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언니 의 활약으로 잠시나마 즐거웠던 올림픽이 끝났다. 4강에서 만난 브라질은 공격수 한 명이 도핑 문제로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분명 강한 상대였고, 특히 눈에 띄는 16번 선수 페르난다가라이 선수는 내가 봐도 무서울 정도. 혹시 이 선수도...? 하는 의심을 나만 한 것은 아니겠지? ㅎㅎ
그런 궁금증에서 보게 된 이 책에는 도핑의 역사부터 시작해 약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꼼꼼히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옛날에는 금지 약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기록 상승을 위해 장려(!)하기도 했지만 옌센이라는 사이클 선수가 약물 복용으로 사망하면서 약물 규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후에 '가짜 뉴스'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스포츠 선수들은 기량 향상을 위해 약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e-스포츠 선수들도 집중력을 핑계로 약물 복용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유명 걸그룹 멤버가 해외에서 들여왔다는 마약도 도핑 약물로 많이 쓰이는 '애더럴'이었고,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강남 지역에서 많이 팔린 '공부 잘하는 약'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인간의 욕망과 약의 일시적인 '반짝' 효과가 결합한 도핑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약물 도핑 외에도 자기 혈액을 뺐다가 다시 집어넣는 혈액 도핑,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계기로 각광받고 있는 고지대 거주-저지대 훈련과 수영복으로 촉발된 복장 기술 도핑, 수술로 인해 컴플렉스를 제거하거나 부상을 회복하며 논란이 따르는 수술 도핑, 마지막으로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모호한 간성 선수와 트랜스젠더 선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전해주고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나처럼 TMI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흥미로운 도핑의 세계에 빠져보자.
『도핑의 과학』 최강, 동녘, 2021
이번 여름 모두의 관심사였던 올림픽이 막을 내린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지금,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스포츠 스타들이 대중의 부름에 힘입어 매체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선수들은 많은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코로나로 인한 국민들의 상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올림픽과 같이 규모가 큰 대회일수록 경기와 선수들에게는 더욱이 공정성이 요구된다. 브라질의 배구선수 탄다라 카이세타의 도핑 의혹(검사 결과 사실로 밝혀진)으로 여자 배구 4강전에 출전이 불발된 것은 4강의 상대팀이었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올림픽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눈 앞에 두고 도핑으로 인해 좌절하는 선수들은 줄곧 있는데, 어째서 도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스포츠계에서 불법으로 취급받는 도핑을 자꾸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이 질문들에 답을 줄 수 있을뿐더러 공정성이라는 잣대가 지닐 수 있는 모호함에 대하여 고민할 거리를 준다.
도핑과 관련한 책이다 보니 도핑으로 인해 메달을 박탈 당하거나 출전 정지를 당한 스포츠 스타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미국의 야구선수 크리스 데이비스, 미국의 수영선수 릭 데몬트, 북한의 사격선수 김정수, 캐나다의 육상선수 벤 존슨 등 다양한 스타들과 그 사례가 등장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불법적으로 약물을 목용한 선수가 있는 반면 릭 데몬트는 천식약을, 안두레아 라두칸은 감기약을, 임석진을 한약을 복용해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이 나왔다. 도핑 의혹에 휩싸인 선수들은 대개 사기꾼 혹은 약쟁이로 불리며 아주 부정적인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도핑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을 잠시 덜어야 함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도핑 전력이 있는 선수를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일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고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다려온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선수들과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p.49
도핑의 방식에는 불법 약물을 복용하는 것, 크림을 바르는 것, 자전거나 수영복 등 도구를 첨단화하는 것, 체내에 타인 혹은 본인의 피를 주입 시키는 것 등 아주 다양하고 방식이 진화됨에 다라 기준 또한 세세해지고 엄격해져 간다. 이렇게 도핑이 규제되는 이유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에 위배 되기 때문이다. 스포츠 정신이란 무엇일까? 초창기 올림픽의 신념은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올림픽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 1896년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말이다. 또한 직업이 아닌 취미로 운동을 하는 것을 강조하여 대부분의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본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함께 강조되는 것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는가? 누가 진정 기억되어야 할까? 선수들이 노력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도핑은 엄연히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선수들을 마냥 비난하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태도와 그들이 처한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책은 유명 스포츠 스타들에 대해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 트렌스젠더, 간성 운동선수 등 상대적으로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IOC 전 의무위원회장 아르네 융크비스트의 말을 인용한다.
"이런 경우는 매우 소수이지만, 우리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p.311
또한 대중미디어에 비춰지는 소위 완벽한 몸매로 인해 신체이형장애(자신의 외모에 눈에 띄는 흠이나 결함이 있다고 집착하는 질환)를 앓는 이들이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지적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실을 되외시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함몰되지 않는 균형 잡힌 자세이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많은 무게를 두며, 때로 실수하고 넘어지는 선수들도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p.316
선수들과 대중들이 모두 건강한 스포츠 문화를 즐길 수 있으려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정말로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의 성취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선수들의 순위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들이 열심히 노력한 것, 나아가고자 쏟은 시간들, 좋지 못한 결과에 낙담하며 보낸 날들을 꿰뚫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