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현 님의 장편소설 <일만 번의 다이빙>
멀쩡한 이름 대신 훈련할 때는 언제나 ‘박풍덩’이라 불리는 주인공, ‘박무원’
남자 다이빙계의 에이스자 모두가 인정하는 다이빙 천재 ‘권재훈’
여자 다이빙계 유망주며, 무원과 재훈의 든든한 다이빙 동지 ‘나은강’
어릴 적부터 했던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힘들어하던 무원을 다이빙이라는 종목으로 이끈 ‘김기재’ 코치
오직 돈이라는 논리로 기브앤테이크가 정확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마음 따뜻한 편의점 누나 ‘구본희’
주인공 무원은 남보다 늦게 다이빙을 시작해 하루 150번은 뛰어야 한다고 결심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늘지 않는 다이빙 실력에 고민이 많다.
훈련은 언제나 힘들고, 다이빙대 위에서는 늘 혼자였지만 그는 외롭지 않다.
그에게는 남몰래 꽃무늬 수영복을 선물해 주며 응원해주는 은강이 있고, 사춘기를 겪으며 다리보다 허리가 길어지는 신체에 불안해하는 그에게 다이빙 선수한테 최고의 신체 조건은 긴 허리라며 격려해 주는 재훈이 늘 함께 해주기 때문이었다.
살갑거나 다정하진 않아도 언제나 무원을 응원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던 재훈이
언제부터인가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고 어딘가 날카로워진 재훈, 무원과 재훈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전국 체전과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기재 코치는 3미터가 주 종목인 무원에게 10미터에서 다이빙을 하라고 주문한다. 그것도 재훈과 같이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을 하라고 한 것이다.
다른 때와 달리 예민하게 날을 세우는 재훈과 함께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싱크로나이즈드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다이빙 플랫폼 끝자락에 위태롭게 매달린 것 같았던 재훈과의 대립이 계속되던 어느 날 재훈은 다이빙을 하며 크게 다치게 되는데…
다이빙대 위에 서면 나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다.
다이빙풀을 메우는 새파란 물, 다이빙대를 올려보는 사람들, 천장에서 반짝이는 조명, 그리고 뛰어내리는 순간에 내 눈 안에 담길 낙하 속도와 벽면의 무늬와 관중들의 표정까지. 그 모든 것은 환희와 설렘인 동시에 우려와 공포이기도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뛰어내린다.
빗속으로, 눈 속으로, 안개 속으로, 태양 속으로, 하다못해 보이지는 않으나 피부로 느껴지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이로 몸을 날린다. 뛰어내림으로써 나 자신을 증명하고 후퇴와 성장을 반복하고 있다.
일만 번의 다이빙, 9p
책을 읽으면서 전설적인 다이빙 선수였다는 전 미국 국가대표 그렉 루가니스 선수의 올림픽 영상도 찾아보고, 도쿄 올림픽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우리나라 우하람 선수의 영상도 보았다.
아파트 10층 높이라는 27m 높이에서 다이빙하는 하이 다이빙 영상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2미터도 안 되는 내 키를 생각하면 3미터도 10미터도 엄청난 높이다.
흔들리는 스프링보드를 걸어 나갈 때, 까마득하게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10미터 플랫폼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발끝으로 서 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매일 뛰어내리며 연습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사이에서 매번 두려울 것이다.
적응돼서 덜 무서운 거지. 두렵지 않은 다이빙은 이 세상에 없다.
일만 번의 다이빙, 110p
소설 속 재훈의 말처럼 내 몸을 아래로 던져 뛰어내리는 다이빙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끊임없는 연습으로 다이빙대의 높이와 발끝의 감각, 물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공기의 저항과 물살의 느낌에 적응하고 반복하여 그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
어떤 일이든 두려움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정상을 목표로 삶을 살아간다.
그 정상을 위해 나는, 그리고 권재훈은 하루 일만 번의 다이빙을 각오했다.
우리의 삶은 쉽지 않았고 누구나 그렇듯이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경쟁은 우리를 강하게도 만들지만 때로는 한없이 우리 스스로를 하찮다고 깍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함께 땀을 흘리고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아는 동료가 있기에 추락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만 번의 다이빙, 219p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고, 꽃길만 걷는 인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하는 친구,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내 앞에 닥친 시련 앞에서도 다시 한번 힘을 내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 무원이 다이빙도 재훈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힘 역시 재훈, 은강을 비롯해 부모님, 구본희 누나, 약수터 할아버지 등 그의 곁에 있던 친구들과 이웃 덕분이었다.
한편의 따뜻한 영화를 본 듯한 느낌, 10대 다이빙 선수들이 주인공이었지만 훈련 과정, 갈등, 힘듦을 넘어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인생의 다이빙 대 위에 서 있는, 용기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