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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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잠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

리뷰 총점 8.7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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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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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인생의 중심에 잠이 있었네 『아무튼, 잠』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n******i | 2023.11.28 리뷰제목
수면의 황금기가 곧 인생의 황금기임을 모르는 젊은이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새벽에 세 번, 네 번 깨느라 통잠을 못 자는 시절이 온다는 것을. 그뿐인가. 부모나 조부모가 새벽에 깬 이후에 다시 잠들지 못한다고 호소해도 그게 얼마나 막막하고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인지 구체적인 실감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힘든 나이. 젊은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의 이런
리뷰제목

수면의 황금기가 곧 인생의 황금기임을 모르는 젊은이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새벽에 세 번, 네 번 깨느라 통잠을 못 자는 시절이 온다는 것을. 그뿐인가. 부모나 조부모가 새벽에 깬 이후에 다시 잠들지 못한다고 호소해도 그게 얼마나 막막하고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인지 구체적인 실감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힘든 나이. 젊은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의 이런 면모를 미국의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텅 빈 식당 창가에 서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신께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을 모르게 하신 것은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인생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모두 다 예쁜 말들.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8) (44~45페이지)

 

엄마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 3시부터 깨어있기도 했는데, 그냥 엄마가 그런 건가 보다 싶었다. 코맥 매카시가 그의 작품 속에서 했던 말처럼, 엄마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몰랐다. 수면에도 황금기가 있다는 것을, 잠들지 못하는 시간의 막막함이 얼마나 몸을 힘들게 하는지를. 어떤 날은 미친 듯이 잠이 오고, 어떤 날은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고. 어젯밤이 그랬다. 밤에 잠을 설치고 너무 일찍 일어났나? 준비하고 나가려던 시간이 애매해졌다. 피곤한데, 밖은 추운데, 그냥 나갈까, 조금 더 누워있다 나갈까. 고민하다가 10분의 꿀잠을 선택했다. 분명 알람을 맞춰놓고 누웠는데, 왜 알람 소리가 안 났던 건지. 10분의 꿀잠은 10분의 지각을 만들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상하다. 그 잠깐의 잠은 왜 이렇게 맛이 있을까. 왜 새벽에 일어날 시간의 잠이 더 달콤할까.

 

저자가 수시로 잠을 비축하며 살아왔던 날들. 잠을 자다가 날짜도 착각하고 중요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자세한 상황은 말하기 어려운데, 새벽에 모든 식구가 큰집에 가게 된 일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나는 텅 빈 집이 당황스러웠다. 모두 어딜 간 거지? 오늘은 운동회 날인데? 아침도 못 먹고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이미 학교에 엄마와 동생들이 와 있었다. 이른 새벽에 식구들 모두 큰집에 가야 했는데, 나를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한참을 깨우다 그냥 가버렸단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누구도 나를 깨웠던 적이 없단 말이다.

 

잠에 진심이라고, 잠을 자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잠이 고픈 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배고픔도 이기고야 마는 잠이, 절실히 필요한 날들이다. ? 머리가 맑지 않은 시간이 많아져서 그렇다. 잠이 내 몸에 하는 일을 내가 막고 있는 기분이다. 충분한 수면이 뇌를 건강하게 만들 테고, 기억력도 좋게 한다. 숙면은 나를 기분 좋게 하니, 화가 나려는 순간에도 한 번쯤 나를 릴렉스하게 하는 듯하다. 고된 현실에 자극하는 자아의 활동이 자는 동안 휴업에 들어가면서 정화 작업을 거친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잠이 보약이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걸 알겠더라.

 

그렇다고 잠이 한없이 긍정적인 순간만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어렵고 두려운 순간을 잠으로 잠깐 달아날 수는 있지만, 언젠가 잠으로 외면했던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하긴, 그걸 꼭 말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에, 자면서 잠깐 미뤄둘 수는 있어도 잠으로 아주 안 보고 끝낼 수는 없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진실, 그 시간을 잠깐 유예할 뿐이다. 시험공부도 마찬가지. 지금 이 시간에 공부하지 않으면, 다가올 시험 시간은 공포가 될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기에 앞서 졸리지 않아야 하는데, 이놈의 잠은 밀어내도 끝까지 밀고 들어온다. 그래서 문제의 타이밍이라는 약에 접근한다. 졸리지 말라고 기도하면서 먹었던 그 약. 저자의 그 시간에 공감하게 되는 약 이름이었다. 그 시절의 필수품처럼,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그 약을 이 책에서 마주하니 반가움도 잠시, 씁쓸했다. 잠만 줄이면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믿음이 바로 사라졌던 기억도 같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피를 달고 달았던 시절의 연속. 글쎄, 커피가 정말 잠을 달아나게 할까 싶었는데, 엄마도 잠을 못 잔다면서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만. 나는 아침이든 오후든 저녁이든, 커피를 마시는 게 나의 수면 시간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커피를 마시든 안 마시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나의 잠 성향은 극과 극을 달리긴 한다.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서 잠을 깨거나, 시체처럼 꼼짝 않고 깨울 때까지 자거나. 주변에서는 성격대로 잔다고 하던데, 내 성격이 극과 극을 달리나? 저자의 잠 수행 경험, 수행자를 만나 잠깐의 접촉(?)이 끝나면, 또 다른 진실이 남는다. 수행자의 매끄럽고 반짝이는 피부로 잠과 피부의 상관관계를 깨닫게 된다. 꿀잠은 꿀피부를 만든다. 이건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느 날이었던가. 오랜만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화장실 거울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어머나, 이렇게 뽀송뽀송(?)하고 피부가 뿌연 얼굴이 내 거야?!(미안, 피부가 검은 편인 내가 이렇게 뽀샤시한 얼굴을 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 너무 놀라서 말이야)

 

학교 문예부실에서 도둑잠을 자고, 대학 기숙사에서 내내 잠을 자고, 히말라야 계곡에서도 잠을 잤다는 저자의 잠 세계는 놀랍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나와 같아서 놀라고, 때로는 어쩜 이렇게까지 잠을 잘 수 있는지 놀라고. 저자가 마주한 잠의 얼굴은, 그냥 잠이었다. 잠을 줄이면서 해내야 할 일상의 많은 것이 있기에, 늘 잠에게 있었던 죄책감은 지워버려도 된다고. 그저 잠이 오면 자고 눈이 떠지면 그냥 일어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밀려오는 잠에게 안달복달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래야 했고, 잠을 쫓아야 가능한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자는 동안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까지 하지 못했다. 안 되는 것만 떠올리며 살았다. 지금 붙잡아야 하는 것만 보였다. 이상하게도, 지금의 내가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이 책에서 말하는 잠의 시간이 온전히 와 닿지 않아서, 또 다른 방식의 수행이 필요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

 

지나고 보니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올해가 참 바쁘게 흘러갔다. 뭔가를 했고, 뭔가가 남아 있기도 하다. 잠을 밀어내며 했던 일들이 보람되기도 했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잘 것을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1년을 생각하니, 왜 많은 것을 해내는데 잠이 중심에 서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궁금증은 잠시만 더 뒤로 미뤄두어야겠다. 지금은 그냥, 잠이 오면 자고, 눈이 떠지면 일어나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잠에 예민하게 굴지 않기로 한다. 잠이 안 온다고 이런 저런 방법을 찾느라 애쓰지 않게, 그냥 이대로 오늘은 일찍 자기로.

 

#아무튼잠 #정희재 #제철소 #문학 #한국문학 #에세이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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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잠이 (말을 걸어) 오는 이야기 - [아무튼, 잠]을 읽고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k*****o | 2022.12.10 리뷰제목
잠이 (말을 걸어) 오는 이야기 <아무튼, 잠>을 읽고       자장가는 아이를 재울 때 부르는 노래다. 나이가 들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무음, 백색소음, 클래식, 발라드, 팝송 등 다양한 장르로 바뀌게 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어서 잠이 오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자장(磁場)과도 같은 잠자리에 누워 자장자장 잠을 청하는 우리에게 잠은 마치 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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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말을 걸어) 오는 이야기

<아무튼, 잠>을 읽고

 

 

  자장가는 아이를 재울 때 부르는 노래다. 나이가 들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무음, 백색소음, 클래식, 발라드, 팝송 등 다양한 장르로 바뀌게 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어서 잠이 오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자장(磁場)과도 같은 잠자리에 누워 자장자장 잠을 청하는 우리에게 잠은 마치 눈꺼풀을 한없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자력처럼 다가온다. 아무튼 시리즈의 53번째 책의 주제가 ‘잠’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무튼, 잠>을 읽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튼 시리즈의 책들이 가진 크기와 무게는 허리디스크 질환자가 누워서 독서하기에 안성맞춤이지만, 읽다가 꾸벅 졸다가 책을 떨어뜨리진 않을지, 아니면 그 충격도 감지 못하고 곤히 잠에 빠져드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만난 “인생은 눕고 싶어 하는 시간과 누워 있는 시간으로 구성돼 있다”는 문장에 저자보다 더 격하게 공감하며 역시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을수록 독자의 두 눈은 오던 발길을 돌리는 잠을 건성으로 배웅하고, 잠에 관한 저자의 생각과 경험이 펼쳐져 있는 활자들의 밭을 헤쳐나갔다.

 

 

  하루 내내 섣부른 마음이 튀어 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고 견딘 끝에 받은 보상. 밤은 지친 인간을 감싸는 검은 붕대이자 효과 빠른 진통제다. 밤이면 새장에 검은 천을 씌워주듯, 우주가 어둠의 장막을 늘어뜨려 인간을 진정시키는 시간. 대다수에게는 부활이 보장된 안전한(?) 죽음의 시간이기도 하다.(75쪽)

 

  잠은 무죄라고 외치는 저자는 이십대 후반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떠난 티베트 여행에서 만난 한 스님에게서 “난 잠자리에 들 때가 젤 행복하더라.”라는 ‘길티 플레저 고백’을 듣고서야 여태껏 잠자는 대신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책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죽으면 실컷 잘 텐데 왜 아까운 시간을 잠으로 낭비하냐!”, “네 시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잠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잠에 관한 과학적 근거와 연구결과를 토대로 반박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잠은 함부로 쓰기보단 꼭 필요할 때를 대비해 아껴둬야 할 무엇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잠을 절약(節約)하는 데에 개인의 지극한 의지도 한몫을 하겠지만, 자의든 타의든 각성제와 같은 약품의 힘을 빌어서라도 잠을 쫓겠다는 의지로 표출되었던 저자의 개인사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잠의 절약사(節約史)’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고교 1학년 첫 중간고사 성적표에 적힌 등수를 본 뒤 충격과 함께 ‘타이밍’을 먹었다. 그보다 한 세대 앞선 1960~70년대에 타이밍은 수많은 노동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수면권’도 빼앗아간 약품이기도 했다는 사실에 가슴 한 편이 답답해졌다.
  잠을 쫓기 위해 카페인과 각성제를 찾는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고용량 카페인 음료나 에너지 드링크류를 마시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더 간단하고 독하게 잠을 억압하기 쉬워진 시대라고 진단한다. 어른들이 수면(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고 성공과 행복의 조건을 혁신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한 다음 세대도 만성 수면 부족 사회에서 무리하며 분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여 꼬집는다. 나 또한 그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라도 잠을 절약할 게 아니라 ‘절약(節藥)’, 즉 잠을 절약하기 위한 약을 끊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잠 덕후도 장비병을 겪는다는 점이 퍽 흥미로웠다. 그동안 아무튼 시리즈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장비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원과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자도 꿀잠을 위한 ‘수면사원’에서 자기만의 침실과 침구류를 구비하는 데에 진심을 다한다. 이릍테면, 자다가 몸이 배겨 무의식적으로 끌어안기도 하고 몸에 닿는 게 거슬려서 침대 구석으로 뻥 차버려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한 번도 저자를 거부한 적 없는 ‘보디 필로’, 앱과 연동되어 수면 습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체크해주었으나 앱이 기록한 잠에 대한 기록을 갱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오히려 수면의 질을 낮추는 역설을 보이며 '그냥 베개'로 다운그레이드된 ‘스마트 베개’ 등이 있다.

 

  불면증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잠이 간절하게 필요한 인감임을 잊어야 한다. 잠을 의식해서 잠 못 드는 자신과 대치해선 안 된다. 불면의 불안을 곱씹을수록, 잠을 갈구할수록 각성 수준은 높아진다. 알면서도 금기 사항을 정확히 어기고 있다. 맙소사. (110쪽)

 

  언제나 불면 말고 숙면을 바라는 우리에게는 각자만의 잠자는 습관이 있다. 자기만의 루틴을 지켰음에도 불면의 밤을 맞이한 저자는 새벽 2시부터 ‘아침에 가까운’ 5시까지 한 시간 단위로 떠오른 불면에 관한 단상을 들려준다. 마침내 샬럿 브론테, 마크 트웨인, 빈센트 반고흐 등 불면증에 시달렸던 유명인들의 이름을 떠올릴 즈음에서야 그는 잠이 들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내 인생에서 가장 미치도록 자고 싶었던 때가 떠올랐다. 다름 아닌 고3 수능시험 전날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고사장을 미리 둘러본다는 이유로 오전 수업만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밀려드는 졸음과의 사투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한 시간 넘게 잠을 자버린 것이었다. 그 결과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선잠에 빠졌다가 곧 고사장으로 향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불면의 밤이면 그때를 생각하면서 ‘만약에’라는 가설을 세우고 또 무너뜨리며 잠을 갈구하곤 한다.

 

  우리에게 자는 동안 맹수나 적에게 공격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유전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친해져서 안심하기 전까지는 무방비 상태의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에게 잠든 모습을 보인다는 건, 개체 보존의 본능을 잊어도 좋을 만큼 상대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다.(42쪽)

 

  그동안 무수한 낮과 밤에 같은 공간에서 두 사람(혹은 그 이상)이 같이 자면서 잠에 대한 본능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잠을 자는 행위에 숨겨진 신뢰감은 책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그때 그 시절의 연인을 추억하며, 또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와 혁명단의 전속 사진가였던 알베르토 코드라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누군가에게 잠든 모습을 보이는 것’의 의미를 짚어준다. 이 대목에서 『중심:마음을 지키는 중국 그림의 힘(김선현 저, 자유의길, 2019)』이라는 책에서 만난 「이상적 깊은 잠 理想的?睡(수이지안구오 隋建國 作)」과 함께 서평을 통해 잠과 죽음에 대해 썼던 단상이 떠올랐다.

 


[출처 : www.baidu.com]

 

  중국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 저 천하 금수강산이라는 카펫 위에 단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면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자의 말처럼 잠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오는데 순서가 있지만 가는데 순서는 없다는 말을 애써 외면한 체, 우리는 기본적 욕구와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면 죽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때가 온다고 한다. 웰빙 시대를 지나 웰다잉 시대를 살아야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심:마음을 지키는 중국 그림의 힘』 서평 中)

 

  ‘잘 자고 일어나 잘 살고 싶다’는 저자의 작지만 큰 소망이 담긴 <아무튼, 잠>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잠을 억압한 앞잡이가 (수면계의) 파수꾼이 되기까지의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살다보면 알고도 어쩔 수 없이 수면을 억압하는 앞잡이 노릇을 자처할 때도 있을 테지만, “숙면 없이는 최소한의 내면조차 가질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잠은 누구에게나 불가역적이고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본받아 ‘수면계의 파수꾼’이 되어 '적어도 잠이 부족해서 기품과 연민을 잃는 일은 없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마음과 실천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책을 덮으며 아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적에 낮잠과 밤잠을 지켜보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어느 낮과 밤에는 일과 육아에 지쳐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자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잠을 파수(把守), 즉 경계하여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찬 일인지를 잊고 살았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자기는 물론 타인의 잠을 지키며 돌보는 ‘잠 파수꾼’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베갯맡에 놓아둔 <아무튼, 잠>이 오늘밤에는 또 어떤 잠이 '말을 걸어' 오는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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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아무튼, 잠』 잠에 진심인 자의 기록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22.12.18 리뷰제목
하루에 여덟 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이다. 밤 열한 시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난다. 잠에 관하여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게 네다섯 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는 거였다. 체질상 일고여덟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일주일 내내 병든 닭처럼 힘없이 지낸다. 눈 밑이 거뭇거뭇하고 볼이 패는 현상은 당연하다. 잠이 많다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다. 게을러서 혹은 능력이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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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여덟 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이다. 밤 열한 시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난다. 잠에 관하여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게 네다섯 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는 거였다. 체질상 일고여덟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일주일 내내 병든 닭처럼 힘없이 지낸다. 눈 밑이 거뭇거뭇하고 볼이 패는 현상은 당연하다. 잠이 많다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다. 게을러서 혹은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게 싫었다. 이제는 안다. 적게 자도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일고여덟 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라는 주제의 아무튼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누구보다 달게 자는 사람으로서 꼭 읽어 봐야 할 책 같았다. 정희재 작가가 처음이지만 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을 최근에 읽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잠이 이토록 중요하게 될 줄이야. 잠은 기억력을 높이는 동시에 우리가 느끼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워진다. 비로소 편안한 감정, 안식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비록 내일 해야 할 일 중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라도 그건 내일의 일인 것이다. 밤새 꿈속에서 처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깨어있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말이다.

 


 

 

텅 빈 학교는 조용했다. 그 큰 건물에서 홀로 잠들면서 무섭다기보다는 서러워서 눈물을 훌쩍였다. 어른의 세계란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 가난이란 상상 이상으로 불편한 것임을 온몸으로 실감하던 밤. 타들어가는 쑥색 모기향의 따가운 냄새에 재채기가 쏟아졌다. 문자 그대로 갈 곳이 없다는 실향 의식을 사탕 녹여 먹듯 음미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그대로 아침까지 푹 잤다. 역시 잠 덕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내 인생의 첫 도둑잠은 그렇게 완성됐다. (52페이지)

 

낯선 장소에서 잘 자지 못한다.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선잠을 자는 바람에 늘 피곤하다. 그럼에도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외국에 갈 때는 수면유도제를 사 가기도 한다.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아 눈만 감고 있는 때가 여러 번이었다. 꽤 오래전, 토요일에도 근무할 적에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에 갔다가 피아노 치는 아이들 틈에서 꿀잠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피아노 소리가 꼭 자장가처럼 들렸었다. 갈 곳을 잃은 소녀(작가)의 도둑잠. 전혀 잠들 상황이 아닌데도 까무룩 잠에 빠져드는 순간처럼 말이다.

 

어릴 적의 나는 여덟 시 반에 하는 드라마를 못 봤다. 기필코 눈을 뜨고 있으려고 했음에도 눈을 떠보면 아침이었다. 대학 기숙사의 방, 신생아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잠에 빠져 있기도 했고, 30분만 자자고 누웠던 게 24시간을 내리 자느라 친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작가의 일화는 잠 덕후답다. 잠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덕분에 작가처럼 24시간을 내리 잔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오래 해 온 까닭이다.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특히 계절상 겨울에는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어 미적거리다가 지각할 뻔한 적도 많았다. 눈이 많이 내려 추운 겨울 아침.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외치면서도 제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한다.

 


 

 

수면계의 홀든 콜필드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를 빼고 누군가 잠의 열락에 빠진 사람에게 부채를 부쳐준 적이 있었던가. 홀든 콜필드는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으로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했던 인물이다. 많은 사람에게 오래도록 회자되는 작품으로 숙면에 이르도록 돕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배어 있었다. 작가가 말하는 잠 파수꾼의 역할은 휴대폰 무음으로 해두기,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내려 어둡게 하기 등이다. 침실을 어둡게 했을 때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암막 커튼을 고르고, 안대를 사용하기도 한다.

 

죽음을 영면이라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잠을 못 자면 굉장히 힘들어한다. 잠에 필요한 도구를 이용하고 늦은 밤이면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등 잠에 유익한 차를 마시기도 한다. 죽으면 영원히 잘 수 있는데 우리는 왜 잠에 그토록 예민할까. 숙면을 도와주는 잠 파수꾼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가 불안해하는 모든 감정들을 잠의 뒤편으로 보낼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편안한 잠을 자고자 한다. 하품하며 침대로 향한다. 내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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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다 잘 자려고 하는 일인데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j********5 | 2023.02.20 리뷰제목
요즘엔 잠을 잘 안 자고 있다. 불면증은 아니다. 열두 시부터 슬슬 몰려오는 잠을 꾸역꾸역 차력쇼하듯 버틴다. 새벽 한 시 전에 침대에 올라가자니 아깝다. 대체로 세네 시까지 일을 하겠다고 깨어 있다. 당장 내일 가져가야 하는 뭐 때문에, 내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시간이 매일 부족하다. 잠이야 시간 날 때 자면 되지. 정 시간이 없으면 나중에 죽어서 자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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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잠을 잘 안 자고 있다. 불면증은 아니다. 열두 시부터 슬슬 몰려오는 잠을 꾸역꾸역 차력쇼하듯 버틴다. 새벽 한 시 전에 침대에 올라가자니 아깝다. 대체로 세네 시까지 일을 하겠다고 깨어 있다. 당장 내일 가져가야 하는 뭐 때문에, 내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시간이 매일 부족하다. 잠이야 시간 날 때 자면 되지. 정 시간이 없으면 나중에 죽어서 자면 되지. 잠을 조절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그런 생각뿐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잠을 줄여서 공부를 했고, 성인이 된 뒤로는 일하느라 잘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늦잠과 능률 없는 야근, 항상 따끔따끔한 눈은 기본 스탯이다.

“잠을 줄일수록 영원히 잘 시간도 빨리 온다네요. 그래서 잠을 줄이는 걸 서서히 진행하는 자살이라고 한대요. 그리고 죽은 뒤의 휴식은 잠이 아니에요. 다음 날 다시 온전한 나로 돌아오는 걸 잠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사는 생활 패턴이 익숙해지기 이전에, 아주 예전에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면 지금 나의 삶은 달라졌을까. 이렇게 잠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귀한가. 잘 수 있을 때 최대한 자두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더 좋았을까? 나중에는 자고 싶어도 잠을 청할 수 없어서, 당장 해야 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도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올 텐데. 굳이 점진적으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아도, 이미 죽어가는 삶이기에, 차라리 잠이라도 잘 잔다면 내일 하루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데. 

그래, 하루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따로 거창하게 있다기보다, 다 잘 자려고 먹고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 푹 자고 그 잠을 원동력 삼아서 또 내일을 보내려고. 당장 내 삶이 180도 바뀌기는 바랄 수 없어도 잠을 제대로 잔다면 지금 짊어진 대부분의 고뇌를 떨칠 용기가 생길 거라는 것도 안다. 적어도 이 책은 나에게 잠 파수꾼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너 오늘밤은 자도 괜찮다고, 일단 자고 일어나면 뭔가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다. 오늘은 한 시 전에 침대에 누워 봐야지. 그러면 내일은 커피 없이도 낮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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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아무튼, 잠. 매일매일 만나는 작은 평안에 대하여. 평점7점 | e*********f | 2023.02.17 리뷰제목
아무튼 잠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부러웠다. 물론, 작가도 작가의 고충들이 많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길게길게 통잠을 해낼 수 있는 작가의 모습이 굉장해 보였다. 나에게 잠은 돈과 같아서 늘 필요하고 가지고 있지만 항상 모자른 것이었기 때문에 자려고 마음 먹는다면 푹 자버릴 수 있는 작가가 마치 내게는 부자처럼 보였다. 잠이 늘 모자랐던 데에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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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잠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부러웠다. 물론, 작가도 작가의 고충들이 많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길게길게 통잠을 해낼 수 있는 작가의 모습이 굉장해 보였다. 나에게 잠은 돈과 같아서 늘 필요하고 가지고 있지만 항상 모자른 것이었기 때문에 자려고 마음 먹는다면 푹 자버릴 수 있는 작가가 마치 내게는 부자처럼 보였다.

잠이 늘 모자랐던 데에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해야 할 것들에 밀린 하고 싶은 것들을 외면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낸 아토피가 내가 잠드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작가가 들려주는 잠 이야기는 잠이라는 소재는 매우 친근 했지만, 그 이야기가 나의 경험과는 저어기 반대편에 있어 흥미로웠다. 잠에 대한 경험, 잠에 대한 생각들, 잠을 통해 만난 사람 이야기 등 다채로운 잠에 대한 이야기들이 잔잔하고 또 재밌었다. 

작가의 이야기 자체도 잔잔하게 즐거웠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나의 잠들을 돌아 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나는 잠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더라? 나는 잠을 어떻게 생각하지? 요즘 나의 잠은 어떻더라 등등 삶에서 늘 화두였던 잠에 대해 생각을 환기하는 시간이었다. 

글 자체는 짧고 가벼웠지만, 읽는 내내 잔잔하게 즐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잠과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나를 조금 들춰보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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