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피스 보다 두려움과 금기로 둘러싸인 건물은 없다. 환자들은 흔히 호스피스 병동을 삶의 이야기가 뚝 끊기는 벼랑으로 여긴다. 호스피스 문지방을 넘어 오면 곤두박질치며 죽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상상한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 삶과 희망이 모두 무너져 내린다. " (p. 208)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투병이나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 깨닫게 되는 것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이 편안하고 고통은 짧기를 바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영국의 공중 보건의이자 완화 의료 전문가인 '레이첼 클라크'가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인 '레이첼 클라크'의 아버지는 영국 시골 지역 보건 전문의였다. 아버지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다. 의사가 될 것인가, 다른 분야를 전공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에 저자는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고 졸업 후에는 시사 다큐멘터리 저널리스트가 된다.
1999년 런던 테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면서 20대 후반에 의학을 전공하게 된다. 성장기에 아버지가 환자를 치료하던 모습에서 느꼈던 의사의 모습이 좋은 이미지로 남은 것도 한 몫을 한다.
의학도가 되어 환자를 배려하는 모습, 환자도 환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에 검사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환자들을 배려하는 의료 활동에 치중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들의 냉혹한 현실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은 소외되고 그들에게는 모르핀만이 진통을 덜어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레이첼은 의학도로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죽음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은 생애를 최대한 품위있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완화 의료 전문가의 길을 선택한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면서 그들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 사람을 사랑한 만큼 아프다 (...) " ( p. 118)
저자는 성장기부터 의사로서의 아버지의 삶과 사랑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자신의 환자들에게도 초라하게 저물어 가는 삶이 아닌 인간답게 마지막 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겨운 순간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 보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 갈 수도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런데 딸로서, 의사로서 존경하던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의 선고를 받고 병상에 눕게 된다. 아버지의 투병과정, 딸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투병을 바라보는 아픔, 되도록 편안하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야기가 아름다우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레이첼이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바라는 것은,
평온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길, 눈을 감기 전 마지막 몇 주와 며칠이 빛나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이브 이자 75번째 생일을 가족들과 보내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수십 년 동안 환자들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줬던 아버지, 딸에게는 인생의 등불이 된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 여름날 하루살이의 덧없는 삶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서서히 깎여 나가는 빙하 협곡에 이르기 까지, 세상의 만물은 결국 죽거나 사라질 운명이다.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아무리 사랑받더라도, 영원히 머물거나 견디지는 못한다. 그 사실만이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런데 살아있는 존재의 이러한 절대적 원칙에 유연하게 맞설 장치가 있다. 바로 인간의 선택 능력이다. 죽을 운명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 이 힘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앗아 살 수 없다. 분노하고 부정하느냐, 받아들이고 포용하느냐, 선택은 우리 몫이다. " (p. 371)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후회없는 삶으로 마무리하는 모습들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린다.
삶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듯이,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