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과제로 읽게 된 책
'콜미바이유어네임(그 해, 여름 손님)'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의 원작소설
당연히 책을 보고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일들에 치여, 어쩌다 보니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는데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해한다. 이질적인 배경, 겪어보지 않은 상황들이 어쩌면 활자를 바탕으로 상상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만큼 영화를 볼 때에 머리에 힘을 빼고 봤다는 말이 되겠지.
28년 중 아주 잠시 유럽을 다녀왔다고 그 배경과 문화가 모두 이해될 턱이 없었고, 또 아직까지는 같은 성별을 보고 설레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기에 영상을 보고도 그 미묘한 감정을 읽기란 어려웠다. 확실히 다른 성별에게 향하는 사랑의 감정보다 복잡했다. 아마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적 압박 때문이겠지.
영상을 볼 때에 이해하지 못했던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책에서는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때론 너무나 솔직하게 적혀있어 놀랍기까지 했다. 아, 영상은 이렇게 많은 내용을 내포해야 하는 거구나.
영화에서는 통화하는 장면으로 연출되었던 부분이 책에서는 엘리오의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묘사되어있다. 그리고 그 이후, 15년 후에 엘리오가 올리버를 찾아가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연출가는 왜 뒷 장면을 생략한 것일까.
인생의 모든 부분은 마주할 때는 우연 같지만 지나 보면 필연적이다. 엘리오는 그 여름에 다른 손님이 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의 가족이 올리버를 그 해 여름 손님으로 선택한 것도 필연적이었으리라.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지도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랄 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네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있으면 끄지 말고 잔혹하게 대하지 마라.
밤에 잠을 못 이룰 만큼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건 끔찍하지. 타인이 너무 일찍 나를 잊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 “
자신의 아들이 ‘대부분’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으나, 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오는 제자리를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제자리를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놓인 시작점이 잘못된 것이기에 스스로가 자신을 찾아가는, 용기라고 불려야 할 그것을,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존중받았다는 것이 획일화를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견딜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대상이 누구든, 사랑이다.
모두를 응원한다. 내 목소리가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를 본건 우연이었다. 영화 소개 글에 끌려 틀게 된 영상은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열일곱 소년 엘리오와 스물넷 청년 미국인 철학 교수 올리버의 솔직하고도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엘리오의 성장하는 모습을 같이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배경과, 영상미, 그리고 삽입곡까지. 특히 통통 튀는 기타 소리가 인상적인 Mystery of Love는 플레이 리스트의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원작도 읽어봐야지'만 하다가 이번에 읽게 된 책. 파이팅 어워드 수상자 안드레 애치먼이 두 남자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처음에 표지를 보고 알록달록 예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내용을 다 알고 보니 어느새 스며든 사랑처럼 물감으로 물들은 느낌이라 색달랐다.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정선이나, 문장을 읽으며 한 번도 가본적 없는 도시나 장면들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 책은 엘리오의 관점에서 첫사랑의 기억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엘리오의 부모님은 책 출간을 앞두고 원고를 손봐야 하는 젊은 학자들을 초대하곤 하는데, 그 해 여름 손님으로 오게 된 올리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나중이 아니면 언제?>라는 첫 챕터에서 엘리오는 어쩌면 그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으로 처음, 사랑이 시작된 때를 가늠해본다. 그가 도착하고 얼마 안 돼 점심 식탁에서 내 옆에 앉았을 때, 식사 후 모두들 휴식을 취할 때, 어쩌면 해변이나 테니스장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했다가 등등. 모든 것들은 그가 엘리오의 집에 온 그 여름에 시작되었다. 엘리오는 자기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새 여러 번의 혼란과 충동, 절실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엘리오의 시선을 따라가 혼자만의 상상으로 점점 커져가는 마음을 강렬하고 에로틱하게 표현했다. 엘리오가 도달하게 되는 사랑의 끝에는 결국 올리버 역시 같은 마음임을 확인하고, 연인이 된다. 엘리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영화와는 달리 올리버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지만 올리버가 겪는 다양한 혼란도 비추는듯했다. 엘리오보다 성숙한 그가 겪는 확신이 없는 감정들.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 처음에는 엘리오와 거리를 두고 피하려고 했지만 엘리오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고, 곧 콜롬비아로 떠나는 그는 제한된 시간 동안 엘리오와 사랑을 키워나간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그들의 마지막 일정. 로마의 북 파티. “죽을 때까지 로마를 잊지 못할 거예요.” 올리버가 떠난 후 집으로 돌아온 엘리오가 올리버의 부재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가 크리스마스 전 돌아왔다. 결혼한다는 말과 함께. 다음 해 여름, 그가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텅 빈 몇 년이 지나갔다. 두 사람은 간간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확인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추억들을 가진 두 사람은 후에 재회했다. 엘리오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는 듯했지만 씩씩하게 잘 견뎌낸듯했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 제목이 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인지 알게 된다. 그때 그 뜨거운 여름 같던 열정과 사랑, 그에 대한 마음은 무뎌진 듯 계속해서 마음 구석에 남아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서로로 인해 온전하게 남은 세상. 책을 읽는 내내 이탈리아의 마을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강렬한 여름의 태양, 천국의 수영장, 자전거, 모네가 그림을 그리러 온 장소인 언덕. 실제로 본 적도 없는 곳들이 생생하게 다가와 여운으로 남았다.
이 책은 동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비록 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 영화에 대한 호평만큼은 잘 기억하고 있어 원작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2017년에 <그해, 여름 손님> 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영화가 큰 주목을 받은 후 리마스터판으로 제목을 바꾸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재출간 되었다. 단순히 디자인만 바꿔서 낸 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를 원문과 대조해 원작의 감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수정한 끝에 재출간 되었다고 하니 기존에 책을 읽었던 사람들에게도 새롭게 다가올 수 있을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동성의 사랑을 담고 있다. 17살의 엘리오와 24살의 올리버라는 두 남자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는데, 원작이 좋았던 덕분인지 영화로 제작된 후에도 영화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의 엘리오가 올리버를 만났던 여름을 회상하며 시작된 이야기는 두 사람 사이의 여러가지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영화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묘사된 만큼 소설 또한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세세한 줄거리를 설명하기보다는 문장이 그려내는 분위기 자체에 취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가 작게나마 인기를 끌고, 책이 다시 재출간된다는 것만으로도 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의 사랑을 다루는 데도 옛날처럼 거부감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학적 장치나 네러티브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동성의 사랑에 대한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면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질 법한 좋은 책이었다.