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시절 읽고서도 감흥이 하나도 없어서 취급도 안 하고 있던 <데미안>을 작년에 다시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뭔가 '나와 비슷한 영혼을 가졌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기에 <삶을 견디는 기쁨>은 당연히 읽어봐야 하는 책이었다. 또한 책 제목에 '견디는'이란 이 단어는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 고통스럽고 무의미하거나 피폐할 수 있는 이 삶을 어떻게 해야 견디기에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한 생각으로 어떠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생각해 보면 헤르만 헤세에게 시중에서 나오는 자기계발서나 위로하려고 만든 따뜻한 글귀를 생각했던 내가 오히려 우습다. 나는 책의 부제처럼 있는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저 글귀에 너무 많은 위로를 받으려고 했었단 느낌도 든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친구야~ 인생이 이러하지만 그래도 살만하다" 이런 메시지를 줄 줄 알았는데 처음 글에서부터 이미 그러한 기대감은 끝났다. 죽음의 향기 짙게 베어있는 헤르만 헤세가 그럴 턱이 있나.
이 책은 총 3부로 1부는 영혼이 건네는 목소리, 2부는 조건 없는 행복, 3부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의 구성은 에세이 1편, 시 1편, 그림 1편 이런 식으로 번갈아서 나온다. 책에 실린 그림은 모두 헤르만 헤세가 직접 그린 것이다.
각 부의 주제에 맞는 이야기들이 이루어져 있지만, 시종일관 시니컬함과 짜증스러움과 회환이 묻어있는 것은 헤르만 헤세의 사상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글에서 보면 자신에게 원망과 경멸과 불만과 저주를 쏟아내는 편지를 자주 받는다고 하는데, 사실 도대체 뭔 짓을 했고, 뭔 글을 그렇게 파격적으로 썼기에 저럴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 연유를 찾아볼 여유는 아직 없어서 궁금증으로 일단 내버려둔다.
앞서 말한대로 삶의 견디는 기쁨을 위한 어떠한 제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읽으며 헤르만 헤세가 얼마나 자기 생각이 확실하고, 고착화되어 있으며, 문명의 이기에 얼마나 심한 알레르기를 겪고 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인데도 그 글마다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동경이 보여서 '자살기도 안 하면 다행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나중에 연보를 보니 자살기도를 했더라.
그는 평생을 시종일과 죽음과 줄다리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그 죽음을 직접 선택하지 아니한 것은 본인의 나약함이라 치부하지만,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삶을 견디어 살아내는 것이고, 그 또한 인내와 수행의 한 부분이자 이해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저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가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통 또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자살기도 해서 이미 저승에 못 간 마당에 나름 포기하고 감수하기로 맘 먹은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가 상당히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어 자못 주변 사람들도 힘들겠다 싶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은 사람은 상종도 하기 싫다는 둥 이런 스타일의 글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 철학, 신에 대한 섭리 등이 상당히 확고해서 그런 것들이 공유되지 않는 사람들은 심지어 경멸까지 하는 것도 같다. 왠지 불만 편지 많이 받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것도 같다. 헤르만 헤세는 기차여행이 끔찍하고, 좌석표를 가르키는 숫자에 환멸을 느꼈지만 나는 기차여행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와 더불어 역시 헤르만 헤세가 말한대로 아무리 삶의 회한을 느끼고 빨리 죽고 싶어서 난리치는 사람들조차도 생의 기쁨과 즐거움은 추구하고자 한다고 했던 것처럼 불꽃놀이에 대하여 많은 돈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아무런 부작용 없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버리느냐가 관건(pp.287-289)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에 있어선 위트마저 보인다. 저 글귀에 얼마나 빵 터져서 웃었는지 삶에 고통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헤르만 헤세조차도 그래도 삶을 견디는 기쁨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소설과 달리 헤르만 헤세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데미안> 때에도 어스름하게 느꼈던 죽음의 향연은 이 책에서 유감 없이 발휘된다. 그의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사상과 현재의 독일과 예술 및 문학세계에 대한 비난도 맘껏 드러내며, 고집스럽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한 입을 앙 다문 듯한 헤르만 헤세의 얼굴 표정이 그려지는 글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글에 동의할 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포스트잇을 붙이는데 여념이 없었지만, 그러하지 않을 때엔 갸웃거리며 헤르만 헤세는 이렇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이러한 것조차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삶을 견디는 기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그 고통과 행복을 함께 맛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 이 서평은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서평이벤트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