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나면 울림을 주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러하다.
저자의 전작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으로 서양 문화의 근간이 되는 라틴어를 통해 우리에게 서양의 근원문화, 철학, 종교 등을 넘나들었다면 이번 책 역시 비슷한 형식이지만 우리 시대에 이런 책, 이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됐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제대로 된 철학과 교육의 부재로 말해 볼 수 있다.
활자보다 영상에 익숙한 시대, 긴 호흡으로 문장을 읽는 것에 불편을 느끼는 세대,
사회적으로 물질의 가치가 범람하면서 높은 부동산 가격, 가상화폐 등 투자 등을 통해 결국 육체적, 재무적인 부와 명예만 쫓는 시대가 된 오늘의 한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 역시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상에 치여 독서를 많이 못하기도 하고, 사회 정의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물음을 조금은 잊은 채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나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욱 따뜻하고, 조금 더 사람과 사람사이에 철학과 신뢰가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 역할과 믿음 사이에 종교나 철학같은 앞서 시대를 살아간 또는 오늘을 같이 살고 있는 어떤 인간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 인류는 약한 존재다. 맹수같은 날카로운 무기도, 빠른 발도 없다. 하지만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달리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고 이것을 학습하고 전달해 줄 수 있었다. 그 필사의 전략을 책에서는 '겸손'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나은 기술이나 생각을 전해 받으면서 그것을 계승·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인류'라는 뜻의 '후밀리타스(humilitas)'는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상태를 말했다. 인류는 상대가 더 좋은 어떤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비굴하고, 비천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통해 발전해 나간 것이다.
한 편 인류는 자신의 유한함을 느끼고 살아간다. 하지만 유한한 인간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후의 지혜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바로 '희망'을 통해 영원을 꿈꾸고 어떤 아픔과 절망의 순간도 벗어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이 희망과 기대는 결국 현실에서는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라도 미래, 사후 세계에서는 행복을 줄 수도 있다는 믿음을 만들게 된다.
인간에게 종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편으로 인간이 종교와 권위를 만들게 되는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이, 또는 어떤 무리가 다른 사람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배하거나 군림하기 위해 만들었을 수도 있다.
세계 최초의 신전인 지구라트는 제단을 높이 만들면서 결국 낮은 곳에 있는 인간과 차별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만들고 자신이 하늘과 더 가까이 닿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태초부터 인간은 누구를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도구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고, 종교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다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지금의 대선판은 결국 누가 더 흠결이 덜한 후보인가를 가리는 싸움처럼 되어버렸다. 자고 일어나면 나타나는 의혹, 실언, 비방 등을 보면서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이겨야 하는 싸움이 정치고, 선거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어른(제대로 된 지도자 또는 리더)이 없다"라는 탄식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물론 도산 안창호나 저자의 말처럼 어른(지도자)을 찾기보다 '내가 어른(지도자)이 될 생각을 하라'는 말도 맞다.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어른이 되기 위해 행동하다보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아직까지는 있다. 하지만 오늘의 정치판을, 크게는 우리사회를 보면 조금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신론자다. 신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욕망을 위해 신을 파는 인간이 존재한다.(아니 많다)
인류사를 놓고 보면 결국 우리가 일으키는 갈등이 전쟁으로 표출된 원인을 크게 보면 정복 전쟁과 종교에 의한 전쟁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자신이 믿는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하기 위해 인간은 신이 있다면 저질러서는 안 될 온갖 사악한 짓(신대륙 발견 후 그리스도교를 믿게 하기 위해 원주민을 학살한 일 등)을 저지른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인간은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신에 대해서조차 조작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러한 모순된 상황을 신앙으로, 또 종교로 받아들이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p.52
그 부조리함 사이에서 인간은 또한 신앙의 신비를 믿고 살아간다.
법학자 출신의 최초의 라틴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이 이 상황을 잘 말해준다.
Credo quia absurdum est. (부조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라는 격언처럼 말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에, 사회에 지혜를 얻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이 책을 읽으며 오늘의 우리 사회가 바로 저자도 책에서 말했지만 단테가 표현한 지옥과 천국의 이야기와 같다는 생각을 나 역시 많이 해보게 됐다.
지옥에서는 긴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자기 입에만 넣으려 하다보니 그 누구도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천국에서는 같은 숟가락으로 자기 앞에 있는 상대에게 음식을 떠 넣어주면서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가르는 것은 결국 태도의 차이인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사회 현상 못지 않게 우리 마음 역시 그렇게 각박하게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만의 안위와 영달만 생각하는 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저자가 말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확고한 믿음 대신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돌아볼 수 있는 내가,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의 가치는 무엇이며,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그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꼭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결국 바쁘게 살아가며 주위를 잊어가는 우리에게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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