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의 과학> 최강, 2021, 동녘사이언스
치열한 경쟁이라는 말도 부족해 ‘초경쟁’이라는 말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와 자극제나 신경 도핑까지 고민할 정도로 고군분투하는 스포츠계는 비슷해 보인다. 좋은 성적을 얻거나 원하는 성과를 내는 방법이 있다면 몸이 상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거나,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을 애써 무시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든 경기력을 향상시켜 정상에 서기 위해 도핑을 감행하는 선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48-49p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도핑 전력이 있는 선수를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일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고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달려온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선수들과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49p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도핑이란 운동능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책을 읽기 전까지 그냥 도핑은 나쁜 것, 도핑을 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도핑을 했다고 알려진 선수들은 일평생 도핑 선수라는 딱지가 붙어 명성에도 금이 간다고 했다. 그럴때마다 도핑은 역시 나쁜 것이 맞구나 라고 생각했다. 올해 올림픽 여자 배구 경기에서 브라질 선수의 도핑 결과가 나오고 화가 난 이유도 찾아보면 우리나라와 싸울 상대 선수가 그런 나쁜 것에 손을 댔다니, 라는 생각이 일절 작용한 듯 했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생각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섣부른 생각이었는지 이 책을 읽고 알게 됐다. 도핑의 과학,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쓴 이 책에는 여러가지 약물이 등장한다. 심지어 약물의 효과나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자세하게 나온다. 전문 용어가 자주 사용됨에도 책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건 도핑이 적발된 선수들의 마음이나 억울함 같은 복잡한 심정을 책으로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참고해 도핑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오래 전과 달리 현재 도핑이 금지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부터 성별에 대한 논란까지, 약물로 인한 광범위한 사건 사고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위한 스포츠 역사의 변화를 실제 선수들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선수들을 유혹하는 도핑의 세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책이라 소개하고 싶다.
줄기세포, 유전체학, 의공학 등의 발달로 이식한 힘줄 혹은 대체 물질이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만든다면, 이는 여전히 부상을 치료하는 수술일까? 아니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도핑일까? 향후 관련된 논의와 대책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선수와 코치는 반도핑 진영을 늘 앞서갔기 때문이다. 266p
1장부터 5장까지의 제목을 통해 책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정신, 근육, 힘, 도구, 그리고 성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도핑의 역사가 생각보다 역동적이었다는 점이다. 몰랐는데 전자 스포츠(게임) 에서도 도핑이 사용되곤 한다고 했다. 약물 남용의 심각성 또한 배울 수 있어 유익했다. 약물의 심각성만 논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다소 억울해 보이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감기약을 복용했더니 도핑 검사에서 걸렸다는 선수도 더러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억울한 선수들의 모습은 이제껏 도핑 선수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이 모두 일부러, 운동능력 향상을 위해 약물 복용했던 건 아니었구나 하고 오해를 덜어주었다. 2장에서는 비교적 익숙한 약물인 스테로이드가 등장해 한결 읽기 쉬웠다. 요즘에도 자주 들리는 스테로이드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약물 부작용도 잊지 않고 다룬다. 화학반응이나 신체의 변화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또 기상천외한 도핑을 하는 선수들의 사례를 통해 도핑은 함부로 정의내릴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 정신을 지향하며 도핑을 막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현대 의학을 빠르게 파악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할 필요가 있는 듯 했다. 책을 덮고 나서는 도핑의 유혹에 빠지는 선수들을 생각했다. 경기에서 결과를 새기기에 급급할 때, 도핑이 전보다 더 성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선수들을 향한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되살려주는 열쇠가 아닐까, 책을 읽으며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함몰되지 않는 균형 잡힌 자세이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많은 무게를 두며, 때로 실수하고 넘어지는 선수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315-316p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솔직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