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때로는 의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저자의 전작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통해 영어 공부의 패러다임을 배웠고(슬프게도 배우기만 했다.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나를 탓해본다),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를 보면서 여행을 통해서 배우는 것과 또 인생을 의미있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직장에서 이기는 법이다. 저자는 강연장에서, 블로그 방명록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직장 내 어려움과 괴로움. 역시 퇴사가 답일까요?', '버티기 힘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피디님은 그 많은 괴로움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그가 제안한 답은 하나다. 끝까지, 집요하게, 그럼에도 재미있게 싸워야 한다고.
"싸워야 할 때 달아나지 않는 것은 인생에 대한 예의다." 라고 외친다.
(표지도 시트콤이다. 재미있다. 하지만 책 내용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물론 저자의 훌륭한 입담으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그렇지 않다)
저자야말로 시트콤 피디보다 더욱 재미있고 유쾌하게 MBC 파업 사태를 버텨냈는데, 말은 긍정적으로 하고, 재밌게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누군가의 가장으로, 또 직장 동료, 선후배로 분명 마음속은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언뜻언뜻 그런 것이 비치기는 한다.
저자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재밌어 보이는 PD나 해볼까하고 MBC공채로 입사한다. <뉴논스톱>, 드라마 <내조의 여왕>같은 유명 프로그램으로 수상도 하고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었으나 2012년 MBC 노조부위원장을 맡았다가 대기발령 및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는 바람에 연출 길이 막힌다.
달아날 것인가, 맞설 것인가에 그는 체념과 순응을 물리치기 위해, 끝까지 싸워 이기기 위해 동료들과 '웃음 터지는 싸움'을 작당한다. 이 책은 그 지난하면서도 때론 재미있고, 때론 힘들었으면서 재미있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저자의 에피소드에는 하나하나 감동이, 진솔함이 있다. 아픈 남자 후배가 한 명 있었다. 젊은 나이였는데 말기암이었다. 김PD와(앞으로 존칭 생략) 입사동기였던 박나림 아나운서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말기암 환자였기에 '나중에'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음날 바로 저녁식사를 추진했다. 후배는 너무나 행복해 했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후배의 웃는 사진을 보면서 그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 너무나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내가 그때 소원 안 들어줬으면 정말 미안했겠다.'
나도 이름을 들어본 그 이름도 용맹한 MBC 기자중에 이용마 기자라고 있었다.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를 9시 뉴스데스크(지금은 메이저 방송사 중 KBS1을 제외하고는 다 8시에 한다, 하지만 그때는 9시 뉴스데스크였다) 에서 자주 들었던 이름이다. 그가 아팠다.
그는 당시 MBC 사장이 잘못됐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물러나고 정상화 되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MBC는 170일이 넘는 파업을 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사실 저자는 이득렬, 엄기영같은 앵커 출신 사장은 알아도 당시 사장은 누군지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평소 신뢰하던 후배의 말에 용기를 낸다.
다음날 저자는 외친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부장이 찾아왔다. 차장인 그에게 조금만 기다리자고 1년만 기다리자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병상에 누운 이용마 기자가 떠올랐다. 그 사이에 그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의 한은 풀어줄 수가 없다. 이용마 기자가 살아생전 MBC에 복직하는 날이 올 때까지 그는 투사가 됐다.
사실 앞에 PD가 되는 과정은 저자의 전작을 통해 어느 정도 들은 이야기였다. 면접을 볼 때 지나치게 솔직했던 MBC도 안보고, 드라마도 안 보는데 PD가 되었던 그.
그의 한마디가 멋있다. '대한민국에 시청자가 5,000만인데 신문방송학과 나와서 텔레비전만 열심히 본 사람들이 만드는 프로그램만 보겠습니까? 저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프로그램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합격했다. 사실 이건 혹시나 이 글을 읽을 취업 준비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회사에서 임원을 모시는 일을 많이 했는데, 면접 다녀오면 항상 검은색 정장에 파란 넥타이에 다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다 똑같은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차라리 솔직해져라. 심지어 때론 먼산 보는 사람 뽑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면접만 하루종일 보는 임원은 지루하다. 적어도 그 사람은 창의적이니까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 거의 무스펙에 가까운 스펙으로 대기업 여러군데 합격했다. 두가지 무기가 책과 솔직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1990년대 강력한 노조와 오너의 부재 등으로 MBC의 스타 아나운서, PD가 탄생하던 그 시기 회사가 우주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일을 즐겼다고 했다.
<뉴 논스톱>의 성공에는 당시로는 당연할 수도 있던 퇴근 후에도 호출하던 그 불합리함을 버리고 아내를 택했던 덕분이었다. 궁금하시면 책을 보시라!
저자는 제대로 된 파업에서 두 번 다 불참했다. <내조의 여왕> 같은 인기있는 프로그램 덕분에, 또 한 번은 선배의 배려(?)로.
결국 저자는 파업에 불참하고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라는 드라마가 소위 망했음에도(나도 이런 드라마가 했는지 모르겠다) 박진희, 엄지원 여배우가 주연이었구나.
여하튼 이 드라마의 실패에도 입사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차장이 됐다.
왜냐고?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뛰어난 동기들이 파업 참가자였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역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김재철 MBC 사장 초창기에는 노조 활동에 관심도 없다가 뛰어들게 된다. MBC는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조직, 일하고 싶은 회사였는데 어느 순간 아니게 바뀌어 있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MBC가 콘텐츠 강국(이건 좀 안 맞다, 강국은 강한 국가다. 뜻은 알겠다 콘텐츠가 강한 방송국 또는 미디어)으로 수십년을 이어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피디들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문화 덕분인데, 그 배경에는 전 조합원이 철통같이 지켜온 노동조합이 있다. 더 행복한 직장을 바란다면, 성공에 대한 보상보다 실패를 용인해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성공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 일을 즐기는 사람은 돈을 더 주지 않아도 일의 보람과 주위의 인정만으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MBC같이 처음부터 급여나 복지가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저자의 투쟁정신이나 깨인 마인드를 충분히 알지만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나도 대기업을 다니기 때문에 저자처럼 이런 것에 무딜 수 있지만, MBC나 대기업이 아닌 밑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위의 인정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우리와 다른 처지의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MBC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보다 돈을 더 줘야 버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더 많다고. 저자를 만나면 이야기 해주고 싶다) 성과가 나지 않아 불안안 이들에게 경제적 안정성이 더 필요하다. ---p.89 + ( )안은 내 의견이다
한홍구 교수가 강의에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우리는 왜 왕정제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고종이 일제에 결사항전하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왕손들이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이어갔다면 백성은 조선왕조를 잊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왕조는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외세를 끌어들이고, 자신들끼리 세력다툼하고, 왕족들이 작위를 받은 사람이 제일 많은.
김재철 치하에서 MBC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망할 때도 잘 말하는게 중요하다.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려 이기면 청산이 어렵다. 우리 힘으로 싸워서 이기고, 우리 손으로 청산하는게 중요하다. 이기지 못해도 좋다. 질 때 지더라도 이것만은 알려줘야 한다.
"쟤들은 호락호락 점령되는 조직이 아니구나." ---p.109
그렇다. 우리 한국에서 중요한 순간에 혁명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의 차이는 결국 하나로 뭉칠 수 있느냐, 아니냐다. 가장 큰 힘든 점은 지배층의 힘이나 무력이 아니다.
100명의 국민(또는 약자, 혁명 세력이 있다면) 꼭 이 100명 중에 20명이 강자의 편에 붙어서 조금 더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약자를 더 심하게 괴롭힌다. 나머지 80명은 아마 단결된 구심점이 있고, 강자에 부역했던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하나로 달려갈 수 있지만, 그들은 약자다. 먹고 살아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다. 결국 힘에 굴복한다. 이 패턴이 고려, 조선 내내 이어졌다.
유일하게 우리가 승리한 것은 현대에 와서 4.19 혁명, 87년 6월 혁명, 그리고 촛불혁명 뿐이다.
그 뒤는 저자의 험난한 투쟁기가 펼쳐진다.
저자의 투쟁기를 나는 언젠가 PD 수첩으로 볼 수 있었다.
당시 사장인 김장겸씨를 향해 지나가는데 무모하게 보이듯, 혼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던 투쟁가를 봤다.
중간중간 저자의 독서 기록도 나온다. 역시 다독가 답게 싸우면서도 많은 책을 읽었다. 대단하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공부에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플라이 백>을 읽고, 박창진 사무장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싸움의 기록을 남기는 모습을 보고, 나도 배웠다. 싸움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나를 죽이는 일이다.
이번 책을 쓰면서 여러 차례 고민했다. 싸움의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플라이 백>을 읽고 깨달았다. 수많은 '을'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그런 세상을 위해 내가 싸움의 과정에서 배운 것을 나누고 싶다. ---p.203
저자는 비록 승리하고 복귀했지만, 저자의 드라마 PD로 감각이 좋던 40대는 없어졌다. 투쟁하는 7년동안 그는 감각을 잃었다. 힘들다고 했다. MBC는 우리 사회는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인재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책을 쓰면서 기록으로 남기고, 사회를 바꿀 수 있고, 후배들이 마음껏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이용마 기자가 타계했다.
이용마의 말대로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니 바꿔야만 한다.
"이 사회를 지금부터 바꾸어나가야 우리 아이들 세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p.289
이용마의 아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함께 소망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내가 부역자일 수도, 방관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해보면, 또 내가 좋아하는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대부분 Fact를 이야기하거나, 정의를 외친 사람이 죽는다. 불의에 부역했거나 타협한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산다.
아프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 역사에서 현실에서 사회에서 더욱 정의가 승리하고, 정의롭게, 때론 최소한 남에게 피해 안 주는 사람이라도 승리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적극적 동참자는 비록 될 수 없어도, 적어도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