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왜 거기서 나와~ 노래의 가사는 몰라도 무언가 뜻밖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경우가 그러했다. 열심히 아주 미친듯이 읽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곧 클라이맥스 지점이 다가오고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해결되기는 커녕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370페이지다.
심리학자가 쓴 심리스릴러답게 이야기는 별달리 큰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그러하다. 남편이 아내에게 잘 갔다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별장에 잘 도착했다고 친구들이랑 놀다 가겠다고 음성을 남겼다. 그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실종 신고가 된 이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가 발견된 것이 큰 사건이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줄줄이 연쇄적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흉기가 쓰여지는 것도 아니고 대륙간을 넘나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충분히 조용한 이야기이고 지루해질 법도 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장치를 배열함으로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언젠가는 어디선가는 분명 한방이 터진다는, 아주 얇게 얼린 살얼음판을 걸어가다 쑥 빠질수도 있다는 그런 기분으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쑥 빠져버리고 말았다. 허탈감과 이때까지 긴장해 왔던 것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작가는 분명 그것을 노렸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빠져버렸다 할지라도 화가 난다거나 헛웃음이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빠진 것에서 나오기 위해서 고군분투 노력을 해야 했으므로 말이다. 내가 빠져버린 그 구멍에서 벗어나와야 했으므로 말이다. 기필코 살아나와서 마지막을 보고야 말겠다는 그 결심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의문점은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남편을 죽인 것은 누구인지에 범인에 대한 당연한 의문부터 남편이 보낸 음성메세지를 지워버린 아내의 심정에 대한 이해까지 거기다가 그녀가 상담을 하는 환자들에 대한 불안과 남편의 친구에 대해서도 모든 부분에서 의문점이 존재한다.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심리스릴러라더니 호러적인 느낌도 있었나 하는 일말의 의심과 함께 그녀가 제정신이 아닌 것인가 하는 불신의 늪에 빠지게도 된다. 그 모든 것이 그런 의심을 하게끔 작가가 아주 합리적인 구성을 해 놓은 덕분이다. 그 덕일까 이 이야기는 제대로 날을 세우고 덤벼든다. 베일 것인가 피할 것인가.
# 장르소설 # 테라피스트
하나같이 사소한 것들이다. 중요한 건 중요한 디테일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모든 걸 기억하면 중요한 것들을 떠올리기 어렵다. -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을.(p. 15)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 테라피스트, 즉 심리치료사인 주인공 사라 라투스는 예약된 환자 세 명만 상담하면 주말을 맘 편히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다. 남편 없이 혼자 보내는 주말이다. 남편은 오늘 주말동안 친구들과 스키 여행을 하기 위해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떠났다. 그런데 그 어떤 모순도 참지 못하는 사라의 눈에 거슬리는 사소한 모순 하나가 있다. 건축가인 남편 시구르 토르프가 회사에 갈 때마다 들고나가는 도면통이 벽에 걸려있지 않는 것이다. 여행을 간다면서 남편은 왜 도면통을 들고 간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어제 저녁부터 없었는데 자신이 착각하여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런데 이 모순은 뒤이어 찾아올 더욱 커다란 모순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사라는 시구르에게서 여행 목적지에 친구들과 함께 도착했다는 음성 메세지를 받았다. 그런데 오후 늦게 같이 여행 간 시구르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아직 시구르가 도착하지 않아서 걱정된다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놀라며 당황하고 있는 사라는 오슬로 경찰서에 남편이 실종되었다고 신고하지만 경찰은 사라진 뒤 24시간이 흘러야만 신고를 접수할 수 있다는 대답만 할 뿐이다.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얼마 후, 아니나 다를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찾아든다. 남편 시구르가 누군가가 쏜 총에 가슴에 두 발을 맞고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은 장소는 여행한 곳이 아니다. 크록스코겐 숲에 있는 남편의 아버지가 마련한 오래된 산장이다. 남편은 왜 그 곳에서 살해당한 걸까? 도대체 누구의 손에?
노르웨이의 작가, 헬레네 플루드의 데뷔작인 '테라피스트'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개의 축이 이 소설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물론 하나는 물론 살해된 남편을 둘러싼 미스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뜻하지 않은 비극으로 일상이 격변해버린 사라의 심리이다. 특히 후자 쪽에서 이 소설이 빛을 발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작가가 심리학자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이 높다. 이제 겨우 안정된 직업과 결혼 생활을 구가하게 된 주인공이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지금껏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과 불안 속으로 서서히 침윤해 가는 그 심리의 풍경을 아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치 해부를 하는 것처럼 사소한 상황에서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기에 현실감을 느끼는 것과 주인공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 훨씬 더 깊이있게 이뤄진다. 한 마디로 전문가가 심리 소설을 쓰면 이렇구나 하는 걸 제대로 느끼게 해 주는 책이랄까. 그렇다고 미스터리 부분이 약한 것도 아니다. 소설 중반에 남편에게 낯선 여인이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흥미를 돋구는데다 사건이 가진 의외의 진실이 밝혀지는 반전도 있어서 스릴로 소설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가지고 있다. 데뷔작인데 이처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다 보니 작가의 재능에 신뢰가 간다. 좋은 작가를 하나 알게 된 느낌이다. 그녀의 다음 작품을 얼른 만나게 되길 바라며, 이왕이면 그녀의 장기인 심리 묘사가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슬쩍 남겨본다.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뭐?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가 뭘 알지? 남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 첫 번째 대상은 그들의 아내가 아닌가? 사람들은 수천 가지 이유로 가장 가까운 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나? 나도 거짓말을 했다 - 어쩌면 자주 하는지도 모른다. 시구르에게도. 특히 시구르에게는. 나는 그에게 내 상담실이 잘되고 있다고, 겨울이라 환자를 찾기가 좀 어렵지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다. 차고 위의 상담실에 있으면 외롭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 p.56
사라는 잠결에 남편이 나가며 인사하는 소리를 듣는다. 건축가인 남편 시구르는 주말 동안 친구 두 명과 함께 산장에 다녀오기로 했다. 심리치료자로 집에 상담실을 마련하고 일을 하는 사라가 금요일에 만나야 할 환자는 세 명이다. 그들 부부가 사는 집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이곳 저곳 손 볼 곳이 많았고, 그들은 빨리 집을 개조하고 싶었지만 시간도, 예산도 부족해 아직 집안 여기저기가 리모델링 중인 상태였다. 사라가 환자 한 명과 상담하는 동안 시구르가 음성 메세지를 남겼다. 친구들과 산장에 잘 도착했다는, 그저 안부 전화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할 그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시구르가 오겠다고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그는 분명 오전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었고, 친구들에게 연락이 온 건 이미 저녁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자,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남편의 거짓말 혹은 실종에 대해서 아내가 느끼는 분노나 배신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남편의 실종 사건을 대하는 아내의 반응이 여타의 작품들과 확연히 다르다. 물론 그녀는 끊임없이 이상한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고, 언니를 찾아가 이야기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가 집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을 보내고, 집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흔적을 통해 불안에 휩싸이게 만들어 남편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아내가 인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무려 백 페이지 정도를 할애하면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곧 실종 사건은 살인 사건이 되어 그녀에게 들이 닥친다.
누구나 사랑받고 존경받고 싶어 한다 -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상대가 나를 봐주지 않는 것 - 그래, 그것도 나쁘다 - 하지만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 숲속에서 비명을 질렀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면, 비명을 질렀다고 할 수나 있을까?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는데도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 일이 일어나기는 한 것인가?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 나라는 그 작은 존재가 당신이 집과 침대를 공유하는 남자에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p.285
대단히 근사한 작품이다. 아마도 내가 읽었던 심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들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당분간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은 없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 사실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을 너무 많이 읽어 왔기에,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초반 100~200페이지 정도만 읽어도 대충 답이 나온다. 이 작품을 끝까지 다 읽어야 할지 말지, 후반부의 내용이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유사한 플롯, 비슷한 구성, 평면적인 인물들과 깜짝 효과만을 노린 반전 등등.. 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정말 바쁜 경우에는 초반부만 읽고 중반부터는 대충 훑어 보기만 하고 리뷰를 작성하곤 했다. 실제로 스릴러 장르에서 '서스펜스'를 독자들에게 안겨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심리' 스릴러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이 독자들에게 불안감과 긴박감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그 호흡을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르다. 초반 100여 페이지가 지나기도 전에, 나는 앞으로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챙겨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헬레네 플루드는 실제 심리학자로 일하고 있으며 그녀의 전문 분야는 폭력성, 재피해자화, 트라우마와 연관된 수치심과 죄의식이다. 바로 그 '심리학자가 쓴 심리스릴러'라는 점 때문에 이 작품이 여타의 심리스릴러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매력을 발산하게 된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초반에 극중 사라가 환자 세 명과 심리 상담을 하는 장면이 있다. 아직 남편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전이라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녀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부모와 남자친구와 문제가 있는 열여덟의 베라, 부모의 이혼으로 과격한 옷차림에 뚝 떨어진 성적으로 엄마에게 반항 중인 크리스토페르, 게임에 중독되어 있어 부모님의 골칫거리인 트뤼그베. 작가는 이들 세 명을 대하며 사라가 생각하는 것들, 상담하는 과정들만으로도 독자들이 사라라는 인물에 대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다. 사실 줄거리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아무 의미없을 정도로, 이 작품은 직접 문장들을 읽고, 그 분위기를 체험해봐야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로 가득하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대단히 우아하고 뛰어난 문장으로 쓰인 작품이니 말이다. 내년에 출간될 예정인 작가의 다음 작품을 빨리 만나 보고 싶다!
'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뭐?
남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 첫 번째 대상은 그들의 아내가 아닌가?' -본문 중 -
신뢰와 믿음은 어떻게 유지되고 얻을 수 있을까? 오늘 읽은 [테라피스트]는 심리학자가 쓴 소설로 사건 추리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자주 엿보여준다. 주인공 사라는 정신심리학자로 자신의 집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환자는 많아야 3명으로 남편은 시구르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시구르는 친구들과 오두막에서 친구들과 주말을 지낸다고 하며 나섰지만 그 길로 실종이 되었다. 그리고 실종 되기전 음성 사서함을 남긴 시구르...사라는 경찰에 신고했으나 성인인 경우 24시간이 지나야 경찰이 움직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시구르는 결국 시체로 발견 되었다.
경찰이 착수하고 가장 기본적인 질문 누군가 시구르에게 원한이 있었는가? 라는 거다. 사라에게 있어 딱히 문제 없이 지내왔기에 누구를 의심할 수도 없고, 친구들 역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사라가 집에 있을 때 누군가가 다녀온 흔적이 있고, 물건이 제 자리에서 조금 움직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일상 생활에서 누구라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라는 자신이 너무 예민해서 그런가? 아님 자신의 기억이 잘못 된 것인가 이 두 사이에서 혼돈을 겪게 된다.
읽는 동안 나 역시 사라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는 없고 그저 심리로 의심을 할 뿐이며 왜 하필 시구르가 음성을 남긴 것을 지웠을까? 경찰의 심문에 자신은 술을 먹었기에 화가나서 그랬다고는 하나 이 점이 경찰로부터 의심을 사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알리바이가 되는 환자의 이름을 공개 할 수 없어 더욱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소설은 현재 일과 과거 시구르와 사라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준다.
과거 사라와 시구르의 첫 만남과 둘의 동거 그리고 사라의 하룻밤의 외도로 두 사람은 헤어질 수 있었으나 서로에게 다시 최선을 다하기로 하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경찰은 사라의 외도까지 꺼내면서 사건을 수사하지만 어떤 진척이 없어 미제로 남겨지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경찰에서는 무엇인가가 있으나 사라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동시에 사라는 자꾸 누군가 자신의 집을 침입하는 것 같은 공포에 휩사인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지만 말이다.
도대체 시구르는 왜 죽은 것일까? 그동안 작업을 하느라 한 부인의 집에 다녔다고 하나 공사는 오히려 말한 것 만큼 일찍 끝났다. 왜 사라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배우자에 대한 의심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사건이 미제로 남겨지려고 할 때 사라는 침입자를 잡기 위해 집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면서 또 다른 감시 카메라를 발견 되었다. 도대체 누가?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범인의 실체 그리고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뭔가 시원답답하다고 할까? 범인을 찾기보단 사라와 시구르의 일상이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그래도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범인이다. 여자가 죽으면 애인이 범인이다. 범죄물이나 스릴러물에 익숙한 독자라면 으레 상식적으로 밟아가는 논리적 귀결이라 하겠다. 그런데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범인일까. 남자가 죽으면 여친이 범인일까. 요건 좀 복잡하다. 고유정 사건처럼 전남편이 죽으면 전처가 범인일 확률은 매우 높아지지만 말이다.
여기 노르웨이 오슬로에 사는 30대 심리치료사 사라의 남편인 시구르가 죽었다. 처음엔 단순 실종사건처럼 보였지만, 결국 살인사건으로 드러났다. 시구르는 건축가인데, 친구들과 토마스네 산장에 놀러 간다고 집을 나섰지만 정작 친구들을 바람맞히고 시구르 가족 소유의 산장에서 총에 맞은 주검으로 발견된다. 애초에 실종사건처럼 여겨진 것은 시구르가 아내 휴대폰에 산장에 잘 도착했다는 '안심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명명백백 시구르의 거짓말이다.
경찰은 아내 사라를 용의자로 의심하는 것 같다. 일단 부부관계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이 점은 눈치 빠른 독자라면 금새 파악했을 사항이다. 사라와 시구르가 살고 있는 집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부부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지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거주하는 집은 시구르의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집인데, 아직 리모델링이 덜 끝나 집이 냉랭하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건축학 개론 수업에서 집의 구조나 방의 인테리어가 거주자의 심리적 자아의 상태나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배운 바 있다. 요걸 이번 독서에 잘 써먹었다.
경찰은 남편이나 사라에게 원한을 품을 법한 이들을 주시한다. 그래서 경찰은 사라에게 심리상담을 받는 환자 명단을 요구하지만, 사라는 직업윤리를 빌미로 거절한다. 사실 내성적인 사라는 홍보나 광고에 취약해 환자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란 말이 있다. 남들의 심리 문제를 상담해 주면서 정작 자신의 멘탈 문제는 보살피지 못하는 어리버리한 면이 사라에게 보인다. 남편의 죽음이 사라를 유년시절의 아이로 퇴행시킨 것 같다. 그런데 이건 혹시 사라의 연출된 쇼일까.
사라의 나레이션을 계속 듣고 있자면, 정말 사라가 범인 아닐까 싶은 의문이 증폭된다. 남편의 음성 메시지를 삭제한 것도 걸리고, 경찰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도 좀 그렇고, 집안의 물건이 없어지거나 배치가 바뀌었다는 등 일련의 귀신 소동 같은 해프닝도 그러하다.
나는 사라의 상담 환자들을 용의자 선상에 올렸다. 이것도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논리적 수순이다. 어디 보자, 먼저 한창 부모와 인정투쟁을 벌이는 여고생 베라가 있다. 사랑에 올인한 것처럼 유부남 남친 라르스 얘기를 즐겨 한다. 한편, 악마숭배자 같은 차림을 한 반항아 크리스토페르가 있는데, 얘는 어머니와 한창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내면은 모범생인데 겉은 비행청소년 차림이다. 사라는 크리스토페르가 어머니의 과잉근심만 없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게임 중독에 빠진 스무살 청년 트뤼그베가 있다.
'남의 불행은 꿀맛'이란 일본 속담이 있다. 심리상담가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있을 수도 있다. 사이코패스 심리상담가는 남이 들려주는 가슴 아픈 이야기에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지 않을까 싶다. 혹시 사라가 그런 사이코패스인가? 아무튼 추리물의 범인은 언제나 등장인물들 가운데 있다. 그리고 난 범인의 추리에 실패했다. 당신은 성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