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473~474
두바이가 말했다.
"바깥세상은 변했더군. 토지도 분배된 지 여러 해가 지났어. 개방이 됐다고. 형님이 토지를 분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밖에 나가 장사도 하지 못하게 막는데 누가 수로 준설 공사에 참여하려고 하겠어? 사람들이 피부를 팔아서 번 돈을 몰수해서 수로 공사에 쓰는 걸 누가 원하겠어? 누구든 초가집을 부수고 기와집으로 새로 짓고 싶어 해.
? 산싱촌의 불운은 쓰마란이 몰고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촌장이 되고 싶다는 그의 욕망은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였다. 거짓, 음모, 압박, 일방적 강요는 리더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세상은 변했는데 변한 세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미래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제하는 쓰마란의 모습은 누구와 무엇을 풍자한 것일지 궁금해졌다. 피부를 팔러 시내로 나가게 된 산싱촌의 주민들은 바깥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바깥도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더 이상 수로에 무조건적인 희생을 거부한다. 당연한 행동이다. 모두를 위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나의 행동에 따른 다양한 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쓰마란은 확실하지도 않은 생명연장이 가능한 미래를 볼모로 지나칠 정도로 모두를 밀어붙이고 위협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옌롄커란 작가를 알게된 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이라는 영화가 개봉하고 알게되었다.
국내에서는 흔히 말하는 폭망했다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원작은 예상외로 매우 평가가 좋아 상극을 이루고 있었다.
원작의 작가 옌롄커는 누구인가 검색을 해보니
중국 현대문학 대표 3명 중 한명으로
호기심이 가만히 있질 못 하여 옌롄커의 작품을 하나하나 접하였다.
그리고 결국 일광유년도 접하게 되었는데
중국 산골마을의 비극사를 3대에 걸쳐 역순으로 진행하는 내용인데
현대문학이 비극을 어떻게 그리는지 예전의 비극과는 어떻게 다른지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일광유년 이 책 또한 추천한다.
나의 문학읽기가 영미문학에 얼마나 치우쳐져 있었는지 새삼 다시 느낀다. [일광유년]의 작가 '옌롄커'는 나에게 생소한 작가였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작가는 루쉰, 위화, 모옌 정도이다. 그나마도 그들의 문장이 이유도 없이 불편해 선호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 옛날 옌롄커의 작품을 만났다면 그의 작품 또한 나에게 온전히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이 내가 조금은 다양한 읽기가 이루어져서인지, 아니면 세월의 유연함을 터득해서인지 [일광유년]은 거친 단어와 문장 속에서도 다양한 생각거리를 찾으며 읽을 수 있어 나에게 성큼 다가온 중국 작품이었다. 옌롄커는 문제적 글쓰기로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유수의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과 대중의 호응을 받는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옌롄커. 중국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꼽힌다하니 그의 작품을 좀 더 찾아서 읽어두어야겠다.
[일광유년]은 이름도 독특한 '목구멍병' 으로 인해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산싱촌' 마을의 이야기이다. 대를 잇는 참혹한 세월과 다양한 이름의 욕망을 켜켜이 담아내고 있다. 지리적 요건으로 문명과 떨어져 있는 마을 산싱촌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원인도 알지 못하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 촌장을 중심으로 발버둥친다.
산싱촌 사람들은 마흔이 되기 전에 목구멍이 부어 오르면서 병에 걸려 죽고만다. 그들 모두는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알고, 언제 죽을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 때문인지 그들은 마을의 촌장을 중심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들은 유채꽃을 재배하고, 땅을 갈아 엎고, 산 너머 링인거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로를 만드는 일을 함께 해나간다. 작업을 위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함은 물론, 공사비 마련을 위해 피부를 팔고, 인육을 파는 것도 당연한 일처럼 강요받는다. 그들은 더 살겠다는 염원으로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날은 알지만 삶이 마감되는 날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을 허비한다. 산싱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날들을 헤아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좀 더 의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갔어야 한다. 기약없는 희망에 매달리며 욕망하고, 질투하며, 경쟁하고, 강요받고, 상처받고, 불안에 떨며 죽음을 기다리지 말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비로소 하루하루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로 비참했을 것이다. '메멘토모리'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올바르게 기억하지 못했기에 살아있는 날을 진창으로 보낸 것이다.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강렬하고 원색적이라고 느껴질테지만 모든 욕망이 존재하는 곳은 강렬하고 원색적이므로 사실적인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살기 위해 식인까지 허용할 만큼 비도덕적이고, 종족번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욕을 수치심없이 분출하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약자를 이용하는 모습들은 결은 달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도 존재한다. 작품 속 산골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 살아가는 동안에 나에게 비쳐지는 '밝은 빛'을 직시하고, 그 너머를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겠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