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해가 흐른 일인데도 처음 제주공항을 나서던 날을 기억한다. ‘어, 우리나라 맞아?’ 제주를 매체로만 접했던 제알못(제주를 알지 못하는?!)이었던 내게 그 곳의 첫인상은 이국의 도시같았다. 이후 몇 번의 제주 여행 후 그 곳은 쉼을 떠올리는 장소가 되었고, 그런 이유로 언젠가부터 막연하지만 제주 1년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이루어 보겠노라 다짐도 하고 있다(물론 제법 훗날의 일이겠지만).
책은 저자가 만난 아홉팀(하나의 인터뷰에 2~3명이 함께 하기도 했다)의 제주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몸 쓰는 일을 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해요 - 일용직 날일 하며 사는 ‘헬프브라더’, 김태호
2. ‘하루 네 시간 노동’을 실천하며 행복을 되찾았어요 - ‘무명서점’ 서점원, 정원경
3. 더 가지지 않고도 충만하게 사는 법을 발견했어요 - 리조트 룸메이드, 박은경
4. 불확실성을 즐기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요 - 프리랜서 작가 부부, 이힘찬·정희정
5. 버티는 삶이 아니라, 누리는 삶을 살아요 - ‘냠냠제주’ 공동 대표, 소다미·킴키·토끼
6.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나답게 사는 법 - ‘나답게 살기’를 실천하는 회사원, 전로사
7. 떠나고 나서야 내 삶이, 내 꿈이 나를 찾아왔어요 - 가파도 그리는 화가·캘리그래피 작가, 우선희
8.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사는 법 - ‘소리께떼’ 부부공연단, 박석준·최유미
9. 주말과 저녁을 포기하기 싫어서 방법을 찾게 됐어요 - 목수를 꿈꾸는 월급 약사, 문경록
그들의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다. 리조트 룸메이드, 서점원, 작가, 화가, 회사원, 약사 등 그들이 가진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순례자의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난 연인과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제주에 정착한 이도 있고, 서핑을 하러 한 달 정도 제주에 머물고자 했다가 3년째 살고 있는 이도, 그리고 건강이 나빠져 자신을 챙기기 위해 여행을 왔다가 정착하게 된 이도 있다. 제주에 오게 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따. 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항상 머릿속을 무겁게 하고 이리 저리 고민하는 나와 달리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친근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무엇보다 제주에는 좋은 일만, 행복한 일만 가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매일매일이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담은 바다, 그리고 시원스레 스쳐가는 바람소리로 충만해 고민 따위는 파고들 틈이 없다 말하지 않아 좋았다.
“불안감보다는 ‘서프라이즈’에 대한 기대를 안고 살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주의 삶은 힘드니까요. 대신 우린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훤씬 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어요. 서울에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잖아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져요. 돈과 상관없이.” p.101
“어떤 느낌이냐면요. 바다에서 한라산까지 기어가는 느낌이에요. 우리에겐 ‘일사천리’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아요. 겨우겨우 한 발짝씩 가는데, 근데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달팽이처럼 성장하고 있어서, 즐겁게 기어가고 있어요.” pp.118-119
많은 사람이 쉼을 떠올리는 제주에서 그들은 낯선 곳에 익숙해 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자신의 기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제주에 산다 해서 모든 것이 행복해 지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기준을 찾았고, 그 삶의 기준을 ‘제주’라는 공간에서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 중 6번째로 소개된 회사원 ‘전로사’의 이야기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왠지 자신이 속한 곳을 훌쩍 떠나 낯선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라든가 화가처럼 예술적 자질이 있어햐 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던 내게 제주에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그녀의 모습은 익숙해서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저자 역시 그녀를 만나 카페나 제과점, 소규모 공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만이 ’제주스럽다‘라고 생각한 편견(p.141)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대체로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니는 회사에 사표를 쉽게 내던지지 않는다. 사표를 던지지 않으니 이주를 하거나 이사할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제주에서 살기 위해 이력서를 냈고, 새로운 공간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제주에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산 지도 어느새 7년이 되었다. 안정적이지만 모험도 즐길 줄 아는 이였다. pp.130-131
“그렇게 생각하면 또 저는 참 다르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중략)..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기질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안정적인 바운더리 안에서 가장 나답게 사는 것. 그게 ‘나’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주에서 더 열정적으로 살고 있어요.” p.141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이루어 가는 것, 어쩌면 이 책이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것이지 않을까?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처럼 누구나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책 한 권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마지막에 사실 ‘제주’가 필수는 아닌 것 같다는 글을 적어놓은 대목을 읽으며,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살고 있어도, 우린 또 그곳에서 장점을 발견하며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지 않았을까? 사실 제주가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 있어야 할 필수장치는 아닌 것 같아. 우리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p.202
*덧붙이는 말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받아보면 종종 출판사에서 짧은 메모나 알림 문자를 함께 보내주곤 한다. 이 책 역시 짧은 글('멋지게 손 편지나 메모를 쓰고 싶지만 발과 같은 손'을 가지셨다는 재치 있는 ㅎㅎ)이 함께 도착해 따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
*나에게 적용하기
제주 1년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것(적용기한 : 제주도 갈 때 까지!)
*기억에 남는 문장
“결국 인생은 혼자 힘으로만 살 수 없고, 서로 돕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어요. 특히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가 도시를 떠나 제주에 살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입닌다. 뭐든 혼자 책임지고 해결해왔던 제 인생의 전환점이죠.” p.57
길 위에서 쏟았던 눈물의 이유는 ‘고마웠기 때문’이었다..(중략)..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수많은 이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p.67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안정적이고 즐거운 삶’이다. 누구나 꿈꾸는 바람이자 더 특별한 것도 없는 보편적인 희망. 우리는 사실 바로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 그 꿈에 가닿기 위해 여러 가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는 것이다. p.188
안정적이고 즐거운 삶을 위해 하루하루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p.188
“설거지하기 전에 달 보고 와.”..(중략)..8초 정도의 여유를 가지면서, 나는 이 남자와 결혼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함께 견디고, 그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또 챙겨주는 것. 함께 인생을 걷는 사람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p.207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