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통계자료를 보았습니다. 2017년 일본의 암연구진흥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 사람들이 사는 동안 암에 걸릴 확률은 남자는 62%, 여자는 47%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사람의 경우는 남자 39.8%, 여자 34.2%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대수명의 차이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엔이 발표한 2018년 세계인구 현황보고서에 있는 2015-2020년 남녀 평균기대수명 표에 따르면 일본이 84.74(남자 81.91, 여자 87.58)로 1위이고, 우리나라는 83.31(남자 80, 여자 86.49)로 2위라고 합니다. 즉, 일본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모두에서 사망원인 1위에 올라있는 암질환에 걸릴 확률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료는 일본의 국립암센터 중앙병원의 정신종양과에서 근무하는 시미즈 켄 박사가 쓴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기대수명이 연장되는 나라에서 나타나는 질병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암질환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술이 발전하여 조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여 완치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결국은 암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켄 박사는 암과 투병하는 환자는 물론 가족들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진료를 해왔다고 합니다. 4,0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 뿐인데, 이 과정에서 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8쪽)”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배운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책은 모두 여섯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암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괴롭힌다’는 제목으로, 암질환이 마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리하였습니다. 이어서 1장; 고통을 치유하는 데는 슬퍼하는 일이 필요하다, 2장; 누구에게나 있는 회복력, 3장; 사람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마음대로 살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4장; 오늘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자신의 want와 마주하기, 5장; 죽음을 응시하는 일은 어떻게 살아갈지를 응시하는 일 등의 순서로 암 질환으로 생기는 정신적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설명 가운데 눈길을 끈 몇 대목을 뽑아보겠습니다. 먼저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심리적 관점에서 두 가지 과제를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건강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마주하는 일, 둘째, 달라진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45-46쪽)’이라고 합니다. 암치료가 어렵던 시절에는 암으로 진단되면 죽는 날을 받아놓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두려움을 극복해내는 원동력이 바로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회복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진료한 환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두려움을 극복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암환자건 건강한 사람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참고가 되었습니다. 1. 죽음에 이르는 과정(특히 암환자의 경우)에 대한 공포, 2.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발생할 현실적인 문제, 3. 내가 소멸한다는 공포, 등을 들었는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처럼, “내일 세상이 끝난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스피노자가 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가 했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문구다.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윤회나 구원이기 이전에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마주해야 할 일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살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막연할 따름이다. 건강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죽음'이란 강 건너 불구경보다 더 무심하게 바라볼 대상인 탓이다.
그러나 '암 선고'를 받은 이들에겐 다를 것이다. 자신에게 남은 삶이 고작 1달이나 3달, 길어야 반 년이나 고작 일 년 남짓하다는 의사들의 소견은 환자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삶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한 이들은 하루, 아니 1분 1초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환자들의 태도는 어떨까? 저자는 일본에 '정신종양학' 전문의로 지내면서 수많은 암 환자들과 상담을 한 결과, 놀라운 결론을 접할 수 있었단다.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들에게 환한 웃음과 희망찬 삶을 발견하였다면서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분명 삶은 무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무미건조하기 십상인데, 죽음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남은 삶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암 환자들의 삶이 그토록 밝고 환할 수 있단 말인가?
결론은 '후회없는 삶'으로 남은 생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환자들의 표정과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단다. 남의 눈치만 보는 삶이나 남의 위한 삶 따위는 걷어 내버리고 오직 '자기를 위한 삶'으로 사는 1분 1초가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비록 건강을 잃어버려서 고통에 겨운 나날이 더 많을지라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통없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말이다.
욕심을 부려 본다면, 사형선고를 받지 않은 건강한 이들이 바로 이런 깨달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어떨까? 혹시 막연하다고 느껴진다면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평범한 이들의 일상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물론 쉽지 않은 상상일 것이다. 절실함과 절박함이 없는 삶에게는 너무나도 심오한 깨달음인 탓이다.
그래도 애써 욕심을 부려보자. 아니 적어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 응원이라도 보내 보자. 나의 삶은 그들에 비해 '영원'에 가깝다는 염치를 배우는 순간, 분명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 뿐인 목숨을 버리는 순간, 다시 말해, 죽을 각오로 '하는 일'은 무서운 힘을 보여주곤 한다. 마찬가지로 죽음이 임박한 이들에게는 뒤를 되돌아볼 여유가 없어진다. 다른 말로 '남의 눈치 따위'는 중요해지지 않게 된다. 온전히 '나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부터가 진짜 자신의 삶이 시작하는 셈이다.
평범한 이들이 투정부리는 오늘은 바로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는 문구가 새삼 떠오른다. 딴에는 너무 비장하다는 생각에 그닥 와닿지 않는 문구이기도 했지만, 하루하루가 심심해 죽을 지경인 이들에게는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릴 법하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멋지게 살고 싶은 이들에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절박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지금 행복에 겨운 이들이라면 너무 뻔한 소리라는 느낌일테고 말이다.
아쉬운 것은 '평범한 삶의 나날들'이 행복이라는 마무리였다.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얻은 교훈을 그리 '평범한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차라리 채찍으로 따끔하게 깨우쳤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고 있는데, "투정을 부리는 너의 삶이 행복한 거란다"라는 말이 씨알이라도 먹힐까? 차라리 암으로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또래 어린이가 고통에 겨워하는 장면이라도 보여주는 것이 더 시원한(?) 깨우침이 아닐까? 너무나 폭력적인 훈육이라는 비판이 앞선다면...나이를 조금 더 들게 하여, 스무 살 청년인데도 무료한 나날을 보내면서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다면..이라고 가정하면 어떨까? 여전히 '폭력적인 훈육'일까? 이 나이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꼰대라는 비판을 받을까? 그렇다면 나름대로 살만큼 산 '40대 중년'이라면 어떨까? 그 즈음에는 바람직한 훈육(?)일까나?
바로 이렇게 '선택적인 깨달음'이라는 점이 아쉽다는 말이다. 가슴 깊은 울림을 주는 깨달음이라면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큰 울림을 주어야 할 텐데 말이다. 어차피 '죽음'이라는 소재가 비교육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메멘토 모리'라는 문구가 주는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점 하나가 더욱 눈에 띄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 검은 바탕으로 물들게 되었을 때 '하얀 점'을 찍을 용기가 필요해지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오늘의리뷰
【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
_시미즈 켄 / 한빛비즈
해가 바뀌었다. 설 기분은 안 난다. 음력설 때나 제대로 해가 바뀌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리뷰를 올리는 몇몇 블로그 카테고리에 연도수를 표기해놨기 때문에 1월 1일을 기해서 고쳐놓았다. 어쨌거나 2023년이다. 몇 해 전부터 지인들과 주고받는 카톡이나 SNS인사에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무탈 평안’이다.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도 많이 썼다. 나도 많이 받는 문장이기도 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위험해지면서 무사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감사할 일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1년밖에 안 남았다면? 아니면 1년 후쯤 내가 병상에 누워서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면?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는 경우는 대부분 ‘암’이다. 한국의 경우 2018년 보건복지부 발표 국가 암등록 통계를 보면, 기대수명(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4%였고, 남자(80세)는 39.8%, 여자는 34.2%였다. 암은 고령자만 걸리는 병도 아니다. 일본의 통계를 보면 암 환자 3명 중 1명이 생산연령에 해당하는 15~64세에 속한다고 한다.
이 책의 지은이 시미즈 켄은 일본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다. 암과 마음을 동시에 치료하는 ‘정신종양학’ 전문의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정신종양학 학회가 있다. 학회가 개설된 지 8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암이 환자의 신체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암의 심리적, 사회적, 행동적 측면에 대해 연구하면서 실제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쉽게 정리하면, 암의 심리사회적 측면을 다루는 분야이다. 일차적으로 암 환자 및 가족이고, 넓게는 암 관련 치료진의 스트레스 및 소진관리를 담당한다.
지은이는 2003년부터 국립암연구센터 중앙병원에서 암 환자와 가족들을 진료했다(암 환자의 가족은 ‘제2의 환자’이다. 환자 당사자만큼이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심하기 때문이다). 매년 200명 남짓의 환자를 만나 지금까지 4.0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상담했다. 이 책을 통해 지은이가 만난 환자들과 환자들을 통해 얻게 된 삶의 지혜들을 정리했다.
“사람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마음대로 살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must의 삶과 want의 삶이 있다. must의 삶은 나의 의지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다른 한 편 want의 삶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 삶이다. must의 삶이 주장이 강하면 want의 삶은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환자들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며 이런 고백을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인 채 어른이 된 후, 내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문제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죽음을 응시하는 일은 어떻게 살아갈지를 응시하는 일.”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북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삶을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이 많겠지만, 영어의 present는 현재, 지금이라는 뜻과 함께 ‘선물’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지금 이 시간 오늘은 내게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다. ‘오늘’이 전부이다. 내일은 내일 되어봐야 안다. 이 책을 암 환자와 가족, 지인들 그리고 현재 반 건강인 반(또는 잠정)환자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1년후내가이세상에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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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책이야기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