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미리보기 공유하기

춥고 더운 우리 집

리뷰 총점 9.6 (22건)
분야
에세이 시 > 에세이
파일정보
EPUB(DRM) 19.55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16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구매 『춥고 더운 우리 집』 그럼에도 그리운 우리 집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21.09.06 리뷰제목
그분이 살고 있던 집은 논길을 돌아 주택들이 여러 채 있던 곳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었다. 흰색 벽이었고, 자그마한 이층집이었다. 제일 큰 공간은 서재였다. 책장이 한 곳에 자리 잡고 길다란 책상이 있던 곳. 넓은 공간 한쪽에는 소파가 있었던 거로 기억된다. 2층의 방 들을 포함해 1층의 방은 작았다. 잠깐 낮잠을 자도 좋을 곳. 고양이들이 좋아할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부엌
리뷰제목

그분이 살고 있던 집은 논길을 돌아 주택들이 여러 채 있던 곳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었다. 흰색 벽이었고, 자그마한 이층집이었다. 제일 큰 공간은 서재였다. 책장이 한 곳에 자리 잡고 길다란 책상이 있던 곳. 넓은 공간 한쪽에는 소파가 있었던 거로 기억된다. 2층의 방 들을 포함해 1층의 방은 작았다. 잠깐 낮잠을 자도 좋을 곳. 고양이들이 좋아할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부엌. 창문이 커, 창문을 통해 밖으로 음식을 내보낼 수도 있었던 곳. 목재로 된 식탁에서 김장 김치를 꺼내놓고 뜨거운 밥을 먹었다.

 

책을 읽는데 어쩐지 그 공간이 자꾸 떠올랐다. 눈이 와 녹은 마당이 질척거렸고, 개가 한 마리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만의 집을 갖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기가 아니어서 유심히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저 이 공간이 아름답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최근 집들에 관한 에세이를 몇 편 읽게 되었다. 집을 추억한다는 건 시절을 추억한다는 거다. 집은 우리가 거쳐온 공간이다. 가족의 기억들을.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와 아빠. 유년시절의 우리가 있다.

 

사랑과 행복 가득한 집보다는 햇볕이 들지 않아 오히려 추운 집의 시간을 그린다. 그곳에는 엄마, 아빠가 계셨던 곳. 시골이라 책 한 권을 구하기 어려운 시간을 기억한다. 전남 곡성의 서향집에서부터 작가가 머물렀던 집들은 비록 화려한 집은 아니었고, 소박한 공간일망정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작가가 존재할지 모른다.

 

태어나서 열일곱 살 때까지 살던 집, 그 뒤로 거친 여러 집. 그리고 방황하듯 여러 도시를 떠돌았던 집. 그리고 현재의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과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건넨다. 작가가 살고 있는 집은 수북이라는 곳으로 할머니들과의 일화를 말하는데 상당히 다정하고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글을 쓸 때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가는 엄마들이 했던 말들. 할머니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옮겼는데 정감있다. 책에서 보는 전라도 사투리가 이렇게 정감있게 들려온 적이 없다.

 

순하디순한 전라도 엄마들의 말이 꽃 같았다는 표현을 했다. 자식들에게 아가라는 호칭을 썼는데 그 호칭은 자식들의 나이가 서른 살이 넘어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지만, 예전 할머니들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다정하고도 애정이 넘치는 악아 혹은 아가라는 말. 다시는 들을 일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나에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인가. 내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79페이지)

 

 

 

작가의 다정한 언어들을 계속 읽었으면 싶었다. 할머니들뿐인 동네여도 소소한 일상들을 글로 남겼으면 하고 바랐다. 책을 읽고 동생과 함께 그 집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여 다시 한번 그 집에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를 띄워 주소를 검색해보고는 곧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이란 무엇인가? 가족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장소? 오래전에 살았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다. 시골의 바닷가 마을. 엄마의 산소에 갈 때 한 번씩 가보게 되는데 집터만 있는 곳을 바라보아도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게 된다. 집은 그리움과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리운 시절이 있는 곳. 그게 바로 집이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춥고더운우리집 #공선옥 #한겨레출판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에세이 #한국문학 ##우리집 #우리집이야기 #그리움 #시절

1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1 댓글 1
종이책 슬픔이 머물러 있는 우리 집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m | 2021.06.01 리뷰제목
대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산 그 집은 춥고 더웠다. 하필이면 봄에 그것도 낮에 집을 보러 갔다. 따뜻하고 밝았다. 방 한 칸에 부엌 하나가 전부였는데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전봇대에 붙은 '방 있음'이라는 낡은 종이를 보고 간 것치고는 괜찮았다. 집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어서 보증금 50만 원에 다달이 월세와 공과금을 함께 내는 걸로 합의를 했다. 오래 살아
리뷰제목





 

 

대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산 그 집은 춥고 더웠다. 하필이면 봄에 그것도 낮에 집을 보러 갔다. 따뜻하고 밝았다. 방 한 칸에 부엌 하나가 전부였는데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전봇대에 붙은 '방 있음'이라는 낡은 종이를 보고 간 것치고는 괜찮았다. 집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어서 보증금 50만 원에 다달이 월세와 공과금을 함께 내는 걸로 합의를 했다. 오래 살아서 나중에는 월세를 깎아 주기도 했다.

 

여름이 문제였다. 서향 집인 걸 그제야 알았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 동안 열기가 식지 않아 방이 절절 끓었다. 부엌 문을 열어 놓으면 모기가 들어와서 문을 열지도 못했다. 밤새 뒤척였다. 잠깐 평온의 가을을 보내고 겨울. 해는 뜨는 줄도 모르게 떴고 정신 차려 보면 해가 졌다. 극지방의 극야가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너무 추워 주인집 몰래 난로를 켜기도 했다. 왜 몰래 켰냐면 전기세를 주인집과 함께 냈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비치는 빨간 불을 보고 뭐라고 할까 봐 가장 낮은 온도로 켜두었다. 그래도 추웠다. 힝.

 

공선옥의 산문집 『춥고 더운 집』의 제목을 보고 과거 우리 집 이야긴가, 해서 읽었다. 다시 문을 연(코로나 상황에 따라 문을 열고 닫는 도서관, 다행히 이번에는 빨리 열었다.)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 꽂힌 공선옥의 산문집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내 최애 작가 중 한 명인데. 공선옥은 전라도 말을 소설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이다. 문자로 표현하기 힘들고 애매한 전라도 사투리를 어쩜 그리 맛깔나게 표현하는지.

 

『춥고 더운 집』은 공선옥이 태어나서 자란 집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사방이 시커멓고 구렁이가 달걀을 훔쳐 먹는 집. 북향이고 산에서 때때로 고라니가 출몰하기도 한다. 구렁이 때문에 화난 아버지가 초가집을 버리고 블록 집이라고 하는 '부로꾸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초가집 보다 더 험한 곳이었다. 외양은 그럴싸했지만 부엌이 없는 집이었다. 대문이 따로 없고 겨울에는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가 돌아와 집을 지어 다시 이사를 나갔다.

 

곡성에서 광주로 경기도로 다시 광주로 그리고 지금은 담양에서 공선옥은 살고 있다. 그 사이에 작가는 험난한 객지 생활을 했다. 사촌 동생의 소개로 기숙사에서 살아보고(몇 달 다니다 도망치듯 나왔다. 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는 기숙사 방에서 견딜 수 없었다.) 작은 빌라에서도 살아봤다. 어쩌다 땅을 사서 그 땅을 담보 잡혀 집을 지었다. 집을 지으면서도 애로 사항이 많았다. 괜찮은 시공자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걸 실감했다.

 

새로 지은 집에서도 시행착오는 계속되었다. 지붕을 잘못 올려 여름엔 더웠다. 잔디를 잘못 깔기도 하고. 그래도 공선옥은 처음 지은 내 집에서 살아간다. 시골에서 살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차를 끌고 다녔지만 사고가 나서 폐차를 하고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간다. 차가 없어서 물건을 많이 살 수도 없다. 대신 버스에서 동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알았다. 장날이 되면 힘들게 기른 야채를 이고 지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 기사는 할머니가 다칠까 짐을 싣고 찻삯을 낼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린다.

 

집이란 무엇인가. 『춥고 더운 집』은 내내 질문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내 소유의 집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몇 백 채의 집을 가지고 집장사를 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도 있다. 집 때문에 웃고 우는 삶. 그깟 집이 뭐라고 그 설움을 다 견디고 사는 건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않는 이상 집을 살 수도 없는 시대. 평생 그 빚을 갚을 생각으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산다지. 『춥고 더운 집』은 집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가난 밖에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회상하며 좋은 시절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녹진한 전라도 말로 이야기한다. 그 시절 엄마가 해주던 밥상을 기억하는데 엄마는 없다. 자식 먹이려고 온갖 농사일을 하던 엄마는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 공선옥은 엄마를 부르고 평생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춥고 더운 우리 집에는 우리가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먹을 것만 생각한다고 혼났던 수업 시간. 먹지 않고 살 수 있나. 『춥고 더운 집』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머물러 있는 책이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0
종이책 <춥고 더운 우리 집> 리뷰 :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집 평점8점 | l****7 | 2024.03.30 리뷰제목
책 표지에서 눈에 띄는 그림의 제목은 《창가에 있는 소녀》이다. 아버지가 손수 지은 부로꾸집 들창문을 열고 그 아래에서 숨죽여 글을 쓰고 있는 어린 공선옥 작가가 연상된다. 저자가 수십 년 간 거쳐온 집들은 어떠한 안락이나 환대도 기대하기 어려운 춥고 메마른 공간이었다. 그 옹색하여 살기 힘들었던 모든 조건들이 작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에게 실은 풍요롭고 행복한 조건들이었
리뷰제목


책 표지에서 눈에 띄는 그림의 제목은 《창가에 있는 소녀》이다. 아버지가 손수 지은 부로꾸집 들창문을 열고 그 아래에서 숨죽여 글을 쓰고 있는 어린 공선옥 작가가 연상된다. 저자가 수십 년 간 거쳐온 집들은 어떠한 안락이나 환대도 기대하기 어려운 춥고 메마른 공간이었다. 그 옹색하여 살기 힘들었던 모든 조건들이 작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에게 실은 풍요롭고 행복한 조건들이었다는 작가의 고백에 그녀가 살아온 세월이 궁금해진다.

 

《춥고 더운 우리 집》은 소설가 공선옥이 2009년《마흔 살 고백》 이후 12년 만에 낸 산문집이다. 총 3부, 스물여덟 개의 산문들로 구성된 이 책은 ‘집’을 매개로 작가의 지난했던 삶을 들려준다. 유년 시절의 고향 집, 고등학교 시절의 자취방, 서울 정릉 언덕배기 끝의 한 공장 기숙사, 모자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았던 영구임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고되고 쓸쓸했던 집에 관한 이야기들이 1부에 그려져 있다. 2부에는 내 집 없이 살던 중 어쩌다 담양 수북에 땅을 사고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과 소회가 담겨 있으며, 3부에서는 비로소 정착하게 된 지금의 집 담양 수북에서의 일상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펼쳐진다.

 

독자를 사로잡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사실적이면서 생동감 넘치는 문체와 순우리말, 시골말을 오가는 작가 특유의 말맛일 것이다. 천천히 스케치하듯 그려지는 정경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책의 행간에 머물러 꿈꾸듯 그 시간 어딘가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작가 특유의 어휘들로 색이 입혀지면, 우리는 어느새 TV문학관의 단막극 안에 들어와 있게 된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노인 부부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자울자울 졸고 있었다.”(p.185)

“하늘의 별은 유달리 반짝이고 그날도 어김없이 용산으로 혹은 여수로 가는 기차들은 그 강가에 불빛을 던져놓고 멀어져 간다.”(p.187)


공선옥 작가는 그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 특히 몸부림치며 힘들게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왔는데, 이 책에서도 역시 그들을 향한 다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울음으로 꽉 차서 매정한 방’이란 제목의 기숙사 이야기는 그 각박함이 너무 와 닿아 코 끝이 시려지고 만다. 서른 살, 아이 셋을 홀로 키우며 생활고의 공포로 글을 써나갔던 영구임대 아파트. 근 20년 만에 다시 가 본 그곳에서 서른 살 당시 친한 이웃이었던 여자가 예전 그대로 살고 있음을 보고 ‘2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인생이 무서웠다’는 작가의 말에 왠지 마음이 처연해진다.


“기숙사에는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아무리 여자들끼리지만 한옆에서 용변을 보는데 한옆에서 목욕을 하는 풍경을 보는 것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아가씨들은 나가면 금방 먼지를 뒤집어쓸 테지만, 지극정성으로 화장을 한다. 화장은 아가씨들이 매일 아침마다 드리는 예배 같다.”(p.57)


사람은‘집’에 살지만, ‘집’은 사람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생채기 가득한 집이었지만, 내 가족이 함께했던 집이었기에 여름날의 아침같이 눈부시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애잔하고 그리운 마음이 읽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거쳐온 집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말한다. 수십 년간 집다운 집을 못 가져서 마음의 길거리를 서성이던 자신이 원하는 집은 든든한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고. 나와 내 가족, 내 물건들의 시간과 자취가 편히 보존되어 있을 공간이라고. 우리 또한 ‘세상에 하나뿐인 내 집’을 꿈꾼다. 아직은 그 꿈에 손이 닿지 않아 마음이 불안한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을 한 권 건네고 싶다. 가난하고 외로운 나날들의 노동이 너무 힘겹고 서러워 불현듯 글을 썼다고, 살아있다는 것은 서러운 것이라고, 지난 세월이 행복하지 않았어도 불행하진 않았다고, 그렇다면 그게 행복 아니겠냐고 말하는 작가의 회고가 지금의 그 외롭고 간절한 마음을 조금은 덜 춥게 하지 않을까 싶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종이책 [서평] 춥고 더운 우리 집 _ 공선옥 평점8점 | b*******h | 2021.11.27 리뷰제목
“주택에서 자랐어요.”라는 사실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친구가 아파트에 살던 것을 부러워하던 내가? 정말로? 왜? 어째서 말야?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주택에 사는 것이 로망이 된 시대가 되면서부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그치곤 했다. 자세한 내막을 말하게 되면 좋았던 게 더 이상 좋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리뷰제목

 

 

 

“주택에서 자랐어요.”라는 사실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친구가 아파트에 살던 것을 부러워하던 내가? 정말로? 왜? 어째서 말야?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주택에 사는 것이 로망이 된 시대가 되면서부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그치곤 했다. 자세한 내막을 말하게 되면 좋았던 게 더 이상 좋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유년 시절, 엄마가 “저녁을 지어야 하니 친구들이랑 좀 더 놀다 와.”라고 말을 하면 나는 부리나케 골목길을 와다다다 내달리며 모기차를 따라나섰다.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겠지만) 동네 엄마들은 아이들의 활동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서 500m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놀아도. (가장 기억에 깊이 박혀있는 것은 (아마도 겁이 많아서 혹은 운동신경이 없어서) 나 혼자만 담을 넘지 못해 빙 둘러 가야 했던 그 길들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었나 보다 하고 지금과는 너무 다른 그때를 회상해 본다.

 

 

 

 

 

 

 

집,하면 떠오르는 것이 참 많은데 그중 한여름에 너무나도 더웠던 집안의 꽉 막힌 공기.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숨이 턱 막혀버릴 정도로 습하고 눅눅하고 어쩐지 떽떽거리는 것 같던 더운 공기 말이다. 자다가도 몇 번이나 찬물을 온몸에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 짓을 스물다섯 살까지 했다. 내가 번 돈으로 집에 에어컨을 놓기 전까지. 아니, 그마저도 에어컨 평형수를 잘못 구매해서(에어컨을 처분할 때까지 그 이유를 몰랐다) 에어컨 구매한답시고 돈은 돈대로 쓰고, 집은 시원하지도 않고, 주택이라 누진세는 열심히 붙고, 에어컨이 있는데도 집이 시원하지 않다며 에어컨이 고장 난 거 아니냐는 부모님의 볼멘소리에 그럴 거면 아빠 엄마가 사지 왜 안 샀냐고 버럭 하던 나. 그 여름. 나는 그전까지 여름에는 다들 이러고 사나보다, 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며 J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때가 생각이 나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 여름이 싫은 이유와 지금 여름이 싫은 이유는 너무나도 다르다. 지금은 물먹은 솜사탕 같은 습도가 싫다면, 그때는 여름 그 자체가 싫었다. 정말이지,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좋아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게다가 겨울에는 또 얼마나 춥냐면, 웃풍이 엄청났다. 아파트의 웃풍과 오래된 주택의 웃풍이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몸이 덜덜덜 떨리는데 오죽하면 이놈의 집이 잘못 지어진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보일러를 틀어도 확 따듯해지지도 않았고, 따듯하지 않은 채로 가스비는 20만 원을 훌쩍 넘어 30만 원, 40만 원도 우스웠다. 매해 겨울은 추웠기에, 보일러실의 보일러가 얼어서 부모님은 드라이기와 뜨거운 물들을 받아다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물을 뜨겁게 데우면서 저놈의 보일러는 얼어도 문제고 터져도 문제네 생각했었다. 그걸 못 봐주겠다 생각했는지 엄마는 어느 날 집에 난로를 들였는데, 그게 연탄난로였다. 그 안에 고구마도 넣어 구워 먹기도 하고, 그 위에는 떡을 구워 먹기도 하고, 주전자를 올려놓고 끓이며 집안에 수증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게 따듯했냐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훈훈했지만, 전기매트는 필수적으로 틀어놔야 하는 정도. 아마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은 여전히 그 연탄난로를 쓰고 계셨겠지.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때의 집이 생각이 났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던 우리 집. 하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게다가 적어도 이웃 주민들은 우리와 똑같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것 자체를 불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공선옥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던 내 유년 시절에 대해 민망하게도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불우했다고 표현하는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해 어쭙잖게 연민을 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쓰인 문장들과 내 생각이나 감정이 일치할 때마다 나는 안타깝게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라는걸.

 

 

 

 

 

 

 

11. 뭔가 포근하고 좋은 것들이 아니라 불안을 유발하는 조건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자연히 내 의식을 형성하는 것은 초조, 긴장, 두려움들. 나는 나의 장소, 나의 공간, 나의 시간, 나의 생활을 한편으로 연민하면서 또 한편으로 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살았다.

 

나도 딱 그랬다.

 

특히 집 밑에 있는 슈퍼에서 동네 아저씨들의 싸움이 일어날 때면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어둠을 타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거의 대부분 딴짓을 하고 있는 내 방 창문에 똑똑 노크를 해왔다. 혹여라도 나의 아빠도 그곳에 끼어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그 생각도 잠시, 그러거나 말거나 귀를 틀어막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새벽이 되면 신탄진역과 대전역을 오가는 기차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 소리가 내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동네를 떠나고 싶었는데, 지긋지긋하게 참 오래 살았다.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으려나 하고.

 

 

 

 

 

 

 

 

 

79. 나에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인가. 내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난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한다.

 

집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집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집과 나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내가 노년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고향을 꼽았다. 그 생각은 몇 년째 굳건했고 그렇기에 변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불현듯 그때의 그곳이 지금의 그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장소도, 많이 바뀌고 있고 바뀔 테니까. 내가 모르는 곳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 속에서 어떤 것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문인 화가 송현숙도 고향 무월리는 언제든지 돌아갈 곳,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을 테지만 직접 목격한 무월리는 그곳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결국은 내가 살아야 하는 곳이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겠지. 그래서 조금 유연하게 흘러가는대로 두려 한다. 아직 노년이 멀기도 했거니와 세상에는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어쩌면 안일한 생각을 기반으로.

 

 

 

 

 

 

 

몇 년 전에 읽은 김미월 작가의 <여덟 번째 방>과 최근에 읽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차례로 떠올랐다.

 

지금은 모든 이들이 집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기승전 집이 되는 세상. 결국 집은 무엇인가ㅡ 다시 원질문으로 돌아왔다.

 

 

 

 

 

 

 

오탈자 ; 79.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 우산으로써

 

 

 

 

 

 

_책 속의 문장

 

 

 

 

 

 

 

8. 고향을 생각하고, 집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또아리 틀고 있는 스산함. 황량함의 감정을 나는 쉽게 말해오진 못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93. 산다는 것은 복불복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그러니,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과연 천운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99. 인생에도 확실히 막간은 필요하다.

 

잠시 쉬는 시간, 독일 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파우제라고 했다. 파우제, 잠시 쉬었다 가자는 것이다.

 

 

 

221. 돈을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떠돌았던 아버지는 집에 오면 늘 ‘이방인’ 같을 수밖에 없었다.

 

 

 

- 뚜덕뚜덕 지은 집

 

- 싸목싸목 : 천천히의 방언(전남)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0
종이책 옹색하지만 따뜻했을 『춥고 더운 우리 집』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n******i | 2021.06.08 리뷰제목
이상하다.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반년이 넘어가는데, 나는 아직도 엄마가 사는 시골의 낡은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목적지를 말할 때도 ‘아파트로 갈게, 아파트에 들어왔어.’ 이렇게 표현하지 집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입에 붙은 습관처럼 말이 그렇게 나온다. 나는 아직 이 집에 정이 붙지 않은 걸까? 아니면 언제가 될지 모를 또 다른 이사
리뷰제목

 

이상하다.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반년이 넘어가는데, 나는 아직도 엄마가 사는 시골의 낡은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목적지를 말할 때도 아파트로 갈게, 아파트에 들어왔어.’ 이렇게 표현하지 집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입에 붙은 습관처럼 말이 그렇게 나온다. 나는 아직 이 집에 정이 붙지 않은 걸까? 아니면 언제가 될지 모를 또 다른 이사계획에 마음이 붕 뜬 걸까, 그것도 아니면 폭력적인 소음으로 공격하는 윗집 사람들 때문일까. 머릿속에 막연하게 채워진 생각들이 만들어갈 그곳이 궁금하다. 이제까지 살아온 집의 기억에 보태 앞으로 살아갈 집은 어디의 어떤 집이 될는지.

 

집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을지도 모른다. 집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먹고 자고 쉬고, 일상의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할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물리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것까지 아우르는 존재로 있어 주기를 바라는 곳. 작가가 머물다 온 그 집들을 생각하면, 집은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장소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낡고 불편했지만, 간절하면서도 애틋한 기억으로 남은 집들이 작가에게는 정신적인 공간이었을 테다. 작가가 걸어온 시간을 가득 채운, 가난의 모습이 곳곳에 묻어있는 그곳. 집에 대해 잘 몰랐지만 편한 집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게 한 그 시절의 이야기에 우리는 또 꿈을 꾼다. 편한 집, 내 공간,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작가가 찾던 집도 그런 곳이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한 공간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결국에는 오랜 세월의 끝을 정착하려고 선택한 집에 머물며 오늘을 살게 하는 곳을 찾았다.

 

자주 집 꿈을 꾸었다. ‘보이라에 에아가 차서 방이 냉골이라고 추위에 떠는 엄마 꿈, ‘입식 부엌에 지름 보이라를 못 놔서 서러운 아버지 끼무. 꿈속에서도 나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다. , 언젠가 돌아와 아궁이에 물도 차지 않고 보일러에 에어도 차지 않은 번듯한 입식 부엌에 기름보일러를 놓아드리리라. 엄마,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리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우선 나는 아궁이 물을 푸며 읽었던 책 몇 권 안고 집을 떠났다. (44페이지, 아궁이에 물을 푸며 책을 읽다)

 

작가가 어릴 적, 거대한 큰집 옆에 자리한 세 칸 초가집이 작가의 집이었다. 엄마가 힘들었음은 물론이고 그 후로 아버지가 다시 지은 부로꾸집(블록집) 역시 불편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집은 아버지의 거듭된 실패와 모습을 같이 한다. 더 좋아질 것 같았지만, 더 좋아지지 않았던 생활 공간으로 남았다. 어디를 봐도 완벽한 집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그곳을 거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처음 자취를 시작한 광주의 어느 식당 방.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의 봉제 공장에 취직하면서 경험한 기숙사, 역시 낡고 오래된 임대아파트까지. 그리고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게 구매했던 담양 수북의 땅. 땅만 사면 집은 저절로 짓는 거로 여긴 건 아닐까? 나도 그랬다. 땅만 구하면 집 짓는 것은 업체에 맡기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땅(자리)을 구하기도 어렵고, 집을 잘 짓는 업체를 만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흐지부지되었고, 이제는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을 생각하면서 막연하게 집 짓는 꿈을 꾼다. 작가의 시행착오를 들으면서 웃음이 나고 공감되는 건 그 때문이다. 나보다 앞서 경험한,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작가에게 존경을 담아본다.

 

어렸을 적의 시간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성장을 거쳐 나이 든 후 수북으로 돌아가 집을 짓고 사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입자로 살던 게 굳이 나쁘지는 않았을 테지만, 작가가 내버려 둔 땅에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일은 마냥 힘들었던 집주인 때문이었다. ‘더는 안 되겠다, 집주인의 갑질을 겪지 않을 내 집을 지어야지.’ 그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림 그리듯 해놓은 설계도를 가지고 시공자를 찾는 일부터, 부족한 예산으로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하는 계산까지 해야 했다. 저자는 말하는 장면들이 눈에 선했다. 듣기만 해도 아찔했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정말 정직하고 성실한 시공자를 만나지 않은 다음에야,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룰 수 없는 꿈이었으리라. 내가 마련한 장소에 내가 원하는 집을 짓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큰일 없이, 무사히(?) 집은 완성되었다. 작가는 그 오랜 세월 쌓아둔 집을 끌고 새로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조만간 집이 완성되면 좋든 싫든 나는 그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로서는 엄청난 결단과 돈을 들여 땅 위에 처음 짓는 내 집이다. 남이 지어놓은 아파트에 돈만 지불하고 들어가는 것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일임이 분명하다. 땅 위에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집을 짓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걸 집을 짓는 중간에서야 갑자기 깨달았다. 아이구야, 내가 뭣도 모르고 큰일을 저질러버렸구나! (99페이지, 그녀, 집주인 여자 때문에)

 

어찌 되었든, 머물기로 다짐한 곳에서 또 정을 붙이기 마련인가 보다. 잔디를 잘못 심어서 후회하고, 데크에 잘못 올린 지붕 때문에 여름 더위에 시달리고. 그러면서도 내 집이라는 안정이 주는 시간을 살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수북의 집에서 작가는 시골 마을 주민이 되어 살아간다. 시골이라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지만, 폐차한 차 대신에 이용하는 대중교통으로 다른 풍경을 본다. 장날에 읍내에 나가는 경험, 버스에 올라탄 이들의 이야기에 살아간다는 것을 배운다. 뭐든지 도시보다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버스에 올라탄 할머니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주는, 교통카드가 아니라 손에 쥔 잔돈으로 버스비를 내는, 그러다가 동전이 손에서 우르르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 짐보따리를 버스에 싣고, 지팡이도 올리고 몸도 실어야 하는 이들의 느린 행동에도 기다려주는 버스 기사. 나 역시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이런 기사님 보기 어려운 이곳에서는 마치 다른 공간의 이야기 같아서 낯설다. 그 느림과 이해가 부럽기도 하다. 사고 없이 천천히, 누군가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버스의 모습을 그리면서, 작가가 머무는 시골 마을의 풍경을 읽는다.

 

작가처럼, 나도 집을 생각하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 시절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좁은 집에서 부모님과 육 남매 북적거리면서(사실은 낑겨지내면서) 살았던 시간, 수시로 싸우고 울고불고하면서, 가난에 원망만 가득하던 마음. 생각하면 아프기만 한 공간에 기억이 더해져, 그 시절의 행복과 불행이 따라온다. 솔직히 말하면, 행복보다는 불행하다고 여기던 시간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뭐든 힘들고 부족하기만 했던 기억, 마음의 여유는 생각도 못 하던 날들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우리는 어렸고, 그래서 더 이해하지 못했고, 그 집에서 고생하던 엄마의 애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래되고 낡은 집만큼이나 엄마도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부족하고 낡은 곳이어도 지키고 있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걸 이제야 안다. 집주인의 갑질 없이, 매달 나가는 월세 걱정 없이, 언젠가 내쫓길 걱정 없이 지내는 일이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곳이 아니었다면, 그 동네 그 집이 아닌 곳에서 나고 자랐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우리가 걸어온 시간과 모습 그대로를 담아낸 그곳이 가진 의미를 묻는다. 집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말하는 듯하다. 가지고 있다가 값이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눈비 막아주면서 머물기 좋은 곳. 내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고, 언제 떠나도 돌아올 수 있는 곳, 그렇게 안심이 되는 곳. 엄마가 자주 이사를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 낡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게 아닐까. 예산이 맞지 않아 이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새로 집을 짓는 일을 꿈꾸는 게 어떤 마음인지, 안다. 엄마의 기억 속에 가난과 고생이 전부가 아니었던, 그래도 행복하고 따뜻했던 시간의 그 집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가지 못할 시절의 아름다움이 엄마의 기억 속에 있을 것만 같다.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할 그 시절의 이야기가 머물러 있는 곳이 되어.

 

왠지 마음이 고적한 날이면, 어떤 그리움에 목이 메는 날이면 전라선을 탈 일이다. 그래서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하나도 별날 것 없는 곡성역이나 구례구역이나 괴목역에 내릴 일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누구를 만날 일도 없이. 아무 일 없이 기차역으로 가서, 아무 일 없이 강물 가까이 흐르는 기차역에 내리자. 그래서 강물이 헤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일 없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리라. 그가 그 기차역, 그 강물 언저리쯤에서 사랑을 만나 새로운 둥지를 틀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있을쏘냐. (188페이지, 아무 일 없이 기차역으로 가자)

 

집이란 곳은 떠나야 한다고 여겼던 저자가,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거쳐 고향 근처로 내려온 이야기가 애틋하다. 집에 대한 기억이 단순히 집으로만 머물지 않음을 알고 있어서일까. 그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삶,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한다. 춥고 덥지만, 가끔은 시원하고 따뜻했을 그곳을 기억한다.

 

#춥고더운우리집 #공선옥 #한겨레출판 #에세이 #산문

##책추천 ##인생 #머물곳 #기억 #시간 #세월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2

한줄평 (6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10.0점 10.0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