 이론적 답을 내리진 않는다. 그래서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심사숙고하고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자발적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자살을 선택한다면 존중해줘야 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원함을 기대하기보단, 우리는 논의 자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철학은 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케이건은 공리주의와 의무론이라는 대표적인 도덕적 관점에서 자살을 들여다 보길 시도하고 있지만,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문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자살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 쉬운가 하는 것이다. 답을 찾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던지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삶을 가진 사람이 자살한 상황을 보고, 왜 자살을 했을까 혹은 자살은 나쁜데 왜 자살했을까? 하며 묻기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길래 자살을 선택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자살을 어느 정도 용납하는 개별적 사례를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이론적인 논의만으로 우리가 자살은 무조건 나쁘다고 외치고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살의 정당성을 논의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자살은 물론 나쁘다. 지양해야 할 행위다. 우리는 이미 이를 생물학적으로나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죽음을 떼어낸 상태로 죽음을 논하기에는 다소 장황하고 의미가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우리는 의식적으로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서도 자살은 안되지만 무의식적으로 삶을 포기할 의지를 인식하고, 또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죽음은 항상 곁에 있다.
결국 내가 죽음에 대해 논의하면서 도달한 점은 이것이다. 우리 삶과 사회는 죽음에 대한 논의와 같다고. 케이건이 말했듯이 죽음을 생각하며 우리 삶의 가치를 묻는 것도 옳지만, 우리가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논리구조, 또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이 넘쳐났듯이 우리의 삶과 선택들은 상당한 사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의미를 찾는 것처럼, 모든 일들이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위해서, 또 그런 사회가 되길 원한다면 그 끝(죽음 혹은 파괴)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죽음이란무엇인가 #셸리케이건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