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
시집을 소개합니다. 풀꽃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님의 2019년도 2월 신작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 입니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남자 주인공 차은호가 자신의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이 시집에 나온 시를 인용해서 유명해졌지요. 부드럽고 달콤한, 그러면서도 당찬 편집장으로서, 또한 작가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차은호가 던지는, 삶의 단편들 같은 시어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15쪽) 맑은 날 하늘
청량한 달님도 있지만 / 흔히는 흐린 하늘 /
구름 속에 매연 속에 / 흐리게 웃고 계신 달님 //
어머니 어머니 / 좋은 것 드리지 못하고 /
근심만 드려서 / 죄송합니다 //
마치 짧은 편지글 같기도 하고, 엽서 같기도 한
쉽고 간결한 시 문장들.
봄날 산책길에서, 전철 안에서 잠깐,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 시들이 백여 편 실려 있습니다.
미세먼지도 없고, 바람도 없는 봄날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마음의 여유와 맑음을 간직한 어느 날, 서너 편씩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 곳곳에 놓여 있는 애틋한 것들과 사람의 말, 마음, 기쁨이 아주 쉬운 입말로 표현된 시들이 대부분입니다.
때론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복받치듯, 때론 누군가를 위로하듯, 때론 봄햇살처럼 부드러운 안부의 인사를 전하듯이 그렇게 시어와 시행과 문장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5쪽) 시인의 말에서
사랑아, 너 그냥 그 자리에서 있거라. 가까이 오려고 애쓰지 말아라. 웃고만 있어라. 강건하여라. 울지 말아라. 지치지 말아라.
위의 고백을 바람결에라도 전해 들은 사랑은, 그 자리에서 멈칫, 마냥 웃고만 있을 것 같은 사랑스런 분위기가 연상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아주아주 시골 마을인, 이모네(올해 75세 되신) 집을 다녀오면서 늘 하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시가 있다.
그 동네 어르신들은 대개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라서 70평생 이 넘는 세월이 되는 동안, 고향을 길게 떠나 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104쪽) 고향
한 가지 풍경만 보면서 살았던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날마다 만나던 사람만 만나며 산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 세상은 어쩌면 그리 나쁜 것도 그리 좋은 것도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 된다.
그냥 지나는 돌길에, 꽃잎에, 들꽃 이파리에, 바람결에 마음 한 구석 얹어 놓으면 그만인
가벼움의 나날일지도 모르겠다.
밍기적 밍기적~
하늘은 하루이틀사흘 동안 볕을 보여주지 않았다.
구름 낀 하늘에 비를 잠뜩 품었다.
오늘은 이만치 내일은 저만치 글피는 찔끔 비를 뿌렸다.
날은 가을인 듯,
습기 많은 날들은 오히려 여름을 아직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이미 마음은 가을이다.
이런 날 있으면 저런 날 있기에 작년보다 그렇게 덥지 않은 8월이었는데,
마음은 괜히 더 힘든 듯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낸 나날이었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게 더 힘든데....
속에서는 그냥 견뎌내야하는 것과 열심히 싸운 듯 싶다.
그리고 또 아무 일 없듯 쏙 들어온 가을을 맞이했다.
이런 계절의 우연이 나는 좋다.
딱딱 판에 박힌 듯 일률적이면 답답하고 못 견딜 것 같다.
아비토끼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27살 청년이다. 아비토끼랑 18살 차이나는 어린 친구다^^
첫 날 함께 일하는데, 이 어린 친구가 살갛게 아비토끼 등에 두 주먹으로 살짝 통통통 치면서 '화이팅!!'
말했다는데, 그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너무 귀여웠단다.
천성적으로 애교가 많은 사람인가보다.
좋다고 표를 내는 사람이 아닌지라,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나보다.
여름에 작업 환경도 바뀌고, 일을 하면서
별로 사이좋지 않은 상사와도 얼굴 붉혀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詩와 같은 친구가 들어왔다고 생각된다. 그 낯설고 딱딱한 곳에.
그렇게 아비토끼도 이 어린 친구로 인해 마음이 쉬어 가는구나!!!
내 문제보다 내 가족이, 내 가까운 사람이 힘들면 더 못 견뎌하는 요즘이라 힘들었는데.....
한 때 나를 살렸던 / 누군가의 시들처럼 /
나의 시여, 지금 /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도 / 살려주기를 바란다
계절도 바뀌고, 마음도 쉬어갔으면 좋겠다 싶어 나태주 시인의 <마음이 살짝 기운다>를 음미했다.
아비토끼의 신입사원도 생각나고, 이 시집에서 詩 '나의 시에게' 랑도 합이 기막히게 맞는 듯 싶다.
어린 친구의 생각지도 못했던 애교 섞인 '화이팅' 위로에 빵~ 웃었다.
그간의 힘듦이 한 방에 날라가버린 듯....
詩와 같은 그 어린 친구의 예쁜 마음씀씀이가 여러 사람을 살린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 사랑 노래에 괜시리 들뜨게 만든다. 나이 불문하고.
보는 시선마다 반짝반짝 보석이다. 늘 느끼는거지만 부럽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내도 내 마음이 사랑을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결코 떠나지 않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별도 마찬가지.
나에게 詩 읽기는 역시 계절의 분위기를 탄다.
탁월한 선택이다^^
삶의 순간순간이 여행이라면,
짧은 여행을 하든지 긴 여행을 하든지 마주하는 풍경 속에 오롯이 마음을 맡기지 못한다.
어느새 내 마음 속 풍경은 조급함으로 변한다.
사진을 찍어 남겨야만 그 풍경이 오래도록 내 기억 속의 저장이 되는 것처럼.....
그러나, 더이상 그리움은 없다.
풍경 속의 기억만 새록새록 돋을 뿐......
풍경이 너무 맘에 들어도 / 풍경이 되려고 하지는 말아라
풍경이 되는 순간 / 그리움을 잃고 사랑을 잃고 / 그대 자신마저도 잃을 것이다
다만 멀리서 지금처럼 / 그리워하기만 하라
詩 '여행자에게' 의미가 아로새겨진다.
다시 여행을 하게 되면 나는 풍경을 오롯이 그냥 그리워하기만 할거다.
그리움의 한 순간만을 내 마음에 저장할거다.
내가 그 순간에 느낄 북받쳐오르는 뭉클함만을 간직할거다.
봄은 올까요?
추운 겨울을 이기고 / 우리 마을에도 / 분명 봄은 찾아올까요?
그렇게 묻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는 / 이렇게 묻습니다
가을은 올까요?
우리 마을에도 / 사나운 여름을 이기고 / 가을은 분명 찾아올까요?
옵니다 분명 가을은 옵니다
9월은 벌써 가을의 문턱 / 9월은 치유와 안식의 계절
우리 9월에 만나요
만나서 우리 서로 그동안 / 힘들었다고 고생했다고 / 잘 참아줘서 고맙다고
서로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인사를 해요
詩 '9월에 만나요'는 지금 나에게, 지금 이 시간에, 지금 이 공간에서
나를 일으켜세운다. 예, 9월에 만나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마음은 이미 9월 입니다.
그래서 시를 읽습니다. 좋네요.
너는 비둘기를 사랑하고 / 초롱꽃을 사랑하고 / 너는 애기를 사랑하고
또 시냇물 소리와 산들바람과 / 흰 구름까지를 사랑한다
그러한 너를 내가 사랑하므로 / 나는 저절로
비둘기를 사랑하고 / 초롱꽃, 애기, 시냇물 소리, 산들바람, 흰 구름까지를 또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詩 '그러므로'
넉넉해지는 8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이다.
글피 동안 내린 비가 멈추고, 가을 바람이 밤 속에 섞여 들어왔다.
약하게 귀뚜라미 소리 들리고,
사랑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는 밤이다.
살며시 들어온 가을 때문에 내 마음도 회복되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전화를 걸고 싶다
하늘 맑고 구름 높이 뜬 날이면 더욱 전화를 걸고 싶다
전화 가운데서도 핸드폰으로
멀리, 멀리 있는 사람에게 / 오래, 오래 잊고 살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을 찾아내어
잘 있느냐고 / 잘 있었다고 / 잘 있으라고 / 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나는 오늘 바람이 되고 싶고 구름이 되고 싶은가보다
가볍고 가벼운 전화 음성이 되고 싶은가보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끌고 개울 길을 따라가면서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다.
詩 '전화를 걸고 있는 중' 날들이 많아졌다.
전화 오지 않는 인기 없는 나를 장난스레 타박도 하지만,
수많은 전화 번호 중에 정말 오랫동안 소통하지 않은 채 뜸했던
전화번호들은 유령처럼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뜻하지않게 그 전화번호를 만지작거리며 어색한 울림에 귀를 기울인다.
너무 오랫만이라 당황스러워하지 않을까?
그 전화번호가 내가 모르는 낯선 주인을 만났을까?
통화연결음 너머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을 때의 그 안도감과 설레임.
반갑다. 친구야^^
시간의 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친구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어른들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요즘 유달스레 많이 한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들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젊었을 때 나를 키워낸 카랑카랑했던 목소리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더 짠하고 애틋하다.
시를 읽으면 내 마음 속에 들어가거나 누구가의 마음을 읽는 시간인 듯 하다.
기도하는 마음이 든다. 요즘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은 참 마음을 많이 기울게 한다.
마음 쓰이게 한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9월이 내일 모레 지나고 글피에 터벅터벅 걸어온다.
풍성해질거야^^
최근에 즐겨보는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주인공 은호가 이제 조금씩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 누나 강단이를 생각하면서 시를 읽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두고 온 한 사람이 보고 싶은 거다. 또다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싶어 마음이 안달해서 그러는 것이다.' 오랜 세월 친동생, 친누나 처럼 지내온 그들의 관계가 조금 달라지려는 차에 부득이한 상황으로 인해 며칠 떨어져 있게 되는데.. 그때 이 책을 읽었다.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주는 대상은 따로 있었지만, 아마도 마음 속으로는 그녀를 생각하며 시를 읽었을 것이다. 그때 은호가 읽었던 가슴 설레던 그 시집이 바로 이 책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거리에도 없고 집에도 없고
커피 잔 앞이나 가로수
밑에도 없는 너를
내가 사랑한다 -p.12, '그런 너' 중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는 시, '풀꽃'을 쓴 시인 나태주. 이 책은 풀꽃 시인 나태주의 미공개 신작 시 100편을 담고 있다. 게다가 일러스트 작가 로아의 다정한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책 자체도 너무 아름답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쉽고,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시집이 아닌가 싶다. 잘 읽히고, 어렵지 않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무엇보다 각각의 시와 어울리는 일러스트들이 굉장히 감각적이고 예쁘다.
나태주 시인은 이 책을 통해서 세상 곳곳에 높여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애틋한 사랑에게 안녕을 전하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시인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살포시 가져와 시로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시들을 이루고 있는 언어들이, 감정들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쓰러진 꽃도
함부로 밟거나
잘라서는 안 된다
꽃이 필 때까지
꽃이 질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p.140, '뿌리의 힘' 중에서
사랑의 설레이는 순간의 이별의 슬픈 감정을 담고 있지만, 일상의 소소한 것들도 그려내고 있는 시집이다. 1장에서는 연인의 이야기를, 2장에서는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을 향한 애정을, 3장에선 자연과 일상에 대한 고마움을, 4장에선 삶에서 마주했던 인연들에게 건네는 말을 담고 있다. 또 어떤 시에서는 아기가 웃으면 따라 웃고, 아기가 아프면 따라서 아픈 엄마를 담고 있고, 어떤 시는 아내와의 오랜 세월을 그려내고 있고, 여전히 꽃보다도 고우신 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있고, 초보 엄마, 젊은 엄마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딸에게 건네는 애틋한 마음도 있다.
'서있을 때 보이지 않던 구름이 자리에 앉았더니 보이기 시작한다'로 이어지는 시가 유독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감정들을 놓치며 살고 있을까. 자리에 앉았더니 '구름만 보이는 게 아니라 바람의 손도 보이고 바람이 만지고 가는 구름의 속살까지도' 보인다고 시인은 말한다. 일상이 전쟁처럼 치열하고, 사는 게 매일매일 너무 바쁘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숨 돌리고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아이의 눈높이로 앉아서 아이가 바라보는 시야로 세상을 내다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급하게 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파란 하늘과 솜사탕 같은 구름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이렇게 일상의 쉼표를 만들어주는 준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것 같다. 휴식이 필요한 당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뒤늦게 시가 마음을 위로해주는 능력이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면서 시를 시로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 많은 시간을 아쉬워해본 적이 있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시, 시험 문제를 맞추기 위해 배우는 시는 시가 아니다. 그렇게 공부한 시는 한 번도 내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 찾아내려고 조각조각 쪼개가며 살펴보는 시가 아니라 마음을 맡긴 채 천천히 읽어내려가는 시여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 나태주 시인의 시집도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물론 시집 속 모든 시가 다 마음에 와닿은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 시도 있고, 또 그 중에는 너무나 내맘같은 시도 있다. 내맘같은 시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리뷰로 작성하려고 머릿속에서 이렇게 정리해보았다.
"머리가 아플 때 얼른 두통약을 집어 삼키면 좀 가라앉는다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번잡하고 답답할 때 무작정 집을 나서 길을 걸으면 뭔가가 정리된다는 사람이 있다. 웬만하면 약은 안 먹고 버텨보자는 주의인 나는 머리가 아플 때 시집을 펴 시 한 편 집어 삼킨다. 마음이 번잡하고 답답할 때 무작정 시집을 펴 시 위를 걸어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두통도 잦아들고 번잡했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이런 경험을 처음 맛본 건 몇 해 전이다. 그 전에는 시집을 거의 읽지 않았으니 시집에 이런 효력이 있는지 몰랐다. 시집의 효력을 믿고 비상詩를 항상 구비해두려 한다.
긴 글은 읽고 나면 금새 다 잊어버린다. 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지. 그저 '좋았다', '재미있었다'만 남고, 다른 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짧은 글은 다행이다. 짧아서 기억하기 좋고, 안되면 다시 읽으면 되니까. 다시 읽으며 잊어버리기 전에 뭐라도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 라고 쓰려고 정리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대박!'. 이 책의 끝 '시작詩作 노트'에 써있는 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가령,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약국에 가서 어떠한 약을 사서 먹는가? 당연히 아픈 증상이 사라지는 (병증이 낫는) 약을 사다 먹는다. 시도 마찬가지고 시인들도 또한 그러하다. 이제는 유명한 시, 유명한 시인이 아니다. 그것을 독자들은 요구하지 않는다. 아니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금 마음으로 아프고 살기가 힘들다고 호소하지 않는가! 거기에 대해 즉각적인 대책은 못 된다 하더라도 위로를 주고 어루만짐이라도 주고 동행의 마음이라도 허락해야 한다."
그래, 바로 이거다. 내가 시를 읽기 시작하며 느낀 것 말이다. 시인이 직접 이렇게 말해주니 내가 아는 시의 쓸모(?)가 영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든다. 아마도 나태주 시인의 시는 삶의 터전, 그 속에 있는 자연,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마음 있는 그대로의 것을 그려내니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디디고 서있는 곳을, 내 눈길이 뻗어가는 곳을, 손길이 닿는 그 곳을 시로 그려내면 내가 머무는 시공간이 곧 시가 되고, 시는 다시 나의 시공간이 되는 것이지 않나.
시를 읽자. 우리의 마음과 또 마음을 위해서.
p.218
가끔 나는 좋은 말, 특별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말씀을 그렇게 함부로 막 하지 마십시오. 제 곁에서 그렇게 좋은 말을 하면 제가 그 말을 훔쳐다 시로 쓸 것입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기에게 욕하는 줄 알았다가 듣고 보니 자기의 말이 좋다는 말이고 아름다운 말이라는 것이니 오히려 즐겁게 웃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시는 너의 것이 나의 것이고 또 나의 것이 너의 것이고, 그래서 서로가 상동하면서 유쾌하게 주고받는 그 무엇의 세상인 것이다.
매우, 몹시, 난.감.하.다!
제목처럼 마음을 아주, 아주 살짝만 기울이려 했건만.. 읽으면서 나도 몰래 퐁당 빠지고 말았다. 읽는 사이 사이 필사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이 시집의 시를 사랑하고 말았다. 시인은 도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좋고 아름다운 게다가 감동스럽기까지한 말들을 담아왔을까. 또 어떻게 이렇게 과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딱 알맞게 맞추어 내 감정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걸까.. 요즘 들어 부쩍 시가 읽힌다고, 시가 자꾸 읽고 싶다고, 시가 참 좋아졌다고 그랬었는데.. 내가 그리된 것에 이 시인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를 읽으며 인상깊었던 시인이..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란 드라마에서 또 다른 시집으로 나를 뒤흔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시인에게 빠진 것은.. 윤동주 시인, 박준 시인 이후 처음인 듯하다. 풀잎 시인이 나를 아주 갈대로 만들었다. 시 한 구절 한 구절로 내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다행히 갈대여서 부러지지 않고 버티어냈지만, 다음에 읽을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는 또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흔들어댈까..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좋고 예쁜 것을 많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멘탈이 약한 나는 혹여라도 있을 수도 있는 나쁘고 못난 것에 급 좌절할까 두렵다. 인생은 무조건 다 좋을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진즉 알아버린 것이 오늘따라 좀 슬프다.
이 벚꽃, 개나리꽃, 꽃들이 즐비하는 이 봄을 마냥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내가, 나는 참으로 슬프다.ㅠ
산티아고로 떠나는 시인에게
객지의 날이 길고 길겠네
부디 아프면 안 돼
좋은 생각 맑은 생각 많이 하며
잘 다녀와
우리들 세상의 목숨은
어차피 한 번뿐이고
진정한 사랑도 한 번뿐이고
가슴 저미도록 아름다운 여행도
한 번뿐인 거야
지금 그대는 그 여행을 떠나려는 거구
나는 결단코 아지 못하는 땅
가보지 않은 고장
그곳의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고 싶어하는
영혼아 푸른 영혼아
아주는 그곳에 머무르지 말고
그곳의 바람과 햇빛과
구름과 나무만 데리고 오기 바래
모르는 곳 그곳으로
그대 떨치고 떠날 수 있는
그대의 조건과 그대
자신에 대해 감사하면서
잘 다녀오기를 빌어
다녀오면 내 그대를
한 번 안아줄게
내 키가 비록 그대 키보다
훨씬 작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