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구효서 장편소설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이다.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구효서의 4년 만의 신작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을 때에는 다른 책보다 호흡이 길어서 부담이 되는 편이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문학작품을 선택하면 다른 종류의 책보다 만족감이 몇 배는 된다. 작가의 상상력과 나의 시간이 맞아 떨어지면 작품은 내 안에서 더 크게 확장되니 말이다. 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느낌일까. 그래서 이번 작품도 살짝 기대하며 읽어나갔다.
이 책의 저자는 구효서. 1957년 강화에서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의 소재와 방식에 대한 끝없는 실험 정신을 선보임으로써,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독자와 평단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가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평범해 보이는 제목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제목이 '요'로 끝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여튼 순해 보일 것 같아서. 열 권 정도 쓰고 싶었다. 요요거리며 자꾸 나올 것 같아서. 계속 이어 쓸 수 있다면 요요소설이라고 해야겠다. 마침 그런 한자도 있으니까. 樂樂.
어쨌거나 특별시나 광역시 같은 큰 도시는 이야기에서 빼기로 했다. 어수선해질 것 같아서.
한갓진 곳에는 꼭 맛있는 것과 예쁜 것이 숨어 있기 마련이어서 음식과 꽃 이름을 부제로 달기로 했다.
모쪼록 요요하시길.
2021.5 구효서
(작가의 말 전문)
등장인물이 매력적이면 처음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유리. 여섯 살 될락 말락 한 다섯 살이라고 한다. "여섯 살이 될락 말락 하잖아요. 될락 말락. 그게 막 간지러워요." 까르륵 웃는 유리의 모습이 상상되면서 소설의 흐름에 자연스레 따라가본다.
유리는 오베르주 애비로드에 살았다. 오베르주는 Auberge. 숙박 시설을 갖춘 레스토랑을 프랑스 말로 그렇게 부른다는데, 아무려나 유리의 엄마 난주 씨의 주장이 그랬다. 애비로드는 Abbey Road. 비틀스의 정규 음반. 레스토랑은 커피 향과 비틀스의 음반으로 가득했고, 한쪽 벽에는 비틀스가 런던의 실제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줄지어 건너는 커다란 사진(어쩌면 길을 건너는 네 사람의 다리 각도가 저리도 같을까 싶은)이 걸려 있었다. 유리 엄마 난주 씨가 오베르주 애비로드의 주인이었다. (11쪽)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간판을 보았을 때, 해외의 별의별 장소가 다 보였다. 소렌토, 알프스산장 등등 지나가면서 해외명소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름 짓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궁금해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특정 인물이 등장하니 그때 그 장면들과 오버랩되면서 소설 속 이야기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그림처럼 그려질 때, 그리고 그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과 앞으로의 일들이 궁금해질 때 몰입도는 뛰어나다. 런던의 길 이름을 딴 프랑스식 레스토랑이 한국의 산속에 콕 박혀 있는 셈이었는데, 그것이 오베르주 애비로드였다니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2383. 앞에도 산 뒤에도 산이었다. (12쪽)
결론적으로 말해 애비로드는 '프랑스식 레스토랑'이 아닌 것인데 난주 씨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애비로드에서는 프랑스 요리나 음식을 맛볼 수 없다. 호박고지, 시래기무침, 돼지고기활활 두루치기, 곰취막뜯어먹은닭찜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객줏집이라는 이름과는 어딘지 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유리 어머니의 바람대로 레스토랑이라 해주자.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아마 애비로드에 한 번이라도 들렀던 사람이라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애비로드가 유리에겐 집이었다. 아빠는 없었다. (13쪽)
이런 느낌 좋다. 있을 법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소설속으로 잔잔히 스며드는 느낌말이다. 그러면서 문득 사소할지도 모를 하나하나에 멈추어 음미한다. 무덤과 산소라는 단어에 집착해본다거나 불맛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거나, 그러면서 다음 장면에 대한 궁금증에 계속 읽어나간다.
이 소설은 불맛이라기보다는 조미료 안 넣은 담백한 맛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나를 끌어들여 다음에도 이 메뉴로 선택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조금씩 음미하며 상상하며 읽어나가도록 여운을 주는 소설이다.
'슬로&로컬 라이프' 문학이라니, 그 느낌 알 것 같다. 앞의 '일러두기'를 보면 본 작품은 작가의 두 단편소설 「도라지꽃 누님」, 「저녁이 아름다운 집」을 씨앗으로 하여 오랫동안 발아시킨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인물들을 새롭게 창조하고 이야기 세계를 더 넓고 깊게 확장하여, 오늘의 독자들에게 소소한 일상 속에 불쑥 끼어드는 인생의 사연들을 조금은 천천히 들려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폭풍처럼 몰아치지 않고 은은하고 잔잔하게 휘감는 소설이어서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