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삽화와 따뜻한 느낌의 표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요즘은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가 어려운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해 주는 에세이가 최고다.
같은 입장이 아닌 사람에게 온전한 동의와 공감을 바라진 않는다. 마음이 싫다는데 어쩌겠나. 나도 사람인지라 살다 보니 나쁜 줄 알면서 싫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티 내진 말자 이 말이다.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존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정말 싫은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도 아름다운 존중이다. 진짜 싫은 상대를 위해 이 불타는 싫은 마음을 숨기는 게 얼마나 힘든데. (p.79)
온화하고 무난한 성격으로, 특별히 누구를 미워하지도 또 미움을 받지도 않는 캐릭터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마음이 무너져있는 것을 느낀다. 다 밉고 다 싫고, 이런 싫은 티를 감추는 것도 너무 힘들다. 내가 무엇을 그리고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나이 50이 다된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나쁜 줄 알겠다. 나도 마음이 지옥이고 동시에 그런 싫은 티를 받는 상대의 마음도 지옥인 게 뻔히 보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감춰지지가 않는다 숨겨지지가 않는다. 남이면 그냥 안 보고 살겠는데. 내 아들이, 내 남편이 미울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둡고 긴 터널을 외롭게 지나던 시절이 있었다.
약도 안 듣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혼자 견뎠다.
입은 꼭 다문 채 점점 마르고 새까맣게 변해가는 나를 본 뒤로 엄마는 매일 밤 “편안히 잘 자라” 문자를 보내주었다. 어두운 망망대해 위해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 엄마의 문자는 그날 밤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p.218)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를 하늘로 보낸 지 이제 5개월이 채 안 되었다. 이렇게 마음이 지옥일 때 엄마한테라도 마음을 털어놓고, 같이 욕하고, 위로받고, 또 엄마에게서 해결책(?)을 듣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누워서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니까. 내 안에 꾹꾹 눌러 담고 참고 하면서 내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고, 몰래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훔치곤 한다. 이렇게 무너진 와중에도, 남편이 자책하는 건 싫고, 나 때문에 애들이 힘들어하는 건 싫으니, 힘든 티도 못 내겠다. 도와달라고도 못하겠다. 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질 것 같아서, 참고 견딜 때까지 견디고, 더 이상 못 견딜 때는 뭐. 하늘이 알아서 해 주겠지.
집안에 한 사람이 아프면 나머지 가족들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더니 우리도 그 징크스를 비껴가지 못했다. 나는 동생과 영원히 화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pp. 265-266)
아.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다른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는구나. 처음 알았다. 우리 집만 그런 줄 알고 많이 괴로워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집의 경우는, 엄마가 아프면서 아빠와 남자 형제들 간의 불화가 생겼다. 그동안 아빠와 아들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 주고 중재자 역할을 해줬던 엄마가 사라지니 아빠는 아들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몰라했다. 오빠도 남동생도 아빠에게 따뜻하게 곁을 주려 하지 않았다. 아빠는 딸인 나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놓으셨고, 아들들과는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엄마의 역할을 내가 하기에는 (남자 형제들은 내 아들이 아니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나 나름대로 열심히 중간에서 노력하고는 있지만, 남자들 간의 간극이 좁혀지는 것 같지는 않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래서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거 같다. 여보 당신은 나보다 먼저 가요. 내가 당신보다 조금 늦게 갈게. 남자 혼자는 못살아. 그래도 나는 여자니까 혼자서 있어도 자식들이랑 잘 지낼 수 있으니 내가 조금만 더 있다 갈게요. 늘 그러셨다. 우리 엄만.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겠지. 나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무겁고 복잡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머리와 마음을 식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