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당시 예스이십사 블로그에 많이 보여 기억해두고 있었던 책이다. 알고 보니 최근 재미있게 읽은 자기만의방(휴머니스트 임프린트)이 기획 출간한 최재원,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10515009 와 시리즈이다. 과연 책 만듦새나 내용이 비슷한 맥락을 보이고 있다. "작은 여행..."을 즐겁게 읽어서 이 책도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이 책 저자 임진아 작가는 "책방산책": http://blog.yes24.com/document/9797225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하니 괜히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원 내려가면 "샘이 이 신문 제일 열심히 읽으시는 듯"이라는 말을 들으며 교원대신문을 꼭 챙겨보는데, 어제 읽은 기사 몇 꼭지가 소확행 유행에 대해 우려, 비판하는 논조를 담고 있었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스스로조차 개인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를 언급하고, '대확행'을 추구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있다. 대확행은 무엇인가, 나는 무급휴직 2년을 걸어놓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잃어버릴 기회비용을 생각하니 이 정도면 '대'자를 붙여도 괜찮은지 궁금했다. 기사에서는 출판업계에서도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 유행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몹시 공감했다. 사실상 이 책 출간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테다. 자기가 좋아하는(선호) 소소한 분야에서 선택(혹은 소비)하는 일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여지나 책임질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 스펙을 쌓느라 피로한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한다, 소비한 물건이 거창하진 않지만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메시지가 핵심이다. 독자로서 이런 책들을 위로 받으며 즐겁게 찾아 읽으면서도(일시적인 진통제 중독)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지는 이유를 신문 기사들을 읽으며 곱씹어보았다.
많은 독자가 근본적인 대안은 아닐지라도 '나부터 살아야지' 싶은 심정으로 이런 책을 소중히 읽으며 위로 받고 있을 테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경험과 작은 물건들을 보며 생각한 내용들을 공감 가는 글로 잘 정리하고 있다. 요즘 한창 "복학왕의 사회학"을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지금 여기 2030세대가 보이는 가치관과 생활 양식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많은 학자가 지적하듯 사실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 가능성을 보장 받지 못하는 현실로 인한 무력감에도 원인이 있겠다. 한편 학창시절 (윤리와 사상 같은 과목에서 스토아 에피쿠로스학파 등, 포스트모더니즘 상대주의 다양성) 욕심을 버리고 상황에 상관 없이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라, 자기다운 삶을 살라는 내용을 배웠을 이들이 배운 내용을 실제 삶에서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개인적으로 궁금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현실은 훨씬 경쟁적으로 변했지만, 오히려 2030세대는 어른 세대가 추구했던 '남들보다 높이 올라가려는 경쟁과 성공 지향' 분위기에 비하면 성공 지향이 완화되고 소박한 삶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싶고, 자본주의와 소비 지향 사회의 병폐를 해결할 가능성이 여기 있을 수 있다는 면에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n포 세대로서 결혼과 출산을 미뤄둔 청년이 많아, 비교적 쉽게 '퇴사'를 감행할 수 있으므로 우리 또래에게서 퇴사 및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실험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어른들이 보기에 '자신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 듯한 모습이 우려스럽겠지만, 이러한 모습이 이 세대 고유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멀리 봤을 때 좋은 의미(사유, 배움)가 있으리라 믿고 싶다. 맨 밑에 깔려 있는 휴지의 '쓸모'를 만들어주며 자신에게 빗대 감정이입하던 저자의 세심한 관찰력과 일상에서의 성찰 방식은 이 책 모든 부분에 녹아 있다.
"맨 밑의 휴지에게 마음이 있다면
회사를 관두기도 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알고 지내던 Y언니의 카페에서 파트타임을 구한다기에 고민 없이 찾아갔다. 이것은 마치 대학 졸업 전에 취직을 했던 것과 비슷한 마음가짐이었을까. 사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들을 보내고 싶지만, 아니 제발 그렇게 하라고 나 자신에게 걱정의 말투로 말하곤 했지만 일터로서의 카페가 내내 그리웠다." 41쪽.
오래 볼 편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나 지인과 멀어지는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허해지고 씁쓸해지지만, 평생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지금 여기에서 함께 하고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에 집중하며 누리자는 생각 또한 한다. 저자는 자기중심적인 친구와 불편했던 대화 상황을 감내하고(즉, 그 자리에서 말다툼하지 않고) 돌아서서 조용히 마음의 가위로 친구와의 관계를 자르는 모습을 보여서 '그래, 이런 때가 있지.'라고 공감했다. 그런 대화 상황에서는 애써 웃음 지을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상대방에게는 보이지 않을 마음은 냉랭해지곤 한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 인생에 항상 주변에 좋은 언니들(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 때 이상하게 '좋은 오빠들'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관계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어차피 점점 곁에 가까운 사람이 적어지고 일상이 좁아지는 시기에 서 있다. 무리하면서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한 상대 단 몇 명이 확실히 있다는 게 풍요롭다.
지금의 나는 나 혼자만의 일상을 지키고,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마음에 좋게 두는 사람들이 있고, 종종 만나 서로를 이야기하며 응원하는 친구 몇이 있고, 일 때문에 만났지만 신뢰가는 분들이 있고, 일사잉 겹치는 오랜 연인이 있다. 이 안에는 나와 내가,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그리고 연인과 내가 서로 존중하며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태도에서, 행동에서, 말 한마디의 시작과 끝에서 느껴진다. 그들에게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으며 대하고 있고, 나 또한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애정을 전해 받는다." 117쪽.
휴직 들어온 후 2018년은 36년 간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행복하고 편안한 나날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관행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구조와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 잠시 벗어나 '이게 인간다운 삶이지' 싶게 몸과 마음이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몹시 공감되었다. 매일을 보내는 직장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이 되면 안 되는지, 그런 공간으로 만들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무엇과 싸워서 그런 구조와 문화를 쟁취하고 만들어가야 하는지), 2학기에 민주주의와 노동에 대해 읽으면서 내내 고민하고 있다.
"고여 있을 수 있다는 건 내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임을 그때는 몰랐다. 어느덧 내 안에서 '고임'이라는 의미도, 그 단어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이토록이나 바뀔 수 있다니.
어느 밤에, 펑펑 운 적이 있다. 문득 '내일 뭐하지?'라고 생각하자마자 너무 기뻐 침대 위에서 이제 막 바꾼 무거운 겨울 이불을 티슈 삼아 울었다. 회사생활을 하며 그 생활이 당연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니 이 시답잖은 '내일 뭐하지?'가 우스꽝스럽게도 감격스러웠다. 퇴사한 지 딱 1년 반 만에 느낀 감각이었다.
언제나 별일 아닌 일로 괴로워해야 했다. 괴로워해야 구성원이 되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들이 큰 무제가 되어 그 네모난 사무실 안의 사람들을 모두 잡아먹던 나날. 집으로 돌아간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다시 그 세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삶이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없다는 사실. 1년 반이 지나서야 내가 회사에 다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159-160쪽.
말하자면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힐링 도서다. 10년 정도 조직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만신창이인 2030세대가 특히 공감할 만한 책이니 퇴근 후 쉬는 기분으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어른들께서 읽으시면 'ㅉㅉ, 요즘 젊은이들 나약하군.'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추측해보았다. 나는 소위 '빵순이'가 아니라서 빵 고르는 기쁨을 묘사한 부분이나 각 장을 특정한 빵에 비유에 풀어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기 어려웠다. ㅠ_ㅠ...(최근 내 삶에 번역하면 클래식 공연 보러 가거나 듣기에 해당하겠다, 각자 그런 지점이 있는지 찾아보며 읽어도 재미있겠다) 책을 입수하면서 빵 만드는 이야기가 자세히 나올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빵 이야기가 자주 나오므로 마스다 미리처럼 다양한 디저트와 빵류를 즐기는 독자 역시 즐겁게 읽을 지점이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