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히스토리’란 우주가 시작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간의 역사 전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를 쉽게 말하면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서 항상 접해온 건국신화나 창조신화처럼 우주와 지구와 인간의 탄생에 대한 현대적, 과학적인 기원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역사를 밝히는데 있어서 문자 기록은 우리에게 믿을 만한 연대를 알려주지만 아주 작은 조각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이해 수준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나마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흔히 선사시대라 말하는 이 기간은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95퍼센트가 넘는 대부분의 시간에 해당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최근 역사학, 지질학, 생물학, 우주론 등 많은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이 구성한 과거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를 연구해 온 저자들은 138억 년에 이르는 우주와 지구, 인간의 역사를 하나로 잇는다.
저자들은 빅뱅 이후 138억 년 우주의 역사를 8개의 ‘문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문턱이란 빅뱅 이후 새로운 실체로 출현한 우주가 점점 다양해지고 복잡해진다는 전제 아래 중대한 전환이 일어난 국면을 의미한다. 복잡성은 그 특징으로 구성요소가 다양하고, 정확한 구조 안에 배치되어 있으며, 새롭거나 창발적이고, 딱 맞는 조건에서만 출현하며, 에너지 흐름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우주 역사에서 출현한 복잡성은 수없이 많지만 138억 년의 역사에서 주요 돌파구가 된 사건은 8번 일어났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138억 년 전, 45억 년 전, 38억 년 전, 5만 년 전, 1만2000년 전, 300년 전.
이 숫자들은 우주의 아주 조그마한 행성의 역사에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이제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완전히 다른 것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지금의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있게 한 문턱들이 나타난 시기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8개의 문턱은 다음과 같다.
138억 년 전
문턱 1. 그 순간이 모든 것의 역사가 시작된 기원인 빅뱅과 함께 우주의 생성.
문턱 2. 최초로 출현한 별, 거대한 원자구름이 중력에 의해 붕괴하면서 별이 탄생.
문턱 3. 별이 죽어가면서 중심핵이 붕괴될 때마다 새로운 원소가 생성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빅뱅우주론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있게 답해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빅뱅에 이은 은하와 별의 진화는 행성, 세균, 인간을 포함한 더 복잡한 물질들의 진화로 나아가는 첫 단계였고, 죽어가는 별의 뜨거운 화로 안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원소들은 복잡성 증가의 원동력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빅뱅 이후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시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물리학이라 부르고,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 원자와 분자, 그리고 그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학이라 부른다고 했다.
45억 년 전
문턱 4. 중력의 압력으로 붕괴한 분자구름 속의 조밀한 핵에서 형성된 태양과 태양계의 출현
태양계 성운의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태양 속으로 끌려가고, 태양에 빨려들지 않은 큰 덩어리들은 타원궤도를 돌며 서로 끌어당기고 충돌하는 강착에 의해 행성계가 형성되었다. 태양의 세 번째 암석이 성운 잔해들과의 격렬하고 지속적인 충돌 등으로 화학적 층화가 일어나면서 지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38억 년 전, 5만 년 전
문턱 5. 38억 년 전 지구생명체의 출현
문턱 6. 약 5만 년 전 사람아과의 대형유인원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생명은 물질의 복잡성이 연장된 형태라고 한다. 저자들은 38억 년 전 최초의 생명인 단세포 미생물이 등장하여 30억 년간 이어지다 약 2억4500만 년 전 포유류의 등장까지를 8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또한 현생인류는 약 500만 년 전에 현생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분기하여 진화했으며,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은 중기구석기시대가 시작한 25만 년 전에서 후기구석기시대가 시작한 5만 년 전 사이의 어느 시점이라고 한다. 즉 우리 종은 지난 25만 년 사이에 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진화하고, 약 10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처럼 보이고 행동하며 집단학습하고 적응했으며, 약 5만 년 전부터는 분명 현생인류가 되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 복잡한 생물들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우리는 생물학이라 부르고,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보다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 문화의 출현 이후를 우리는 역사라 부른다.
1만2000년 전
문턱 7. 주변의 식물, 동물, 경관을 조작하여 에너지와 자원을 늘리는 농경의 출현
인류의 농경 채택은 사회를 뒤바꾼 경제적, 문화적 혁명의 첫 단계라고 한다. 농경을 채택하고 인구가 조밀해짐에 따라 사회변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농경은 세계 각지에서 출현했지만 지역마다 시기가 다르고 모두 다 농경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풍요한 수렵채집인들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노동집약적인 농경을 받아들였으며, 도시와 국가가 출현하기 전까지 6000여년 동안 가장 크고 복잡한 공동체로서 인류 생활 방식의 주류를 차지했다. 저자들은 농경혁명 이후 도시와 국가, 농경 문명의 출현을 교환망과 복잡성 증가의 관점에서 지역별로 나누어 살펴본다.
300년 전
문턱 8. 현대성으로 나아가는 돌파구 산업혁명/인류세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현대의 특징은 산업혁명과 함께 인류의 생물권 자원통제력이 급격히 높아진 점이라고 한다. 산업혁명은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류사회를 급속하게 변화시켰으며,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이는 다시 성장과 변화의 속도를 더 가속시켰다. 저자들은 이러한 혁신의 원동력으로 교환망 증가로 인한 다양성증가, 통신과 교통의 발달에 따른 효율증가, 그리고 상업활동, 경쟁시장, 자본주의의 팽창과 같은 혁신의 유인 증가를 꼽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류의 환경을 바꾸는 능력이 너무나 빨리 커졌기 때문에 환경변화나 경제를 바꾸는 능력이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인류의 성장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처럼 138억 년의 역사를 살펴본 저자들은 미래의 모습을 전망한다. 과거의 역사에서 발견한 거시적 추세를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인 100년 후, 그 다음 수천 년 후, 그리고 먼 미래인 수십억 년 후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즉 미래에 나타날 또 다른 문턱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셈이다. 그러나 먼 미래의 모습은 우리들의 미래이기에 앞서 우주의 미래이기에 지금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미래는 가까운 미래일 수밖에 없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삶이 지속될 수 있을지, 아니면 붕괴에 이르를지는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속단하기 어렵다. 저자들은 불길한 추세와 희망적 추세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의 여지가 있음을 역설한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틀을 빅 히스토리가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빅 히스토리는 인류가 지구 생물권의 한 부분이며, 나아가 태양계, 우주의 조그만 부분임을 일깨워준다. ‘지금의 우리는 우주가 경이로운 세계를 생성하는데 필요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던 시절의 산물이다’라는 저자들의 마지막 말은, 인류는 운명공동체임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주의 기원, 지구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문명을 다루는 ‘빅 히스토리’를 읽으면서 그동안 읽었던 많은 문명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읽기에는 다소 부피가 나가는 책이지만 문턱 하나하나를 넘어갈 때마다 현대 과학을 구성하는 중요 패러다임을 알아간다. 과학과 인문학이 융합된 이 책의 미덕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