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20대 청년 시절에 썼던 작품으로 18편이 들어있다. 생전에 발표한 6편이 앞부분에 있고, 뒷부분에 미공개된 12편이 들어있다. 미공개된 12편 중 「어느 대위의 추억」,「대화1」,「대화2」,「알레고리」는 작가 사후 1950년대와 1960년에 프루스트 연구자들에 의해 공개되었고, 나머지 8편은 2019년에 단행본으로 빛을 보게 되었단다. 더욱이 이 책에 들어있는 18편의 글들은 한국에 처음 번역되었다는 것, 미공개된 작품이 작가 사후 1세기나 지나서 출간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권까지 완독을 마쳤던 터라 프루스트의 단편들을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청년 시절의 쓴 이 작품들은 잃시찾 시리즈를 쓰기 위한 예비작업이 아니었나 싶게 닮은 듯한 분위기의 작품이 여럿 있었다. 이 중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몇 개를 리뷰하려고 한다.
무관심한 이
주인공은 마들렌, 마들렌은 꽃을 사랑하는 미모의 여인으로 르프레라는 청년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식사 초대를 하지만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만 거절한다. 어떻게든 자신을 사랑하게 되리라고 확신했지만 빗나갈 뿐이었다. 한쪽 마음이 닫혀있으면 자꾸만 열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시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르프레를 잘 아는 남자들을 만나게 되고 르프레에게 마음이 있는 아가씨가 있는데 결혼상대로 염두에 두어도 괜찮은 사람인지 알고 싶다며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물어본다. 물론 사실은 자신이 궁금해서다. 그 남자들에게 들은 얘기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결국, 짝사랑이었던가. 마들렌은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지평선보다도 더 먼 곳에 있는 듯한’ 상대의 마음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 그를 향한 마음이 헛되었음을 깨닫는다. 참으로 무관심한 이였다. 바쁘다는 말만 내세우며 거절하기를 반복했는데, 콩깍지가 덮인 마들렌은 눈치가 없었던 것일까. 이처럼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은 여러 작품에 나타나 있다.
밤이 오기 전에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 단편은 1983년에 발표되었다. 죽음을 앞둔 여인의 고백 형식으로 프랑수아즈와 레슬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프랑수아즈는 자신의 동성애인 ‘죄’를 짓고 스스로 쏜 총알이 몸에 박혀 병이 되었고 죽음을 앞두고 있다. 노르망디 바닷가의 석양이 비치는 배경으로 이들의 대화와 분위기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슬픈 눈물까지도.
‘나는 가여운 눈물로 흥건히 젖은 그녀의 두 손을 닦아 주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새로운 눈물로 젖어 들었고 그녀는 한기를 느꼈다. 그녀의 손은 분수대에 떨어지는 창백한 나뭇잎처럼 차가워졌다. 우리는 그 순간만큼 그렇게 아파했던 적이, 또 좋았던 적이 없다.’(p45)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잊히고 사라질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인가.
미지의 발신자
몸이 아픈 크리스티안은 프랑수아즈의 친구이다. 어느 날 프랑수아즈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는 계속되고 그녀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노골적으로 들어있어 프랑수아즈는 섬뜩함을 느낀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크리스티안의 집에 갔다가 의사가 건네는 작은 상자를 보게 된다. 거기에는 프랑수아즈가 보낸 마지막 편지가 들어 있었고.... 프랑수아즈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크리스티안은 고해성사를 한 다음 날 숨을 거두었다. 미지의 발신자로부터 편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프루스트가 자신의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흔적과 단호함이 느껴졌던 작품이다.
어느 대위의 추억
대위인 화자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찾아간 L 마을이 배경이다. 1년간 머물렀던 곳인데 사랑 때문에 슬픔 가득한 떨림 없이는 다시 떠올릴 수 없는 장소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빛이 자아내는 아름다운 장소를 보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난 화자가 보였다. 어떤 사연이기에 이토록 화자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당시 화자가 복무했던 당번병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다. 역시나 동성애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신비로운 매력에 사로잡혀서 그의 마음에 들고 싶고 그를 감탄시킬 만한 말을 하려고 애썼다는 추억 말이다. 당번병이 다른 막사로 배치되었기에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도 화자의 애정 어린 마음을 알았을까. ‘두 눈과 미소에 애정을 가득’ 담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화자인 대위는 이제는 희미해진 그 당번병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석양을 머금은 무언가 따스하고 황금빛이 어린, 그럼에도 완전히 알지 못하고 미완성이기에 약간 슬프고, 그저 감미로운 추억으로 기억될 뿐이라고. 동성애를 다룬 다른 작품에 비해 비참한 내용이 아니어서 오히려 입가에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대화1
고등학교 친구 로베르 드 플레르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이 단편은 프랑수아즈와 앙리의 대화로 되어있다. 희곡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프랑수아즈가 앙리에게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권유한다. 앙리는 좋은 곳이 있다며 그곳의 모습을 자세하게 알려주며 이야기를 하다가 옛날 여인을 떠올린다. 그녀에게 아름다운 말을 들려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프랑수아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앙리는 그 여인을 생각한다. 프랑수아즈는 그것을 눈치채고 힘들어한다. 앙리는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걸까. 여전히 과거에 연연하는 앙리가 보였다. 살짝 질투하는 프랑수아즈와 앙리의 주고받는 대화가 풋풋한 사랑은 아니지만 귀엽다고 할까. 이러한 습작들이 잃시찾의 알베르틴을 향한 자신의 질투를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겠지.
대화 2
화자의 친구 오노레에 대한 이야기. 아주 매력적인 눈에 사랑스러운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방탕한 삶을 살아가며 빌린 돈을 탕진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손님을 초대했는데 아들 오노레에 대한 행실이 도마에 올랐다. 판사인 삼촌은 아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어머니를 나무란다. 어떤 소설가는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초라하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며 오노레의 편을 들어준다. 오노레 어머니는 좋든 나쁘든 아들의 삶이 흉한 것보다는 아름답다고 믿고 싶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어른의 눈에 성이 차지 않기 마련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그래도 젊은 시절이니 좀 치기 어린 삶을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며 관대하게 바라보는가 하면, 걱정이나 비난 일색인 사람도 있었다.
요정들의 선물
‘천재가 아닌 이들에게 만약 그들 밖의 세계와 안의 세계를 발견하도록 안내한 화가, 작곡가, 시인이 없었다면 삶은 얼마나 우울하고 단조로웠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천재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방식이다.’(p160)
와, 이 문장을 읽다가 나쓰메 소세키가 떠올랐다. 소세키도 『풀베개』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세상살이가 힘겨울 때 시와 음악 그림이 생겨나고 그래서 시인 화가들이 귀한 존재라고.
이 글에서 요정은 요람의 아가에게 슬픔에 잠겨서 말한다. 네게 아름다움, 용기, 온유함을 주었지만 너는 고통을 받을 거라고. 마치 세상에 태어난 것은 기쁨만이 아니라 괴로움 등 불안도 헤쳐나가야 하는 무거움도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에 대해 온유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리는데...
‘되돌려받길 기대하지 않으면서 줄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분명 감미롭단다. 사람들이 네게 상냥하지 않아도 너는 그들을 상냥하게 대할 기회를 누릴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자비를 품은 자의 자부심을 느끼며 고통받는 자들의 지친 발에 신비하고도 놀라운 향기를 아낌없이 뿌리게 될 거야.’((p165)
마치 프루스트가 자신에게 한 다짐처럼 느껴졌다. 병약한 가운데서도 글쓰기를 지향한 그는 그 열정을 비밀스럽게 키워가지 않았을까.
20대 시절에 쓴 이 작품들은 어쩌면 누구에게 하지 못한 말을 수줍게 쓴 일기처럼, 마치 고백처럼 들렸다. 풋풋한 청춘의 프루스트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프루스트가 추구했던 불가능한 사랑과 예술을 통한 삶의 구원이라는 주제가 전반에 흐르고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여겼던 사회적 분위기,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사건 등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과 귀족 사교계로의 진입 등은 프루스트의 동성애 기질을 물리치는데 많은 기여를 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등장인물 중에 아픈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평생 천식으로 고통받았던 프루스트여서 그랬을까.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많이 아프다. 또 관심을 보이며 좋아하는 여성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해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인식>은 짧은 이야기인데 그 외로움을 쥐고양이를 통해서 해소되기도 한다. 부드러운 털이 살갗에 닿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난데없이 왠 쥐고양이인가 싶었다. 아마도 그의 삶에서 사랑은 불가능했지만 다른 것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불후의 명작을 낳았는지도.
금년은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프루스트의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해도 국일미디어, 열화당, 펭귄클래식, 동서문화사, 민음사 등 다섯 곳에서 새로 번역한 작품들이 완간을 앞두고 있고, 그의 단편들을 묶은 단편집들도 여러 종류가 출간되고 있습니다. 단편집들의 경우는 골라 뽑은 단편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밤이 오기 전에>도 프루스트의 단편들의 일부를 묶은 단편집입니다. 모두 18편의 글을 골랐는데 모두 20대 초중반에 쓴 글들이라고 합니다. 1부에 담긴 6편의 단편들은 작가의 생전에 발표된 것들이고 2부에 담긴 12편은 미공개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20대에 쓴 작품들이라서인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교하면 다소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사교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 것을 젊은 시절 프루스트의 사교계의 경험을 녹여낸 것으로 보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습작으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작품 <무관심한 이>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앙투안 바토의 동명의 그림과 <어린 소녀>라는 두 작품의 대조적 분위기를 이야기에 담은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밤이 오기 전에>는 동성을 사랑한 여주인공이 스스로의 가슴에 총을 쏘아 죽음을 앞둔 상황에 찾아온 이성 친구에게 속마음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프루스트적인 색채가 많이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스스로를 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매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그런 절망의 순간들 중 하나에 놓여 있었을 때 나 자신이 쏘았던 거예요.”
그녀가 죽음을 맞는 순간에, “우리는 함께 울었다. 슬프면서도 무한한 조화의 일치, 우리의 합체된 연민은 이제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대상을 향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마음껏 자유롭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가여운 눈물로 흥건히 젖은 그녀의 두 손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새로운 눈물로 젖어들었고 그녀는 한기를 느꼈다. 그녀의 손은 분수대에 떨어지는 창백한 나뭇잎처럼 차가워졌다. 우리는 그 순간만큼 그렇게 아파했던 적이, 또 좋았던 적이 없다.”
프루스트 자신이 천식으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인지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 듯합니다. <추억1>에서는 불치의 병으로 쇠약해진 여자 친구를 문병하는 이야기합니다. 못 알아볼 정도로 초췌해진 그녀는 바닷가에서 정양 중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바닷가 풍경이 묘사됩니다. 먼저 여주인공 오데트의이야기입니다. “저 끝없이 푸른 바다를 보는 건 정말 매력적이에요. 모래사장에 와서 부서지는 파도는 저를 슬픔에 빠지게 하는 생각들이고, 동시에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하는 희망들이에요.(51쪽)” 한창 잘 나갈 때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한 회한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헤어져 바닷가에 나온 화자는 “나는 바닷가로 나왔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데트에 대한 생각에 잠겨 무관심하고 고요한 긴 해변을 따라 걸었다. 태양은 수평선 너머 사라졌지만, 자줏빛 광선으로 하늘을 여전히 물들이고 있었다.(52-53쪽)” 결국은 무로 돌아갈 상황을 바닷가 풍경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분위기는 결코 우울하거나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을 구원할 무언가가 내재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었다. 처음 보다 더 재미나게 읽은 것이 놀라워,언젠가 다시 또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무튼 다시 읽으면서 내 눈에 보인 화두는 '질투' 였다. 질투를 따라가며 읽어내는 즐거움이 제법 있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질투와 사랑은 한몸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의 그림자가 질투일수도 있겠고... 그런데 공교롭게 프루스트의 단편집 출간 소식도 들었다. <밤이 오기 전에> 와 <질투의 끝> 중복되는 이야기가 있을 것도 같고 해서 우선 <밤이 오기 전에>에 수록된 '베토벤의 8번 교향곡 후에' 를 읽어 보기로 했다.
"그 왕국에서는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환상에 발맞추고 만족시키기 위해 분투한다. 그 왕국에서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등장하면 곧이어 수천 개의 다른 매력들이 그것에 합세하여 우리의 영혼 안에서 서로 더욱 긴밀하고 광범위하고 은밀하게 협력한다.그것은 음악의 왕국이다"/171쪽
아주 짧은 단편(?)이다..라고 말할수 조차 없을 만큼 짧다. 음악에 관한, 그것도 베토벤의 교향곡에 대한 강렬한 단상이자, 교향곡에 대한 에세이정도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베토벤 교향곡 8번에 대한 언급 조차 없다. 베토벤의 교향곡8번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을 피력했을 거란 기대와 달리, 교향곡이 주는 매력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깨닫고,웃음이 났다. 덕분에 소심한 독자는 꾸역꾸역 베토벤교향곡8번을 다시 찾아 들었고, 7번과 6번에 비해 8번이 덜 유명한 이유에 납득이 되지 않아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프루스트 선생께서 노린 지점이였을지도 모르겠다.^^)클알못..귀에 들리는 교향곡8번은...'나 교향곡 이야'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지루하다기 보다 신나는 느낌....지나치게 웅장한것만도 아니고....하나인것첨 보이는 동시에 수천 개의 매력...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에 대해 작가는 아마 감탄했던 모양이다. 왕국이란 표현을 망설임(?)없이 한 걸 보면.베토벤 교향곡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교향곡에 대한 예찬으로,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어봐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프루스트의 단편들은..긴 장편의 글보다 훨씬 어렵고..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지 않은 글이 있어 당혹스럽다. 천천히 곱씹어 가며 읽어야 하는 걸까... 한 번에 완독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살짝 아쉬워 '요정들의 선물'까지 챙겨 읽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산책길 마주한 그림자가..마치 숲속의 요정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 덕분이다. 그런데 '요정들의 선물' 역시 내가 상상한 동화 속 '요정'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너의 다정함을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아라.그것은 지나치게 귀한 정수이니,그것을 숭배하는 법을 배우렴.되돌려받길 기대하지 않으면서 줄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분명 감미롭단다.사람들이 네게 상냥하지 않아도 너는 그들을 상냥하게 대할 기회를 누릴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자비를 품은 자의 자부심을 느끼며 고통받는 자들의 지친 발에 신비하고도 놀라운 향기를 아낌없이 뿌리게 될 거야"/165쪽 어쩔수 없이 나는 동화 속 요정을 상상하면서,내가 누군가에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에게 요정같은, 혹은 요정이 있으면 하는 마음이, 동화 속 요정을 상상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멋짐을 선물하는 것도 요정의 마음이었을거라니.. 그래서 저절로 생겨나는 달란트 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수 있는 힘과 누군가에게 달란트를 줄 수 있는 요정이 되어야 한다는 참으로 멋진 생각을....게다가 그것이 때로는 씁쓸하때도 있다는 인간적인 표현까지... 요정을 동화 속에서만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제 좀 벗어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