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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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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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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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 나혜석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c*******l | 2018.05.20 리뷰제목
*나혜석 선생이 영국에서 서프러제트 여성들을 만나고 왔다니!와 정말 굉장해! *내가 런던에 체류할 동안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여성 선생 하나를 정했다. 막 60여 세가 된 처녀로 초등학교 교사요, 독신생활을 하는 원기 좋은 할머니였다. 팽크허스트 여성 참정권운동연맹 회원이요, 당시 시위운동의 간부였다. 지금도 여자의 권리 주장만 나오면 열심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여성은
리뷰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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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선생이 영국에서 서프러제트 여성들을 만나고 왔다니!

와 정말 굉장해!

 

*

내가 런던에 체류할 동안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여성 선생 하나를 정했다. 막 60여 세가 된 처녀로 초등학교 교사요, 독신생활을 하는 원기 좋은 할머니였다. 팽크허스트 여성 참정권운동연맹 회원이요, 당시 시위운동의 간부였다. 지금도 여자의 권리 주장만 나오면 열심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여성은 좋은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줄여 저축하여야 한다. 이것이 여성의 권리를 찾는 운동의 제1조이다."

나는 이 말이 늘 잊히지 아니하였다. 영국 여자들의 앞선 깨달음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

나혜석 : 회원의 표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S: 있지요. '여성에게 투표를'이라고 쓴 배지를 모자에 달고, 띠를 두르지요. 그때 두른 것입니다.

부인은 노란색 글자가 쓰여 있는 다 낡은 남빛 띠를 보여주었다.

나혜석 : 이것 나 주십시오.

S: 무엇하시게요?

나혜석 : 내가 조선 여권운동의 시조가 될지 압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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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근대 신여성 나혜석의 세계여행기 평점7점 | g****3 | 2020.05.15 리뷰제목
코로나의 여파로 내내 문을 닫은 도서관이 한 열흘전부터 대출을 시작했다. 빌리려고 했던 책이 분명 아침에도 있었는데 조회해보니 없어서 낙심하고 돌아서서 가려다 허전한 마음에 괜히 서가를 서성거리다 책한권이 눈에 들어왔다.이 책을 빌려온건 순전한 호기심때문이었다.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나혜석이라고 하면 신여성으로 알려져있고 여성활동이 거의 미비하던
리뷰제목

코로나의 여파로 내내 문을 닫은 도서관이 한 열흘전부터 대출을 시작했다. 빌리려고 했던 책이 분명 아침에도 있었는데 조회해보니 없어서 낙심하고 돌아서서 가려다 허전한 마음에 괜히 서가를 서성거리다 책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빌려온건 순전한 호기심때문이었다.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나혜석이라고 하면 신여성으로 알려져있고 여성활동이 거의 미비하던 근대 시기의 여성 화가였고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그런 그녀가 일찌감치 전 세계를 여행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몰랐고 그 세계 여행을 경험하고 글로 남긴 책이라니 너무도 궁금해졌다.

 

 

목차를 보는데 입이 쩍 벌어졌다. 그시절에 ...말이다.

 

 

 

어떤 계기로 어떻게 세계여행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일다 못해 읽으려고 목차를 펼친것이 아니었으나 바로 다음장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의 첫장은 부산진 출발로 시작되었다. 6월 19일 봉천행 열차로 부산을 출발하였다. 주석에 보면 봉천은 지금의 선양을 가르킨다.

중국에서도 번화했던 선양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이름이 봉천으로 바뀌었다 다시 지금의 선양으로 되었다고 한다.

첫장부터 놀라움이었다. 그시절 1920년대 남북이 갈리기 전이고 일제치하였던 그 시절 기차를 타면 중국까지 올라가서 러시아를 통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다다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분단 이후의 세대인 지금 우리에게는 통일이 된다면 이런것도 가능하지..라는 이론상의 이야기인데 그시절은 정말 그렇게 이동할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나혜석은 남편과 함께 거쳐가는 곳곳에서 많은 일행들을 만나고 대접을 받으면서 중국에서 러시아를 거쳐 파리, 스위스 그리고 독일 영국을 여행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일 외에도 남편의 공무들이 있었던것으로 봐서 일로 떠난 거였지만 장장 1년 8개월을 세계를 돌고 다시 돌아온다. ( 이 책에는 어떤 이유로 세계여행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빠져있지만 후에 찾아본 다른 자료에서는 변호사이자 부영사였던 남편이 영국에서는 법률공부를 하고 나혜석은 파리에서 그림공부를 했다고 씌어 있었다. 아마도 짧은 기간이지만 유럽에 머물며 둘다 무언가 배우기 위해 떠났던것 같다. 부영사였던 남편덕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것 같아 보였다. )

 

화가였던 나혜석은 타국에서 그림도 그리고 (후에 해외에서 그린 그림들로 입선도 한다) 파리에서 아카데미 미술 교육을 하는곳에 다니기도 하였다.

 

스위스의 인터라켄과 융프라오흐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입이 딱 벌어졌다.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관광을 가는 이곳에서 그녀는 알프스의 형세와 스위스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푹 빠진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을 떠올리며 강원도의 좋은곳들을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글의 말미에 담고 있다. 놀라웠다.

 

1920년대 조선의 형편과 그시절 일반적인 여성들의 삶을 떠올려볼때 너무나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내가 배운 역사적 지식과 이미지는 한쪽으로 치우쳐있었는지 그시절을 떠올리면 일제치하에서 고생하는 그리고 정신적 물질적 여유가 전혀 없는 근대 우리조상들의 삶이 떠올랐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더 열악한 환경이었던 여성들의 삶이 떠올랐는데 나혜석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마음이 불편했다.

 

혹시 친일이고 우리 민족과는 무관한 마음가짐과 삶을 살았나 의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꼭 그런것만은 아닌것 같았다.

헤이그에 도착해서 이준 열사의 산소를 찾아다니고 결국 못찾고 안타까운 마음에 경성에 있는 이준열사의 부인과 따님에게 그림엽서를 보냈다는 구절을 보니 그랬다.

곳곳의 좋은 풍경을 보다가도 조선을 떠올리며 마음한곳이 스산해지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또 그러했다.

3.1 운동때 여성들을 집결하여 활동하는 일을 벌이다 5개월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는 부분을 보면 또 그랬다.

 

(그녀가 독립운동을 했네 말았네 말들이 많지만 어쨌거나 이런 흔적들 덕분에 그녀가 나라일에 나몰라라 하며 흥청망청 지내던 부류까지는 아니지 않았겠나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일본의 문화식민정책 중 하나였던 조선미술 전람회에서 매년 입선하고 상을 받는다든지, 일본에서 미술 유학을 했던 덕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인들과 교류가 많았다던지 결정적으로 일본치하에서 부영사를 하던 남편 김우영이 총독부에서 일하여 후에 친일의 흔적으로 재판을 받았던 부분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다. )

 

아마도 내게는 은연중 이분법적 잣대가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조선말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일제치하 시절 풍족하거나 어렵게 고생하지 않으면 무언가 친일이거나 민족적 반역자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나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여유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회영처럼(부유한 자산가였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옮겨가 항일운동을 지원했다) 행동하지 않는다 해서 비난받아야 하는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회영선생님같은분은 지금도 우리모두의 존경을 받고 역사교과서 한 켠에도 적혀 있지만 그런 신념을 가지고 대단한 행동을 하신 분들은 일부이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딴곳으로 흘렀지만 내 생각의 흐름이 그러하다보니 초반엔 나혜석의 이곳저곳 구경을 하고 유럽의 곳곳을 즐기는 모습들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자산가의 딸이거나 돈이 있다고 해서 당시 여성들이 모두 이럴수 있었을까란 생각을 해보니 나혜석은 당시의 시대상황과 보편적인 정서로 볼때 정말 비범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곳곳에서 들었다.

 

화가라는 직업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나라를 돌면서 그 나라의 건물들과 거리의 풍경과 사람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그 예리함은 감탄을 자아냈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유럽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과 해석도 지금 시대에 읽고 보아도 부족함이 없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행하는 나라들의 역사와 배경지식은 또얼마나 해박한지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세상에나...물론 가이드의 설명을 듣거나 적혀있는 설명을 읽고 보았다해도 곳곳에 호기심 어린 시선과 예리한 분석들로 다녀가는 곳들에 대해묘사하는것을 읽고 있노라면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부족함이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처럼 인터넷 두드리면 1분도 안걸려 정보가 뜨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깐이나마 프랑스 일반 가정에 머물며 함께 생활하는 모습,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그것도 대단히 용감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이들이나 에어비앤비에서도 독립숙소가 아닌 주인 가족과 함께 지내는것을 선택한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정말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서툰 프랑스어를 배워가면서도 의사소통이 원하는만큼 원활하게 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인지, 언어를 배우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느낄수 있었다.

 

화려했던 화가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살던 그녀는 외도로 인해 이혼당하고 결국 애인이었던 최린도 곧 떠나가버리고 쓸쓸히 말년을 보내다 무연고 행려병자로서 죽었다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호기심과 신여성들에 대한 당시의 시선이 그렇지만 가쉽거리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것 같은 느낌이다.

 

젊은 나이에 모든걸 잃고 혼자 몸이 되어 발표한 이혼고백서의 존재에 대해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참 대단한 신여성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녀에 대한 사회의 냉대는 가혹함 그 이상이었던것 같다. 감이 여자가..이런 딱지가 붙었을거라 짐작해본다.

 

결혼할때 나혜석이 남편에게 요구한 것 네가지는 지금 보아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평생을 사랑해줄것

둘째, 그림그리는것을 방해하지 말것

셋째, 전처의 딸과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도록 해줄것

넷째, 첫 사랑이자 연인이었던 최승호의 비문을 세워줄것 (실제로 신혼여행을 가서 비문을 세워줬다고 한다. )

그런 그녀의 사상이 당시의 시대와 얼마나 맞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어 진다.

 

이 책을 읽다보니 대단한 호기심과 식견과 지식과 안목을 갖춘 거기다 대담함과 용기도 있는 그녀를 보면서 만약 그 시대가 아닌 더 후대에 태어났더라면...혹은 그 시절 남성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란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화가로서의 입지도 그렇지만 실제 그녀가 그린 작품들, 입선하고 상 받았던 작품들이나 문필활동을 하면서 신문등에 기재한 글을 읽다보면 시대를 넘어선 인물임을 단박에 느낄 수가 있다.

그녀의 외도가 물론 잘못된 행동인것은 맞지만 그 한번의 행동으로 인해 인생이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사실을 보면 너무 가혹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남성이 그랬다면...그래도 그렇게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잔인하게 인생이 무너져 내렸을까? 택도 없는 이야기란 생각만 든다.

실제 역사속 그런 남성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떠올려보면 더 씁쓸해진다.

 

1927년 6월 19일 부산진을 출발하여 1929년 3월 12일 배로 부산항에 도착한 그녀의 1년 8개월 23일 동안의 세계 일주여행은 시대를 뛰어넘는 그녀의 사상과 안목을 더욱 빛이 나게 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여행을 통해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일로 인생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는 점에서 쓸쓸한 마음이 든다.

 

책속의 여행지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몇년전 여행했던 스위스와 영국부분에서는 더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브리엔츠 호수에서 배를 타며 묘사한 알프스 산자락에 대한 이야기나 산악철도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 시절 제네바는 이미 유럽의 돈많은 사람들이 관광으로 많이 오는곳이라는것이 책에 나와있었다.

 

"금강산을 보지 못하고 조선을 말하지 못할 것이며, 닛코를 보지 못하고 일본을 말하지 못할 것이요, 소주나 항주를 보지 못하고 중국을 말하지 못하리라는 말같이, 스위스를 보지 못하고 유럽을 말하지 못할 만큼 유럽의 자연 경색을 대표하는 나라가 스위스요, 그 중에서도 제일 화려하고 사람 운집하는 곳이 제네바다. .....

실상 타고 다닐 만한 곳도 아니나, 원래 돈 많은 영미인들이 돈쓰러 오는 곳이라 다른 곳과는 다르다. ....

이제부터 내방객이 점점 증가하여 9월 중순경에 절정에 달한다고 한다." 

  (p.49)

 

 

그런가하면 여행하는 나라들의 교통수단과 거리에 대한 묘사들도 재미 있었다.

 

 

"파리 시내는 전차, 버스, 택시가 시가를 무시로 통행한다. 전차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쓰여 있어 번호만 찾아 타면 편리하고, 택시(승합자동차)에는 미터기가 달려있어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미터기에 나온 숫자대로 돈을 주게 된다.

시외에는 기차만한 전차가 다녀 일요일 같은 때는 만원이 되거니와, 파리에 유명한 것은 메트로(지하철)다.

땅 밑으로 4층까지 차가 놓여 있을 뿐 아니라, 한 노선은 센 강 밑으로 다닌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 정류장마다 타일 조각을 붙인 내부는 깨끗도 하거니와, 땅 속 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1센트(9전)만 내면 파리 시내 어느 곳을 물론하고 쏜살같이 태워다 준다. "

 

우리 가족이 영국을 여행할때 영국의 오래된 지하철 (영국에서는 underground) 을 이용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1860년대에 최초로 지하철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면서 우리나라 고종황제때 그들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는 말을 하면서 막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혜석도 강 아래로 길을 뚫어 통과하는 지하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것 같다. 하긴 나도 5호선이 처음 개통되면서 여의나루에서 마포까지 한강 아래로 깊게 땅을 파서 지하철이 통과하는거란 이야기를 듣고 조금 신기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ㅎㅎㅎㅎ

 

프랑스 가정집에 머물때 그 가정의 가장 막내인 어린 남자아이가 식사때 식사준비를 돕고 다 먹고나면 식기를 가져다놓고 누나들이 설거지를 하면 행주질을 하고 추운 아침에도 계단 걸레질을 하는것을 보면서 조선의 현실과 비교해보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아이라도 어렸을때부터 차별 없이 자기 일을 스스로 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바가 컸던것 같다.

 

한편 중국을 여행할때 조선에서 극장이 잘 되려면 여성들도 가정에 매여서 아무것도 못할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질수 있어야 할거라고 의견을 적은 부분이 있다. 유흥을 즐길 여력을 전혀 갖지 못하는 조선의 여성들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미술사와 건축사에 대해 책에 자세히 묘사한 부분들도 나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자세한 역사적 사실에 곁들여 개인의 감상과 느낌까지 적어놓은 건축과 회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 깊이가 더해졌고 재미가 있었다.

 

책에 자신이나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보니 궁금증에 나혜석과 남편 김우영에 대한 부분을 인터넷에서 찾다보니 수원에 나혜석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독립운동가로 밀고 있는 수원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고 말이 많은듯 보였다.

사실 그당시 남편이 일본의 산하 만주 지역 부영사로 재직하였고 그 배려로 유럽과 미국 여행을 한것이라면 좀 씁쓸하긴 하다.

그러나 친일여부나 독립운동과 관련해서는 말이 많고 아직도 정리된 부분이 명확치 않지만 단언코 확신할수 있는것은 시대를 앞서간 생각을 가진 여성이었다는것 그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것이다. 그녀가 영국에서 만나 여성 참정권운동을 하는 여성에게 영어를 배우면서 그이와 인터뷰 한 부분을 정리해서 삼천리에 게재 한 부분이나 프랑스에서 하필 여성운동을 하는 안주인이 있는 가정에 함께 기거하며 생활한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지금시대에도 쉽게 납득되지 않을 세 자녀를 맡겨두고 (그것도 젖먹이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남편과 1년 8개월을 여행한것도 상식적이지 않은데 외도후 이혼을 하고 나서 이혼고백서를 발표한 사실 자체가 당시로서는 대단히 쇼킹했을것이라 짐작된다.

아마도 남성뿐만아니라 여성들도 손가락질했을게 분명하다. 분명 사회적인 통념과 인습에서 벗어난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그녀의 그런 생각들을 엿볼수 있었고 여성도 한 인간으로서 당당히 대접받고 인격적인 존재로 동등하게 설수 있는 새로운 세상과 사회에 대한 열망을 꿈꾸며 써나간 책이다.

 

이책을 통해 나혜석이라는 한 세기 앞서 살았던 한 신여성을 좀더 가까이 알게 되었고 비록 몸은 한세계 전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각은 지금의 세상에 가깝게 머물러 있는 그녀를 보면서 새삼 과거와 지금의 변화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시 시대를 뛰어넘는 그녀의 사상을 수용하지 못한 세상과 사람들, 그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바꾸지 않고 살아가다 가까운 이들과 가족들에게 조차 외면받고 무연고 행려병자로서 비참한 생을 마감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렸던 표정없는 얼굴의 우울한 자화상이 떠오르는 밤이다.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837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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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나혜석의 세계 일주기 평점6점 | s*****1 | 2018.03.14 리뷰제목
1927년 6월부터 1929년 3월까지 약 1년 7개월간 남편 김우영을 따라 그야말로 세계 일주를 하며 보고 듣고 느낀것을 적은 나혜석의 기록이다.소련,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을 돌며 그녀가 보고 느낀 기록과,특히 박물관, 미술관에 대한 설명과 미술사와 미술가에 대한 평가와 서술들은 몇몇 단어와 풍경묘사만 현대적으로 보완한다면 지금의 기
리뷰제목

1927년 6월부터 1929년 3월까지 약 1년 7개월간 남편 김우영을 따라 그야말로 세계 일주를 하며 보고 듣고 느낀것을 적은 나혜석의 기록이다.

소련,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을 돌며 그녀가 보고 느낀 기록과,
특히 박물관, 미술관에 대한 설명과 미술사와 미술가에 대한 평가와 서술들은 몇몇 단어와 풍경묘사만 현대적으로 보완한다면 지금의 기록이라 해도 크게 이상함 없이 받아들여 질 것이다.

 

그녀가 파리를 기점으로 삼아서인지 파리에 대한 애착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교통, 지하철, 시가지에 조성된 공원, 경마장, 놀이공원,
그리고 파리 시내의 무수한 극장, 영화관, 댄싱홀, 카페 들
나혜석이 '환락의 파리'로 표현했듯이 1920년대 조선의 사회, 생활상에 살던 나혜석에게 파리는 별천지였을 것이다.

 

"누구든지 파리에 와 있다가 파리가 좋은 곳인줄 아는 날은 떠나기 싫어한다.
 과연 파리 인심은 자유,평등,박애가 충분하여 누구든지 유쾌히 살 수 있다.
 이곳을 떠날 때는 마치 애인 앞을 떠나는 것 같다"
 라고 파리에 대해 묘사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혜석을 그토록 매혹시킨 파리는 그녀를 파멸시킬 '최린'과의 인연을 맺어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달콤했을 최린과의 만남의 시작에 남편한테도, 최린한테도 버림받고 행려병자로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당시 처한 조선의 사정으로,
대다수의 여성들이 식민통치하에서 자신과 가족의 목숨부지에 급급한 것이 일상일 그 사정에,
나혜석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금수저이며 축복을 받았다 할 수 있겠다.

 

그녀의 비극적 삶의 결말은 이 정도 안타까움으로 정리하고,
1920년대에 이런 여행이 가능했다는 것이 놀랍고, 그 많은 나라를 다니며 이렇게 보고 듣고 느낀것을 기록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나혜석의 기록자체에 충실하여 책 내용이 건조하고 지루한 면이 있고, 부연설명을 위해 수록한 그림들이 흑백이라 알아보기 힘든 아쉬움이 있다.
기행문 곳곳에 당시의 시대상과 저자의 심리상태 등을 분석, 추리해주는 윤활유가 곁들였다면 더욱 흥미롭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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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평점10점 | q*****2 | 2020.04.27 리뷰제목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1948년 무연고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한 나혜석이라는 인물의 삶을 접할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하필이면 모든 게 무너진 시절 태어나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바스라질 수밖에 없었던 그 삶이 참으로 기구하게 다가오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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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1948년 무연고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한 나혜석이라는 인물의 삶을 접할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하필이면 모든 게 무너진 시절 태어나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바스라질 수밖에 없었던 그 삶이 참으로 기구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만일 오늘날이었더라면 과연 그는 어떤 존재로 모두에게 기억될지.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목받는 걸 고려할 때 마냥 자유롭지는 못하지 싶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다 못해 모든 걸 잃는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을 듯하다.

조선이라고 하면 말미 흥선대원군이 펼쳤다던 쇄국정책의 이미지가 강한 탓인지 여타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왠지 없었을 것만 같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고가 깊게 뿌리 박힌 건 우리나 일본이나 매한가지인지라, 나혜석이 낯선 세계에 대해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을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에 대한 믿음도 그다지 크진 아니하다. 마냥 동경했던 서구 사회의 실체를 실제로 접할 수 있었던 세계여행이야말로 그녀의 삶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다 준 기회가 아니었을까 나는 확신했다. 책의 제목처럼 나혜선은 조선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첫 세계일주에 나섰다. 동경유학이 그러했듯 이는 특권층에게만 주어지는 어마어마한 기회였다. 그가 찬찬히 남긴 기록은 당대 유럽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뜻 깊었다. 서양화가라는 직업에 부합하는 관심사를 글에서 엿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과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글이 수록된 순서가 곧 여행 순서라면 나혜석은 러시아 대륙을 거쳐 프랑스 파리와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미국 순으로 이동했다. 오늘날처럼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일정은 아닐 거라 막연히 짐작했는데, 역시나 그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이용했다. 분단으로 현재는 불가능해진 일을 몸소 행한 셈이다. 자본주의 일색인 오늘날과 달리 1900년대 초에는 체제 간 극한 대립이 존재했다. 러시아는 여느 나라와는 달리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는데, 예술적으로는 높은 경지에 이른 듯했으나 대개의 사람들이 선보인 모습은 비참함에 가까웠다. ‘외국 물건이 없어서 국내산으로만 생활하게 되므로 물가가 비싸고 불편한 점이 많다 한다는 글은 마치 훗날 러시아가 걷게 되는 길을 암시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개인적으로 눈 여겨 본 나라는 프랑스였다. 글에서 잘 묘사됐듯이 파리는 별 모양으로 뻗은 도로가 일품인 계획도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규모에, 화려함에 압도당할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저자는 파리에서 일종의 황량함을 호소했다. 중앙집권화의 결과 모든 문명이 파리에 집중된 나머지 파리를 제외하면 도시라 부를 만한 곳이 존재치 아니 한다. 결코 건전한 국가라 칭할 수 없다는 평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허수아비와도 같았던 왕조의 몰락이 불과 얼마 전 일어났고, 결코 받아들여서는 아니 되는 일제 권력이 이를 대신했다. 상대적으로 강력해 보이는 프랑스 정부의 모습이 저자에겐 부담이었을지, 아니면 부러움이었을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국가의 형태는 나혜석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잠시 머물렀던 프랑스 가정에 꽤 많은 양을 할애한 걸 보면 더더욱 그래 보였다. 프랑스 여성참정권운동회 회원이자 가정에 충실한 현모양처, 견실한 사회활동가. 뭔가 조화롭기 힘든 요소들이 한 개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부인은 나름의 사회생활을 유지했으며, 집안 일은 남자 아이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행하는 모습에 아마 감탄했을 수도 있다. 왜 조선은 프랑스와 같을 수가 없는지. 그리웠던 고국에 돌아온 저자는 1년하고도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게 하나 없는 풍경이 반가우면서도 좌절감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이 그녀의 온몸을 죄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여행기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각국을 대표하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순간이 많았고, 저명한 예술가들과의 조우를 오늘날에도 일상 속에서 누리고 있는 유럽 사람들이 살짝 부러워지려고도 했다. 100년을 뛰어넘는 시간이 그와 나 사이에 존재했지만 우린 다른 듯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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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a*******7 | 2018.12.06 리뷰제목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계 여행을 한 여성으로서, 또 화가로서의 여행기를 읽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녀가 조선을 떠나 세계에서 본 것들을 기술한 것이 대단하고 뿌듯하게 느껴졌고, 그녀가 서프러제트에 참여했던 여성을 만났던 것은 왠지 모를 벅차오름을 느끼게 했다. 옛한글의 느낌이 날 뿐더러 건조한 문체라 낯설게 느껴졌지만 읽다보니 그 문체에 빠져들었다. 정말 의미있는 책이었
리뷰제목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계 여행을 한 여성으로서, 또 화가로서의 여행기를 읽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녀가 조선을 떠나 세계에서 본 것들을 기술한 것이 대단하고 뿌듯하게 느껴졌고, 그녀가 서프러제트에 참여했던 여성을 만났던 것은 왠지 모를 벅차오름을 느끼게 했다. 

옛한글의 느낌이 날 뿐더러 건조한 문체라 낯설게 느껴졌지만 읽다보니 그 문체에 빠져들었다. 

정말 의미있는 책이었고 나혜석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이분이 쓴 다른 책도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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