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 이리저리 찢기고 마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음. 사전을 찾아보니 착잡해졌다. 총 2권의 '골든아워'를 읽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났던 단어였다. 단어의 뜻을 확인하고 보니 중증외상센터.. 라고 해야 될까? 이국종 교수팀의 상황이라고 해야 되는 걸까? 이 단어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빈번하게 등장했을 터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1권을 읽은 후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졌기를 바라는 마음과 궁금증을 못참고 2권을 바로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는 상황에 분노했을 것 같다.
1권에서도 종종 등장했지만 2권에서는 한 두줄만 읽어도 무슨 사건(?)인지 파악이되는.. 9시 뉴스에 계속 등장했던 사건(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슬프다.)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일부는 ~ing) 세월호 사건과 JSA 귀순 북한병사 오청성 사건이다.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재해.재난 현장에 이 팀이(2권을 모두 읽고나니 팀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그 현장에 없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의외였던 것은 오청성 사건에서의 과정이 아주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의사를 초청(?)하여 합류시킬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남북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뭔가 말을 하다만 것 같아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이야 나 역시 사고 당일 AM 8:30부터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했고, 전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는데, 그 현장 상황을 정부 관계자가나 언론이 아닌 의료인의 시점에서(그들은 사방에서 가로 막은 장벽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분노 밖에 할 수 없었지만..) 알려준 상황은.. 대체 무슨 말로 해야될지 머리속을 멍하게 만들었다. (p.70) 중간에서 '배가 가라앉고 사람들의 생사 또한 알 수 없는 판국임에도 복잡한 행정 절차만은 견고하게 잘 유지됐다.'라는 저자의 말이 참 원망스럽게 들렸다.
이 팀의 주위에는 방해꾼들도 참 다양했다. 의료계에 있는 어려움을 보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예상만 계속했었지 실제 일어났었던 일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랜섬웨어 공격까지 받았었다는 말에 참 어안이 벙벙했다. 보직 교수라는 사람들은 '주의 부족'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무시로 일관하고.. 이 책 2권을 읽으며 '지리멸렬'이라는 단어만큼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이기주의였다. 심지어 그 이기주의자들의 대부분은 동료라고 말해주기도 싫은 의료인이라는거.. 그것도 안팎으로 말이다.
(p.59) 민족의 명절 좋아하네... 뉴스에서 매년 복붙하는 말이다. ... 사방에서 떠드는 '민족'이나 '국민'안에 나나 우리 팀원들은 속하지 않았다... 마치 뉴스에서 통계를 언급할 때마다 저 통계 자료의 근거와 기준은 무엇이며, 나는 통계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건가라고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비기너'라는 일드에서 사법연수원 교수 역할을 했던 모타이 마사코씨의 대사중에 이런말이 있었다. '사람이 죽을 확률은 100% 입니다.' (p.271)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의료분애에도 혁명을 일으킬거라지만, 혈액 수급 문제 즉, 중증외상 같은 외과적 문제에는 전혀 존재검이 없다는 이국종 교수의 말을 보며 모타이 마사코씨의 저 대사가 떠올랐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어려움은 안팎의 방해세력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발달된 과학기술로도 어쩔 수 없을만큼이라는 이 말을 저자 자신도 내뱉고 싶지 않은 힘든 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참 가슴이 아프다. 2권의 마지막 약 20% 정도는 책 속 등장인물의 간략한 소개와 활약상으로 채우고 있었다. 많이 지처셔였을까.. 좀 더 실상을 말해주었으면 했는데, 2016년 부터의 기록이 짧게 이어지는 것이 힘든 상황을 전해주는 것 같아 투정부리기도 미안해진다. 그래도 옳은 일, 해야만 되는일이 무엇인지 그 진심을 아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팀을 이뤄서 버틸 수 있는거 아닐까.. 이 팀에도 방해세력이 사라져 숨통이 트이는 그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들이 틀리지 않았다면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그 곳에서도 분명 효력을 발휘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골든타임(Golden Time) ≠ 골든아워(Golden Hour)
- 골든타임(Golden Time) : 방송 용어
- 골든아워(Golden Hour) : 의료, 기타 사고 등에서의 비상 상황을 일컫는 용어 (p.86)
** 기도비닉(企圖秘匿) : 흔적이나 자취, 소리를 남기지 않고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뜻 (p.84)
이국종 교수가 지은 국가의 응급의료시설에 대한 책으로 골든아워 1을 읽고, 이번에 골든아워2를 주문하게되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실태가 선진국보다는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하루빨리 선진국과 같은 응급의료 체계가 갖추어져서, 정말 목숨이 시초를 다투는 중요한 싯점에 나의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소중한 생명을 살리길 기원합니다. 정말 하루빨리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 센터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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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읽을 책으로 찜해두고 한두 번 펼쳤다가 이제야 마무리한 책.
책을 만나는 타이밍도 어쩌면 인연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뉴스를 계속 접하면서 정말.. 참담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2024년, 그때 보다 나아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국종'이라는 고유명사가 있는 기사 이슈가 나올 때마다.
힘든 상황에서 저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다르게 보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궁금했고 꼭 읽어보고 싶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든 직접 판단하고 싶었다.
아덴만 여명 작전 중 총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구할 때의 급박한 상황을 뉴스에서 접했다. 그 이후 세월호의 상황들도 뉴스로 접하면서 잘 될 거란 희미한 희망마저 사라진 뉴스로만 접했던 그때. 마음 아프더라도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알고 싶었다.
골든아워의 기록에는
익히 들어본 생과 사의 기록도 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석해균 선장, 귀순 북한 총상 병사, 세월호
"내 환자들이 숨을 거둘 때 살이 베어 나가듯 쓰렸고,
보호자들의 울음은 귓가에 잔향처럼 남았다.
죽음과 눈물이 일상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손끝에서 죽어간
환자들의 수를 머릿속으로 헤아리는 짓을 그만두었다."
"돌아서 가기보다 차라리 부딪쳐서 산산조각 나는 게 낫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길바닥에서 일하다 파편처럼 흩어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부모의 자식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적당히 어울리지 못해 인생이 고달팠고, 어머니 말씀처럼 돌아가지 못해서...
"대부분의 의료 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나는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여린 밤송이 같던 아이의 머리카락 감촉은 잊히지 않았다.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할 때면 허공에 손을 들어 쓸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허공은 마치 내 인생처럼 서럽고 소슬해졌다. '
책을 통해 과거의 현장으로 돌아가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력감, 우울감, 분노, 안타까움 등 다양한 감정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멈춰버린 시간일 것이고, 누군가는 10여 년이 지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알 것 같았다.
때론 정말 어쩔 수 없는 꽉 막힌 답답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점차 지치고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록마다 그러한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도 느껴졌지만, 다양한 삶이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나를 갈아 넣어 살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안전하게 때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를 생각해 보고, 정말 이렇게 치열했던가를 떠올려보며 타성이라는 모래 늪에 빠지려는 나를 끌어올려진 듯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